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강의 절경 어라연 ⓒ함께사는길 이성수
지난 5월 동강을 다시 찾았다. 한여름을 준비하는 동강의 쪽빛은 여전했다. 사람도 여전할까? 동강댐 백지화 이후 10여 년 만에 ‘영월댐백지화투쟁위원회(이하 백투위)’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정규화 씨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영월읍 삼옥리에서 민박을 운영하고 있었고, 깊어진 그의 주름살에서는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그는 “동강댐이 백지화되길 잘했어요. 지난겨울 요 앞 도로로 집체만한 바위가 떨어졌는데, 여기다 댐을 지었으면 무너지는 건 뻔 한 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자녀들도 아버지가 동강댐 백지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며 뿌듯해 한다. 그의 표정에서 평온함이 느껴질 때, 동강의 거센 바람은 무성한 나뭇잎 사이를 스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과 달리 동강댐 백지화 이후 10여 년 동안, 동강은 결코 평온하지 못했다. 강은 그대로 흐르고 있지만, 강을 둘러싼 사람들이 변해 또 다른 갈등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부터 댐 백지화 이후 10년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여전히 되풀이된 동강댐 논란
동강은 댐이 백지화된 이후 2001년 12월 ‘자연휴식지’로 지정됐고, 2002년 8월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법적인 보호를 받게 됐다. 2004년 말에는 동강 ‘생태계보전지역 관리기본계획’이 수립됐고, 건교부도 2004년 말 ‘친환경하천정비기본계획 수립 지침’을 마련해 동강이나 낙동강 하회마을처럼 생태 또는 문화자원이 우수한 하천과 그 주변지역을 ‘하천보전지구’로 지정해 보전대책을 수립할 계획을 잡았다.
이제 동강에는 더 이상 댐으로 인한 악몽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2006년 7월 태풍 에위니아와 장마철 폭우로 홍수 피해가 발생하자 건교부와 당시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동강댐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강댐에 대해 당시 건교부 차관은 “민감한 문제”라면서도 “고민 중에 있다”며 동강댐 재추진을 인정했다.
언론은 동강댐이 ‘추진 0순위’가 될 것이라 전망을 쏟아냈다. 나아가 일부 언론은 홍수 피해가 댐을 못 짓게 한 환경단체의 탓이라며 비난했다. 동아일보는 2006년 7월 18일자 ‘환경 극단주의에 눌려 10년간 큰 댐 못 지은 나라’라는 사설을 통해 홍수 피해의 원인이 동강댐 백지화 이후 댐 건설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환경단체를 비난했다. 문화일보 역시 같은 날 ‘환경 근본주의가 불러온 잃어버린 치수 10년’이라 제목의 사설에서 “동강댐을 저지시킨 환경 텔레반을 적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환경단체 비난에 동참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경제지 등도 같은 논조를 취했다. 한술 더 떠 수자원공사(이하 수공)는 동강댐이 있었다면 영월지점의 수위를 1.13미터, 여주 지점은 2.24미터를 낮출 수 있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건교부와 수공이 동강댐 재추진에 집착한 것은 동강댐 백지화가 가져온 상징성, 즉 댐 건설 정책 중단을 극복하자는 것이며, 이를 통해 다른 다목적 댐 추진에 있어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만약 이 시기에 2000년 5월 작성된 국무총리실의 ‘영월댐 건설타당성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았으면, 논란은 장기화됐을 지도 몰랐다. 보고서에는 동강댐의 홍수조절효과는 미미한 반면, 생태계 훼손과 지하 동굴 누수 및 단층대 등으로 위험하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결국 2006년 동강댐 재건설 분위기는 7월 20일 건교부 장관이 “동강댐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종식됐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08년 11월 국토부(이전 건교부)는 동강을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으로 선정한 뒤 몇 달 후 또 다시 동강 일대에 댐 건설 계획을 거론했다. 2009년 2월 MB 정권이 4대강사업을 위해 물 부족을 강조하고, 태백지역의 극심한 가뭄 현상이 일어나자, 국토부와 수공은 동강에 200만 톤 규모의 취수전용 미니 댐 추진 계획을 언급했다. 당시 일부 경제지는 ‘동강댐을 백지화시킨 좌파정권 때문에 태백에 물 기근이 일어났다’는 황당한 주장도 쏟아냈다. 국토부는 이어 4월에는 홍수 방어를 핑계로 동강댐 예정지 상류 2킬로미터 지점에 거운 홍수조절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취수 전용 미니 댐 및 거운 홍수조절지는 영월 서강 청룡포 인근에 ‘홍수조절지’가 만들어지면서 실제 추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끝난 것은 아니다. 2011년 6월 영월지역 시민단체 주체 토론회에서 관동대 박창근 교수는 “동강 생태계보전지역은 환경보다 자본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언제든지 해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토건진영의 돈벌이 때문에 동강은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3월 국토부는 평창 오대천에 총저수용량 9000만 톤 규모의 댐 계획을 발표했다. 평창 오대천은 동강의 상류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댐으로 인한 갈등이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난개발로 훼손된 동강 생태계
동강댐이 백지화된 이후 동강은 그야말로 동강날 판이었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천연동굴이 훼손됐고, 물고기 떼죽음 등 1급수였던 수질이 2급수로 떨어지는 일도 발생했다. 외지인들이 전망 좋은 동강 변 토지를 사들이면서 지역의 땅값은 동강댐 발표 이전보다 최대 100배까지 뛰어, 주민들의 개발 심리를 자극했다. 여기에 수몰주민지원사업으로 진행된 공사 때문에 난개발이 벌어져 천혜의 생태계는 점점 훼손돼, ‘차라리 댐을 짓는 것이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동강보존본부 엄삼용 전 운영위원장은 “동강의 생태계가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도로, 편의시설이 안 돼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백지화되고 난 다음은 포커스 없이 계획이 만들어지면서 정부, 지자체, 주민이 짧은 시간 동안에 천편일률적으로 개발을 하면서 생태계가 보전돼 있었던 동강의 장점이 사라져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2001~2002년 강원도 등 지자체가 진행한 주민지원 사업도 논란거리였다. 논란의 핵심은 지자체가 ‘수몰민대책위’ 몇몇 핵심 인사들을 중심으로 지원사업을 분배하다 보니, 특정 인사들을 중심으로 거액의 사업이 집중됐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주민지원사업을 받지 못한 수몰민들은 별도로 ‘동강주민생존권투쟁위원회’(이하 생존권투쟁위)를 구성해 대립하기도 했다. 검증되지 않은 주민지원사업으로 인해 예산이 낭비되는 일도 있었다. 엄삼용 전 위원장은 “(강원도 등에서) 최첨단 버섯사라 해서 지원을 해줬는데, (경험 및 기술이 부족해) 제대로 농사를 못 지었다. 문제는 3~4년 뒤 환경부가 여기를 다시 매입했다는 거다. 한 집당 2억 씩만 잡아도 엄청난 금액으로, 이런 식으로 돈이 쓰였다.”라고 말했다.
동강댐 백지화를 이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환경연합은 백지화 이후 강원도청 등 지자체, 지역주민, 전문가 등과 함께 동강의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지역민의 소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생태관광’을 제시하고, 동강의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동강의제21’ 추진에 합의했다. 2000년 10월에는 강원도, 강원발전연구원과 공동으로 ‘동강관리종합대책을 위한 토론회’를 갖고 ‘동강의제21’을 힘차게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상이몽이었다.
당시 ‘동강의제21’실무를 담당했던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은 “강원도청이 ‘동강의제21’ 추진 의지가 없었다.”고 말한다. 강원도청의 의도는 2001년 11월 동강 상류에 동계올림픽 활강 슬로프 경기 유치를 명목으로 국내에서 가장 긴 활강 스키장과 골프장, 콘도미니엄, 호텔 등을 갖춘 180여만 평 규모의 ‘리조트’ 계획이 알려지면서 드러났다. 동강에 생태공동체를 만들어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만들겠다는 ‘동강의제21’ 합의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환경연합은 즉시 성명을 내고 “동강을 이들 리조트에 연계된 유원지로 끼워 팔기 위한 얄팍한 계략”이라며 강원도의 부도덕성과 반환경성을 비난하고, 환경연합 독자적으로 ‘제2의 동강 살리기 운동’을 추진했다.

동강 주민들이 한강에서 동강댐 반대를 요구하는 뗏목 시위를 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자연휴식지’,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을 둘러싼 갈등
동강 생태계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자연휴식지’와 ‘생태계보전지역’(이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명칭 변경)이었다. 두 제도는 모두 자연환경보전법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자연휴식지’가 ‘생태계보전지역’에 비해 행위제한이 약하고, ‘보전’보다는 ‘이용’적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북대 진상현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2000년 당시 국민들이 환경의 사용가치보다 비사용 가치, 즉 환경의 존재 그 자체를 더 높게 보는 의식 때문에 동강댐이 백지화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동강의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강을 둘러싼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은 동강의 사용가치에 방점을 두면서 극심한 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혼란은 동강의 ‘자연휴식지’와 ‘생태계보전지역’ 지정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강원도청이 2001년에 추진한 ‘자연휴식지’ 지정에 가장 강하게 반대한 그룹은 동강댐 백지화에 앞장섰던 ‘3개군 백투위’ 핵심 인사들과 지역의 래프팅 연합회였다. 이들은 ‘동강휴식지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했는데, 댐 백지화 운동을 함께 했던 환경연합을 외부단체라 규정하며 배격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동강댐 건설에 찬성했던 ‘수몰민대책위’는 ‘자연휴식지’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충남대 박재묵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자연휴식지’ 행위제한이 약한 측면도 있지만, ‘수몰민대책위’ 핵심 간부들이 강원도청으로부터 첨단버섯재배사 등을 지원받았고, ‘수몰민대책위’ 위원장 동네가 ‘자연휴식지’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라며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수몰민대책위’에서 분리된 ‘생존권투쟁위’도 ‘자연휴식지’에 대해 반대 입장이었는데, 이들은 이 제도로는 동강의 생태계를 지킬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이 극심했던 것은 2002년 ‘생태계보전지역’ 지정과 관련해서다. 이 제도에 대해서 ‘동강보존본부’와 ‘생존권투쟁위’는 찬성 입장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동강보존본부’가 생태계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면, ‘생존권투쟁위’는 생태계가 보전되는 만큼 지역 주민들에 대한 정부 지원이 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생태계보전지역’에 대한 반대 그룹도 새롭게 형성돼 ‘영월읍번영회’, ‘수몰민대책위’ 등과 함께 강한 반대 행동을 펼쳤다. 지역 내 찬반 그룹은 환경부 설명회 자리에서 심한 몸싸움을 벌이는 등 댐이 백지화된 이후에도 지역 주민 간 갈등이 계속됐다. 이러한 갈등은 동강 보전에 대한 현격한 시각차에서 비롯됐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세력이 부재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며, 정부, 지자체, 환경단체, 주민 사이에서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에 대해서 합의점을 만들어 내지 못한 탓도 있다.
‘그저 그런 관광지’ 우려
이러한 갈등은 2004년 말 환경부가 ‘동강 생태계보전지역 관리방안’을 마련해 2005년부터 시행하면서부터 감소되기 시작했다. 이는 도로, 교량 등 시급한 주민지원 사업이 마무리되어가고, 생태마을 지정 및 친환경농법 지원 등 실질적인 주민 지원 시스템이 추진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귀농한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동강의 생태를 활용한 체험 마을 사업도 진행됐고, 2010년에는 2차 생태계보전지역이 지정되기도 했다. 지자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동강에 생태체험학습장 및 동강생태공원(정선군), 동강정보센터(영월), 동강 민물고기생태관(평창군)을 개장하는 등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동강을 관리하고 있는 원주지방환경청과 지역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동강보존본부’는 동강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동강댐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매년 동강을 찾는 인원은 격감해, 댐 백지화 직후 한때 영월군에만 연간 100만 명이 찾던 동강은 지역별로 연간 4만5000~8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2011년에는 지역 상인들의 항의로 5000 원 하던 ‘동강 자연휴식지’ 입장료가 폐지되기도 했다. 그만큼 찾는 이가 줄었다는 이야기다.
2004년 강원도청은 당시 환경연합 최열 대표 및 전문가를 초청해 지자체 관계자 및 주민들과 동강 이용과 보전 전략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동강의 수달보다 주민의 생존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최열 대표는 “무조건 보전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강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최고의 생태관광지로 만들자는 것”이라면서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동강은 그저 그런 관광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태계 보전에 대한 주민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현재의 동강은 최열 대표가 말한 ‘그저 그런 관광지’화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한편, 댐 백지화 이후 10년이 지난 상황에서 당시 극심했던 주민 간 갈등은 사라졌다는 것이 정규화 전 부위원장과 엄삼용 전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정부, 자치단체, 환경단체 등이 주민을 통합하고 소통하려는 시도는 없었지만, 세월이 10년 이상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봉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동강에 대한 개발 압력이 다시 높아질 경우, 발전 모델에 대한 합의 부재는 언제든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동강의 생태적 발전 모델에 대한 주민 합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동강의 절경 어라연 ⓒ함께사는길 이성수
지난 5월 동강을 다시 찾았다. 한여름을 준비하는 동강의 쪽빛은 여전했다. 사람도 여전할까? 동강댐 백지화 이후 10여 년 만에 ‘영월댐백지화투쟁위원회(이하 백투위)’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정규화 씨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영월읍 삼옥리에서 민박을 운영하고 있었고, 깊어진 그의 주름살에서는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그는 “동강댐이 백지화되길 잘했어요. 지난겨울 요 앞 도로로 집체만한 바위가 떨어졌는데, 여기다 댐을 지었으면 무너지는 건 뻔 한 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자녀들도 아버지가 동강댐 백지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며 뿌듯해 한다. 그의 표정에서 평온함이 느껴질 때, 동강의 거센 바람은 무성한 나뭇잎 사이를 스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과 달리 동강댐 백지화 이후 10여 년 동안, 동강은 결코 평온하지 못했다. 강은 그대로 흐르고 있지만, 강을 둘러싼 사람들이 변해 또 다른 갈등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부터 댐 백지화 이후 10년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여전히 되풀이된 동강댐 논란
동강은 댐이 백지화된 이후 2001년 12월 ‘자연휴식지’로 지정됐고, 2002년 8월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법적인 보호를 받게 됐다. 2004년 말에는 동강 ‘생태계보전지역 관리기본계획’이 수립됐고, 건교부도 2004년 말 ‘친환경하천정비기본계획 수립 지침’을 마련해 동강이나 낙동강 하회마을처럼 생태 또는 문화자원이 우수한 하천과 그 주변지역을 ‘하천보전지구’로 지정해 보전대책을 수립할 계획을 잡았다.
이제 동강에는 더 이상 댐으로 인한 악몽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2006년 7월 태풍 에위니아와 장마철 폭우로 홍수 피해가 발생하자 건교부와 당시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동강댐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강댐에 대해 당시 건교부 차관은 “민감한 문제”라면서도 “고민 중에 있다”며 동강댐 재추진을 인정했다.
언론은 동강댐이 ‘추진 0순위’가 될 것이라 전망을 쏟아냈다. 나아가 일부 언론은 홍수 피해가 댐을 못 짓게 한 환경단체의 탓이라며 비난했다. 동아일보는 2006년 7월 18일자 ‘환경 극단주의에 눌려 10년간 큰 댐 못 지은 나라’라는 사설을 통해 홍수 피해의 원인이 동강댐 백지화 이후 댐 건설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환경단체를 비난했다. 문화일보 역시 같은 날 ‘환경 근본주의가 불러온 잃어버린 치수 10년’이라 제목의 사설에서 “동강댐을 저지시킨 환경 텔레반을 적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환경단체 비난에 동참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경제지 등도 같은 논조를 취했다. 한술 더 떠 수자원공사(이하 수공)는 동강댐이 있었다면 영월지점의 수위를 1.13미터, 여주 지점은 2.24미터를 낮출 수 있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건교부와 수공이 동강댐 재추진에 집착한 것은 동강댐 백지화가 가져온 상징성, 즉 댐 건설 정책 중단을 극복하자는 것이며, 이를 통해 다른 다목적 댐 추진에 있어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만약 이 시기에 2000년 5월 작성된 국무총리실의 ‘영월댐 건설타당성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았으면, 논란은 장기화됐을 지도 몰랐다. 보고서에는 동강댐의 홍수조절효과는 미미한 반면, 생태계 훼손과 지하 동굴 누수 및 단층대 등으로 위험하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결국 2006년 동강댐 재건설 분위기는 7월 20일 건교부 장관이 “동강댐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종식됐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08년 11월 국토부(이전 건교부)는 동강을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으로 선정한 뒤 몇 달 후 또 다시 동강 일대에 댐 건설 계획을 거론했다. 2009년 2월 MB 정권이 4대강사업을 위해 물 부족을 강조하고, 태백지역의 극심한 가뭄 현상이 일어나자, 국토부와 수공은 동강에 200만 톤 규모의 취수전용 미니 댐 추진 계획을 언급했다. 당시 일부 경제지는 ‘동강댐을 백지화시킨 좌파정권 때문에 태백에 물 기근이 일어났다’는 황당한 주장도 쏟아냈다. 국토부는 이어 4월에는 홍수 방어를 핑계로 동강댐 예정지 상류 2킬로미터 지점에 거운 홍수조절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취수 전용 미니 댐 및 거운 홍수조절지는 영월 서강 청룡포 인근에 ‘홍수조절지’가 만들어지면서 실제 추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끝난 것은 아니다. 2011년 6월 영월지역 시민단체 주체 토론회에서 관동대 박창근 교수는 “동강 생태계보전지역은 환경보다 자본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언제든지 해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토건진영의 돈벌이 때문에 동강은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3월 국토부는 평창 오대천에 총저수용량 9000만 톤 규모의 댐 계획을 발표했다. 평창 오대천은 동강의 상류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댐으로 인한 갈등이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난개발로 훼손된 동강 생태계
동강댐이 백지화된 이후 동강은 그야말로 동강날 판이었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천연동굴이 훼손됐고, 물고기 떼죽음 등 1급수였던 수질이 2급수로 떨어지는 일도 발생했다. 외지인들이 전망 좋은 동강 변 토지를 사들이면서 지역의 땅값은 동강댐 발표 이전보다 최대 100배까지 뛰어, 주민들의 개발 심리를 자극했다. 여기에 수몰주민지원사업으로 진행된 공사 때문에 난개발이 벌어져 천혜의 생태계는 점점 훼손돼, ‘차라리 댐을 짓는 것이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동강보존본부 엄삼용 전 운영위원장은 “동강의 생태계가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도로, 편의시설이 안 돼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백지화되고 난 다음은 포커스 없이 계획이 만들어지면서 정부, 지자체, 주민이 짧은 시간 동안에 천편일률적으로 개발을 하면서 생태계가 보전돼 있었던 동강의 장점이 사라져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2001~2002년 강원도 등 지자체가 진행한 주민지원 사업도 논란거리였다. 논란의 핵심은 지자체가 ‘수몰민대책위’ 몇몇 핵심 인사들을 중심으로 지원사업을 분배하다 보니, 특정 인사들을 중심으로 거액의 사업이 집중됐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주민지원사업을 받지 못한 수몰민들은 별도로 ‘동강주민생존권투쟁위원회’(이하 생존권투쟁위)를 구성해 대립하기도 했다. 검증되지 않은 주민지원사업으로 인해 예산이 낭비되는 일도 있었다. 엄삼용 전 위원장은 “(강원도 등에서) 최첨단 버섯사라 해서 지원을 해줬는데, (경험 및 기술이 부족해) 제대로 농사를 못 지었다. 문제는 3~4년 뒤 환경부가 여기를 다시 매입했다는 거다. 한 집당 2억 씩만 잡아도 엄청난 금액으로, 이런 식으로 돈이 쓰였다.”라고 말했다.
동강댐 백지화를 이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환경연합은 백지화 이후 강원도청 등 지자체, 지역주민, 전문가 등과 함께 동강의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지역민의 소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생태관광’을 제시하고, 동강의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동강의제21’ 추진에 합의했다. 2000년 10월에는 강원도, 강원발전연구원과 공동으로 ‘동강관리종합대책을 위한 토론회’를 갖고 ‘동강의제21’을 힘차게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상이몽이었다.
당시 ‘동강의제21’실무를 담당했던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은 “강원도청이 ‘동강의제21’ 추진 의지가 없었다.”고 말한다. 강원도청의 의도는 2001년 11월 동강 상류에 동계올림픽 활강 슬로프 경기 유치를 명목으로 국내에서 가장 긴 활강 스키장과 골프장, 콘도미니엄, 호텔 등을 갖춘 180여만 평 규모의 ‘리조트’ 계획이 알려지면서 드러났다. 동강에 생태공동체를 만들어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만들겠다는 ‘동강의제21’ 합의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환경연합은 즉시 성명을 내고 “동강을 이들 리조트에 연계된 유원지로 끼워 팔기 위한 얄팍한 계략”이라며 강원도의 부도덕성과 반환경성을 비난하고, 환경연합 독자적으로 ‘제2의 동강 살리기 운동’을 추진했다.
동강 주민들이 한강에서 동강댐 반대를 요구하는 뗏목 시위를 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자연휴식지’,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을 둘러싼 갈등
동강 생태계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자연휴식지’와 ‘생태계보전지역’(이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명칭 변경)이었다. 두 제도는 모두 자연환경보전법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자연휴식지’가 ‘생태계보전지역’에 비해 행위제한이 약하고, ‘보전’보다는 ‘이용’적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북대 진상현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2000년 당시 국민들이 환경의 사용가치보다 비사용 가치, 즉 환경의 존재 그 자체를 더 높게 보는 의식 때문에 동강댐이 백지화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동강의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강을 둘러싼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은 동강의 사용가치에 방점을 두면서 극심한 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혼란은 동강의 ‘자연휴식지’와 ‘생태계보전지역’ 지정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강원도청이 2001년에 추진한 ‘자연휴식지’ 지정에 가장 강하게 반대한 그룹은 동강댐 백지화에 앞장섰던 ‘3개군 백투위’ 핵심 인사들과 지역의 래프팅 연합회였다. 이들은 ‘동강휴식지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했는데, 댐 백지화 운동을 함께 했던 환경연합을 외부단체라 규정하며 배격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동강댐 건설에 찬성했던 ‘수몰민대책위’는 ‘자연휴식지’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충남대 박재묵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자연휴식지’ 행위제한이 약한 측면도 있지만, ‘수몰민대책위’ 핵심 간부들이 강원도청으로부터 첨단버섯재배사 등을 지원받았고, ‘수몰민대책위’ 위원장 동네가 ‘자연휴식지’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라며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수몰민대책위’에서 분리된 ‘생존권투쟁위’도 ‘자연휴식지’에 대해 반대 입장이었는데, 이들은 이 제도로는 동강의 생태계를 지킬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이 극심했던 것은 2002년 ‘생태계보전지역’ 지정과 관련해서다. 이 제도에 대해서 ‘동강보존본부’와 ‘생존권투쟁위’는 찬성 입장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동강보존본부’가 생태계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면, ‘생존권투쟁위’는 생태계가 보전되는 만큼 지역 주민들에 대한 정부 지원이 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생태계보전지역’에 대한 반대 그룹도 새롭게 형성돼 ‘영월읍번영회’, ‘수몰민대책위’ 등과 함께 강한 반대 행동을 펼쳤다. 지역 내 찬반 그룹은 환경부 설명회 자리에서 심한 몸싸움을 벌이는 등 댐이 백지화된 이후에도 지역 주민 간 갈등이 계속됐다. 이러한 갈등은 동강 보전에 대한 현격한 시각차에서 비롯됐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세력이 부재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며, 정부, 지자체, 환경단체, 주민 사이에서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에 대해서 합의점을 만들어 내지 못한 탓도 있다.
‘그저 그런 관광지’ 우려
이러한 갈등은 2004년 말 환경부가 ‘동강 생태계보전지역 관리방안’을 마련해 2005년부터 시행하면서부터 감소되기 시작했다. 이는 도로, 교량 등 시급한 주민지원 사업이 마무리되어가고, 생태마을 지정 및 친환경농법 지원 등 실질적인 주민 지원 시스템이 추진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귀농한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동강의 생태를 활용한 체험 마을 사업도 진행됐고, 2010년에는 2차 생태계보전지역이 지정되기도 했다. 지자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동강에 생태체험학습장 및 동강생태공원(정선군), 동강정보센터(영월), 동강 민물고기생태관(평창군)을 개장하는 등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동강을 관리하고 있는 원주지방환경청과 지역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동강보존본부’는 동강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동강댐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매년 동강을 찾는 인원은 격감해, 댐 백지화 직후 한때 영월군에만 연간 100만 명이 찾던 동강은 지역별로 연간 4만5000~8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2011년에는 지역 상인들의 항의로 5000 원 하던 ‘동강 자연휴식지’ 입장료가 폐지되기도 했다. 그만큼 찾는 이가 줄었다는 이야기다.
2004년 강원도청은 당시 환경연합 최열 대표 및 전문가를 초청해 지자체 관계자 및 주민들과 동강 이용과 보전 전략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동강의 수달보다 주민의 생존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최열 대표는 “무조건 보전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강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최고의 생태관광지로 만들자는 것”이라면서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동강은 그저 그런 관광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태계 보전에 대한 주민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현재의 동강은 최열 대표가 말한 ‘그저 그런 관광지’화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한편, 댐 백지화 이후 10년이 지난 상황에서 당시 극심했던 주민 간 갈등은 사라졌다는 것이 정규화 전 부위원장과 엄삼용 전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정부, 자치단체, 환경단체 등이 주민을 통합하고 소통하려는 시도는 없었지만, 세월이 10년 이상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봉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동강에 대한 개발 압력이 다시 높아질 경우, 발전 모델에 대한 합의 부재는 언제든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동강의 생태적 발전 모델에 대한 주민 합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