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7] 풍경소리-자연에 관한 책읽기

풍경소리

자연에 관한 책읽기
안치운/연극평론가

자연에 관한 책읽기
세종문화회관에서 ‘동강의 밤’이라는 행사가 열린 날, 한 권의 책을 받았다.
『동강의 노루궁뎅이』. 동강을 주제로 한 시와 소설 그리고 산문을 모은 책이
다. 집으로 돌아와서 단박에 그것을 읽는다. 저자들은 한결같이 동강의 아름다
움을 말하고, 동강의 보존이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본성을 지키는 중요한 일임
을 글로 강조한다. 동강과 그 곳에 사는 이들의 삶을 담은 글들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삶의 정의, 권리, 선에 관한 개념들을 되묻는다.
문학적 상상력을 지닌 글들은 자연에 관한 윤리적인 개념들을 사회적인 책무로
환원시킨다. 다 읽고나서 우리가 자연에 관한 책들을 얼마나 읽고 있는지 생각
해 보았다. 산에 가는 이들은 많지만 산에 관한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산에 가
기 위하여 옷과 등산화를 사지만 산에 관한 책을 구입해 읽고 공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신과 만나기 위하여 산으로 간 시대가 있었다. 그 후 새로운 시대와
혁명을 하기 위하여 산이 아니라 목로주점으로 간 시대도 있었다. 자본과 제국
과 혁명이 뒤얽혔던 20세기와 그것들의 종말을 말하는 세기말에 산에 오르고
풀 한포기, 꽃 한송이, 바람 한줄기, 나무 한 그루를 글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
『동강의 노루궁뎅이』는 그런 책이다.
산에 가지 못할 때나 산을 다녀 온 후에 이들이 쓴 산과 자연 그리고 삶을 뒤
돌아 보는 책을 읽을 때가 있다. 크게는 산악문학이라는 것과 작게는 산행기를
모은 책들이 우리나라에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책들은 시대의 방향과 유행에
어긋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리라. 지난 몇 년전부터 나는 산과 자연에 관한
책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새 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뿐만 아니라, 출간된
지 오래된 것들을 주로 헌책방에서 구입해 읽었다. 한국산서회라고 산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이 있는데, 이 단체가 가끔은 회원들이 지닌 책들을
전시하는 행사를 하곤 했는데, 이를 통해서도 산서에 대한 광범위한 소식들을
알게 되었다. 헌책방 주인에게 산과 자연에 관한 책이 나오면 꼭 전화해주도록
부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책을 통하여 삶을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을 배
울 수 있었다. 그리고 생태학적 파국은 자연의 파괴뿐만 아니라 도덕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자연과 근원적인 힘
자연에 관한 책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야겠다. 자연에 관한 책들은 이 시대에
조금 뒤떨어진 읽을거리로 평가할지 모른다. 이러한 책읽기는 투자나 이익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삶의 편리나 실용적인 것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연에 관한 책들은 반환원주의를 지향한다. 20세기 과학이 세계를 이
해하기 위하여 분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환원주의라고 한다면, 자연에 관한 책
들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내세우
며, 서로 영향을 미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삶
과 괴리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새로운 질서에 관심을 갖는다. 종전의 과학
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자연에 관한 책들은 사람의 역할,
자연과 더불어 공존해야 하는 사람의 자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책을 찾아 읽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이란 산에 오르기
위한 기계적인 숙련뿐만 아니라 여행을 통하여 새로운 삶에 인도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런 책들을 통하여 자연과 더불어 사는 여러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
을 만날 때가 있다. 문자로 옮겨진 그들의 삶은 정직하고 맑고 아름답다. 읽고
나서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바램과 감동에 가슴 벅찰 때가 있다. 강릉에 있
는 오죽헌의 오른쪽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져 있다. “性同鮮羽, 愛止山
壑”(산에 다니는 이들의 성정은 물고기나 새와 같고, 그들의 사랑은 산골에
그친다). 마찬가지로 책에 저장되어 있는 자연에 관한 모든 기억은 책을 읽는
이들에게 산포된다. 자연 그리고 삶은 책에도 있다. 서재의 등산학이란 용어는
그래서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우연하게, 헌책방에서 이 분야의 많은 책들을 구할 수 있었다. 유명한 등산가들
이 스스로 길을 내며 오른 등정기나 그들이 쓴 산에 관한 책들을 읽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그 책들을 펼치면 책 주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간 흔적이 여
기저기 배어 있다. 연필로 밑줄을 치거나, 설명을 달아놓은 부분에 눈이 멈춘
다. 왜 그랬을까. 밑줄 친 문장들은 책을 쓴 저자와 읽고 있었던 이를, 개별적
인 하나하나의 존재를 서로 연결해 놓은 것이 아닌가. 문장이 읽는 이를 지배
한다는 것은 서로 낯선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줄기임을 발견하는 것을
뜻한다. 문장이 줄기라면, 밑줄은 줄기에서 피는 꽃과 같다.
젊은 날 산에 미쳐버린 이들은 대개가 산을 종교처럼 여겼다. 신의 외침이 아
니라 자연의 전체성에 흠뻑 빠져 산으로 향했고, 정상에 오르려 했다. 산에서
내려와 주점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은 산에서 보고 경험한 온전한 세상에 관한
것이었다. 산은 그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면서 꿈꾸었던 세상이었으리라.
산이 좋아 산에 묻힌 이들도 있다. 그들은 지금도 산에서 영혼으로 떠돌고 있
을 것이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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