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억울하다

1월 16일과 17일, 고창과 부안의 어느 집단 사육농장에서 오리들이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역학조사 결과, ‘H5N8’이라는 조류인플루엔자(AI, Avian Influenza Virus)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충청지역, 전남지역, 서울 경기지역까지 AI 발생지역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 연구기관들은 폐사체를 수거해 역학조사를 하고, 조류 이동조사와 집단 살처분, 항공방제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AI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는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원인을 두고 야생조류가 사육 가금류에 AI를 전파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러 차례 발표했다. 야생조류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서 그동안 가금류 축산농장에 대한 관리와 예찰활동 등 사전 대비의 부실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얄팍한 대응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정부의 발표로 야생조류들이 사람들과 공존해야 할 생명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을 고착화시켜 새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이거나, 야생조류의 종 보전과 서식지 보호에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AI 발생이 철새 탓?  

정부와 각 기관들의 발표에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먼저, 1월 17일 정부는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가창오리 등 1000여 마리의 야생조류가 폐사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하지만 1월 20일 농림축산식품부의 회의 자료와 환경부 기자회견 자료에 따르면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큰고니 1마리, 큰기러기 7마리, 물닭 1마리, 가창오리 89마리 등 총 98마리의 폐사체를 수거했다. 야생조류를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의 원인으로 몰기 위해 과장되게 개체수를 발표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런 대목이다. 

둘째, 정부는 조류인플루엔자 전파 종으로 가창오리를 줄기차게 언급해 왔다. 이번 겨울 가창오리의 이동상황을 보자. 가창오리는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하고, 월동을 위해 10월말부터 우리나라에 오기 시작해 11월 초순이면 대부분 내려온다. 이미 10월말에 해남지역에서 집단 무리가 확인되었고, 본인도 11월 30일 해남 염암호에서 40만 마리 정도를 관찰했다. 이후 12월 16일 금강호에서 10만여 마리, 12월 25일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10만여 마리 정도가 관찰되었다. 그러니까 해남지역에 머물던 총 2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고창 동림저수지와 금강호로 10만 마리씩 이동해간 것이다. 만약 가창오리가 감염된 채 한국을 찾았다면 고창 동림저수지와 같은 시기에 염암호와 금강호에서도 폐사된 가창오리가 발견되어야 했다. 하지만 해남 염암호와 금강호에서는 폐사된 가창오리가 확인되지 않았다. 금강호에서 폐사된 가창오리가 발견된 것은 1월 22일이다. 동림저수지와 금강호의 거리는 불과 55킬로미터, 가창오리는 하루 최고 50킬로미터까지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호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가창오리들은 동림저수지 주변에서 머물다가 AI에 감염되었고 이후 정부의 방제활동으로 금강호로 이동했다가 폐사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패한 정부의 방제활동  

정부의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방제활동과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   

1월 18일 오후, 방송 인터뷰를 하러 고창 동림저수지 입구에 도착했을 때 ‘출입금지’ 간판이 있음에도 누구도 출입을 제재하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방송기자에 의하면, 행정공무원, 경찰, 방송취재기자, 조류보호단체 관계자 등이 방진복도 입지 않은 채 몰려 있었단다. 혹 분변토를 밟은 이들에 의해 AI가 다른 곳으로 전파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또한 조류들이 집단적으로 몰려 있는 서식지에 사람들이 몰리고 취재기자까지 취재 경쟁을 벌이다 보면 조류들은 편안히 쉬지 못한다. 모 방송사가 헬기까지 띄워 접근하는 바람에 새들은 많은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마구잡이식 방제 또한 문제다. 정부는 커다란 분무기용 소독차와 헬기까지 동원해 야생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는 논과 저수지, 급기야 습지까지 소독액을 마구 뿌려대고 있다. 이는 막대한 예산낭비와 생태계를 파괴할 뿐, 조류인플루엔자를 더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저수지 등 습지에는 조류뿐만 아니라 어류, 수생식물, 무척추동물, 미생물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혹시 병에 걸려 있는 조류라면 저항력이 더 떨어져 죽을 수 있고, 감염된 조류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전국적으로 병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금류 축산농장을 철저히 통제하고 농장과 주변에 소독액을 뿌려 집중 관리한다면 적절한 예산 사용도 가능하고, 생태계 파괴도 최소화할 수 있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살처분 방식과 범위도 논란이 되고 있다. 2월 15일 기준으로 178개 농장에서 사육하던 닭·오리 등 가금류 379만3000마리가 살처분 후 매몰됐고, 총 피해규모는 700억 원을 넘는다고 한다. 현행법으로도 산 생명을 매몰할 땐 미리 죽인 채 묻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지키지 않고 살아있는 채로 집어넣어 죽이고 있다. 아무리 죽어야 할 운명이라고 하지만 가금류도 생명이다. 생명경시 풍조를 낳고, 이 일에 종사한 사람도 우울증에 걸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현재 발생농장으로부터 3킬로미터 이내의 다른 축산농장의 가금류들도 ‘예방적 살처분’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로부터 국내 1호 동물복지 농장으로 인증을 받은 충북 음성군 대소면 D농장의 닭 수만 마리도 2월 중순에 살처분되었다. 발생농장에서만 살처분을 시행하고 있는 서구 유럽 등 선진 축산국에 비하면 과도한 측면이 있다.  

 

야생조류도 피해자다 

정부는 더 이상 피해자일 수 있는 야생조류들에 책임을 떠 넘겨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조류인플루엔자 대비책을 새롭게 재정립해 시행해야 할 것이다.  

먼저 야생조류들이 일정지역에서 안전하게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해 야생조류들이 축사 근처까지 접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시기는 가창오리와 기러기의 먹이가 되는 낙곡(벼이삭)의 양이 줄어들 때다. 그러다 보니 야생조류들이 주택가 근처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접근해 먹이를 찾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가을 추수가 끝난 대부분의 논경지에서 소 사육용 여물로 먹이기 위해 거의 모든 볏짚을 말려버린 상황이라 야생조류들의 먹이가 1달 정도 더 빨리 떨어졌다. 야생조류와 농장의 접촉빈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더 적극적인 먹이주기(또는 먹이나누기)가 필요하다.  

가창오리들이 번식지로 떠나기 전, 마지막에 머무르는 곳은 삽교호다. 대개 3월 중순에 대규모 군집을 이루는데 올해는 1월 21일부터 이곳에 4만 마리가 보이기 시작해 2월 13일에는 20만 마리까지 늘어났다. 군집성이 강하다는 것은 언제든지 집단폐사의 우려를 갖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대책으로 조류들이 분산해 서식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낙곡이 많고 넓은 농경지를 끼고 있으며 이들이 방해를 받지 않는 커다란 저수지를 여러 군데 확보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람사르협약의 결의문 IX.23에 따라 논을 습지로 규정하고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하며 환경부는 조류들이 많이 서식하는 논경지를 대상으로 1997년부터 시행하는 ‘생물다양성관리계약제도’의 대상지역과 예산규모를 더욱 높여서 논농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개체 간 충분한 공간 확보 유지, 사육면적 허가제, 사육 개체수 조절 등 동물복지까지 고려하는 방식으로 가금류 사육방법을 바꾸는 대책도 필요하다. 밀식방식으로 집단사육을 하다보면 병에 저항하는 능력과 자가치유 능력이 떨어지고 조류인플루엔자가 숙주가 되는 가금류의 개체 간에 이동이 쉽게 이루어져 변종이 더 급속도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야생조류들이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일정거리 안에는 가금류 사육장이 건축되지 못하도록 하고, 기존에 들어선 시설은 지금이라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계획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육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하는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고기를 많이 먹고, 손쉽게 먹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공장식 축산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활방식이 존재하는 한 조류 인플루엔자와 구제역, 그로 인한 살처분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사진 | 주용기 전북대학교 전임연구원  

 

“철새는 피해자” 국제기구 성명서 잇따라 발표

 

이번 한국에서 발생한 AI와 정부 대응에 대해 국제기구들이 잇따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전반의 이동성 물새와 그 서식지를 보존하기 위해 2006년 11월 설립한 국제기구 EAAFP(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는 지난 1월 24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전라도에서 보고된 H5N8과 같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PAI)는 일반적으로 오리농장과 같이 매우 좁은 공간의 비자연친화적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가금류(닭과 오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질병”이라며 “H5N8이 철새 무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들은 입증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월 28일 ‘조류 인플루엔자와 야생조류 과학특별전문위원회(Scientific Task Force on Avian Influenza and Wild Birds)’도 한국에서 발생한 AI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조류 인플루엔자와 야생조류 과학특별전문위원회’는 유엔환경계획/이동성 종의 보존에 관한 협약(UNEP/CMS)과 국제식량농업기구(FAO)가 함께 활동하는 위원회로 AI에 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들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PAI)는 가금류 생산 시스템과 대부분 연관되어 있고, 야생조류가 이 바이러스의 근원지라는 증거는 현재까지 없다. 그들은 매개체가 아닌 피해자로 간주되어야 한다.”며 “야생조류가 바이러스의 근원지와 확산의 원인으로 비난하는 것은 효율적인 질병통제 활동에 덜 집중하도록 하고 바이러스의 잠재적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습지와 같은 자연환경에 소독제를 살포하는 것은 바이러스의 대처에 효과적이지 않으며, 야생동물과 어업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 한국의 무분별한 소독방제도 함께 비판했다. 아울러 AI 확산을 막기 위해서 가금류 농장과 조류시장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검역, 엄격한 차단방역(Biosecurity), 세척 및 소독, 판매와 이동제한을 포함하는 조치를 취하고 야생조류에 대해선 감염된 농장에 야생조류가 접촉하지 않도록 깃발 같은 접근방지용 방해물을 설치하거나 감염위험이 낮은 지역에서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글 | 함께사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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