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국책사업, 그 후 10] 운하는 욕망을 싣고 흐른다!

운하는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내륙에 수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도로 및 항공이 발달하기 전인 19세기 이전의 운하는 배로 대량의 화물을 먼 거리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운하에 이어 현재는 도로와 철도, 항공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통 500킬로미터 이상 되면 운하의 경제성이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짧은 거리라도 경제성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파나마 운하 및 수에즈 운하처럼 단축 효과를 지닐 경우에 그러하다.

 

 40인용 유람선만 다닐 수 있는, 이름만 운하인 포항운하


누가 운하라고 하는가 

우리나라에도 운하라 불리는 곳이 있긴 하다. 인천에서부터 서울을 잇는 폭 80미터, 길이 18킬로미터의 경인운하가 그것인데, 사실 말이 운하지 운항 거리가 긴 것도, 그렇다고 단축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화물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2시간이나 소요되는 경인운하를 이용할 화주가 있을 리 없다. 이 때문에 현재의 경인운하는 화물선은 없고, 유람선은 텅텅 비어있기 일쑤이며, 국민의 혈세만 축내고 있다. 

경북 포항에도 운하가 생겼다. 지난 3월 1일 정식 개통한 포항운하는 앞서 지난해 11월 자치단체장 치적을 과시하기 위한 통수식이 거창하게 진행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대표적인 4대강 전도사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운하건설이 환경개선 사업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네요.”라며 포항운하를 추켜세웠다. 이어 “운하가 환경파괴라고 하던 좌파환경단체들은 다 도망가고 안 보이네요.”라면서 예의 저급함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포항운하는 운하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길이 1.3킬로미터, 폭 13~25미터, 수심 1.7미터의 포항운하는 화물선은 다닐 수조차 없고 겨우 21톤 규모의 40인용 유람선만 다닐 수 있다. 포항운하 수로는 1970년대 국가공업단지를 만들면서 매립된 형산강의 지류였다. 물길을 매립하고 나니 동빈내항이 정체되면서 수질이 급격히 악화됐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동빈내항 수질개선을 위해 칠성천과 양학천 등 오염된 지천부터 개선할 것을 제안했지만, 박승호 전 포항시장은 1600억 원의 사업비 중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의 800억 원과 국비 322억 원을 끌어들여 매립된 물길을 다시 터주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포항운하는 사실상 하천 되돌리기 사업이라 불려도 되는데, 굳이 ‘운하’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포항이 MB의 고향이자, MB 친형이며 ‘형님 예산’이라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난 정권의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의 지역구였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 포항운하에 대해 현지주민들은 전 정권 실세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부채가 100조 원 가까이 이르는 LH공사가 이 사업에 절반을 부담한 것을 두고 이래저래 말들이 많다. 포항운하 주변 도시 재개발을 LH공사가 맡는 계획이 있지만, 주택경기 악화 및 바람만 불면 주변 공단의 매연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대규모 재개발 수익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포항환경연합 정침귀 국장 등 현지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전 정권 실세와 교감이 있지 않고서는 쉽사리 풀릴 수 없는 사업이 바로 포항운하라는 것이다. 포항운하를 추진했던 박승호 전 시장은 현재 경북도지사 예비후보인데,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만들자는 공약을 낼 정도로 정권 실세 반응에 민감한 처세술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박 전 시장의 태도를 보면 MB 정권의 꿈이 대운하였다는 점에서, 이를 반영한 것이 현재의 ‘포항운하’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MB, 운하라는 괴물 등장 시켜 

우리 역사에서 주요 강들은 풍수기에 주운로로 사용됐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일부 도서 인근에서는 인공적으로 운하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급류를 피하기 위해 안전한 육지 내에 수로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정권 때도 대규모 운하 구상을 기획했으나, 재정 문제 등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운하 구상이 체계적으로 거론됐던 시기는 박정희 정권 때였다. 당시 정권에게 강은 오로지 박정희식 조국 근대화의 수단, 즉 개발독재를 위한 하나의 재료에 불과했다.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댐을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팔당댐 우안처럼 한강 주운을 위한 갑문 변경 가능 시설을 만들기도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인천~서울~영월 간 운하 구상을 밝히기도 했지만, 정책 우선순위에 밀려 추진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운하 논란을 본격적으로 야기한 장본인은 MB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인 2005년 10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때 “경부운하(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는 국가적 어젠다로 던져볼 만하며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사업”이라 말하면서, 운하를 대선용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앞서 MB는 국회의원 시절인 1996년 7월 대정부 질문에서도 경부운하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으나,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운하를 추진하고자 하는 진영은 토목업계 내에서도 주류가 아닌 마이너였기 때문이다. ‘문에서 문까지’라는 시스템, 즉 육상 교통이 발달하는 것과 함께 항공 운항이 발달하는 상황에서 수로를 활용한 운송은 느리고, 막대한 투자비 대비 수익성이 불투명했던 탓이었다. 또한, 두산전자 페놀유출 사건 등 1990년대 잇따라 터진 대형 수질 오염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경각심을 심어줬다. 강을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우리 현실에서 화물선을 상수원에 띄운다는 것은 국민적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MB는 2006년 8월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나서면서 본격적인 운하 띄우기를 시도했다. 경부운하로 시작된 그의 구상은 한술 더 떠 호남운하, 충청운하를 포함한 ‘내륙 운하’로 확대됐고, 그해 말에는 북한운하 구상까지 포함해 ‘한반도 대운하’를 선언했다. 대운하가 ‘국운 융성의 길’이라면서 휘황찬란한 그림을 보여주며 국민을 선동하려 했다. 그러나 대운하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가 지적됐다. 18조 원 사업비의 절반을 골재를 팔아서 충당하고 나머지는 민자를 유치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대량의 골재를 한꺼번에 판매할 곳조차 없다는 점 등으로 경제성 분석 자체가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어 상수원 오염 우려가 불거지자 MB 측은 상수원에 배가 다닐 수 있는 인공구조물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MB 측 내부에서조차 비판을 받았고, 강변여과수와 취수장을 북한강 등으로 이전하는 방식이 제시됐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한강에서 대규모로 강변여과수를 취수할 수 있는 지점이 없다는 점과 북한강으로 취수원을 이전할 경우 물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사회적 여론 탓에 정작 2007년 말 대선에서 MB는 당선 후 전문가들과 충분히 논의하겠다는 전제를 깔면서 한반도 대운하를 자신의 대표공약이 아닌 여러 공약 중의 하나로 후퇴시켰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직후 MB 측은 ‘MB 당선이 곧 대운하 찬성’이라는 논리로 인수위 내에 ‘대운하TF’를 구성했고, 대형건설사들과 관련한 간담회를 벌이는 등 추진에 열을 올렸다. 2008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정과제 중 ‘글로벌 코리아’ 기반 조성을 위한 핵심과제로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선정했고, 일부 MB 측근은 대운하를 위한 특별법까지 거론하는 등 대운하 추진에 총력을 기울이는 형국이었다.

 

포항운하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포항운하관

 

MB의 허황된 꿈, 한반도 대운하 

MB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시민사회 및 전문가 진영의 저항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즈음 본격화됐다. 언론사와 공동으로 대운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리즈 기사와 함께 현장 액션 등을 펼쳤고, 전국적으로 ‘경부운하저지국민행동’(2007. 8)과 ‘운하백지화국민행동’(2008. 2)을 결성해 강 안팎으로 산재한 문화재 문제, 수질 및 생태 문제 등을 지적하며 본격적으로 대응 활동을 벌였다. 전문가들도 저항에 적극 동참했다. 2008년 1월 ‘한반도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모임’을 시작으로 대학별로 운하반대 성명이 잇달았고, 3월에는 전국 2400여 명의 교수들이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환경연합으로는 ‘대선 때 MB는 찍었지만, 대운하만큼은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히는 시민의 전화가 밀려올 만큼 사회적 분위기는 확실히 대운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거기에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가 발생하면서,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촉발됐다. 이에 MB는 두 차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5월에는 대운하를 4대강 정비로 축소해 실시하겠다고 밝혔고, 6월에는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MB는 결코 대운하를 포기하지 않았다. 앞서 2008년 5월 ‘4대강 정비 사업은 대운하’라는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정종환 전 국토부 장관은 2008년 9월 “대운하는 포기한 게 아니라 중단한 것이며, 여건이 되면 다시 추진할 수 있다”고 발언하였으며, 11월에는 MB가 “4대강 정비면 어떻고, 운하면 어떠냐”고 하는 등 MB 정권은 대운하에 대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러한 MB의 욕망은 지난해 7월 감사원 감사와 10월 국정감사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구태여 수심을 6미터로 할 필요가 없음에도 청와대가 4대강사업의 수심을 6미터로 유지할 것을 지시하는 등 운하를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애초 전문가들은 4대강사업 내용을 두고 ‘대운하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사업’이라며, ‘4대강 사업은 대운하 1단계’라고 지적했었다. 

한반도 대운하가 좌절될 당시, 언론은 이명박 정권 내부에서 임기 1년 차부터 정책이 좌절되는 것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이는 정권 연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위기인식이 발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기인식은 토건동맹(정치, 언론, 건설 자본 등)을 더욱 강화시켰고, 대운하를 비판하는 진보진영에 대한 탄압 및 이념 공세를 강화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MB 정권은 공직사회를 장악해 나갔다. 한반도 대운하가 전문가 중심으로 추진되다 좌절됐기에, 자신의 심복으로 하여금 공직사회를 장악해 일사천리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검찰, 국정원,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등 권력기관이 적극 동원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MB는 김정욱 서울대 명예교수가 ‘총체적 사기극’이라 평가하는 4대강사업을 완공시켰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그간 형성한 민주주의가 훼손됐고, 이성과 상식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MB 정권이 망쳐버린 사회적 흐름의 영향이 정권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공간으로서의 강과 하천이 또 다른 개발 대상이 됐고,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막대한 주변 개발이 진짜 속내 

MB는 왜 그렇게 운하에 집착했을까? 국민에게 ‘4대강사업은 대운하가 아니다’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왜 대운하를 추진하려고 했을까? 운하와 하천정비는 규모가 다르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운하와 하천정비는 수로를 정비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둘 다 채취한 골재를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운하가 항상 주변 개발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토건진영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규모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운하는 항구를 만들어야 하며, 주변 배후 도시와 그와 연결되는 도로 등 인프라가 동반되어야 한다. 

한반도 대운하 관련 홍보물에 대해 김정욱 교수는 “두바이 같은 고층 건물, 디즈니랜드 같은 휘황찬란한 놀이시설이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건설사 CEO 출신의 MB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었다. MB는 ‘닮고 싶은 지도자’가 사막에 거대한 인공 도시를 개발한 두바이의 왕 ‘셰이크 모하메드’라고 밝힌 바 있다. 두바이는 의회 없이 세습군주가 통치한다. 즉 왕이 결정하면 무조건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결국, MB는 박정희 시대처럼 제왕적 권력을 바탕으로 개발 독재 시대를 다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재앙과 같았던 계획을 평가할 때 

영국의 도시계획 전문가 피터 홀은 『대재앙 계획(Great Planning Disasters)』에서 대재앙 계획의 요인으로 ‘수요의 과대평가와 비용의 과소평가’를 꼽으면서, 이를 가동시키는 주역으로 ‘정치인, 관료집단, 지역사회’를 지적하고 있다(『김진애의 공간정치 읽기』에서 인용). 우리도 다르지 않다. 한반도 대운하는 그 필요성을 과장한 반면, 비용을 축소했다. MB를 비롯한 정치인이 추동했으며,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국토부 및 수공 등 수자원 마피아가 이를 뒷받침했다. 이어 지역의 정치인과 토호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이성 파괴에 동참했다. 

MB 정권의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사업을 되돌아보면,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그만큼 환경파괴가 더욱 극심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구적 생태위기 시대에 대한민국은 매우 커다란 오류를 범한 것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적어도 민주주의와 생명을 파괴한 이들이 다시 선출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사진 | 이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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