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에 휘날리는 제2공항 반대 깃발
11월 15일 제주도청 앞 천막농성장 안에는 김경배 씨가 힘없이 누워있었다. 단식 37일째. 80킬로그램이던 몸무게는 60킬로그램으로 떨어졌다. 매일 의사가 방문해 단식 중단을 권하지만 그는 그의 권고를 들을 수 없다. 지나는 차량 소음과 바람이 천막을 흔드는 소리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더 힘겨웠다. “힘없는 백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농성과 단식밖에 없네요.” 제2공항 때문이다.
날벼락 맞은 성산읍 주민들
2015년 11월 1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 성산읍에 제주 제2공항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건설 예정지 주민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사전에 설명회는커녕 협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원희룡 지사는 ‘부동산 투기 우려 때문에 극비리에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대로 이어온 삶터를 하루아침에 뺏기게 된 주민들은 그 무성의한 해명을 납득할 수 없었다.
김경배 씨도 그날 제2공항 건설 소식을 들었다. 활주로 예정지 한 가운데 그의 집이 있었다. 1991년부터 굴삭기 기사로 일하면서 노모와 형제들을 챙겨온 그는 몇 년 전부터 자신을 위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도 직접 심고 쌓았다. 제2공항 건설은 그 집과 함께 그 집에서 일구려 했던 그의 미래까지 빼앗는 일이었다. 제2공항 반대 활동을 하면서 새로 장만한 굴삭기까지 팔아야 했다. 그에게 일거리를 주는 건설업자는 없었다. 업계가 제2공항 건설로 호황을 맞을 판에 반대 운동에 나선 그가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생업 포기를 강요당하고도 그는 제2공항 건설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주민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제주도지사 대신 청와대, 국토부, 국회, 새누리당, 민주당, 심지어 한 때 원희룡 도지사의 지역구였던 서울 양천구까지 가서 제2공항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주민 반대를 무시하고 제주도가 국토부에 제2공항 조속 추진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며 곧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이 진행될 거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기본계획 수립은 공항 건설을 확정짓는 일이라고 판단한 김경배 씨는 지난 10월 10일부터 제주도청 앞에서 목숨을 건 단식을 시작했다. “지난해 국회는 지역 주민과 충분히 협의하라는 조건으로 제2공항 기본계획수립용역 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우리와 협의 없이 용역을 진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실조사와 조작으로 선정한 제2공항
김경배 씨를 비롯한 성산읍 주민들은 단순히 절차의 문제, 생존권 차원에서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말 제2공항이 필요하고 우리 지역이 최적지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엉터리 조사로 마을을 뺏길 순 없습니다.” 강원보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말이다.

제2공항 반대를 외치며 단식중인 김경배 씨
성산읍 지역이 제2공항 부지로 선정된 근거는 2015년 진행한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에 찾을 수 있다. 용역을 맡은 한국항공대학교 산학협력단과 국토연구원, (주)유신은 제2공항 후보지 종합평가를 벌여 성산지구가 △안개 발생 등 기상 조건이 양호하고 △다른 후보지에 비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소음 피해가 적다며 최고점을 주었다.
주민들은 이 용역 보고서가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부터 틀려먹었다는 것이다. “다른 후보지는 주변 오름을 14미터 절취하는 문제로 최하점을 받았는데 성산 후보지는 10개의 오름을 절취해야 하고, 오름의 100미터까지 절취해야 하는데도 최고점을 받았어요.” 이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부와 용역진은 오름을 절취하지 않고 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보면, 비행 안전을 위해 10개의 오름을 절취해야만 한다. 용역 조사와는 정반대로 환경 훼손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개일수는 기상관측 공식자료가 아닌 대한항공 소유의 정석비행장 내부 자료를 사용하고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 제시했고 성산지구보다 소음 피해가 적은 지역을 소음 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버드 스트라이크의 가능성도 고의적으로 배제했다. 이런 보고서의 오류와 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주민 반발은 더 커졌다. 제주환경연합은 “고의적인 조작이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오류들”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성산지구가 공항부지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성산은 특히 파호이호이 용암지대가 넓게 분포해 동굴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비행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온도가 높고 점성이 낮아 빠르게 흘러내리며 굳는데 표면이 식은 후에도 내부는 용암이 흘러 동굴을 만든다. 성산지구에는 혼인지를 비롯해 이러한 동굴들이 많다. 주민들은 성산읍에는 문헌에 기록된 동굴만 18개가 있으며 기록되지 않은 동굴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동굴 지대는 지반이 약할 수밖에 없고 이런 곳에 이착륙 시 수백 톤에 달하는 비행기 활주로를 조성하는 것은 안전을 도외시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동굴조사 결과 제2공항 사업부지 및 주변 지역 동굴은 7개이며 공항 건설이 동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조사 발표 후 제주 제2공항 예정지로부터 약 600미터 떨어진 곳에 새로운 동굴이 발견되면서 국토부의 조사 역시 부실조사 논란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해군기지에 이어 군 공항 건설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25년 전에 국방부와 건교부(현 국토부)가 민군 겸용 제주 신공항 건설을 합의한 적이 있는데 제2공항 건설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1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지난해 말 “국방부 관계자가 제주도청 고위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성산 신공항 부지를 공군착륙장과 활주로로 이용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고 폭로했다. 공군은 오는 2021년 공군남부탐색구조부대란 이름으로 공군부대 창설계획을 세운 터다. 국토부 역시 제2공항과 연계한 공군기지의 추진에 대한 질문에 지자체와 관계 부처 간 별도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답했다. 국방부의 요청이 있을 경우 허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제주를 동북아의 화약고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환경생태수용 능력 초과
제2공항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제주도 1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제2공항 전면 재검토와 새로운 제주를 위한 도민행동’이 제주 제2공항 계획과 관련해 서울에 소재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데일리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월 21~22일 이틀간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항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41.1퍼센트나 나왔다. 2015년 말 제2공항계획 발표 직후의 여러 설문조사들보다 반대 여론이 10퍼센트 이상 높아진 것이다. 특히 19~39세와 40대 층에서 ‘제2공항이 불필요하다’는 응답률이 더 높았다.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 일대는 그나마 개발이 덜 된 곳으로 꼽힌다. 제2공항이 들어설 경우 해당 마을은 물론 이 일대는 난개발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제2공항 문제는 성산 지역을 넘어 도민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입지 선정의 잘못뿐만 아니라 ‘과연 제주에 공항이 더 필요한가?’라는 의구심과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 도민은 “한해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1600만 명이다. 이미 제주도는 포화상태다. 집이 포화되어 집주인이 밟히고 있는 상황인데 문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꼴”이라며 제2공항을 반대했다.
지난 몇 년 사이 제주를 찾는 관광객과 유입인구가 급격하게 늘면서 제주의 생태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전문가들과 도민들의 말이다. 이와 관련된 생태환경용량 조사가 실시된 적은 없지만 환경통계를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제주도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택지와 도로 등으로 10년 동안 2383헥타르의 산림이 사라졌고 시설녹지도 2012년 71.8만 제곱미터에서 2016년 49.8만 제곱미터로 크게 줄었다. 뿐만 아니다. 제주도의 생활쓰레기 발생량은 2010년 일일 649.1톤이었지만 2016년 1286.8톤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때문에 제주도 내 9개 매립장 중 5곳이 향후 31개월 내에 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하수처리장 처리 용량을 초과한 하수 발생으로 정화처리가 안 된 오폐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교통문제도 심각하다. 제주도에 등록된 자동차 수는 2011년 25만7154대에서 2016년 46만7243대 크게 늘었고 이로 인한 교통체증도 심각해졌다.
관광객 증가로 제주도민의 삶의 질도 악화되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공개한 ‘제주 투어리스트피케이션(Touristification) 현상이 지역주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관광객 증가로 경제적, 정서적, 건강·안전 만족도를 통해 제주도민 삶의 질을 악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투어리스트피케이션이란 관광객 증가로 기존 지역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관광지화(Touristify)되고 주거환경이 위협(Gentrification)받는 현상을 의미한다. 제2공항이야말로 제주 투어리스트피케이션 폭발의 뇌관이라는 게 주민들과 제주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의 판단이다.
우리가 보고픈 제주는?
“혼자만의 싸움일까봐 가장 힘들었습니다.” 37일째 단식 중인 그가 건넨 말이다. 단식 42일째인 지난 11월 20일 결국 김경배 씨는 병원에 실려 갔다. 같은 날 기존의 ‘제2공항 전면 재검토와 새로운 제주를 위한 도민행동’이 ‘제주 제2공항 반대 범도민행동’으로 개편하고 ‘제2공항 재검토’가 아닌 ‘제2공항 전면 철회’와 관광개발 정책 전면 전환으로 활동 목표를 바꿨다. ‘성산은 안 된다가 아니라 제주 어디에도 제2공항은 안 된다!’는 것이다. 제2공항 문제는 성산읍 주민들을 넘어 도민 전체, 국민 모두의 문제가 됐다. 우리가 보고 싶은 제주는 과도한 관광개발로 훼손된, 드나들기만 편한 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 속에 제2공항 문제의 해법이 있을 것이다.
글 | 박은수 기자
사진 | 이성수 기자
제주에 휘날리는 제2공항 반대 깃발
11월 15일 제주도청 앞 천막농성장 안에는 김경배 씨가 힘없이 누워있었다. 단식 37일째. 80킬로그램이던 몸무게는 60킬로그램으로 떨어졌다. 매일 의사가 방문해 단식 중단을 권하지만 그는 그의 권고를 들을 수 없다. 지나는 차량 소음과 바람이 천막을 흔드는 소리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더 힘겨웠다. “힘없는 백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농성과 단식밖에 없네요.” 제2공항 때문이다.
날벼락 맞은 성산읍 주민들
2015년 11월 1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 성산읍에 제주 제2공항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건설 예정지 주민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사전에 설명회는커녕 협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원희룡 지사는 ‘부동산 투기 우려 때문에 극비리에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대로 이어온 삶터를 하루아침에 뺏기게 된 주민들은 그 무성의한 해명을 납득할 수 없었다.
김경배 씨도 그날 제2공항 건설 소식을 들었다. 활주로 예정지 한 가운데 그의 집이 있었다. 1991년부터 굴삭기 기사로 일하면서 노모와 형제들을 챙겨온 그는 몇 년 전부터 자신을 위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도 직접 심고 쌓았다. 제2공항 건설은 그 집과 함께 그 집에서 일구려 했던 그의 미래까지 빼앗는 일이었다. 제2공항 반대 활동을 하면서 새로 장만한 굴삭기까지 팔아야 했다. 그에게 일거리를 주는 건설업자는 없었다. 업계가 제2공항 건설로 호황을 맞을 판에 반대 운동에 나선 그가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생업 포기를 강요당하고도 그는 제2공항 건설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주민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제주도지사 대신 청와대, 국토부, 국회, 새누리당, 민주당, 심지어 한 때 원희룡 도지사의 지역구였던 서울 양천구까지 가서 제2공항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주민 반대를 무시하고 제주도가 국토부에 제2공항 조속 추진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며 곧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이 진행될 거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기본계획 수립은 공항 건설을 확정짓는 일이라고 판단한 김경배 씨는 지난 10월 10일부터 제주도청 앞에서 목숨을 건 단식을 시작했다. “지난해 국회는 지역 주민과 충분히 협의하라는 조건으로 제2공항 기본계획수립용역 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우리와 협의 없이 용역을 진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실조사와 조작으로 선정한 제2공항
김경배 씨를 비롯한 성산읍 주민들은 단순히 절차의 문제, 생존권 차원에서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말 제2공항이 필요하고 우리 지역이 최적지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엉터리 조사로 마을을 뺏길 순 없습니다.” 강원보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말이다.
제2공항 반대를 외치며 단식중인 김경배 씨
성산읍 지역이 제2공항 부지로 선정된 근거는 2015년 진행한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에 찾을 수 있다. 용역을 맡은 한국항공대학교 산학협력단과 국토연구원, (주)유신은 제2공항 후보지 종합평가를 벌여 성산지구가 △안개 발생 등 기상 조건이 양호하고 △다른 후보지에 비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소음 피해가 적다며 최고점을 주었다.
주민들은 이 용역 보고서가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부터 틀려먹었다는 것이다. “다른 후보지는 주변 오름을 14미터 절취하는 문제로 최하점을 받았는데 성산 후보지는 10개의 오름을 절취해야 하고, 오름의 100미터까지 절취해야 하는데도 최고점을 받았어요.” 이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부와 용역진은 오름을 절취하지 않고 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보면, 비행 안전을 위해 10개의 오름을 절취해야만 한다. 용역 조사와는 정반대로 환경 훼손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개일수는 기상관측 공식자료가 아닌 대한항공 소유의 정석비행장 내부 자료를 사용하고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 제시했고 성산지구보다 소음 피해가 적은 지역을 소음 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버드 스트라이크의 가능성도 고의적으로 배제했다. 이런 보고서의 오류와 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주민 반발은 더 커졌다. 제주환경연합은 “고의적인 조작이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오류들”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성산지구가 공항부지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성산은 특히 파호이호이 용암지대가 넓게 분포해 동굴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비행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온도가 높고 점성이 낮아 빠르게 흘러내리며 굳는데 표면이 식은 후에도 내부는 용암이 흘러 동굴을 만든다. 성산지구에는 혼인지를 비롯해 이러한 동굴들이 많다. 주민들은 성산읍에는 문헌에 기록된 동굴만 18개가 있으며 기록되지 않은 동굴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동굴 지대는 지반이 약할 수밖에 없고 이런 곳에 이착륙 시 수백 톤에 달하는 비행기 활주로를 조성하는 것은 안전을 도외시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동굴조사 결과 제2공항 사업부지 및 주변 지역 동굴은 7개이며 공항 건설이 동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조사 발표 후 제주 제2공항 예정지로부터 약 600미터 떨어진 곳에 새로운 동굴이 발견되면서 국토부의 조사 역시 부실조사 논란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해군기지에 이어 군 공항 건설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25년 전에 국방부와 건교부(현 국토부)가 민군 겸용 제주 신공항 건설을 합의한 적이 있는데 제2공항 건설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1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지난해 말 “국방부 관계자가 제주도청 고위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성산 신공항 부지를 공군착륙장과 활주로로 이용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고 폭로했다. 공군은 오는 2021년 공군남부탐색구조부대란 이름으로 공군부대 창설계획을 세운 터다. 국토부 역시 제2공항과 연계한 공군기지의 추진에 대한 질문에 지자체와 관계 부처 간 별도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답했다. 국방부의 요청이 있을 경우 허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제주를 동북아의 화약고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환경생태수용 능력 초과
제2공항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제주도 1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제2공항 전면 재검토와 새로운 제주를 위한 도민행동’이 제주 제2공항 계획과 관련해 서울에 소재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데일리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월 21~22일 이틀간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항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41.1퍼센트나 나왔다. 2015년 말 제2공항계획 발표 직후의 여러 설문조사들보다 반대 여론이 10퍼센트 이상 높아진 것이다. 특히 19~39세와 40대 층에서 ‘제2공항이 불필요하다’는 응답률이 더 높았다.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 일대는 그나마 개발이 덜 된 곳으로 꼽힌다. 제2공항이 들어설 경우 해당 마을은 물론 이 일대는 난개발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제2공항 문제는 성산 지역을 넘어 도민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입지 선정의 잘못뿐만 아니라 ‘과연 제주에 공항이 더 필요한가?’라는 의구심과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 도민은 “한해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1600만 명이다. 이미 제주도는 포화상태다. 집이 포화되어 집주인이 밟히고 있는 상황인데 문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꼴”이라며 제2공항을 반대했다.
지난 몇 년 사이 제주를 찾는 관광객과 유입인구가 급격하게 늘면서 제주의 생태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전문가들과 도민들의 말이다. 이와 관련된 생태환경용량 조사가 실시된 적은 없지만 환경통계를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제주도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택지와 도로 등으로 10년 동안 2383헥타르의 산림이 사라졌고 시설녹지도 2012년 71.8만 제곱미터에서 2016년 49.8만 제곱미터로 크게 줄었다. 뿐만 아니다. 제주도의 생활쓰레기 발생량은 2010년 일일 649.1톤이었지만 2016년 1286.8톤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때문에 제주도 내 9개 매립장 중 5곳이 향후 31개월 내에 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하수처리장 처리 용량을 초과한 하수 발생으로 정화처리가 안 된 오폐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교통문제도 심각하다. 제주도에 등록된 자동차 수는 2011년 25만7154대에서 2016년 46만7243대 크게 늘었고 이로 인한 교통체증도 심각해졌다.
관광객 증가로 제주도민의 삶의 질도 악화되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공개한 ‘제주 투어리스트피케이션(Touristification) 현상이 지역주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관광객 증가로 경제적, 정서적, 건강·안전 만족도를 통해 제주도민 삶의 질을 악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투어리스트피케이션이란 관광객 증가로 기존 지역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관광지화(Touristify)되고 주거환경이 위협(Gentrification)받는 현상을 의미한다. 제2공항이야말로 제주 투어리스트피케이션 폭발의 뇌관이라는 게 주민들과 제주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의 판단이다.
우리가 보고픈 제주는?
“혼자만의 싸움일까봐 가장 힘들었습니다.” 37일째 단식 중인 그가 건넨 말이다. 단식 42일째인 지난 11월 20일 결국 김경배 씨는 병원에 실려 갔다. 같은 날 기존의 ‘제2공항 전면 재검토와 새로운 제주를 위한 도민행동’이 ‘제주 제2공항 반대 범도민행동’으로 개편하고 ‘제2공항 재검토’가 아닌 ‘제2공항 전면 철회’와 관광개발 정책 전면 전환으로 활동 목표를 바꿨다. ‘성산은 안 된다가 아니라 제주 어디에도 제2공항은 안 된다!’는 것이다. 제2공항 문제는 성산읍 주민들을 넘어 도민 전체, 국민 모두의 문제가 됐다. 우리가 보고 싶은 제주는 과도한 관광개발로 훼손된, 드나들기만 편한 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 속에 제2공항 문제의 해법이 있을 것이다.
글 | 박은수 기자
사진 | 이성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