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하는 지붕에서 토토로의 숲까지-일본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현장을 가다

2019-01-01

오기마치 성터 전망대에서 바라 본 시라카와코 오키쵸집락 전경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시민이 자연과 문화유산의 주인이 되는 운동이다. 즉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각종 개발로부터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연유산과 문화자산을 시민의 소유로 확보하고 시민들이 직접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이다.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트러스트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자연문화유산 보전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 무등산 공유화 운동이 진행됐고 이후 200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창립되면서 시작됐다. 현재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동강 제장마을 등을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개발 위기로부터 구해내 지켜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민간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을 제정했고 이를 보전 관리하는 국민신탁법인을 설립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내셔널트러스트 관련 활동을 해온 단체들도 2018년부터 국민신탁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해오고 있다.  

국민신탁단체협의체는 2018년 12월13일~17일 일본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우리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지역별 특성에 맞는 신탁운동을 통해 숲과 문화를 지켜온 경험을 배우려는 기행 학습이었다. 

전통가옥 갓쇼쯔쿠리(합장가옥)

먼저 나고야에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달려 기후현 시라카와 고 마을에 도착했다. 기후현은 일본의 알프스라 불릴 정도로 산이 많은 지역이다. 이 산자락에 자리한 시라카와 고 마을은 주민 2000여 명 정도가 모여 사는 작은 산촌마을이지만 마을을 보러 오는 외지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의 3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하쿠산을 비롯해 마을을 둘러싼  숲들도 장관이지만 그 속에 자리한 마을의 집들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이곳의 집들은 4~5층의 목조 가옥인데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지붕이 가옥 전체를 감싸고 있다. 지붕의 모양이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기 위해 모은 손의 형상과 비슷하다 하여 합장가옥(일본어로 갓쇼쯔쿠리)이라 불리는 이 가옥은 1860년대 에도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건축되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 특성상 지붕에 눈이 쌓이지 않고 빨리 흘러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마을의 전통가옥이 지금까지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시라카와코 오키쵸 집락의 자연환경을 지키는 모임>(이하 시리카와고 모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곳 역시 개발 열기에 싸여 갓쇼쯔쿠리는 외지인의 손에 넘어가 헐리고 재개발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은 <시리카와고 모임>을 만들어 전통가옥과 마을의 자연환경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1976년 일본 문화청은 이 마을을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선정해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갓쇼쯔쿠리를 △팔지 않는다 △빌려주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는 내용의 주민헌장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지켜오고 있다. 1995년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시라카와고는 해발 2,702m 하쿠산에 위치하고 있어 눈이 4월까지 많이 내린다

<시리카와고 모임>은 자체적으로 부서를 만들어 각종 행정업무와 홍보, 주민의식 개혁 및 경관개선 시책 등을 수행한다. 갓쇼쯔쿠리 지붕 위에는 억새로 이엉을 엮어 올리는데 이엉에 쓰는 ‘띠’를 재배하는 일도 이곳에서 주도한다. 실제 이엉 교체작업은 마을 주민들이 품앗이로 진행한다. 정경아 <곶자왈공유화재단> 사무국장은 “거주 주민들이 마을과 자연을 지키는 실제 주인공이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방문지는 시즈오카 현 고텐바 시 인근 후지산이다. 이곳 남동쪽 사면은 화산자갈로 뒤덮인 황무지다. 1707년 후지산 폭발로 화산재가 식어 만들어진 화산자갈은 매년 눈이 녹을 무렵 산사태를 일으키며 산 아래 식생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해왔다. <후지산 내셔널트러스트>는 화산지대 녹화사업을 위해 조직됐다. 후지산 산림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종을 막기 위해 지역 자생종 묘목을 직접 길러 매년 40회 정도 식재행사를 벌이고 있다. 재원은 기업과 개인회원이 자발적으로 낸 회비와 성금이다. 

세 번째 방문지는 도쿄 외곽에 자리한 ‘토토로 숲’이다. 원래 이곳의 이름은 ‘시야마 숲’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래 대규모 택지가 조성되는 등 개발 열풍이 불어 1만 년 이상 유지돼온 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숲을 지키려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1990년 ‘토토로의 고향 기금위원회’가 발족됐다. 실제로 시야마 숲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구상할 때 영감 받은 곳 중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토토로의 고향 기금위원회’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허락을 받았고 그때부터 시야마 숲은 토토로의 숲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토토로의 숲 지키기 운동은 일본 전역에서 반응이 뜨거웠고 시민들의 자발적 기금으로 1991년 시야마 숲의 일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토토로의 고향 기금위원회’는 지속적으로 운동을 펼쳐 시야마 숲을 조금씩 사들였고 그 결과 현재 시야마 숲에 토토로 숲은 48개소로 늘어났다. <두꺼비를 지키는 두꺼비 친구들>의 조현국 이사는 “이 숲을 지키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라며 보존운동에 나선 이들의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토토로의 숲 1호지

대표적인 신탁운동 현장을 조사한 뒤 조사단은 ‘토요타자연학교’, ‘아라가와강 비오톱(일본생태계협회 소속)’, ‘일본생태계협회’, ‘일본내셔널트러스트’ 등 신탁운동단체들을 방문해 한일 양국의 신탁운동에 관한 정보와 의견을 나누었다. 조사단은 12월 15일 열린 ‘일본 내셔널트러스트 전국대회’에 참석해 일본 전역의 신탁운동 활동가들과도 만났다. 

김금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장은 한국과 일본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1964년 ‘가마쿠라 풍치보존회’에서 시작된 일본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역사는 54년을 이어오고 있다. 현장별 구체성을 바탕으로 지역조례와 주민자체 내규 제정 등을 바탕으로 성공사례를 다수 일구었다. 하지만 전국 통합적인 내셔널트러스트 관련법이 미비해 공유자산의 매입 관련 취득세 고정자산세(우리나라 종합토지세에 해당) 면세 등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점이 한계”라고 말했다.  

일본내셔널트러스트 전국대회에 참가한 조사단

이에 비해 우리나라 신탁운동은 비록 일본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관련 법제화는 일본보다 앞서 있다. 다만 법의 수혜를 받는 단체가 법에 명시된 ‘자연환경신탁’과 ‘문화유산신탁’에 한정돼 있는 것이 문제였다. 신탁운동단체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2018년 ‘국민신탁협의체’를 구성해 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일정 기준에 충족하는 단체도 특수법인의 자격을 얻어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이해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더 많은 단체들이 더 많은 이 땅의 자연과 문화유산 지킴이로 나설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2020년 일몰제로 위기에 빠져든 우리나라 도시숲의 미래가 신탁운동의 전개로 인해 어떻게 바뀌어 갈지 희망을 가져본다. 

 

글・사진 | 이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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