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을 향한 거침없는 하이킥' 故 손희정에 대하여

해양투기선 감시 활동에 나선 故 손희정 바다위원회 사무국장

 

DDT와 농약 화학물질의 반생태성을 최초로 제기한 『침묵의 봄』을 저술한 레이첼 카슨여사는 본래 해양학자로 크게 인정되어야 할 업적이 많다. 그녀는 다양한 자료와 문학적 서술을 통해 바다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닿아 있으며 바다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고 일찍이 주장했다. 그녀의 또 다른 책인 『우리를 둘러 싼 바다』는 이러한 바다에 대한 그녀의 생태인문학적 상상력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미국과 구소련은 핵폐기물의 대부분을 바다에 투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환경연합 바다위원회’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처음 있었을 때 우리는 주로 수질오염, 대기오염 등 육상의 환경문제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에 둘러싸인 우리나라가 해마다 1000만 톤에 이르는 산업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고 있다는 사실은 환경운동의 새로운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거친 직접행동에서부터 세밀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적 정책의 주장에 이르기까지 만만치 않은 준비와 기획이 필요한 것이었다. 바다에 연한 지역의 환경운동가들이 모여 작은 규모의 활동력이지만 높은 의지와 생태학적 의무와 책임으로 지난 활동을 이어 왔다. 

 

바다위 첫 사무국장 

손희정, 그녀는 바다위원회의 첫 사무국장을 맡았다. 부산이라는 가장 큰 바다의 도시에서 바다 환경운동의 일정한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판단과 함께 바다를 사랑했던 희정의 자유로운 의지가 그런 결정을 했을 것이다. 송도해수욕장 인근에서 유년을 보낸 그녀에게 바다는 놀이터였고 세계를 익히고 알아가는 깊은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오래 전에 작고하였다는 그녀 아버지가 상어잡이 어선의 선장을 오랫동안 했다는 말을 몇 차례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에 대한 상념은 어떤 수평선 같은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했고 언제나 소용돌이치는 바다에서 거대한 상어와 싸우다 늠름히 살아 돌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감감한 자부심의 일부이었을 것이다.  

처음 희정이 환경운동과 조우하게 된 것이 부산시청의 농성장이었을 것이다. 1995년 겨울, 낙동강을 지키고 상류지역의 공단 건설을 막으려는 시민운동의 양상은 부산의 가장 큰 이슈였고 우리는 시장실을 점거하고 장기 농성으로 시민의 환경적 권리를 정부와 부산시에 요구하고 있었다. 그녀의 언니 손영재는 환경연합의 회원으로 다양한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희정은 이제 막 졸업을 앞둔 사회 초년생으로 언니 영재를 따라 시청 농성장의 자원봉사자로 사회의 첫 발을 디뎠다.  

희정은 예쁜 글씨로 농성장의 홍보문구를 만들어 게시하고 농성장 정리와 청소를 하면서 농성장의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이후 희정은 새해에 자연스럽게 부산환경연합의 수습 활동가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녀는 근원적으로 어떤 속박과 정형에도 넘어가지 않는 자발적 능력을 가진 인간이었다. 자유와 자치의 인간에게 어떤 형태의 그룹핑은 참으로 이상하고 고통스런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가끔 사람들과 현상적인 엇박자를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이러한 엇박자는 그녀에게는 자치와 자발에서 나오는 어떤 힘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풀포기보다 여린 정서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눈물도 많은 그러한 존재였다.  

어떤 때는 그녀가 ‘조폭마누라’가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가녀리고 작은 체구에서 내지르는 목소리는 장난이 아니었다. 사무실 안에서의 실무보다는 바람 같은 현장의 리더십이 더 어울리는 희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바다위원회의 초대 사무국장이란 직책은 그녀에게 꽤 잘 어울리는 활동의 형식일 수 있었다. 피켓을 제작하고,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돌리고 성명서를 배포하고, 물결치는 캠페인 보트에서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아무도 듣지 않아도 구호를 목청껏 외치는 여성이 희정의 살아 있는 모습이었다.

 

다시 바다에게 그리고 희정에게 

언제인가, 봄날 소매물도에서 바다위원회 동료들과의 연찬회를 연 적이 있다. 프레시안 블루의 움직이는 바다 위에서 봄바람 불어오는 섬 언덕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제에 취하고 우리의 결의에 취하였다. 바다와 생명에 대한 예의를 소원하던 그림 같은 그리움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노란 유채가 더욱 선명하던 그 봄의 염원들은 어찌 되었단 말인가.  

바다위원회 11년의 고고한 활동만이 한국의 폐기물 해양투기금지를 끌어낸 유일한 힘이 아닐지라도 굳이 겸손해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날렸던 조그만 깃발, 함께 하였던 동지들의 숨결, 말하지 않아도 알아먹던 연대가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뚜렷하다. 세찬 동해에서 어찌 보면 바다를 향한 우리만의 제사와 같았던 캠페인들이 오늘 해양투기금지의 방아쇠가 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먼저 간 희정이 이 소식을 들었다면 흰 이를 드러내고 어떤 남자보다 크게 웃었을 것이다.  

딸아이까지 두고 잘 살아 보려는 그녀에게 닥친 병환은 2년에 걸친 투병 속에도 그녀를 데려가고 말았다. 여전히 팍팍한 시류, 사랑하는 후배에 대한 추모의 글을 쓰는 한심하고 비루한 존재를 슬퍼한다.  

다시 남쪽에서 봄바람이 불 때 함께 웅성거렸던 소매물도 언덕에 올라 동지들과 낮술을 마시며 다시 바다에게 그리고 손희정에게 해양투기금지에 대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글 | 구자상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초대위원장이자 부산 녹색당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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