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발견한 사향 노루는 순식간에 숲으로 사라졌다
사향노루를 만난 날은 북한강 상류의 물고기들을 수중 촬영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진달래가 피는 따사로운 4 월의 봄날 시골길. 번식기를 맞이한 새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천천히 이동하던 중 두꺼운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 온 새싹의 부드러운 강인함을 목격했다. 카메라에 담으려고 한참을 도로 바닥에 엎드려 촬영에 열중하는데 길 건너편에서 뭔가 움직였다.
뜻밖의 만남
‘뭐지?’ 조용히 고개를 드는 순간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몸을 숙이고 동작을 최소화한 채 한참을 지켜 보니 풀숲에 숨어 있던 짐승이 살짝 움직인다. 윤곽이 보였다. 그의 모습을 본 찰나의 순간, 맹렬하게 머릿속을 검색했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직업상 멸종 동물, 미발견 생물들을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 적색보호종, 호랑이, 표범, 여우, 늑대 같은 생물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검은 갈색에 오똑한 귀, 그리고 앞다리와 가슴 부분에 흰줄이 선명하게 보이는 저 동물은…! ‘헉!’ 그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 가슴이 쿵쿵 뛰고 카메라를 잡은 손은 덜덜 떨렸다. 사향노루였다! 70년대 이후 사향을 채취하기 위해 남획되어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됐다고 여겨지던 사향노루가 눈앞에 나타난 것 이다. 그것도 험준한 산악의 절벽지대가 아닌 일반도로에서!

한반도 내 서식이 확인된 사향노루
새싹을 촬영하다 보니 카메라에는 접사렌즈가 끼워져 있고, 70여 미터 떨어진 거리의 사향노루를 찍으려면 망원렌즈가 필요했다. 망원렌즈가 실려 있는 차는 길 건너편에 있었다. 겨우 차로 접근해 망원렌즈로 갈아 끼우는데 왜 이리 안 되는지. 허둥대는 모습에 사향노루가 경계심을 느꼈는지 빠르게 몸을 돌려 풀숲으로 향한다. 몸을 숨기는 사향노루를 향해 셔터를 연사했지만 사향노루는 보이지 않고 갈대만이 바람에 흔들린다. 촬영을 못했을까 하는 불안감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풀숲을 뒤따라봤지만 사향노루는 흔적도 없다. 사진을 확보했는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한반도에 사향노루의 생존을 확인시켜준 그 사향노루에 감사했다.
끝없는 추적

사향노루의 배설물
사향노루와의 우연한 만남은 단 한 장의 사진을 선물처럼 남겼다. 사향노루를 험준한 산이 아닌 일반도로에서 발견했다니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심지어 사진을 본 포유류 전문가조차 의문을 제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당시만 해도 사향노루 서식지 나 생태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었고 학계 의견도 이미 멸종으로 기운 상태였다. 사향노루는 고가에 거래되는 사향을 채취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남획되어 멸종했다는 게 당시의 전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도로에서 촬영된 내 사진 한 장으로 사향노루의 생존이 확인됐고 학계에서는 사향노루 조사팀을 꾸려 조사를 시작했다. 현재 사향노루가 민통선 주변에서 서식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상태다. 필자도 사향노루 발견을 계기로 강원도 일대 산을 누비며 사향노루를 추적하고 있다. 올해로 8년째 추적하고 있는데 해마다 사향노루에 대한 새로운 생태적 사실들을 발견하고 있다.
8년간의 추적을 통해 의미 있는 촬영기록들이 쌓였다. 그중 특별한 기억은 사향노루에 이어 새끼 사향노루를 최초로 촬영한 것이다. 그것도 어미와 함께 나란히 이동 중인 장면을. 비록 어미의 상반신이 잘린 사진이지만 사향노루의 번식 생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진이다. 짐승들을 찾아다니며 익힌 노하우로 사향노루의 흔적을 9군데에서 발견하고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그중 8군데에서나 사향노루가 찍힌 일도 기억에 남는다. 생각보다 많은 사향노루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갑기도 하지만 밀렵에 대한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밀렵에 노출되다
사향노루 서식지 지역 주민들은 사향노루가 자기 지역에 서식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 려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사향노루의 서식이 알려지면 보호지역으로 설정되어 개발이 제한되고 재산상 불이익을 볼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주민들은 촬영팀과 조사팀을 불편해했다. 사향노루 서식지에서 사향노루의 서식이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서식지는 생각지 못한 위협 요인에 노출돼 있다.

산양과 사향노루가 다니는 길에는 이들을 위협할 수 있는 사냥개와 사람들도 아무런 제약 없이 다니고 있다
사향노루의 서식지를 아무런 제재 없이 오가는 약초꾼들과 밀렵꾼들을 비롯해 사향노루의 서식에 위협이 될 만한 장면들 이 무인카메라에 다수 촬영된 것이다.
동네 개들은 사향노루의 서식지를 놀이터처럼 오가고 있었다. 촬영된 곳이 민가와 떨어진 약 500미터 이상의 고지인데도 어미 개와 강아지는 사향노루의 서식지인 산 능선을 오르내렸다. 사향노루는 몸무게가 약 8~10킬로그램으로 생각보다 작고 서식 반경도 좁다. 민가가 없는 산 능선을 다닐 만큼 행동반경이 넓고 사냥 능력이 있는 진돗개나 풍산개는 사향노루의 서식을 위협하는 천적이 될 수 있다. 사향 냄새는 개들에게 추적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가을 지나 겨울에 들어서면 번식을 위한 사향노루의 사향 냄새가 점점 짙어질 것이고 생존의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아직도 사향노루의 서식환경과 조건, 생태 등 모르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향노루 보호를 위한 인식과 제도적 실천에 소홀한 면이 많다. 만약 호랑이나 표범이 사향노루처럼 발견됐다면 지금처럼 사회적 무관심과 방관의 대상이 됐을까? 사향이라는 고가의 약재를 가진 짐승이라는 점에서만 사향노루가 조명받는 게 아니라 한반도 생태계의 귀중한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존중받으며 사람과 공생할 수 있기 바란다.
당장 사향노루를 지키기 위한 시민사회의 시민행동이, 정부의 정책행동이 일어나야 한다. 멸종한 줄 알았던 사향노루의 생존은 한반도 생태계가 우리에게 준 선 물이다. 선물 받은 자의 예의는 그 선물을 귀하게 여기는 것에서 출발한다. 밀렵의 위기에서 사향노루를 지켜야 한다.
글 · 사진 | 윤순태 다큐멘터리 작가
우연히 발견한 사향 노루는 순식간에 숲으로 사라졌다
사향노루를 만난 날은 북한강 상류의 물고기들을 수중 촬영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진달래가 피는 따사로운 4 월의 봄날 시골길. 번식기를 맞이한 새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천천히 이동하던 중 두꺼운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 온 새싹의 부드러운 강인함을 목격했다. 카메라에 담으려고 한참을 도로 바닥에 엎드려 촬영에 열중하는데 길 건너편에서 뭔가 움직였다.
뜻밖의 만남
‘뭐지?’ 조용히 고개를 드는 순간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몸을 숙이고 동작을 최소화한 채 한참을 지켜 보니 풀숲에 숨어 있던 짐승이 살짝 움직인다. 윤곽이 보였다. 그의 모습을 본 찰나의 순간, 맹렬하게 머릿속을 검색했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직업상 멸종 동물, 미발견 생물들을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 적색보호종, 호랑이, 표범, 여우, 늑대 같은 생물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검은 갈색에 오똑한 귀, 그리고 앞다리와 가슴 부분에 흰줄이 선명하게 보이는 저 동물은…! ‘헉!’ 그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 가슴이 쿵쿵 뛰고 카메라를 잡은 손은 덜덜 떨렸다. 사향노루였다! 70년대 이후 사향을 채취하기 위해 남획되어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됐다고 여겨지던 사향노루가 눈앞에 나타난 것 이다. 그것도 험준한 산악의 절벽지대가 아닌 일반도로에서!
한반도 내 서식이 확인된 사향노루
새싹을 촬영하다 보니 카메라에는 접사렌즈가 끼워져 있고, 70여 미터 떨어진 거리의 사향노루를 찍으려면 망원렌즈가 필요했다. 망원렌즈가 실려 있는 차는 길 건너편에 있었다. 겨우 차로 접근해 망원렌즈로 갈아 끼우는데 왜 이리 안 되는지. 허둥대는 모습에 사향노루가 경계심을 느꼈는지 빠르게 몸을 돌려 풀숲으로 향한다. 몸을 숨기는 사향노루를 향해 셔터를 연사했지만 사향노루는 보이지 않고 갈대만이 바람에 흔들린다. 촬영을 못했을까 하는 불안감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풀숲을 뒤따라봤지만 사향노루는 흔적도 없다. 사진을 확보했는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한반도에 사향노루의 생존을 확인시켜준 그 사향노루에 감사했다.
끝없는 추적
사향노루의 배설물
사향노루와의 우연한 만남은 단 한 장의 사진을 선물처럼 남겼다. 사향노루를 험준한 산이 아닌 일반도로에서 발견했다니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심지어 사진을 본 포유류 전문가조차 의문을 제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당시만 해도 사향노루 서식지 나 생태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었고 학계 의견도 이미 멸종으로 기운 상태였다. 사향노루는 고가에 거래되는 사향을 채취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남획되어 멸종했다는 게 당시의 전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도로에서 촬영된 내 사진 한 장으로 사향노루의 생존이 확인됐고 학계에서는 사향노루 조사팀을 꾸려 조사를 시작했다. 현재 사향노루가 민통선 주변에서 서식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상태다. 필자도 사향노루 발견을 계기로 강원도 일대 산을 누비며 사향노루를 추적하고 있다. 올해로 8년째 추적하고 있는데 해마다 사향노루에 대한 새로운 생태적 사실들을 발견하고 있다.
8년간의 추적을 통해 의미 있는 촬영기록들이 쌓였다. 그중 특별한 기억은 사향노루에 이어 새끼 사향노루를 최초로 촬영한 것이다. 그것도 어미와 함께 나란히 이동 중인 장면을. 비록 어미의 상반신이 잘린 사진이지만 사향노루의 번식 생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진이다. 짐승들을 찾아다니며 익힌 노하우로 사향노루의 흔적을 9군데에서 발견하고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그중 8군데에서나 사향노루가 찍힌 일도 기억에 남는다. 생각보다 많은 사향노루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갑기도 하지만 밀렵에 대한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밀렵에 노출되다
사향노루 서식지 지역 주민들은 사향노루가 자기 지역에 서식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 려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사향노루의 서식이 알려지면 보호지역으로 설정되어 개발이 제한되고 재산상 불이익을 볼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주민들은 촬영팀과 조사팀을 불편해했다. 사향노루 서식지에서 사향노루의 서식이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서식지는 생각지 못한 위협 요인에 노출돼 있다.
산양과 사향노루가 다니는 길에는 이들을 위협할 수 있는 사냥개와 사람들도 아무런 제약 없이 다니고 있다
사향노루의 서식지를 아무런 제재 없이 오가는 약초꾼들과 밀렵꾼들을 비롯해 사향노루의 서식에 위협이 될 만한 장면들 이 무인카메라에 다수 촬영된 것이다.
동네 개들은 사향노루의 서식지를 놀이터처럼 오가고 있었다. 촬영된 곳이 민가와 떨어진 약 500미터 이상의 고지인데도 어미 개와 강아지는 사향노루의 서식지인 산 능선을 오르내렸다. 사향노루는 몸무게가 약 8~10킬로그램으로 생각보다 작고 서식 반경도 좁다. 민가가 없는 산 능선을 다닐 만큼 행동반경이 넓고 사냥 능력이 있는 진돗개나 풍산개는 사향노루의 서식을 위협하는 천적이 될 수 있다. 사향 냄새는 개들에게 추적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가을 지나 겨울에 들어서면 번식을 위한 사향노루의 사향 냄새가 점점 짙어질 것이고 생존의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아직도 사향노루의 서식환경과 조건, 생태 등 모르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향노루 보호를 위한 인식과 제도적 실천에 소홀한 면이 많다. 만약 호랑이나 표범이 사향노루처럼 발견됐다면 지금처럼 사회적 무관심과 방관의 대상이 됐을까? 사향이라는 고가의 약재를 가진 짐승이라는 점에서만 사향노루가 조명받는 게 아니라 한반도 생태계의 귀중한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존중받으며 사람과 공생할 수 있기 바란다.
당장 사향노루를 지키기 위한 시민사회의 시민행동이, 정부의 정책행동이 일어나야 한다. 멸종한 줄 알았던 사향노루의 생존은 한반도 생태계가 우리에게 준 선 물이다. 선물 받은 자의 예의는 그 선물을 귀하게 여기는 것에서 출발한다. 밀렵의 위기에서 사향노루를 지켜야 한다.
글 · 사진 | 윤순태 다큐멘터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