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에 벨루가(흰고래)들의 상여가 등장했다. 방어, 도미, 문어, 바다사자 등 해양생물의 탈을 쓴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동물해방물결의 활동가들은 상여를 메고 롯데월드아쿠아리움 주변을 행진하며 해양생물을 잡아 와 죽어서야 나가게 하는 롯데그룹을 규탄했다. 이날은 롯데그룹의 창립 5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롯데 수족관에 갇힌 ‘벨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 두 마리가 폐사하고 한 마리가 남아있는 가운데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4월 3일 ‘꽃상여’ 퍼포먼스를 펼치며 벨루가 방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벨루가는 차가운 북극해 등에서 사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지난 2013년 불법 포획되어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제주도 야생방류 성공으로 한국 사회가 한창 뜨거웠을 그때, 롯데는 찬물을 끼얹듯 54만 달러를 주고 러시아에서 벨루가 3마리를 수입했다. 모두 야생에서 잡아 온 고래들이었다.
몸길이 3m가 훌쩍 넘는 벨루가들은 강릉원주대학교의 지름 10m짜리 송어 양식 연구용 수조에 갇혀 아쿠아리움 공사가 끝날 때까지 1년 반을 그곳에서 지냈다. 롯데는 벨루가들에게 ‘벨로’, ‘벨리’, ‘벨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4년 롯데월드아쿠아리움 개장 후 이송된 벨로, 벨리, 벨라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 수족관에서 매일 생태설명회를 빙자한 ‘먹이 받아먹기 쇼’를 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해양동물 쇼가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선 해양동물들은 굶어야 한다. 배가 고파야 먹이 보상을 얻기 위해 사육사의 지시에 잘 따르기 때문이다. 벨루가들은 야생에선 먹지 않는 죽은 물고기를 받아 먹으며 매일 두 번씩 생태설명회 쇼를 했다.
결국 2016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막내 벨로(2012년생 당시 5살)가 먼저 죽었고 2019년엔 벨리(2007년생 당시 12살)가 죽었다. 원래 벨루가들은 바다에서 평균 30년을 넘게 산다.
롯데는 벨루가들이 죽을 때마다 정확한 사인을 밝히겠다며 사체를 부검하여 패혈증이니, 미생물 감염이 추정된다느니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왜 죽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죽게 했는가다. 롯데가 야생동물을 좁은 수족관에 가두어 죽였다는 격렬한 비판과 항의가 잇따르자 2019년 10월 롯데는 결국 마지막 남은 벨라를 다시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2020년 7월, 롯데는 벨루가 방류 약속 후 9개월이 지나서야 일부 동물단체를 포함한 방류 기술위원회를 발족했다. 하지만 롯데는 1년이 넘도록 구체적인 방류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벨라의 방류를 미룬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롯데는 다시 2021년 11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2년 말까지 야생 적응 훈련장 이송, 이르면 2023년 야생 방류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2023년 현재까지도 벨라는 여전히 수족관에 갇혀 있고 롯데는 4년째 방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벨라를 전시하고 있다. 4월 3일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동물해방물결의 항의 집회 이후 롯데는 아이슬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등 벨라가 정착할 만한 장소를 최종 물색 중이라고 언론에 해명하였는데, 이는 롯데가 4년 전에도 하던 똑같은 논의의 반복이다.
약속 지키지 않는 롯데
롯데가 벨라의 방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동안 벨라는 수족관에서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야생에서 수심 1km 넘게 잠수할 수 있고 계절에 따라 2000km를 이동하는 벨라는 고작 7.5m 깊이의 롯데 수족관에서 하루 종일 유리벽에 몸을 부딪히며 수조 안을 맴돌거나 수면 위로 무기력하게 떠 있는 등 심각한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다.
벨루가를 비롯한 고래류는 높은 지능과 사회성, 자아 인식능력 등을 갖추어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로 표현되기도 한다. 벨라는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할 뿐 자신이 어디에서 잡혀 와서 현재 어떤 곳에 있는지,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스스로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언론의 질문엔 “무엇보다 벨라의 행복이 우선이다”, “투명하고 적극적인 방류를 진행하겠다”고 대답하고선 4년간 아무런 계획도 확정하지 않는 롯데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만약 롯데마트에 ‘물건을 납품하겠다’고 하고 4년 동안 납품을 미루는 업체가 있다면 롯데는 그곳을 신용할 수 있을까?
벨라가 행복하기 위해선 말뿐인 방류 약속이 아니라 약속의 이행이 필요하다. 대기업에게 본인이 한 약속, 본인이 지키라는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탈을 쓰고 집회까지 준비해야 하는 활동가들은 자괴감이 든다.
수족관에 갇힌 벨루가와 돌고래들은 롯데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화, 울산 남구청, 외국계 자본인 거제씨월드 등 전국 5개의 수족관에 아직 21마리의 고래들이 매일 비좁은 수조와 관광객들에게 시달리며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류로 촉발된 국내 수족관 고래전시금지 운동은 2018년 환경부가 일본으로부터의 돌고래 수입을 금지하고, 지난해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23년 11월부터 국내 수족관의 고래 신규 반입이 금지되면서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인도 등 일찌감치 고래 수족관을 없애거나 금지한 나라들에 비하면 조금 늦었지만 올바른 결정이다.
그러나 수족관 고래전시금지 운동의 마지막이 고래들의 죽음이나 해외 수족관으로의 수출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돌고래 8마리를 바다에 방류하였고, 그 중 3마리는 야생에서 번식까지 성공한 나라다(고래고기 축제인 울산고래축제만 아니라면 고래 선진국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큰 성과들이 있었고, 그중엔 돌고래를 바다에 풀어주었지만 가까운 바다에서 관찰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은 여전히 고래의 생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으며 아직 방류 경험이 없는 벨루가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벨라를 바다로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고래는 수족관에 있으면 안 되는 야생동물이며, 사람들은 그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계속 방법을 찾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롯데가 방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전시부터 금지하고, 벨라를 수족관에서 빼내 자연과 가까운 임시 시설에 두고 방류를 진행하면 된다. 롯데가 벨루가 전시로 그동안 얼마를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돈은 충분히 있지 않은가.
무더운 날 벨로와 벨리의 상여를 메고 롯데에 항의하던 수많은 해양생물들을 대신해 지면을 빌어 한 번 더 부탁하고 싶다.
롯데 씨, 약속 지키셔야죠, 벨라를 바다로 보내주세요.
글∙사진 | 김영환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
지난 4월 3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에 벨루가(흰고래)들의 상여가 등장했다. 방어, 도미, 문어, 바다사자 등 해양생물의 탈을 쓴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동물해방물결의 활동가들은 상여를 메고 롯데월드아쿠아리움 주변을 행진하며 해양생물을 잡아 와 죽어서야 나가게 하는 롯데그룹을 규탄했다. 이날은 롯데그룹의 창립 5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롯데 수족관에 갇힌 ‘벨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 두 마리가 폐사하고 한 마리가 남아있는 가운데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4월 3일 ‘꽃상여’ 퍼포먼스를 펼치며 벨루가 방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벨루가는 차가운 북극해 등에서 사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지난 2013년 불법 포획되어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제주도 야생방류 성공으로 한국 사회가 한창 뜨거웠을 그때, 롯데는 찬물을 끼얹듯 54만 달러를 주고 러시아에서 벨루가 3마리를 수입했다. 모두 야생에서 잡아 온 고래들이었다.
몸길이 3m가 훌쩍 넘는 벨루가들은 강릉원주대학교의 지름 10m짜리 송어 양식 연구용 수조에 갇혀 아쿠아리움 공사가 끝날 때까지 1년 반을 그곳에서 지냈다. 롯데는 벨루가들에게 ‘벨로’, ‘벨리’, ‘벨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4년 롯데월드아쿠아리움 개장 후 이송된 벨로, 벨리, 벨라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 수족관에서 매일 생태설명회를 빙자한 ‘먹이 받아먹기 쇼’를 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해양동물 쇼가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선 해양동물들은 굶어야 한다. 배가 고파야 먹이 보상을 얻기 위해 사육사의 지시에 잘 따르기 때문이다. 벨루가들은 야생에선 먹지 않는 죽은 물고기를 받아 먹으며 매일 두 번씩 생태설명회 쇼를 했다.
결국 2016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막내 벨로(2012년생 당시 5살)가 먼저 죽었고 2019년엔 벨리(2007년생 당시 12살)가 죽었다. 원래 벨루가들은 바다에서 평균 30년을 넘게 산다.
롯데는 벨루가들이 죽을 때마다 정확한 사인을 밝히겠다며 사체를 부검하여 패혈증이니, 미생물 감염이 추정된다느니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왜 죽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죽게 했는가다. 롯데가 야생동물을 좁은 수족관에 가두어 죽였다는 격렬한 비판과 항의가 잇따르자 2019년 10월 롯데는 결국 마지막 남은 벨라를 다시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2020년 7월, 롯데는 벨루가 방류 약속 후 9개월이 지나서야 일부 동물단체를 포함한 방류 기술위원회를 발족했다. 하지만 롯데는 1년이 넘도록 구체적인 방류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벨라의 방류를 미룬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롯데는 다시 2021년 11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2년 말까지 야생 적응 훈련장 이송, 이르면 2023년 야생 방류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2023년 현재까지도 벨라는 여전히 수족관에 갇혀 있고 롯데는 4년째 방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벨라를 전시하고 있다. 4월 3일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동물해방물결의 항의 집회 이후 롯데는 아이슬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등 벨라가 정착할 만한 장소를 최종 물색 중이라고 언론에 해명하였는데, 이는 롯데가 4년 전에도 하던 똑같은 논의의 반복이다.
약속 지키지 않는 롯데
롯데가 벨라의 방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동안 벨라는 수족관에서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야생에서 수심 1km 넘게 잠수할 수 있고 계절에 따라 2000km를 이동하는 벨라는 고작 7.5m 깊이의 롯데 수족관에서 하루 종일 유리벽에 몸을 부딪히며 수조 안을 맴돌거나 수면 위로 무기력하게 떠 있는 등 심각한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다.
벨루가를 비롯한 고래류는 높은 지능과 사회성, 자아 인식능력 등을 갖추어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로 표현되기도 한다. 벨라는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할 뿐 자신이 어디에서 잡혀 와서 현재 어떤 곳에 있는지,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스스로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언론의 질문엔 “무엇보다 벨라의 행복이 우선이다”, “투명하고 적극적인 방류를 진행하겠다”고 대답하고선 4년간 아무런 계획도 확정하지 않는 롯데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만약 롯데마트에 ‘물건을 납품하겠다’고 하고 4년 동안 납품을 미루는 업체가 있다면 롯데는 그곳을 신용할 수 있을까?
벨라가 행복하기 위해선 말뿐인 방류 약속이 아니라 약속의 이행이 필요하다. 대기업에게 본인이 한 약속, 본인이 지키라는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탈을 쓰고 집회까지 준비해야 하는 활동가들은 자괴감이 든다.
수족관에 갇힌 벨루가와 돌고래들은 롯데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화, 울산 남구청, 외국계 자본인 거제씨월드 등 전국 5개의 수족관에 아직 21마리의 고래들이 매일 비좁은 수조와 관광객들에게 시달리며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류로 촉발된 국내 수족관 고래전시금지 운동은 2018년 환경부가 일본으로부터의 돌고래 수입을 금지하고, 지난해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23년 11월부터 국내 수족관의 고래 신규 반입이 금지되면서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인도 등 일찌감치 고래 수족관을 없애거나 금지한 나라들에 비하면 조금 늦었지만 올바른 결정이다.
그러나 수족관 고래전시금지 운동의 마지막이 고래들의 죽음이나 해외 수족관으로의 수출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돌고래 8마리를 바다에 방류하였고, 그 중 3마리는 야생에서 번식까지 성공한 나라다(고래고기 축제인 울산고래축제만 아니라면 고래 선진국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큰 성과들이 있었고, 그중엔 돌고래를 바다에 풀어주었지만 가까운 바다에서 관찰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은 여전히 고래의 생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으며 아직 방류 경험이 없는 벨루가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벨라를 바다로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고래는 수족관에 있으면 안 되는 야생동물이며, 사람들은 그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계속 방법을 찾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롯데가 방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전시부터 금지하고, 벨라를 수족관에서 빼내 자연과 가까운 임시 시설에 두고 방류를 진행하면 된다. 롯데가 벨루가 전시로 그동안 얼마를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돈은 충분히 있지 않은가.
무더운 날 벨로와 벨리의 상여를 메고 롯데에 항의하던 수많은 해양생물들을 대신해 지면을 빌어 한 번 더 부탁하고 싶다.
롯데 씨, 약속 지키셔야죠, 벨라를 바다로 보내주세요.
글∙사진 | 김영환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