[2000/01] 귄터 그라스와 피에르 부르디외와의 대화

귄터 그라스
대화
피에르 부르디외


’99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서 세계에 문명을 날린 귄터그라스와 불란서 사회학자이자 철학
자인 피에르 브르디외는 다 같이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의 반인본성과 반환경성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을 해온 지식인들이다. 지난 12월 초순 두 거장이 만나 오늘날 세계의 지각없
는 흘러감과 이 위험한 조류의 극복을 위한 희망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대화를 듣는다.


부르디외 : 그라스 씨, 선생은 언젠가 유럽에 ‘당당하게 입을 열어 발언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선생과 그 전통을 이어볼까 합니다.

그라스 : 독일의 경험으로 보면 사회학자와 작가가 한자리에 앉아 토론하는 일 자체가 드문
편입니다. 탁자 한쪽에는 철학자 반대편에는 사회학자가 자리잡고, 작가는 뒷방에서 소외감
이나 맛보는 게 보통이지요. 이런 대화는 정말 드문 일입니다. 선생의 역작 『세계의 비참』
과 최근에 출간된 저의 책 『나의 세기』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승자보다는
패자들의 편에 서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이 『세계의 비참』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체계화하고자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프랑스의 사회적 상황을 보는 시각, 다
른 나라들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비판적인 눈 말입니다. 선생의 이야기들은 문
학의 소재로 활용하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예컨대 옛 철강노동자들
의 후손들이 공장에 취직했다가 일자리를 뺏기고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는 과정이라든
가, 농촌에서 파리로 이주한 후 밤에 편지 분류작업을 하는 한 여성에 대한 연구는 지금의
사회문제들을 우회적이지만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사회적 관계에 다가서는 책이 각 나라들마다 최소한 한 권씩 정도는 있었으
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만 한 가지 지적은 해야겠습니다. 사회학이 갖고 있는 기본 방법
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회학 서적들에서는 유머와 익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죠. 가령 문학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실패와 좌절의 해학이라든가, 대결구조에서 드러
나는 부조리 등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부르디외 : 지금 예를 드신 그런 종류의 경험을 당사자로부터 직접 듣는 사람은, 일단 그 현
실의 무거움에 압도되기 마련이지요. 그럴 경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계의 비참』에 몇 가지 사례는 일부러 싣지 않았는데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들이었기 때
문입니다.

그라스 :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극과 희극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그것들이 갖는
차이조차 때로는 모호하다는 사실입니다.

부르디외 : 사실 독자들에게 야만적인 부조리를 꾸밈없이 보여주자는 것이 그 책의 목표였
어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할 때 약간 포장을 해서라도 잘 써봐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젖기 쉬운데, 저희는 현실의 폭력적인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싶었습니다. 학문
과 문학에 대한 고민도 반영이 되었습니다. 현실을 우리 입맛에 맞게 재구성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문학적으로 쓰지 않은 측면도 있지요.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폭력성이 너무 심각하다 보니까
이론적인 분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 거죠. 비판적인 사고라는 것이 현 정치의
부산물이랄 수 있는 치장효과와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요?

그라스 : 제가 드린 지적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크게 보
면 우리 두 사람은 ‘계몽주의의 아들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이
고 전 유럽에서 실패했다는 유럽식 계몽주의 말입니다. 저는 계몽주의 자체가 문제라는 식
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계몽운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빠지게 된 잘못에
주목하는 편입니다. 예컨대 이성이 실현가능성 여부라는 기준에 몸을 맞춰야 할 정도로 퇴
보했는데도 그것을 방관했다는 겁니다. 몽테뉴 한 사람만 놓고 봐도 계몽운동의 초기에 제
기됐던 많은 관점들이 백년이 흐른 지금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유머입
니다. 이를테면 볼테르의 『깡디드』나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에는 그 시대적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그 아픔과 좌절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유머와 당당함을 잃지 않고 오
히려 발전시켜왔는지가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부르디외 : 하지만 계몽운동의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 느낌은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
는 신자유주의적인 시각, 그리고 그것에 의해 뒤바뀐 세계관 전체와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
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내건 혁명은 30년대 독일에서 유행했던 ‘보수혁명’이라는 화두와
어깨를 견줄 만큼 보수적입니다. 이런 유형의 혁명은 진보라는 이름을 빌어 시계바늘을 거
꾸로 돌리자고 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드문 일에 속하지요. 옛날로 돌아가자는 이 시
도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스스로 과거를 사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영원한 싸움꾼 정도로 치부될 겁니다. 프랑스
에서 퇴물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요.

그라스 : 화석화된 공룡…

부르디외 : 맞아요. 바로 그 지점에 이른바 ‘진보적’으로 부활하는 거대권력, 보수혁명이
있습니다. 선생의 주장 역시 악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우릴 익살이라고는 눈
곱만큼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낙인을 찍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시대는 결코
익살스럽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웃어넘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문제이지 않겠습니까?

그라스 : 난 우리가 유쾌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문학적인 수단
을 통해 해방되어 분출되는 폭소 또한 현실에 대한 저항일 수 있다는 거지요.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19세기 맨체스터 자유주의가 취했던 방법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70년
대에는 전 유럽에서 자본주의를 교화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
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둘 다 계몽운동이 낳은 자식들이라고 볼 때, 서로 견제하고 교
화하는 측면이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당시에는 자본주의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굴레를 완전
히 벗어 던질 수 없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이른바 책임지는 자본주의를 일컬어 ‘사회적 시
장경제’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보수정당마저도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벌어졌
던 일들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에 뜻을 같이 했으니까요.
이 암묵적인 합의가 80년대에 들어와 깨지게 됩니다. 현실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뒤 자본
주의는 견제를 벗어나면서 제멋대로 자신만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믿게 된 거지요. 비오
류성을 과신했던 공산주의체제의 잘못을 신자유주의가 반복하고 있다고 경고하는 자본주의
신봉자는 아직도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부르디외 : 신자본주의의 힘은 의외로 강합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도 포섭할 능력이 있으니까요. 사회민주주의 정당 출신인 쉬뢰더나 블레어, 죠스팽 모두 신
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니 분석은 물론이고 비판
자체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라스 : 그들은 경제논리에 발목이 잡혔지요…

부르디외 : 이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을 강력하게 비판할 수 있는 힘을 모아야 하는데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1995년 프랑스 노동자와 지식인이 대거 참여했던 대파업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대파업의 뒤를 실업자운동이 뒤따랐고 체류권이 없는 이주자들의 운동이 또 그
뒤를 받쳐주었어요. 권좌에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적인 이상에 부합되는 정책
을 펴라는 압력이었던 셈인데, 저는 그 비판운동의 힘이 매우 약했다고 봅니다. 국가라는 울
타리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죠. 사회민주주의 정부보다 좌파적인 세력들이 국제연대의 틀 속
에서 함께 더욱 큰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때 제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는 질문 중의 하나는 “그렇다면 지식인들은 이 운동에 어떻
게 기여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현 지배권력의 성격을 살펴보면 그 속에는 경제논리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요소 또한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닫힌 입을 열어 당당하게 발
언’하며 유토피아의 꿈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 필요한 겁니다. 신자유주의 정부들은 유토피
아에 대한 꿈을 압살하고 그 꿈을 낡은 것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데에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으니까요

그라스 : 문제는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현실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된 후 사회주
의 역시 존재근거를 상실했다고 보는데 있습니다. 공산주의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
는 노동운동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겁니다. 자신들이 이어받은 고유한 전통과 결별하는 사람
들은 결국 투쟁을 포기하고 투항의 길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에서도 실업자를 조직하려는 작은 움직임이 있긴 했지요. 저는 몇 년 전부터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정규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정규노동자들 역시 노동시장에서 쫓겨나자마자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 실업자조합을
전 유럽 차원에서 조직해야 한다… 유럽통합이 경제라는 울타리 내에서만 진행될 뿐, 조직
과 행동 면에서 국가적인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아직 노동운동에는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 점을 저는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전 지구적인 차원으로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이쪽에서도 뭔가 내놓을 만
한 것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지식인들이 분노를 삼키면서 침묵하고 있어요. 삼
키기만 하면 위종양만 얻을 뿐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은 없는데도 말이지요. 입을 열어야 합
니다. 사실 저는 지식인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지
식인이라는 화두가 의미를 잃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만 이상하게도 독일에서는 지식인은 곧
좌파라는 오해가 존재합니다. 나치즘을 포함한 근대의 역사는 지식인들의 음지와 양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실 괴벨스(히틀러와 더불어 나치 1급 전범-역자 주)도 지식인이었지 않습니
까? 지식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품질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선생의 책 『세계의
궁핍』은 노동자 출신들이 지식인들에 비해 훨씬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사회운동에 투신하
고 있음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노동자들은 지금 실업
상태에 놓여 있거나 은퇴했고 이젠 누구도 자신의 힘을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힘
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되어 있는 겁니다.

부르디외 : 『세계의 비참』은 현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에게 자신의 분수에 맞으면서도 의
미 있는 역할이 많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북아프리카에는 공공영역에서 글
을 쓰는 일군의 지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
해 쓸 줄 아는 사람들이지요.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독하며, 전달하는 사
람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저는 지식인들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라스 : 신자유주의 쪽에 서 있는 지식인들에게도 호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세계를 미친 듯이 이동하는 자본, 이 자본주의의 폭주에 문제는 없는가’라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차별적인 합병이 만들어내는 수만의 실업자들… 이윤의 극
대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무서운 현실을 보면서 말입니다.

부르디외 : 문제는 지배적인 사고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비판적인 시각이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이
오늘 이 텔레비전 대담에 참여한 것은 지식인들만의 좁은 울타리를 뛰어 넘을 필요성을 느
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약간이라도 침묵이라는 두터운 벽을 헐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자본이
쌓아올린 벽만 두터운 것이 아닙니다.
사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발언할 기회를 주기
도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침묵을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린 끊임없이 지배담론의 공
격을 받고 있습니다. 언론인들은 대부분 획일적인 지배담론의 무의식적인 공범자에 속하지
요. 프랑스에서도 몇 명의 스타지식인들을 제외하고는 언론매체에 등장할 기회를 갖기가 힘
듭니다. 유감스럽지만 현재 많은 지식인들이 근엄하게 침묵을 즐기고 있습니다. 언론이라는
상징적인 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식인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라스 : 다른 거대조직과 마찬가지로 텔레비전도 자신들만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지요. 그게
바로 시청률이라는 것인데 이 시청률의 명령은 누구도 거역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오늘 우
리 두 사람의 대화도 대형방송사보다는 ARTE(독일과 프랑스가 합작해서 만든 공영예술방
송-역자 주)에서 마련한 걸 겁니다. 저는 토크쇼에 나가지 않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아무 것
도 전달할 수 없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토크쇼가 아닌가 합니다. 토크쇼에서는 남보다 길게
이야기하거나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수록 빛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의견이 갈려
첨예화하고 깊이 있는 토론이 시작되려고 하면 사회자가 개입해서 즉각 중단시키기 때문에
뭔가를 얻기도 힘듭니다. 지금 우리 두 사람의 대화는 중세에 시작된 ‘디스풋’(Disput)이
라는 논쟁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이 토론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는 방식이지요. 이런 방식이라면 노력할 경우 뭔가 성
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주제든 좋으니 깊이 있는 토론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를 텔레비전에 권하고 싶습니다.

부르디외 : 그렇게 되려면 토론에 참여할 담론가, 작가, 예술가, 연구자들이 직접 제작에 참
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체적인 ‘생산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저는 방금 의도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표현방식인 생산수단이라는 단어를 사용
했습니다. 역설적인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신의 생산수단이나 판매수단에 대한 점검을
게을리 한다는 점입니다.

그라스 : 너무 애석해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항상 소수였지요.
역사가 흘러온 과정을 보면, 소수의 목소리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
론 우리들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전략을 개발해야겠지요. 저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작가세계의 불문율을 어쩔 수 없이 깨뜨려야할 때가 많습
니다. 정치가들은 똑같은 주제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피곤한 일이지요. 자신
의 목소리가 불러일으키는 메아리를 반복해서 들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처럼 주장이 제
각각인 세상에서 청중을 모으기 위해서는 자꾸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부르디외 : 제가 선생의 책을 읽으며 감탄하는 것은, 선생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적절한 표현방식을 찾고자 각고의 노력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늘날의 현실이 지금까지의 계몽의 시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반계
몽주의에 맞설 의사전달수단으로 백과전서라는 무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이제 완전
히 다른 얼굴의 반계몽주의와 싸워야 합니다.

그라스 : 계속 소수인 상태에서 말이지요.

부르디외 : 과거에는 상대방의 힘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습니다. 오늘날 우
리는 강력한 언론권력과 상대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작은 섬 정도의 여유는 남겨져
있다고 봅니다. 출판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비판적인 책일수록 더욱 그렇습
니다. 제가 오늘 선생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두 사람의 공동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의 도구가 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도구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가 말하려 하는 바로 그것을 위해서 말이죠.

그라스 :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대단히 비좁다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차
원의 문제도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국가에 대해 좀 더 많은 규제를 하라고 스스로 요구하
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독일은 규제국가로서의 국가의 몸집이 지나치게 비대한 나라였습니
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의 극단으로 갑니다. 국가의 폐지를 주장하는 무정부주의의 오랜 꿈
을 신자유주의는 지금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든 프랑스에
서든 개혁의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다 해도 경제구조가 근본적으로 탈바꿈하지 않는 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국가의 탈권력화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이죠. 그
리고 우리 두 사람 모두 국가가 다시 책임의식과 통제수단을 갖고 개입해야된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묘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부르디외 :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더 강력한 국가를 요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보
수혁명이라는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국가를 진지하게 고민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라스 : 신자유주의는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유리한 부분에만 국한하여 국가로부터 뭔가를
박탈하려 합니다. 여전히 국가는 경찰제도를 유지하고 질서국가로의 면모를 과시할 겁니다.
하지만 국가가 노동자, 농민,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한 기본질서마저도 유지
하지 못할 때, 자신의 책임을 망각하고 세계화라는 미망으로 도피해 버릴 때, 국가가 존재해
야할 근거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책임성이야말로 신자본주의의 기본원리입니다.

부르디외 : 선생의 책 『나의 세기』는 저에게 몇 가지 사건의 의미를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립크네히트(로자 룩셈부르크와 함께 독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이끌다 암살당한 사회주의운
동 지도자-역자 주)가 조직했던 사회주의 집회에 아버지를 따라 나갔다가 아버지 어깨 위에
서 오줌을 쌀 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선생이 직접 겪었던 일
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사회주의를 보는 독특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융어와 레마크를 선생이 다룬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 비극적인 사건마
다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만 지식인들의 역할이 진정 무엇인가에 대한 선생의 입장을 행간에
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의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도 눈에 띄더군요. 저 자신도
하이데거의 수사학을 비판하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그라스 : 프랑스 지식인들이 융어와 하이데거에 열광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재미있는 일
입니다. 프랑스인과 독일인들간에 존재하던 상대방에 대한 편견이 더욱 심각한 혼돈 속으로
빠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거든요. 독일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쳤던 담론들이 프랑스에서는 찬
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정말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르디외 : 하이데거의 신비주의를 비판해왔던 저는 프랑스에서 상당히 외로운 처지에 있다
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이데거류의 현대적 반계몽주의에 환호성을 지르는 나라에서 계몽주
의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하이데거와 융어… 융어는 프랑스공화
국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는데 정말 두려운 일이지요.

그라스 : 립크네히트 얘기를 좀 더 해 보지요.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젊은이들에게 진보를 선
동하던 립크네흐트, 그의 연설을 들으며 너무 열광한 나머지 아들이 어깨에서 내려오고 싶
어한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아버지, 참다못해 결국 오줌을 쌀 수밖에 없었던 아들
을 그 아버지는 때립니다. 아버지의 권위적인 행동은 자신이 열광했던 사회주의의 이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아들은 성장하여 1차 세계대전 전투를 자원하고 립크네
히트가 집회에서 경고했던 바로 그 반사회주의적인 일들을 하게 되니까요.
융어와 하이데거의 문제로 돌아가면, 저는 프랑스 지식인들이 독일의 계몽운동가들도 눈여
겨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디드로와 볼테르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레싱이나 리히텐베르
그도 있었으니까요. 리히텐베르그의 경우 재기와 유머가 돋보이는 계몽주의 문학가였는데
융어보다는 프랑스인들의 사고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르디외 : 계몽주의의 위대한 유산이랄 수 있는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는 그다지 자주 거
론되지 않는 반면 그와 반대편에 서있었던 하이데거는 엄청난 주목을 받았습니다. 역사의
간계에 의해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이 서로에게서 좋지 않은 점들만 배우는 것은 아닌지 두
렵습니다.

그라스: 저의 책 『나의 세기』에는 한 대학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교수는 자신
이 주관하는 수요세미나에서 68운동 당시 학생이던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고민하곤 했
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이데거의 숭고주의 철학에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난 사람이지요. 학문
적으로 너무 빨리 출세하는가 싶더니 결국 아도르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더군요. 지식인들
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60년대라는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저항은 필요불가결한
측면이 있었고, 사회에 미친 영향도 당시 운동주체들이 스스로 믿었던 것보다 컸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혁명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성공할만한 사회적 기초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어쨌든 68운동이 독일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건 사실입니다.
저는 당시 마오주의에 심취해있던 학생들이 다음과 같은 제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흥분했던
가를 『달팽이의 일기장』이라는 책에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말로는 엄청난 혁명을
이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행기에 놓여있는 사회는 결코 조급해하지 않는다. 운동이 쇠퇴하
게 되면 당신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반혁명을 말할 것이다.”
당시에는 퇴색한 공산주의의 용어들이 유행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저는 당시 학생들이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사려 깊게 통찰하는 능력은 부족했다고 봅니다.
부르디외 : 저는 1964년에 쓴 책 『유산』에서 학생들의 가치관이 출신에 따라 얼마나 다른
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중상류층 학생들이 훨씬 더 급진적이었고 소시민이나 노동자계층
출신들은 개혁적이거나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어요.

그라스 : 약간 도발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좋은 집안의 아이들은 집안 내에서는 자신들이 감
당할 수 없었던 아버지와의 갈등을 사회로 전가했던 셈입니다. 아버지와의 직접적인 갈등은
곧 경제적인 지원이 끊긴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부르디외 : 1968년에는 과시적이고 추상적이며 낭만적인 혁명론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겉
보기에 대단히 급진적이었죠. 물론 교육제도를 바꾸고 대학문을 넓히기 위해 실속있는 제안
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었습니다. 그들을 개량적라며 배척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
보수논객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라스 : 70년대 독일과 북구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는데, 그것은 경제제도가 자원을
지속적으로 착취할 경우 환경파괴로 삶의 근거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입니다. 환
경운동이 등장한 것이죠. 그러나 사회주의자들과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전통적인 사
회문제에만 집착했을 뿐, 이 운동에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지금
도 이런 시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음은 물론입니다.
만일 우리가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미몽에서 깨어나 그들 자신의 지성 한 켠에 있는 잠재력을
활용하길 바란다면, 똑같은 주문이 좌파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좌파는 환경문제가 노동
문제와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깨우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회를 생태
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어떤 종류의 결정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부르디외 : 사회주의적 자유주의, 블레어주의와 같은 유사개념들은 지배권력이 피지배층의
의식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유럽인들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문명
을 부끄러워하고 더 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 경제분야에서 시작된 이 인식은 문화적인 영
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나 문학 등에서 뒤처진 전통에 대한 변호는 곧 죄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라스 : 독일에는 쉬뢰더 지지자들을 현대주의자, 그 외의 사람들은 전통주의자라고 부르는
재미있는 이분법이 존재합니다. 신자유주의들은 사회주의자와 사민주의자들이 그런 무의미
한 이분법에 의해 도마에 오르는 것을 보며 아마 쓴웃음을 지을 겁니다.

부르디외 : 다시 문화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선생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정말 기
뻤습니다. 노벨상이 드디어 ‘입을 열기를 주저하지 않는’ 한 지식인, 낡은 것이라고 치부
되어 왔던 예술을 적극적으로 변호해왔던 유럽의 한 탁월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했기 때문입
니다. 선생의 소설 『넓은 들』은 낡은 문학의 소산이라는 엄청난 비방에 시달려야 했지요.
모든 아방가르드의 성과들이 낡은 것인 양 왜곡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프랑스에서는 현대예
술에 대한 논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하는데, 예술이 경제로부터 갖는 자율성에 대한 논의
가 주류를 이룹니다.

그라스: 노벨상은 그것을 받지 않았다 해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겁니다. 한편 노벨상과
함께 살아갈 자신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 이제야!” 또는 “너무 늦었어”라고 말들 하
지만 저는 제 나이 일흔을 넘겨 이 상을 받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젊은 작가가 노
벨상을 받을 경우 굉장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기대 때문이죠. 저는
지금 노벨상의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상을 받은 것에 대해 기뻐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
걸로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뭔가를 찾아 제시해야 합니다. 거대 방송국들 스스
로도 시청률이라는 미신이 가져오는 폐해를 보며 당황하고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 그들이
변화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피를 흘리며 싸웠던, 그 상처가 아직 남아 있고, 그래서 서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간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언어장벽만이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젠가 유럽인들은 유럽계몽주의라는 공통의 역사를 인정할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계몽주의가 힘을 발휘하던 때에는 지금
에 비해 민족국가의 성격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일인들과 프랑스인들이 상대방에
게서 일어난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소수이지만 두 나라 계몽주의 그룹들
간에 일치감이 있었습니다.
그 전통을 잇도록 해야 합니다. 유럽계몽운동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했던 오류를 돌이
켜보는데서 시작해야겠지요. 신자본주의의 지배와 그 무책임성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정당
합니다. 하지만 계몽운동의 과정에서 나타난 실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계몽주의의 두 아들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다시 한 자리에 앉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부르디외 : 약간 낙관적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유럽을 짓누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경제
적 정치적 힘이 너무 강하다 보니 계몽주의의 성과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입니다. 최근 책을 출간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다니엘 로케는 계몽운동이라는
전통이 갖는 의미조차 프랑스와 독일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인들은 계
몽이라는 말을 ‘빛을 비추는 그 무엇’이라고 해석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가 일단 극복되
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폐기돼 버린 지 오래인 유토피아의 꿈을 새롭게 발견하고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케케묵은 정치적 사고로의 추락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새롭
게 활성화하는 것으로 답해야 합니다. 현재의 노동조합이 입고 있는 옷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노동조합 역시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하고 국제적인 행동을 강화하는 한편, 합리적
으로 사고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사회과학이 언제나 자신들의 편을 들도록 끊임없이 노
력해야 합니다.

그라스 : 그건 노동운동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은 선생
도 잘 아실 겁니다.

부르디외: 그래요. 하지만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봐요. 최근 사회운동이 과거
에 비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프랑스의 노동운동에는 폐쇄적이고 지식인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위기의 시대를 맞은 노동조합은 이제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식인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합리적인 방향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엿보
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비판적이며 성찰하는 사회운동이 곧 우리들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라스 : 저는 유럽의 미래를 약간 회의적으로 봅니다. 우리는 늙었지만 건강을 유지하는 한
계속 입을 열고 발언하겠지요. 하지만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프랑스는 잘 모르겠으나
독일의 경우 문학분야에서 활동하는 젊은 세대들의 준비 정도가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
당당하게 발언하고 현실에 개입하는 계몽주의 전통을 잇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극소수에 불
과합니다. 우리를 대체하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세력이 형성되지 않는 한, 계몽주의라는 유럽
의 좋은 전통은 그 의미를 상실하고야 말 것입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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