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정원으로 마을을 되살리다

2017-07-01


골목은 길이자 놀이터, 소통의 통로, 인생의 학교로 존재했다. 예전의 그런 골목들은 다 사라져가고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아파트 마천루를 뽑아올려 이문을 챙기는 토건업자들과 도시계획을 한다는 학자와 관리들의 삼각동맹이 골목이 살던 마을을 송두리째 갈아엎는 ‘재개발사업’을 벌여온 탓이다.

여기 한 마을이 있다. 그 잔인하고 흔한 재개발의 포화를 개발제한구역인 덕에 빗겨난 곳이다. 대구시 토성마을. 섬유산업이 한창이던 때의 영화를 뒤로하고 오늘날 비산동 인구는 겨우 1만1000명. 나 홀로 세대가 42퍼센트에 달하고 폐·공가가 100여 채나 있다. 2028년이면 비산동 근처의 마을 일원이 소멸되리란 예측까지 나왔다. 그랬던 토성마을의 운명이 극적으로 변했다. 이제 전국 각지에서 탐방객들이 몰려온다. 팔려고 내놓았던 집들이 사라졌다. 집 팔고 떠나고 싶던 마을이 오래 살고 싶은 마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꽃 때문이었다. 꽃 덕분이었다. 꽃은 그냥 자라지 않았다. 누군가의 열정이 있었다. 그 열정이 동조자를 불렀다. 이제 주민들은 스스로 꽃을 가꾼다. 

지난 6월 7일. 부산그린트러스트 마을과 도시의 정원사 4기(이하 마도정 4기)가  달성공원 옆 날뫼골 토성마을을 찾았다. 비산2·3 문대환 팀장이 안내를 했다. 그는 초창기부터 마을정원 가꾸기 활동에 관여했다.

변화의 시작은 한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비산2·3동 전 동장이었던 엄석만 씨가 2015년 초봄 집에서 키우던 튤립을 주민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골목에다 화분을 내놓는 ‘주민운동’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주민들은 ‘화분을 훔쳐갈지 몰라!’, ‘물 주기 귀찮아서!’, ‘벌레 생길까봐!’ 참여를 거부했다. 변화는 끈질긴 권유와 실천에서 비롯된다. 하나둘 동조하는 주민이 생기면서 화분을 내놓는 집들이 늘어났다. 공감대가 형성된 여세를 몰아 마을 골목 콘크리트와 보도블록을 들어내 담 가장자리에 꽃을 심고 골목마다 아치를 세워 덩굴식물로 단장했다. 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토성마을 골목정원은 2015년 9곳에서 2017년 40곳으로 늘어났다. 폐가나 공터를 이용한 도시텃밭도 3개나 조성됐다. ‘달성토성마을 골목축제’도 열었다. 낯선 사람들이 마을을 휘젓고 다녀도 화분은 없어지지 않았다. 대신 정원이 만들어진 골목마다 인증샷 찍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마을의 변화는 대구시와 서구청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마을이 필요로 하는 각종 지원사업이 이어졌다.

문 팀장이 탐방을 마친 후 가드너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을 전했다. “꽃을 나누어는 주되 심어주면 안 됩니다.” 그의 말은 시방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을만들기 혹은 살리기 사업에 반드시 적용되는 핵심지침과도 같다. 스스로, 제 손으로 직접 하지 않으면 주인이 아니다. 주인 없는 마을은 사라질 뿐이다. 

6월 2일 부산 대연동 유엔문화마을에서도 골목정원이 개장됐다. 개장이지만 이 마을 골목정원은 완성이 아닌 현재진행중이다. 유엔문화마을은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와 부산문화회관, 일제강제동원역사기념관 등 관광문화 시설들이 인접해 있지만 1953년부터 개발이 제한된 곳이다. 유엔공원 일대를 역사문화미관지구로 지정해 유엔과 협약을 맺은 뒤 4층 이상 건축물이 들어올 수 없게 했다. 개발 소외를 운명으로 생각하고 체념한 탓에 마을은 생기를 잃고 지내왔다. 그런 마을의 골목에 꽃이 들어오자 변화가 시작됐다. 

유엔마을 골목정원 개장에 이르기까지 45년째 이 마을에 거주하는 마을동문회 회장 신정규 씨(75)의 역할이 컸다. 신 회장의 집을 에워싸고 있는 화분은 눈에 보이는 것만 수백 개다. 그중 일부를 마을에 깔았다. 부산그린트러스트는 작년 가을부터 주민가드닝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평균 70대로, 할매들이 대부분이다. 수업을 통해 자신감을 일깨우고 꽃과 정원 이야기, 다른 마을 변화사례를 나누고 있다.

 


골목정원을 만들기 위한 민관 네트워크도 구축됐다. 주말이면 마을 담장을 도색하고 벽화를 입히는 자원봉사자들이 넘쳐났다. 부산대 조경학과 학생들과 마도정 4기들은 차분히 골목골목 화분과 화단을 채워 나갔다. 현재 8개의 골목이 꽃길로 변했다. 보기만 하던 주민들이 하나둘 작업자들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화분을 내놓고 물을 주기 시작했다. 

대구 토성마을과 부산 유엔문화마을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주민 참여 과정상 무리다. 그렇지만 마을의 변화를 주민들이 체감하고 동참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민정서와 마을 분위기 전환에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아름다운 변화가 어디까지 갈지 기대감으로 가슴이 떨린다. 

 

 


글•사진 |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이자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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