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17일 창비 50주년 기념홀에서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이 열렸다. 법정 입구에 전시된 산양은 경북 울진에서 탈진된 채 발견되었다가 숨져 박제한 산양이다 ⓒ박은수
“잠시만요. 당사자인 제가 이 소송에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재판이 막 시작된 한 법정 안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소송의 당사자라는 이가 나타나 재판 진행을 막은 것이다. 소송 당사자? 판사도 의아했는지 그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법정에 산양이 나타났다
“재판장님 만약 누군가 재판장님 집 위에서 망치로 두드리고 기계소리를 낸다면 살 수 있겠습니까? 또 누군가 재판장님 집에 와서 문을 부수고 창문을 떼어간다면요?” 방청객들도 기가 막히는지 숨을 죽이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설악 오색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누구일까요. 설악 오색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우리 집 위로 케이블카가 다니게 되면 그 소음과 진동들 때문에 전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가는 설악이 무분별하게 파헤쳐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사라도 갈 수 있지만 전 갈 곳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설악 오색에 사는 산양 ‘뿔이’라고 밝혔다. 뿔이는 경북 예천에 석송령이라 불리는 소나무에게 찾아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솔방울을 얻어 부랴부랴 법정으로 왔다고 했다.
물론 실제 재판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지난 11월 17일 창비 50주년 기념홀에서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이 열렸다. 먹으면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솔방울도, 인간의 말을 하는 산양도 모두 허구지만 산양이 설악산 케이블카 중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내가 가장 큰 피해자인데 저 없이 재판을 하신다고요?” ⓒ녹색당 라용이
지난 2월 케이블카 사업 구간에 서식하는 산양 28마리는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의 문화재 현상변경을 허가한 문화재청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가 산양을 대신해 소송을 수행할 산양의 후견인으로 나섰고 생태학자 김산하 박사가 공동 원고로 참여했다. 이에 앞서 강원도 양양 지역주민과 산악인, 환경운동가, 작가, 교육자 등 350여 명도 같은 취지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문화재청의 처분으로 케이블카가 설치될 경우 가장 직접적으로 생존에 영향을 받는 개체가 산양인 만큼 산양도 소송에 나섰다는 게 산양 후견인과 원고의 입장이다.
그리고 지난 9월 5일 첫 재판이 열렸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은 내년 1월 선고를 하겠다며 변론을 종결시켰다. 원고 측이 산양의 원고 적격성 여부와 박그림 대표의 후견인 적합성 여부 등에 대해 더 다투겠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이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재판부의 이러한 결정은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다. 앞서 2003년 천성산에 서식하는 꼬리치레도롱뇽을 원고로 한 터널공사중지가처분신청에서 법원은 도롱뇽은 현행법 해석상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각하했다. 대법원도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는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법원의 판단을 수용했다. 이번 재판부 역시 더 들어볼 필요도 없이 기존 판례에 따를 것이라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산양을 비롯한 동식물과 자연물은 생존의 위협을 받아도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만약 산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재판부의 판단은 달라졌을까?
이에 <동물권행동 카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동물권을연구하는변호사단체<PNR>가 모의 법정을 열었다. 이날 모의법정은 9인의 시민배심원단과 100여 명의 시민방청객이 참관한 가운데 산양이 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여부와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중지시키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원고와 피고의 변론을 듣고 시민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 기존 판례가 아니라 시민들의 판단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연극형식으로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재판부와 피고 대리인, 원고 대리인은 실제 법조인들이 맡았고, 시민배심원단과 시민방청객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되었으며 산양이 말을 할 수 있다는 설정만 제외하고는 원고 측은 실제 법정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사업자 케이블카인 피고 측은 그동안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을 부정해온 법원과 실제 케이블카 사업자 측의 주장을 토대로 변론했다.
산양은 당사자가 될 수 없는가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자 피고 대리인은 현재 자연물 자체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법률이 없는 이상 이 소송은 각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고 대리인은 산양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변론했다. 당사자 능력은 원고·피고 또는 참가인으로서 자기의 명의로 소송을 하고 소송상의 법률효과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 원고 대리인은 국내법에 이미 산양에 대한 법적 지위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양은 국내법상 멸종위기1급 보호종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며 이는 엄격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법적지위가 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이미 자연물에게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며 예천 석송령의 토지대장을 그 증거로 제출했다. 석송령은 소나무이지만 나무 명의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그 내용이 토지대장에도 등재돼 있다.

이날 모의법정에는 산양을 비롯한 자연물이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공방이 벌어졌다 ⓒ녹색당 라용이
원고 대리인은 이미 여러 나라들이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며 관련 사례들을 소개했다. 하와이 팰릴라 소송 사건이 대표적이다. 1978년 하와이 주정부가 멸종위기종 팰릴라 서식지에 수렵용 야생 양과 염소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리자 환경단체는 하와이 주 정부의 결정이 팰릴라의 생존을 위협한다며 팰릴라와 공동으로 원고가 되어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연방지방법원은 팰릴라는 멸종위기종 보호법에 근거한 멸종위기종이고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지닌 법인격이기 때문에 법률상 지위를 갖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시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992년 벌목사업으로 서식지가 파괴될 위협에 처한 바다쇠오리가 환경단체와 공동원고가 되어 제기한 소송에서도 법원은 바다쇠오리의 원고 적격을 인정했다. 비단 생물뿐만이 아니다. 2017년 인도는 히말라야 빙하에게도 사람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인정했고 뉴질랜드는 강에 대해서도 모든 권리, 권한, 의무, 책임을 진 합법적인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원고 대리인은 “법인격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회의 관념과 선택의 문제이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지금은 회사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사람이 아닌 회사가 어떻게 소송을 제기하느냐며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도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1972년 계곡에 리조트 개발을 추진하던 월트 디즈니사에 맞서 환경단체가 제기한 소송을 담당한 판사 중 한 명이었던 더글라스 판사는 당시 소수의견을 통해 “법의 세계는 비인격적 권리자들로 가득 차 있다. 재단, 법인, 합자회사, 국가, 선박이 그 예다. 숲과 강, 바다에서 살아가는 자연물과 자연환경 그 자체에 법적인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자연물이 멸종위험에 처한 것으로 인식된다면 자연물을 지키고자 하는 자가 법원에 자연물에 대한 후견인 선임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국가나 회사 같은 사람이 아닌 비인격체가 법적 권리를 갖고 있듯이 자연물도 법적인 권리를 갖고 있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 대리인은 “원고 대리인은 보호와 권리 부여에 대해 혼동하고 있다. 만약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호받고 있는 문화재들이 권리 주체라고 한다면 남대문 화재사건은 남대문을 살해한 사건인가?”라고 반문했다. 해외 사례에 대한 판시도 해석을 달리했다. 미국의 멸종위기종 보호법은 멸종위기종의 서식처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누구나 소송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단체와 자연물이 함께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런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공사를 중지해야 하나

ⓒ박은수
두 번째 쟁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중지해야 하는가로 이어졌다. 원고 대리인은 산양이 세계적으로 희귀한 멸종위기종으로 국제조약과 특별법으로 보호 받고 있는 점, 설악산 중에서도 인적이 드문 내설악 황철봉 부근에 소수의 개체만 서식하고 있는 점, 행동반경이 1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다는 점, 케이블카 공사부지가 산양의 주 서식지이자 번식지인 점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케이블카 공사에 따른 진동과 소음이 산양의 번식과 서식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변론했다.
이에 대해 피고 대리인은 오색삭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오색등산로로 인해 산양 서식처는 구분되어 있는 상태로 삭도로 인해 추가적인 서식처 파괴는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삭도 건설 후 등산로를 없앤다면 산양에 더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양측 변론이 끝나고 최후진술이 이어졌다. 피고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은 우리 양양군민들과 강원도민들의 숙원사업이다. 노약자, 장애인들도 케이블카 타고 설악산 한 번 올라가야 하지 않느냐. 케이블카 사업이 완공되면 등산객들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될 것이고 결국 산양들에게도 더 좋은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원고 대리인은 “인간 탐욕으로 진행되는 각종 사업들, 그 사업이 자연을 마구 파헤치더라도 법원은 인간의 이익만을 고려한 판단을 해왔다. 그 안에서 동물들이, 그리고 자연이 같이 좀 살자고 외쳐도 법원은 당사자 능력이 없다, 법적인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주장을 외면해 왔다.”며 “과거 판례가 어땠는지 어떤 해석을 해왔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이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지 그들의 권리, 그들을 진정 보호하기 위해 현행 법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최후진술까지 들은 9인의 시민배심원단은 평의실로 이동해 논의에 들어갔다.
시민배심원단의 결정
예정된 시간을 넘기고 시민배심원단이 법정에 들어섰다. 시민배심원단의 평결서가 시민재판부에 전달됐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판결을 기다리는 가운데 주심 판사가 입을 열었다. “원고 산양 뿔이, 피고 주식회사 케이블카, 이 사건 배심원 전원 의견이 일치되어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먼저 산양이 위임장을 작성할 능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원고 대리인이 산양의 이익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이것이 산양의 의사에 반한다고 볼 근거가 없기 때문에 원고대리인이 적법하게 소송대리권을 위임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어 첫 번째 당사자 능력과 관련해 시민배심원단은 “우리 법률상 자연물, 동물을 보호해야할 법적의무가 있고, 현행 민사소송법 규정이 동물의 당사자 능력을 부인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보인다. 산양은 야생생물법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를 받고 있는 종이다. 따라서 산양은 자신의 권리로서 소송을 제기할 능력이 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한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은 ‘공사 중지’다. “케이블카 공사는 산양의 생존권을 침해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산양이 멸종할 급박한 위기에 처한다는 점 등이 인정된다. 나아가 산양의 멸종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는 바 이 사건 케이블카를 설치해 사람들이 편하게 경치를 감상하여 얻는 이익보다 산양의 생존 그리고 산양 종 보전의 이익이 더 중대하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 공사의 중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시민배심원단의 판결을 수용한 재판부의 선고가 이어졌다. “주문. 1. 피고는 설악산 오색구간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공사를 진행해서는 아니 된다. 2. 집행관은 위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한다. 피고는 제 1항의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1일당 100만 원씩 원고들에게 지급한다. 탕탕탕”
글 | 박은수 기자
지난 11월 17일 창비 50주년 기념홀에서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이 열렸다. 법정 입구에 전시된 산양은 경북 울진에서 탈진된 채 발견되었다가 숨져 박제한 산양이다 ⓒ박은수
“잠시만요. 당사자인 제가 이 소송에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재판이 막 시작된 한 법정 안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소송의 당사자라는 이가 나타나 재판 진행을 막은 것이다. 소송 당사자? 판사도 의아했는지 그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법정에 산양이 나타났다
“재판장님 만약 누군가 재판장님 집 위에서 망치로 두드리고 기계소리를 낸다면 살 수 있겠습니까? 또 누군가 재판장님 집에 와서 문을 부수고 창문을 떼어간다면요?” 방청객들도 기가 막히는지 숨을 죽이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설악 오색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누구일까요. 설악 오색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우리 집 위로 케이블카가 다니게 되면 그 소음과 진동들 때문에 전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가는 설악이 무분별하게 파헤쳐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사라도 갈 수 있지만 전 갈 곳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설악 오색에 사는 산양 ‘뿔이’라고 밝혔다. 뿔이는 경북 예천에 석송령이라 불리는 소나무에게 찾아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솔방울을 얻어 부랴부랴 법정으로 왔다고 했다.
물론 실제 재판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지난 11월 17일 창비 50주년 기념홀에서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이 열렸다. 먹으면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솔방울도, 인간의 말을 하는 산양도 모두 허구지만 산양이 설악산 케이블카 중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내가 가장 큰 피해자인데 저 없이 재판을 하신다고요?” ⓒ녹색당 라용이
지난 2월 케이블카 사업 구간에 서식하는 산양 28마리는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의 문화재 현상변경을 허가한 문화재청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가 산양을 대신해 소송을 수행할 산양의 후견인으로 나섰고 생태학자 김산하 박사가 공동 원고로 참여했다. 이에 앞서 강원도 양양 지역주민과 산악인, 환경운동가, 작가, 교육자 등 350여 명도 같은 취지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문화재청의 처분으로 케이블카가 설치될 경우 가장 직접적으로 생존에 영향을 받는 개체가 산양인 만큼 산양도 소송에 나섰다는 게 산양 후견인과 원고의 입장이다.
그리고 지난 9월 5일 첫 재판이 열렸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은 내년 1월 선고를 하겠다며 변론을 종결시켰다. 원고 측이 산양의 원고 적격성 여부와 박그림 대표의 후견인 적합성 여부 등에 대해 더 다투겠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이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재판부의 이러한 결정은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다. 앞서 2003년 천성산에 서식하는 꼬리치레도롱뇽을 원고로 한 터널공사중지가처분신청에서 법원은 도롱뇽은 현행법 해석상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각하했다. 대법원도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는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법원의 판단을 수용했다. 이번 재판부 역시 더 들어볼 필요도 없이 기존 판례에 따를 것이라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산양을 비롯한 동식물과 자연물은 생존의 위협을 받아도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만약 산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재판부의 판단은 달라졌을까?
이에 <동물권행동 카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동물권을연구하는변호사단체<PNR>가 모의 법정을 열었다. 이날 모의법정은 9인의 시민배심원단과 100여 명의 시민방청객이 참관한 가운데 산양이 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여부와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중지시키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원고와 피고의 변론을 듣고 시민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 기존 판례가 아니라 시민들의 판단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연극형식으로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재판부와 피고 대리인, 원고 대리인은 실제 법조인들이 맡았고, 시민배심원단과 시민방청객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되었으며 산양이 말을 할 수 있다는 설정만 제외하고는 원고 측은 실제 법정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사업자 케이블카인 피고 측은 그동안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을 부정해온 법원과 실제 케이블카 사업자 측의 주장을 토대로 변론했다.
산양은 당사자가 될 수 없는가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자 피고 대리인은 현재 자연물 자체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법률이 없는 이상 이 소송은 각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고 대리인은 산양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변론했다. 당사자 능력은 원고·피고 또는 참가인으로서 자기의 명의로 소송을 하고 소송상의 법률효과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 원고 대리인은 국내법에 이미 산양에 대한 법적 지위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양은 국내법상 멸종위기1급 보호종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며 이는 엄격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법적지위가 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이미 자연물에게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며 예천 석송령의 토지대장을 그 증거로 제출했다. 석송령은 소나무이지만 나무 명의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그 내용이 토지대장에도 등재돼 있다.
이날 모의법정에는 산양을 비롯한 자연물이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공방이 벌어졌다 ⓒ녹색당 라용이
원고 대리인은 이미 여러 나라들이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며 관련 사례들을 소개했다. 하와이 팰릴라 소송 사건이 대표적이다. 1978년 하와이 주정부가 멸종위기종 팰릴라 서식지에 수렵용 야생 양과 염소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리자 환경단체는 하와이 주 정부의 결정이 팰릴라의 생존을 위협한다며 팰릴라와 공동으로 원고가 되어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연방지방법원은 팰릴라는 멸종위기종 보호법에 근거한 멸종위기종이고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지닌 법인격이기 때문에 법률상 지위를 갖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시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992년 벌목사업으로 서식지가 파괴될 위협에 처한 바다쇠오리가 환경단체와 공동원고가 되어 제기한 소송에서도 법원은 바다쇠오리의 원고 적격을 인정했다. 비단 생물뿐만이 아니다. 2017년 인도는 히말라야 빙하에게도 사람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인정했고 뉴질랜드는 강에 대해서도 모든 권리, 권한, 의무, 책임을 진 합법적인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원고 대리인은 “법인격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회의 관념과 선택의 문제이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지금은 회사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사람이 아닌 회사가 어떻게 소송을 제기하느냐며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도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1972년 계곡에 리조트 개발을 추진하던 월트 디즈니사에 맞서 환경단체가 제기한 소송을 담당한 판사 중 한 명이었던 더글라스 판사는 당시 소수의견을 통해 “법의 세계는 비인격적 권리자들로 가득 차 있다. 재단, 법인, 합자회사, 국가, 선박이 그 예다. 숲과 강, 바다에서 살아가는 자연물과 자연환경 그 자체에 법적인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자연물이 멸종위험에 처한 것으로 인식된다면 자연물을 지키고자 하는 자가 법원에 자연물에 대한 후견인 선임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국가나 회사 같은 사람이 아닌 비인격체가 법적 권리를 갖고 있듯이 자연물도 법적인 권리를 갖고 있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연물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 대리인은 “원고 대리인은 보호와 권리 부여에 대해 혼동하고 있다. 만약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호받고 있는 문화재들이 권리 주체라고 한다면 남대문 화재사건은 남대문을 살해한 사건인가?”라고 반문했다. 해외 사례에 대한 판시도 해석을 달리했다. 미국의 멸종위기종 보호법은 멸종위기종의 서식처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누구나 소송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단체와 자연물이 함께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런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공사를 중지해야 하나
ⓒ박은수
두 번째 쟁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중지해야 하는가로 이어졌다. 원고 대리인은 산양이 세계적으로 희귀한 멸종위기종으로 국제조약과 특별법으로 보호 받고 있는 점, 설악산 중에서도 인적이 드문 내설악 황철봉 부근에 소수의 개체만 서식하고 있는 점, 행동반경이 1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다는 점, 케이블카 공사부지가 산양의 주 서식지이자 번식지인 점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케이블카 공사에 따른 진동과 소음이 산양의 번식과 서식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변론했다.
이에 대해 피고 대리인은 오색삭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오색등산로로 인해 산양 서식처는 구분되어 있는 상태로 삭도로 인해 추가적인 서식처 파괴는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삭도 건설 후 등산로를 없앤다면 산양에 더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양측 변론이 끝나고 최후진술이 이어졌다. 피고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은 우리 양양군민들과 강원도민들의 숙원사업이다. 노약자, 장애인들도 케이블카 타고 설악산 한 번 올라가야 하지 않느냐. 케이블카 사업이 완공되면 등산객들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될 것이고 결국 산양들에게도 더 좋은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원고 대리인은 “인간 탐욕으로 진행되는 각종 사업들, 그 사업이 자연을 마구 파헤치더라도 법원은 인간의 이익만을 고려한 판단을 해왔다. 그 안에서 동물들이, 그리고 자연이 같이 좀 살자고 외쳐도 법원은 당사자 능력이 없다, 법적인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주장을 외면해 왔다.”며 “과거 판례가 어땠는지 어떤 해석을 해왔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이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지 그들의 권리, 그들을 진정 보호하기 위해 현행 법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최후진술까지 들은 9인의 시민배심원단은 평의실로 이동해 논의에 들어갔다.
시민배심원단의 결정
예정된 시간을 넘기고 시민배심원단이 법정에 들어섰다. 시민배심원단의 평결서가 시민재판부에 전달됐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판결을 기다리는 가운데 주심 판사가 입을 열었다. “원고 산양 뿔이, 피고 주식회사 케이블카, 이 사건 배심원 전원 의견이 일치되어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먼저 산양이 위임장을 작성할 능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원고 대리인이 산양의 이익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이것이 산양의 의사에 반한다고 볼 근거가 없기 때문에 원고대리인이 적법하게 소송대리권을 위임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어 첫 번째 당사자 능력과 관련해 시민배심원단은 “우리 법률상 자연물, 동물을 보호해야할 법적의무가 있고, 현행 민사소송법 규정이 동물의 당사자 능력을 부인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보인다. 산양은 야생생물법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를 받고 있는 종이다. 따라서 산양은 자신의 권리로서 소송을 제기할 능력이 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한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은 ‘공사 중지’다. “케이블카 공사는 산양의 생존권을 침해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산양이 멸종할 급박한 위기에 처한다는 점 등이 인정된다. 나아가 산양의 멸종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는 바 이 사건 케이블카를 설치해 사람들이 편하게 경치를 감상하여 얻는 이익보다 산양의 생존 그리고 산양 종 보전의 이익이 더 중대하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 공사의 중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시민배심원단의 판결을 수용한 재판부의 선고가 이어졌다. “주문. 1. 피고는 설악산 오색구간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공사를 진행해서는 아니 된다. 2. 집행관은 위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한다. 피고는 제 1항의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1일당 100만 원씩 원고들에게 지급한다. 탕탕탕”
글 | 박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