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꿀벌 ⓒ함께사는길 이성수
현 수준의 진화를 2억 년 전에 끝내고 꿀벌은 자신들이 깃든 지역 생태계를 유지하는 유능한 살림꾼이자 생태적 균형의 수호자로서 살아왔다. 꿀벌은 오늘날 소와 돼지에 이어 세계 농업 생산에 관련된 가장 영향력이 큰 세 가축의 하나로 식량 생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생물다양성협약(CBD) 산하 과학자문그룹인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보고했듯이 인류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작물 107종 중 91종이 벌, 나비와 같은 수분매개 곤충을 통해 번식하는데, 꿀벌이 그 중 75퍼센트를 담당한다. IPBES는 농업과 자연생태계의 유지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꿀벌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4차 총회에 제출한 그들의 1차 보고서(수분 및 수분매개체 평가서)에 따르면 과거 50년 동안 벌의 개체 수는 37퍼센트, 나비는 31퍼센트 감소했고, 일부 유럽 지역에서는 40퍼센트 이상의 벌이 생존위협을 받고 있으며 멸종위기로 내몰리는 야생벌과 나비 종이 늘고 있다.
꿀벌 실종사태 부르는 CCD
야생벌들의 멸종 위기와 더불어 사람이 농작물 수분을 위해 기르는 꿀벌 집단의 대붕괴도 지속되고 있다. 꿀벌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은 지난 2005년 미국에서 최초 관찰된 이래 2006년과 2007년 집중적인 피해를 불렀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세계 전역에서 발생되고 있다. 벌통을 나선 꿀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사라지는 꿀벌 실종현상인 CCD의 피해는 가공할 만한 수준이다. 말라 스피벅 교수(미네소타대 곤충학과)에 의하면, 2007년 이후 매년 미국 꿀벌은 30퍼센트씩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꿀벌의 수분활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아몬드나 양파 농업 등은 직격탄을 맞았다. 유럽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2007년 이후 매년 20~25퍼센트씩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왕벌 1마리와 수만 마리의 벌들로 이루어지는 봉군(蜂群)의 수는 2016년 현재 1940년대 수준의 절반 이하인 200~240만 군으로 추락했다. 유럽 꿀벌들도 지난 50년 동안 40퍼센트 가까이 사라졌다.
CCD의 유력한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우선 지구 전역의 도시화와 전파 네트워크 확대, 장기 화학관행농업의 독성 축적, 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적 식물생태계 변화와 이런 다양한 원인에 의한 꿀벌들의 기초체력 부실이 면역계 약화로 이어져 이전에는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질병과 바이러스에도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더욱 직접적인데, 바로 살충제 때문이다. 특히 가장 흔히 사용되는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트 성분의 살충제가 문제다. 이 성분은 니코틴계의 신경자극성 물질로 중독성이 있다. 워낙 흔히 사용되는 터라 농지뿐 아니라 자연계 어디라도 발견된다. 미국 연방환경청(EPA) 조사에 따르면 미국 꿀벌과 밀랍에서 121종의 살충제가 발견됐고 농산물 188종에서도 네오니코티노이트 성분이 검출됐다. 꿀벌들은 이 성분이 뿌려진 꽃가루를 먹고 중독되어 반복적으로 이 성분이 든 꽃가루를 찾아 먹으며 신경성 질환을 앓게 되고 결국 집을 나서면 돌아오지 못하는 길치가 된다는 것이다. 꿀벌들의 실종은 곤충 바이오사이드인 셈이다.
유럽연합은 네오티코티노이트 성분 살충제 사용을 2013년 6월부터 2년간 금지시켰다. 유럽 시민환경조직들은 영구금지를 위해 세계적 연대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10년 내 꿀벌 폐사율을 현재의 반 이하인 15퍼센트 미만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EPA가 2018년 말까지 네오티코노이트 살충제 규제조치를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종의 살균성분제를 포함한 6종의 살충제를 꽃 피는 시기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정부 경고가 나와 있다.
토종벌 전멸 부르는 낭충봉아부패병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양봉들에게서는 CCD 발생이 보고되지 않고 있다. 농업진흥청으로 공식통계가 집계된 최종년도인 201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봉군 수는 180만 군 이상이었고 2016년 현재로는 200만 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면적 대비 세계 최고 밀도 수준이다. 전세계가 CCD로 피해를 입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 양봉들의 상황은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종 꿀벌의 경우 군수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009년 40만 군에 달하던 우리나라 토종벌의 경우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지난 2009년 토종벌을 폐사시키는 ‘낭충봉아부패병(SBV)’이 발생했다. 이후 2년간의 대유행과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SBV 유행으로 토종벌은 멸종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4년 말 기준 정부 공식통계 상의 토종벌 수는 9만4000군이지만 현장 토종벌 사육 농가와 학자들은 2016년 현재의 토종벌 군수를 1만 군 이하로 추정하고 있다.
SBV는 이미 1980년대부터 아시아 전역에서 기승을 부렸다. 태국과 인도, 중국도 큰 피해를 입었다. SBV 바이러스는 태국에서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 전역에서 살아온 동양종 꿀벌(우리나라 토종벌도 같은 종이다)에겐 에이즈와 같다. SBV는 토종벌(아시아 토종)의 애벌레를 감염시킨 뒤 연쇄감염을 일으켜 봉군을 붕괴시키는데, 감염된 애벌레 한 마리가 10만 마리의 성봉을 폐사시킬 정도로 치명적이다. 치료제나 예방약은 아직 없다. 벌은 소나 돼지 같은 고등동물과 달라 질병 백신을 개발한 전례가 세계적으로도 없다. 때문에 SBV는 감염 단계 초기에 벌집 소각, 여왕벌 분리 등 물리적인 소거처리가 현재까지 이루어진 정부와 민간의 주요 대응책이었다.
농업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의 최용수 박사는 “토종벌 감소가 곧 농작물 생산 감소나 생태계 위기로 이어지진 않는다. 서양종 꿀벌은 유전적 저항력과 생태특성 때문에 SBV 피해를 받지 않는다. 대부분의 양봉 농가가 서양종 꿀벌을 사육하는 현실이고 우리나라 꿀벌 밀도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고 밝혔다. 토종벌 멸종을 부르는 SBV의 대응책에 대해서는 “감염사실을 초기에 파악하기 쉽고 위생관리에 더 유리한 개량벌통을 사용하고, 농업진흥청이 개발한 면역증강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현재까지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실제로 2012년 100통의 토종벌을 잃은 한 농민이 이런 방법으로 최근 500통까지 늘린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한봉협회 김미연 사무국장은 “모든 토종벌 농가가 개량벌통과 면역증강제 사용으로 성공사례를 재현하긴 어렵다. 같은 방법을 썼지만 다수의 농가가 실패했고 그 결과가 오늘날 정부의 공식적인 토종벌 통계치인 9만4000군보다 10배 가까이 더 적은 1만 군 이하의 토종벌만 남게 된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SBV 예방과 발생 후 현장 대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피해 농가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라면서 “구제역 피해를 본 축산농가 수준의 지원까지는 바라지 못해도 적어도 토종벌 양봉을 포기하도록 방치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지원 확대를 호소했다.
농업과학검역본부 동식물위생연구부 유미선 주무관은 ‘해독이 끝난 토종벌 유전자를 기반으로 SBV 예방약을 개발해, 현재 2017년까지 예정된 현장 적용실험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SBV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도 그 약효가 벌 자체를 죽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방약에 대한 기대는 크나 성과는 미지수인 상황인 것이다.
윤병수 경기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SBV는 지역적 변이를 일으켜 각 지역별로 다른 바이러스가 된다. 그래서 태국의 TSBV, 중국의 CSBV처럼 우리나라의 KSBV는 독자적 변이를 일으킨 병원체다. 서양종 꿀벌이 이 질병에 저항성이 있지만, KSBV가 재차 변이를 일으켜 토종벌뿐 아니라 서양종 꿀벌들까지 멸종으로 몰고 갈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조류독감(AI)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고 지적했다. “토종벌이 우리나라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단지 농작물 수분을 돕는 것 이상이다. 종적 다양성이 생태적 건강성의 기반이다. 토종벌을 살릴 종합적인 국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진단이다. 한편 IPBES 1차 보고서 공동저자인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 또한 ‘꿀벌을 비롯한 국내 수분매개 곤충의 농업 생산 기여도는 약 6조6000억 원에 달하고, 과수와 과채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농업 특성상 수분매개 곤충의 중요성은 외국보다 더 크기 때문’에 ‘수분매개 곤충에 대한 연구개발을 늘리고 종 보호를 위한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꿀벌을 지키는 정책행동의 필요성

서양종 꿀벌은 과수원에 벌통을 옮겨 두어도 아카시아 등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찾아 날아갈 뿐 배꽃과 사과꽃을 수분시키지 않는다. 토종벌의 급감은 사람이 수분기계를 써서 과수를 수분시키는 오늘날 우리나라 과수농가의 현실을 만들었다. 과수는 물론이고 우리 산야의 꽃 모두를 가리지 않고 짝 지워주는 토종벌의 생태적 지위는 그들의 수보다 높고 크다.
토종벌을 살리기 위해 꿀벌이 수분시킨 농작물로 식탁을 차리는 시민들이 할 일은 두 가지다. 말라스피벅 교수의 제안처럼 ‘집 뜰과 창문에라도 꽃을 심거나 화분을 두어 꿀벌을 직접 돕는 일’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정부에게 꿀벌을 지켜 식물생태계 나아가 자연을 지킬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일’이다.
한반도에서 토종벌이 가축 노릇을 한 시간이 문헌기록으로만 2000년이 넘는다. 그들의 노고로 밥과 꿀을 먹어온 사람들이 토종벌을 도울 때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수분곤충 보호 태스크포스’를 백악관에 꾸리고 CCD로부터 꿀벌을 지킬 정부종합대책을 지휘하고 있다. 청와대의 진두지휘로 KSBV로 인한 토종벌 멸종시대를 끝낼 꿀벌보호종합정책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식량안보와 생태계 안전을 위한 ‘꿀벌을 지키는 새로운 정책행동’이 필요하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꿀벌 ⓒ함께사는길 이성수
현 수준의 진화를 2억 년 전에 끝내고 꿀벌은 자신들이 깃든 지역 생태계를 유지하는 유능한 살림꾼이자 생태적 균형의 수호자로서 살아왔다. 꿀벌은 오늘날 소와 돼지에 이어 세계 농업 생산에 관련된 가장 영향력이 큰 세 가축의 하나로 식량 생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생물다양성협약(CBD) 산하 과학자문그룹인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보고했듯이 인류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작물 107종 중 91종이 벌, 나비와 같은 수분매개 곤충을 통해 번식하는데, 꿀벌이 그 중 75퍼센트를 담당한다. IPBES는 농업과 자연생태계의 유지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꿀벌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4차 총회에 제출한 그들의 1차 보고서(수분 및 수분매개체 평가서)에 따르면 과거 50년 동안 벌의 개체 수는 37퍼센트, 나비는 31퍼센트 감소했고, 일부 유럽 지역에서는 40퍼센트 이상의 벌이 생존위협을 받고 있으며 멸종위기로 내몰리는 야생벌과 나비 종이 늘고 있다.
꿀벌 실종사태 부르는 CCD
야생벌들의 멸종 위기와 더불어 사람이 농작물 수분을 위해 기르는 꿀벌 집단의 대붕괴도 지속되고 있다. 꿀벌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은 지난 2005년 미국에서 최초 관찰된 이래 2006년과 2007년 집중적인 피해를 불렀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세계 전역에서 발생되고 있다. 벌통을 나선 꿀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사라지는 꿀벌 실종현상인 CCD의 피해는 가공할 만한 수준이다. 말라 스피벅 교수(미네소타대 곤충학과)에 의하면, 2007년 이후 매년 미국 꿀벌은 30퍼센트씩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꿀벌의 수분활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아몬드나 양파 농업 등은 직격탄을 맞았다. 유럽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2007년 이후 매년 20~25퍼센트씩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왕벌 1마리와 수만 마리의 벌들로 이루어지는 봉군(蜂群)의 수는 2016년 현재 1940년대 수준의 절반 이하인 200~240만 군으로 추락했다. 유럽 꿀벌들도 지난 50년 동안 40퍼센트 가까이 사라졌다.
CCD의 유력한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우선 지구 전역의 도시화와 전파 네트워크 확대, 장기 화학관행농업의 독성 축적, 기후변화로 인한 지역적 식물생태계 변화와 이런 다양한 원인에 의한 꿀벌들의 기초체력 부실이 면역계 약화로 이어져 이전에는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질병과 바이러스에도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더욱 직접적인데, 바로 살충제 때문이다. 특히 가장 흔히 사용되는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트 성분의 살충제가 문제다. 이 성분은 니코틴계의 신경자극성 물질로 중독성이 있다. 워낙 흔히 사용되는 터라 농지뿐 아니라 자연계 어디라도 발견된다. 미국 연방환경청(EPA) 조사에 따르면 미국 꿀벌과 밀랍에서 121종의 살충제가 발견됐고 농산물 188종에서도 네오니코티노이트 성분이 검출됐다. 꿀벌들은 이 성분이 뿌려진 꽃가루를 먹고 중독되어 반복적으로 이 성분이 든 꽃가루를 찾아 먹으며 신경성 질환을 앓게 되고 결국 집을 나서면 돌아오지 못하는 길치가 된다는 것이다. 꿀벌들의 실종은 곤충 바이오사이드인 셈이다.
유럽연합은 네오티코티노이트 성분 살충제 사용을 2013년 6월부터 2년간 금지시켰다. 유럽 시민환경조직들은 영구금지를 위해 세계적 연대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10년 내 꿀벌 폐사율을 현재의 반 이하인 15퍼센트 미만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EPA가 2018년 말까지 네오티코노이트 살충제 규제조치를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종의 살균성분제를 포함한 6종의 살충제를 꽃 피는 시기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정부 경고가 나와 있다.
토종벌 전멸 부르는 낭충봉아부패병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양봉들에게서는 CCD 발생이 보고되지 않고 있다. 농업진흥청으로 공식통계가 집계된 최종년도인 201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봉군 수는 180만 군 이상이었고 2016년 현재로는 200만 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면적 대비 세계 최고 밀도 수준이다. 전세계가 CCD로 피해를 입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 양봉들의 상황은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종 꿀벌의 경우 군수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009년 40만 군에 달하던 우리나라 토종벌의 경우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지난 2009년 토종벌을 폐사시키는 ‘낭충봉아부패병(SBV)’이 발생했다. 이후 2년간의 대유행과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SBV 유행으로 토종벌은 멸종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4년 말 기준 정부 공식통계 상의 토종벌 수는 9만4000군이지만 현장 토종벌 사육 농가와 학자들은 2016년 현재의 토종벌 군수를 1만 군 이하로 추정하고 있다.
SBV는 이미 1980년대부터 아시아 전역에서 기승을 부렸다. 태국과 인도, 중국도 큰 피해를 입었다. SBV 바이러스는 태국에서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 전역에서 살아온 동양종 꿀벌(우리나라 토종벌도 같은 종이다)에겐 에이즈와 같다. SBV는 토종벌(아시아 토종)의 애벌레를 감염시킨 뒤 연쇄감염을 일으켜 봉군을 붕괴시키는데, 감염된 애벌레 한 마리가 10만 마리의 성봉을 폐사시킬 정도로 치명적이다. 치료제나 예방약은 아직 없다. 벌은 소나 돼지 같은 고등동물과 달라 질병 백신을 개발한 전례가 세계적으로도 없다. 때문에 SBV는 감염 단계 초기에 벌집 소각, 여왕벌 분리 등 물리적인 소거처리가 현재까지 이루어진 정부와 민간의 주요 대응책이었다.
농업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의 최용수 박사는 “토종벌 감소가 곧 농작물 생산 감소나 생태계 위기로 이어지진 않는다. 서양종 꿀벌은 유전적 저항력과 생태특성 때문에 SBV 피해를 받지 않는다. 대부분의 양봉 농가가 서양종 꿀벌을 사육하는 현실이고 우리나라 꿀벌 밀도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고 밝혔다. 토종벌 멸종을 부르는 SBV의 대응책에 대해서는 “감염사실을 초기에 파악하기 쉽고 위생관리에 더 유리한 개량벌통을 사용하고, 농업진흥청이 개발한 면역증강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현재까지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실제로 2012년 100통의 토종벌을 잃은 한 농민이 이런 방법으로 최근 500통까지 늘린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한봉협회 김미연 사무국장은 “모든 토종벌 농가가 개량벌통과 면역증강제 사용으로 성공사례를 재현하긴 어렵다. 같은 방법을 썼지만 다수의 농가가 실패했고 그 결과가 오늘날 정부의 공식적인 토종벌 통계치인 9만4000군보다 10배 가까이 더 적은 1만 군 이하의 토종벌만 남게 된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SBV 예방과 발생 후 현장 대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피해 농가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라면서 “구제역 피해를 본 축산농가 수준의 지원까지는 바라지 못해도 적어도 토종벌 양봉을 포기하도록 방치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지원 확대를 호소했다.
농업과학검역본부 동식물위생연구부 유미선 주무관은 ‘해독이 끝난 토종벌 유전자를 기반으로 SBV 예방약을 개발해, 현재 2017년까지 예정된 현장 적용실험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SBV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도 그 약효가 벌 자체를 죽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방약에 대한 기대는 크나 성과는 미지수인 상황인 것이다.
윤병수 경기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SBV는 지역적 변이를 일으켜 각 지역별로 다른 바이러스가 된다. 그래서 태국의 TSBV, 중국의 CSBV처럼 우리나라의 KSBV는 독자적 변이를 일으킨 병원체다. 서양종 꿀벌이 이 질병에 저항성이 있지만, KSBV가 재차 변이를 일으켜 토종벌뿐 아니라 서양종 꿀벌들까지 멸종으로 몰고 갈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조류독감(AI)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고 지적했다. “토종벌이 우리나라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단지 농작물 수분을 돕는 것 이상이다. 종적 다양성이 생태적 건강성의 기반이다. 토종벌을 살릴 종합적인 국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진단이다. 한편 IPBES 1차 보고서 공동저자인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 또한 ‘꿀벌을 비롯한 국내 수분매개 곤충의 농업 생산 기여도는 약 6조6000억 원에 달하고, 과수와 과채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농업 특성상 수분매개 곤충의 중요성은 외국보다 더 크기 때문’에 ‘수분매개 곤충에 대한 연구개발을 늘리고 종 보호를 위한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꿀벌을 지키는 정책행동의 필요성
서양종 꿀벌은 과수원에 벌통을 옮겨 두어도 아카시아 등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찾아 날아갈 뿐 배꽃과 사과꽃을 수분시키지 않는다. 토종벌의 급감은 사람이 수분기계를 써서 과수를 수분시키는 오늘날 우리나라 과수농가의 현실을 만들었다. 과수는 물론이고 우리 산야의 꽃 모두를 가리지 않고 짝 지워주는 토종벌의 생태적 지위는 그들의 수보다 높고 크다.
토종벌을 살리기 위해 꿀벌이 수분시킨 농작물로 식탁을 차리는 시민들이 할 일은 두 가지다. 말라스피벅 교수의 제안처럼 ‘집 뜰과 창문에라도 꽃을 심거나 화분을 두어 꿀벌을 직접 돕는 일’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정부에게 꿀벌을 지켜 식물생태계 나아가 자연을 지킬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일’이다.
한반도에서 토종벌이 가축 노릇을 한 시간이 문헌기록으로만 2000년이 넘는다. 그들의 노고로 밥과 꿀을 먹어온 사람들이 토종벌을 도울 때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수분곤충 보호 태스크포스’를 백악관에 꾸리고 CCD로부터 꿀벌을 지킬 정부종합대책을 지휘하고 있다. 청와대의 진두지휘로 KSBV로 인한 토종벌 멸종시대를 끝낼 꿀벌보호종합정책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식량안보와 생태계 안전을 위한 ‘꿀벌을 지키는 새로운 정책행동’이 필요하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