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한 도로에 설치된 로드킬 주의 안내판 ⓒ함께사는길 이성수
30여 년 전 영국 요크셔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생태유전학을 공부했다. 야외채집을 자주 다녔다. 어느 날 채집을 하다 도로를 가로 질러 이동하는 개구리들을 보았다. 한 눈에도 위험해 보였다. 개구리들은 쉽게 길을 건너지 못하고 멈추거나 출발지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와 건너기도 했다.
시골길이지만 차량 통행이 빈번해 살아서 건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생물학도의 야외채집 장비 중에는 양동이도 있어 거기다 개구리들을 담아 길 건너편에 놓아주었다. 지나가던 차량들이 의심에 찬 눈길로 뭘 하고 있냐고 물었다. 로드킬을 당한 개구리들을 가리키며 개구리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는 중이라고 답하자 도와주는 이들이 하나 둘 생기더니 누구는 교통정리를 하고 또 누구는 아이들과 몇 마리씩 손으로 잡아서 반대편에 건네주는 풍경이 연출됐다.
며칠 뒤에 다시 가보니 동네 주민 한두 가족이 나와서 개구리들을 옮겨주고 있었다. 점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면서 개구리를 지키는 일이 소박하지만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생물학자도 아니고 시민단체나 환경단체 활동가도 아니었다. 대부분 인근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이 로드킬에서 개구리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지역 자연보전단체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 단체의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곧 그 길에 ‘개구리가 건너는 길이니 개구리를 보면 길을 양보해주라!’는 도로교통표지판이 세워졌다.
로드킬

교통사고로 죽은 고라니 한 마리가 도로 옆에 버려져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대형 야생동물의 로드킬을 처음 본 것은 1999년 직장을 구해 정착한 미국 플로리다의 한 도로에서였다. 3미터 정도 되는 방울뱀(eastern diamondback rattlesnake)이 큰 화물차에 치어죽었는데 여러 차량들이 다시 밟고 지나면서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날씨 속에 급속 건조되어 납작하게 도로에 눌러 붙어버렸다. 그 방울뱀은 사람이 지나가도 도망가거나 길을 비켜주기는커녕 지나가 보란 듯이 꿈쩍도 않는 당당한 녀석이라, 순식간에 바뀐 그의 운명이 생전의 위엄과 죽음 이후의 초라함으로 극명하게 대비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년 뒤 귀국하여 폭발적으로 총연장이 늘어나고 있던 우리나라의 온갖 도로에서 로드킬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도시 안에서는 개, 고양이, 쥐, 까치의 사체는 흔히 볼 수 있었고, 고속도로에서는 고라니, 너구리, 다람쥐, 하늘다람쥐, 수달, 삵 등과 같은 포유동물들이 주로 희생됐다. 때로는 남생이, 뱀과 같은 파충류그리고 까치, 꿩, 수리부엉이, 솔부엉이, 소쩍새, 조롱이, 황조롱이 같은 조류까지 로드킬을 피하지 못했다.
야생의 이동
로드킬은 단순히 동물이 어떤 도로에서 차량에 치어죽는 일로 생각해, 단지 그 장소에서 사고를 방지하면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로드킬은 도로에 동물이 뛰어들어 일어나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고, 동물의 일상적인 삶이 교란되어 일어나는 극단적인 생태교란현상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비행기에 새가 날아들어 충돌한다고 표현되는 조류충돌(bird strike)도 로드킬과 같다. 많은 조류충돌 사례들에 대한 업계의 반응과 언론 보도의 관점은 ‘비행 안전이 조류의 이동에 의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비행기의 항로가 새들의 이동경로와 겹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두고 사고 유발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것이다. 서로 새로운 지역 공항을 만들겠다고 다투면서도 새들의 이동경로와 서식영역은 애초부터 고려에 없다.
하늘이 그럴 정도라면 지상에서 도로가 아닌 곳에서 호랑이, 곰, 코끼리가 이동경로가 겹친 인간을 공격하면 그들의 운명은 어찌 될까? 살인 범, 살인 곰, 살인 코끼리로 규정되어 즉시 제거대상이 된다. 하늘이건 지상이건 당연한 최종 죽음은 동물들의 몫이다. 대형동물들은 저마다 넓은 서식영역에서 생활한다. 호랑이는 250제곱킬로미터, 곰은 80제곱킬로미터, 코끼리는 최소 1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면적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의 생활영역이 팽창하면서 동물의 전통적인 서식영역까지 접근했다. 인간의 야생공간 접근이라는 생태적 교란이 지상에서나 하늘에서나 로드킬을 부르는 본질적인 원인이다.
생태학적 이해와 대책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인간과 야생의 이동통로와 서식영역이 겹치는 데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동물의 이동은 대표적으로 미국 대왕나비(monarch butterfly)의 대륙 횡단을 비롯하여 크리스마스섬 홍게, 툰드라 순록, 철새, 고래와 같은 동물들의 몸에 오랫동안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본능에 의한 이동’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해 동물의 일상적인 ‘생리적 행동’에서도 ‘야생의 이동’은 발생한다. 미국 텍사스에서는 저녁에 온도가 내려가면 그 지역 방울뱀들이 고속도로 아스팔트에 남은 열기로 밤 동안 체온을 유지하려 든다. 당연히 로드킬이 빈번해진다.
뱀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원봉사에 나선 노인들이 도로변을 걸으며 긴 갈고리로 뱀들을 황무지로 돌려보내지만 잦은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
야생동물 이동통로와 책임실명제
로드킬이 자주 일어나는 도로에서는 몇 가지 생태적인 역작용이 기본적으로 예상된다. 우선 가장 큰 영향은 자연공간이 이질적인 물질로 덮인 채 광폭으로 물리적 단절이 발생하므로 야생동물의 이동이 어려워진다. 둘째, 도로를 따라 형성된 긴 선형공간(linear space)에서 발생하는 교통소음으로 인해 야생동물이 접근을 꺼려해 도로 양안으로 생태적 단절이 가중된다. 셋째, 야간에 가로등과 차량의 조명으로 야행성 동물들의 서식과 이동은 물론 근처에 둥지를 트는 동물들이 심각한 교란을 받는다. 넷째, 결국 서식지 파편화(fragmentation)가 심화되어 조각난 지역마다 동물군집의 종조성이 한정된다. 다섯째, 넓게 분포하는 동물의 수평적인 이동이 교란되어 특히 같은 종끼리 만날 기회가 줄어서 개체수의 규모로나 유전적 건강성이 약화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의 행동에 있다. 로드킬은 인구증가의 결과로 사람이 동물의 서식지를 도로라는 토목공사로 파괴한 결과이다. 따라서 사람이 동물의 서식지를 물리적으로 복원하여 돌려주는 방법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수송체계상 도로가 없으면 안 되는 사회구조가 된 지금에는 우선 로드킬이 빈번한 도로부터 가능한 많은 그리고 다양한 이동통로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동통로를 넘어 이동광장의 개념의 넓은 복원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생태동굴에 동물들이 지나가는지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이동통로는 사람의 개념이다. 다리를 서둘러 건너가는 것은 사람이다. 동물은 움직일 때 주변을 살펴 안전이 확보된 다음에 움직이며 그러기 위해 한동안 머무르고 관망하기도 한다. 사람이 만들어 준 이동통로에는 그런 배려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일껏 설치한 이동통로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다리나 구멍보다는 면적과 부피가 더 넓고 두터운 공간에 다중적인 생태구조를 구축해 자연성을 최대한 확보한 이동광장이 필요하다. 그 이동광장을 도로가 단절시킨 핵심부분에 복원하고, 보조적으로 이동통로를 배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동물 이동을 보호하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면 바로 그런 생각이 야생의 죽음을 부르는 생각이란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도로는 건설을 고려하는 시점에서부터 야생의 이동, 생태계 복원과 관련된 비용이 포함된 설계가 충분한 시간과 고려를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굳이 꼭, 생태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도로를 만들어야겠다면 산을 깎아 생태계를 단절시키기보다 산과 계곡은 그대로 두고 핵심보전지역을 우회하는 교량을 놓거나 짧은 터널을 만드는 것이 비용은 들어도 생태적으로는 그나마 나은 방법이다. 또 이미 만들어진 도로에 동물이동통로를 만드는 것이라면 전문가들에게 장기연구를 요청하고 그 결과에 따른 자문을 받아야 한다. 생태계파편화에 의한 피해를 막아야 하는 주요동물 종들을 분명히 하고 그 종들의 생태적 특성에 따라 이동통로의 구조와 기능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이동통로만 만든다고 끝이 아니다. 그 후에 동물들이 이동통로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함께 강구돼야 한다. 유도 울타리를 설치한다면 울타리 식생이나 유도 개울을 함께 설치하는 방안 등이 바람직하다. 당초에 도로를 낼 때부터 가능한 많은 이동통로의 설치를 고려하도록 제도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을 사후에도 책임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책 입안, 실무, 자문에 관련된 이들의 책임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 책임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개발행위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더 욱 의식적으로 진지하게 고려해 최소화하자는 의미다. 지금과 같은 정책행동과 개발행동의 자장 안에서는 ‘아무도 생태계 파괴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게 된다.’
사람을 위한 생태이동통로는 그만!
최근에는 야생동물이 자주 나타나는 도로를 내비게이션에 기록하여 그 지점에 도달할 즈음에는 미리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알려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아직 보급률이 낮다. 우수한 인터넷 환경을 구축한 우리나라다. 앞선 디지털 기술과 공유 환경을 이용한 ‘로드킬 현장 실시간 신고관리체계 구축 실험’이 충분히 가능하다. 스마트폰 앱, 문자메세지전송서비스(SMS), 카카오톡, 트윗터 같은 소셜미디어와 이메일 등의 플랫폼을 이용해 로드킬 발생 상황을 신고할 수 있고 예방이나 구조에도 신속하고 공개적으로 시민의 협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로드킬된 야생동물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사체를 신속히 수거하여 건강상태, 의학적 검진, 생물학적 조사를 실시해 조사지역에서 야생동물의 상태를 정보화하여 생태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이런저런 개발 예정지에서 보호종이나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어도 개발이 강행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 G20 회원국, 올림픽 10위권의 스포츠 강국, 한류로 세계를 휩쓰는 문화강국에서 벌어질 일이 아니다.
선진국이란 몇몇 프로젝트나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민도와 그를 반영하는 사회적 행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야생의 생명도 사람과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를 가졌다는 인식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진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다.
환경을 모르는 정치경제관료들이 환경당국의 수장이 되어 문자로만 보호법을 만드니, 사람이 읽을 이동통로 표지판과 동물들이 건너지 않는 무늬만 생태이동통로들만 생겨날 뿐 정작 로드킬은 줄지 않는 것이다.
글 | 문태영 고신대학교 의생명과학과 교수, 부산환경연합 의장
국내 한 도로에 설치된 로드킬 주의 안내판 ⓒ함께사는길 이성수
30여 년 전 영국 요크셔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생태유전학을 공부했다. 야외채집을 자주 다녔다. 어느 날 채집을 하다 도로를 가로 질러 이동하는 개구리들을 보았다. 한 눈에도 위험해 보였다. 개구리들은 쉽게 길을 건너지 못하고 멈추거나 출발지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와 건너기도 했다.
시골길이지만 차량 통행이 빈번해 살아서 건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생물학도의 야외채집 장비 중에는 양동이도 있어 거기다 개구리들을 담아 길 건너편에 놓아주었다. 지나가던 차량들이 의심에 찬 눈길로 뭘 하고 있냐고 물었다. 로드킬을 당한 개구리들을 가리키며 개구리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는 중이라고 답하자 도와주는 이들이 하나 둘 생기더니 누구는 교통정리를 하고 또 누구는 아이들과 몇 마리씩 손으로 잡아서 반대편에 건네주는 풍경이 연출됐다.
며칠 뒤에 다시 가보니 동네 주민 한두 가족이 나와서 개구리들을 옮겨주고 있었다. 점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면서 개구리를 지키는 일이 소박하지만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생물학자도 아니고 시민단체나 환경단체 활동가도 아니었다. 대부분 인근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이 로드킬에서 개구리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지역 자연보전단체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 단체의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곧 그 길에 ‘개구리가 건너는 길이니 개구리를 보면 길을 양보해주라!’는 도로교통표지판이 세워졌다.
로드킬
교통사고로 죽은 고라니 한 마리가 도로 옆에 버려져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대형 야생동물의 로드킬을 처음 본 것은 1999년 직장을 구해 정착한 미국 플로리다의 한 도로에서였다. 3미터 정도 되는 방울뱀(eastern diamondback rattlesnake)이 큰 화물차에 치어죽었는데 여러 차량들이 다시 밟고 지나면서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날씨 속에 급속 건조되어 납작하게 도로에 눌러 붙어버렸다. 그 방울뱀은 사람이 지나가도 도망가거나 길을 비켜주기는커녕 지나가 보란 듯이 꿈쩍도 않는 당당한 녀석이라, 순식간에 바뀐 그의 운명이 생전의 위엄과 죽음 이후의 초라함으로 극명하게 대비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년 뒤 귀국하여 폭발적으로 총연장이 늘어나고 있던 우리나라의 온갖 도로에서 로드킬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도시 안에서는 개, 고양이, 쥐, 까치의 사체는 흔히 볼 수 있었고, 고속도로에서는 고라니, 너구리, 다람쥐, 하늘다람쥐, 수달, 삵 등과 같은 포유동물들이 주로 희생됐다. 때로는 남생이, 뱀과 같은 파충류그리고 까치, 꿩, 수리부엉이, 솔부엉이, 소쩍새, 조롱이, 황조롱이 같은 조류까지 로드킬을 피하지 못했다.
야생의 이동
로드킬은 단순히 동물이 어떤 도로에서 차량에 치어죽는 일로 생각해, 단지 그 장소에서 사고를 방지하면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로드킬은 도로에 동물이 뛰어들어 일어나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고, 동물의 일상적인 삶이 교란되어 일어나는 극단적인 생태교란현상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비행기에 새가 날아들어 충돌한다고 표현되는 조류충돌(bird strike)도 로드킬과 같다. 많은 조류충돌 사례들에 대한 업계의 반응과 언론 보도의 관점은 ‘비행 안전이 조류의 이동에 의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비행기의 항로가 새들의 이동경로와 겹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두고 사고 유발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것이다. 서로 새로운 지역 공항을 만들겠다고 다투면서도 새들의 이동경로와 서식영역은 애초부터 고려에 없다.
하늘이 그럴 정도라면 지상에서 도로가 아닌 곳에서 호랑이, 곰, 코끼리가 이동경로가 겹친 인간을 공격하면 그들의 운명은 어찌 될까? 살인 범, 살인 곰, 살인 코끼리로 규정되어 즉시 제거대상이 된다. 하늘이건 지상이건 당연한 최종 죽음은 동물들의 몫이다. 대형동물들은 저마다 넓은 서식영역에서 생활한다. 호랑이는 250제곱킬로미터, 곰은 80제곱킬로미터, 코끼리는 최소 1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면적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의 생활영역이 팽창하면서 동물의 전통적인 서식영역까지 접근했다. 인간의 야생공간 접근이라는 생태적 교란이 지상에서나 하늘에서나 로드킬을 부르는 본질적인 원인이다.
생태학적 이해와 대책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인간과 야생의 이동통로와 서식영역이 겹치는 데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동물의 이동은 대표적으로 미국 대왕나비(monarch butterfly)의 대륙 횡단을 비롯하여 크리스마스섬 홍게, 툰드라 순록, 철새, 고래와 같은 동물들의 몸에 오랫동안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본능에 의한 이동’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해 동물의 일상적인 ‘생리적 행동’에서도 ‘야생의 이동’은 발생한다. 미국 텍사스에서는 저녁에 온도가 내려가면 그 지역 방울뱀들이 고속도로 아스팔트에 남은 열기로 밤 동안 체온을 유지하려 든다. 당연히 로드킬이 빈번해진다.
뱀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원봉사에 나선 노인들이 도로변을 걸으며 긴 갈고리로 뱀들을 황무지로 돌려보내지만 잦은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
야생동물 이동통로와 책임실명제
로드킬이 자주 일어나는 도로에서는 몇 가지 생태적인 역작용이 기본적으로 예상된다. 우선 가장 큰 영향은 자연공간이 이질적인 물질로 덮인 채 광폭으로 물리적 단절이 발생하므로 야생동물의 이동이 어려워진다. 둘째, 도로를 따라 형성된 긴 선형공간(linear space)에서 발생하는 교통소음으로 인해 야생동물이 접근을 꺼려해 도로 양안으로 생태적 단절이 가중된다. 셋째, 야간에 가로등과 차량의 조명으로 야행성 동물들의 서식과 이동은 물론 근처에 둥지를 트는 동물들이 심각한 교란을 받는다. 넷째, 결국 서식지 파편화(fragmentation)가 심화되어 조각난 지역마다 동물군집의 종조성이 한정된다. 다섯째, 넓게 분포하는 동물의 수평적인 이동이 교란되어 특히 같은 종끼리 만날 기회가 줄어서 개체수의 규모로나 유전적 건강성이 약화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의 행동에 있다. 로드킬은 인구증가의 결과로 사람이 동물의 서식지를 도로라는 토목공사로 파괴한 결과이다. 따라서 사람이 동물의 서식지를 물리적으로 복원하여 돌려주는 방법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수송체계상 도로가 없으면 안 되는 사회구조가 된 지금에는 우선 로드킬이 빈번한 도로부터 가능한 많은 그리고 다양한 이동통로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동통로를 넘어 이동광장의 개념의 넓은 복원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생태동굴에 동물들이 지나가는지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이동통로는 사람의 개념이다. 다리를 서둘러 건너가는 것은 사람이다. 동물은 움직일 때 주변을 살펴 안전이 확보된 다음에 움직이며 그러기 위해 한동안 머무르고 관망하기도 한다. 사람이 만들어 준 이동통로에는 그런 배려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일껏 설치한 이동통로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다리나 구멍보다는 면적과 부피가 더 넓고 두터운 공간에 다중적인 생태구조를 구축해 자연성을 최대한 확보한 이동광장이 필요하다. 그 이동광장을 도로가 단절시킨 핵심부분에 복원하고, 보조적으로 이동통로를 배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동물 이동을 보호하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면 바로 그런 생각이 야생의 죽음을 부르는 생각이란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도로는 건설을 고려하는 시점에서부터 야생의 이동, 생태계 복원과 관련된 비용이 포함된 설계가 충분한 시간과 고려를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굳이 꼭, 생태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도로를 만들어야겠다면 산을 깎아 생태계를 단절시키기보다 산과 계곡은 그대로 두고 핵심보전지역을 우회하는 교량을 놓거나 짧은 터널을 만드는 것이 비용은 들어도 생태적으로는 그나마 나은 방법이다. 또 이미 만들어진 도로에 동물이동통로를 만드는 것이라면 전문가들에게 장기연구를 요청하고 그 결과에 따른 자문을 받아야 한다. 생태계파편화에 의한 피해를 막아야 하는 주요동물 종들을 분명히 하고 그 종들의 생태적 특성에 따라 이동통로의 구조와 기능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이동통로만 만든다고 끝이 아니다. 그 후에 동물들이 이동통로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함께 강구돼야 한다. 유도 울타리를 설치한다면 울타리 식생이나 유도 개울을 함께 설치하는 방안 등이 바람직하다. 당초에 도로를 낼 때부터 가능한 많은 이동통로의 설치를 고려하도록 제도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을 사후에도 책임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책 입안, 실무, 자문에 관련된 이들의 책임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 책임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개발행위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더 욱 의식적으로 진지하게 고려해 최소화하자는 의미다. 지금과 같은 정책행동과 개발행동의 자장 안에서는 ‘아무도 생태계 파괴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게 된다.’
사람을 위한 생태이동통로는 그만!
최근에는 야생동물이 자주 나타나는 도로를 내비게이션에 기록하여 그 지점에 도달할 즈음에는 미리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알려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아직 보급률이 낮다. 우수한 인터넷 환경을 구축한 우리나라다. 앞선 디지털 기술과 공유 환경을 이용한 ‘로드킬 현장 실시간 신고관리체계 구축 실험’이 충분히 가능하다. 스마트폰 앱, 문자메세지전송서비스(SMS), 카카오톡, 트윗터 같은 소셜미디어와 이메일 등의 플랫폼을 이용해 로드킬 발생 상황을 신고할 수 있고 예방이나 구조에도 신속하고 공개적으로 시민의 협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로드킬된 야생동물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사체를 신속히 수거하여 건강상태, 의학적 검진, 생물학적 조사를 실시해 조사지역에서 야생동물의 상태를 정보화하여 생태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이런저런 개발 예정지에서 보호종이나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어도 개발이 강행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 G20 회원국, 올림픽 10위권의 스포츠 강국, 한류로 세계를 휩쓰는 문화강국에서 벌어질 일이 아니다.
선진국이란 몇몇 프로젝트나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민도와 그를 반영하는 사회적 행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야생의 생명도 사람과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를 가졌다는 인식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진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다.
환경을 모르는 정치경제관료들이 환경당국의 수장이 되어 문자로만 보호법을 만드니, 사람이 읽을 이동통로 표지판과 동물들이 건너지 않는 무늬만 생태이동통로들만 생겨날 뿐 정작 로드킬은 줄지 않는 것이다.
글 | 문태영 고신대학교 의생명과학과 교수, 부산환경연합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