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일몰에 관한 한 생각

서리풀공원과 연결된 몽마르뜨공원 풍경 ⓒ함께사는길 이성수
천천히 자주 걸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지만 날이 추워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나 꾀를 부렸더니 아픈 허리가 도졌다. 가까운 곳에 야트막한 공원이 여럿이지만 기왕이면 안 가본 길을 걷고 싶어 한강을 건너가기로 했다. 서리풀공원을 골랐다. 서리풀공원은 3개의 공원이 연결된 공원지대다. 우선 청권사와 효령대군 묘에서 시작돼 대검찰청 부근 동광로가 지나는 데까지가 서리풀공원이다. 서리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이 붙어있는데 이 두 공원을 연결하는 다리가 서리풀다리다. 몽마르뜨공원의 주요 공원 시설물들은 정상부에 조성돼 있다. 몽마르트공원은 서초역과 서울성모병원사거리를 잇는 큰 도로와 만나는 데서 끝나고 그 길 건너에 서리골공원이 이어진다. 두 공원을 잇는 다리가 누에다리다. 서리골공원은 남쪽에 서울고등검찰청을 면해 있고 북으로 사평대로를 만나는 데까지 이어진다. 그 길을 건너면 고속터미널이다. 세 공원을 걷는 시간은 대략 2시간 반쯤 걸리는데 나는 3시간 넘게 천천히 걸었다.
서리풀공원은 해발고도 100미터도 안 되지만 산길은 산길이다. 천천히 걸어올라 청권사 쉼터까지 갔다. 제법 추웠지만 서울 도심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상쾌한 공기 때문에 숨쉬기 편하다. 사람들이 20명 가까이 올라와 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뒤뚱거리는 나완 달리 차림새가 가볍다. “서리풀공원이 2020년 공원 일몰제 대상이라 2년 뒤 이 공원에 속한 사유지는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원반 위에서 허리를 돌리고 있던 중로에게 물었다. “그럴 리 없다!”고 단언한다. 정부가 가만있겠냐는 거다. ‘지금대로라면 가만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공연히 기분만 해치는 논쟁이 될까 싶어 “운동 잘하시라!” 인사하고 돌아섰다.

서리풀공원 산책로 ⓒ함께사는길 이성수
구불거리는 구릉 위로 참나무와 느티나무,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산길을 걸으며 마주 오는 이들과 눈인사도 나눴다. 한 시간 반 가까이 걸어 서리풀다리를 지났다. 참 게으른 산책이다. 몽마르뜨공원 입구에서 탐방객들이 챙겨줬을 게 분명한 시금치를 먹고 있는 토끼들을 만났다. 집토끼들이 집 없이 공원에서 살아가다니 조금 의외의 일이다. 몽마르뜨공원에 설치된 압축공기 분사기로 먼지를 털었다. 풍이 와서 운신이 좀 불편한 선객 유 모씨(67)에게 “길이 참 좋네요.” 지나는 말로 아는 체를 했더니 “그렇지요!” 화답한다. 서리풀공원이 2020년 공원 일몰제 대상 중 하나라는데 아시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몰랐다는 거다. 흥분해서 역대 정권과 시장들까지 비판하는 그이와 간신히 헤어졌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누에다리로 건너갔다. 조선시대 양잠기관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인근에 있었던 역사가 다리 이름의 유래다. 두 마리 누에가 입을 맞추고 있는 석조 조형물이 특이했다. 서리골공원으로 건너갔다. 수목 밀집도가 좀 더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되어 녹음이 우거지면 꽤 그늘이 깊겠다 싶다. 길이 끝나가니 조금 아쉽고 또 조금 안심되는 마음이다. 다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7킬로미터의 길이지만 오르내리는 길이라 느낌으로는 10킬로미터 쯤 걸은 듯하다. 어디까지나 잘 걷지 못하는 내 얘기다. 등산 꽤나 한다는 분들, 잘 걷는 이들은 ‘애걔!’ 할 거리긴 하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나처럼 한강 건너와 서리풀공원에 오는 이들이 산책하기도 좋지만, 공원 주변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아파트와 빌라에 사는 ‘인근 주민들은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공원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도시숲이 도시의 허파란 말은 부러 하는 말이 아니다. 공기뿐 아니라 바쁜 마음을 다독이는 장소가 서리풀공원 같은 도심의 숲이다.

서리풀공원. 도시공원이자 도시민들의 쉼터인 서리풀공원은 도시공원 일몰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2018년 2월 말 현재, 일몰제가 시행되는 2020년 7월 1일부터 실효(일몰) 대상인 서울시 공원의 장기미집행 면적은 40제곱킬로미터가 넘는다. 공원 일몰이 돼도 그곳이 도시숲으로 계속 기능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곳을 개발제한구역, 도시자연공원구역 등으로 지정해 개발을 막아야 한다. 아니면 아예 시가 세금으로 매입하거나 해야 한다. 매입한다고 해도 그 매입 비용을 마련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서울의 장기미집행(도시계획시설로 정부와 지자체가 설정한 뒤 정작 그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20년이 경과된 곳, 헌법재판소는 2020년 7월 1일 이런 곳을 계획시설에서 풀어주라고 판결했다) 면적 전체를 매입하려면 11조 원 이상이 들고 법으로 개발을 막을 수 있는 면적을 빼더라도 1조6천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정책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한편 전국도시공원 면적 942제곱킬로미터 가운데 장기미집행 상태의 사유지는 321제곱킬로미터나 된다. 사유지 중에서도 대지로 구분되는 곳에 대해서는 즉시 보상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지자체와 정부가 지금 같은 대응을 한다면 2020년 7월 1일 일몰 이후 지금까지 누리던 도시숲을 토지소유주들이 ‘내 땅 들어오지 말라!’고 친 철책에 뺏길 수도 있다. 일몰의 위험 속에 놓인 공원은 서울에만 136개소에 이르고 전국적으로는 1만9000개소에 달한다. 시민들이 ‘우리 동네 공원을 일몰에서 구출’하라고, 당장 올해 6월의 지자체 선거의 자치단체장 후보들에게 공약 요구를 해야 마땅하다. 2020년 이후에도 우리는 도시에서 살며 도시숲에 가야 하니까!
글 | 박현철 편집주간
공원 일몰에 관한 한 생각
서리풀공원과 연결된 몽마르뜨공원 풍경 ⓒ함께사는길 이성수
천천히 자주 걸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지만 날이 추워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나 꾀를 부렸더니 아픈 허리가 도졌다. 가까운 곳에 야트막한 공원이 여럿이지만 기왕이면 안 가본 길을 걷고 싶어 한강을 건너가기로 했다. 서리풀공원을 골랐다. 서리풀공원은 3개의 공원이 연결된 공원지대다. 우선 청권사와 효령대군 묘에서 시작돼 대검찰청 부근 동광로가 지나는 데까지가 서리풀공원이다. 서리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이 붙어있는데 이 두 공원을 연결하는 다리가 서리풀다리다. 몽마르뜨공원의 주요 공원 시설물들은 정상부에 조성돼 있다. 몽마르트공원은 서초역과 서울성모병원사거리를 잇는 큰 도로와 만나는 데서 끝나고 그 길 건너에 서리골공원이 이어진다. 두 공원을 잇는 다리가 누에다리다. 서리골공원은 남쪽에 서울고등검찰청을 면해 있고 북으로 사평대로를 만나는 데까지 이어진다. 그 길을 건너면 고속터미널이다. 세 공원을 걷는 시간은 대략 2시간 반쯤 걸리는데 나는 3시간 넘게 천천히 걸었다.
서리풀공원은 해발고도 100미터도 안 되지만 산길은 산길이다. 천천히 걸어올라 청권사 쉼터까지 갔다. 제법 추웠지만 서울 도심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상쾌한 공기 때문에 숨쉬기 편하다. 사람들이 20명 가까이 올라와 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뒤뚱거리는 나완 달리 차림새가 가볍다. “서리풀공원이 2020년 공원 일몰제 대상이라 2년 뒤 이 공원에 속한 사유지는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원반 위에서 허리를 돌리고 있던 중로에게 물었다. “그럴 리 없다!”고 단언한다. 정부가 가만있겠냐는 거다. ‘지금대로라면 가만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공연히 기분만 해치는 논쟁이 될까 싶어 “운동 잘하시라!” 인사하고 돌아섰다.
서리풀공원 산책로 ⓒ함께사는길 이성수
구불거리는 구릉 위로 참나무와 느티나무,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산길을 걸으며 마주 오는 이들과 눈인사도 나눴다. 한 시간 반 가까이 걸어 서리풀다리를 지났다. 참 게으른 산책이다. 몽마르뜨공원 입구에서 탐방객들이 챙겨줬을 게 분명한 시금치를 먹고 있는 토끼들을 만났다. 집토끼들이 집 없이 공원에서 살아가다니 조금 의외의 일이다. 몽마르뜨공원에 설치된 압축공기 분사기로 먼지를 털었다. 풍이 와서 운신이 좀 불편한 선객 유 모씨(67)에게 “길이 참 좋네요.” 지나는 말로 아는 체를 했더니 “그렇지요!” 화답한다. 서리풀공원이 2020년 공원 일몰제 대상 중 하나라는데 아시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몰랐다는 거다. 흥분해서 역대 정권과 시장들까지 비판하는 그이와 간신히 헤어졌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누에다리로 건너갔다. 조선시대 양잠기관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인근에 있었던 역사가 다리 이름의 유래다. 두 마리 누에가 입을 맞추고 있는 석조 조형물이 특이했다. 서리골공원으로 건너갔다. 수목 밀집도가 좀 더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되어 녹음이 우거지면 꽤 그늘이 깊겠다 싶다. 길이 끝나가니 조금 아쉽고 또 조금 안심되는 마음이다. 다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7킬로미터의 길이지만 오르내리는 길이라 느낌으로는 10킬로미터 쯤 걸은 듯하다. 어디까지나 잘 걷지 못하는 내 얘기다. 등산 꽤나 한다는 분들, 잘 걷는 이들은 ‘애걔!’ 할 거리긴 하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나처럼 한강 건너와 서리풀공원에 오는 이들이 산책하기도 좋지만, 공원 주변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아파트와 빌라에 사는 ‘인근 주민들은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공원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도시숲이 도시의 허파란 말은 부러 하는 말이 아니다. 공기뿐 아니라 바쁜 마음을 다독이는 장소가 서리풀공원 같은 도심의 숲이다.
서리풀공원. 도시공원이자 도시민들의 쉼터인 서리풀공원은 도시공원 일몰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2018년 2월 말 현재, 일몰제가 시행되는 2020년 7월 1일부터 실효(일몰) 대상인 서울시 공원의 장기미집행 면적은 40제곱킬로미터가 넘는다. 공원 일몰이 돼도 그곳이 도시숲으로 계속 기능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곳을 개발제한구역, 도시자연공원구역 등으로 지정해 개발을 막아야 한다. 아니면 아예 시가 세금으로 매입하거나 해야 한다. 매입한다고 해도 그 매입 비용을 마련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서울의 장기미집행(도시계획시설로 정부와 지자체가 설정한 뒤 정작 그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20년이 경과된 곳, 헌법재판소는 2020년 7월 1일 이런 곳을 계획시설에서 풀어주라고 판결했다) 면적 전체를 매입하려면 11조 원 이상이 들고 법으로 개발을 막을 수 있는 면적을 빼더라도 1조6천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정책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한편 전국도시공원 면적 942제곱킬로미터 가운데 장기미집행 상태의 사유지는 321제곱킬로미터나 된다. 사유지 중에서도 대지로 구분되는 곳에 대해서는 즉시 보상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지자체와 정부가 지금 같은 대응을 한다면 2020년 7월 1일 일몰 이후 지금까지 누리던 도시숲을 토지소유주들이 ‘내 땅 들어오지 말라!’고 친 철책에 뺏길 수도 있다. 일몰의 위험 속에 놓인 공원은 서울에만 136개소에 이르고 전국적으로는 1만9000개소에 달한다. 시민들이 ‘우리 동네 공원을 일몰에서 구출’하라고, 당장 올해 6월의 지자체 선거의 자치단체장 후보들에게 공약 요구를 해야 마땅하다. 2020년 이후에도 우리는 도시에서 살며 도시숲에 가야 하니까!
글 | 박현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