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지리산 댐!

2018-12-01

지리산 댐 계획지 ⓒ지리산생명연대

1997년 9월,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이다. 그해 가을, 국가부도 위기를 맞이한 세상은 혼란스러웠고 떠들썩했다.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흉흉하게 떠돌았다. 그즈음이었다. 중앙환경연합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이 발표되었는데 지리산에 2개의 대형 댐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였다. 당시 나는 진주환경연합 사무국장직을 맡고 있었다.

진주환경연합은 댐 반대운동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활동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환경운동연합이 탄생하기 전, 1991년부터 시작된 지리산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이 그것이었다. 지리산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은 환경연합 창립의 마중물이 되기도 했다. 지리산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전국 지역환경단체들이 연대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그 결과로 탄생한 전국조직이 바로 환경연합이었다.

정부가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을 발표하던 당시 진주환경연합은 지리산 인근 산청군 둔철산에 동양 최대의 골프장단지를 건설하려는 경상남도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던 때였다. 국가부도 위기로 그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가부도 위기는 국가주도의 대규모 토목사업을 던져주었는데 대형 댐 건설사업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정부의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이 발표되고 열흘이 되지 않아 진주환경연합은 지역조직들과 연대체를 꾸려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지리산 댐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지리산 속으로, 주민 속으로

1997년 겨울, ‘지리산댐반대 서부경남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연대활동은 ‘지리산댐반대 경남대책위’로 확대되었고, 활동의 폭을 넓혀나갔다. 이른바 ‘덕천강댐’으로 불렀던 ‘천평댐’ 예정지역의 산청군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산청군의회 의장은 집회장에서 삭발을 했고, 산청대책위원회를 이끌던 지도부는 산청군의 여론주도층 인사들이었고, 이후 군의회와 군수로 선출되어 지역활동을 계속하기도 했다.

지리산 양수발전소로 크게 홍역을 겪었던 산청군과는 달리 ‘지리산댐’으로 명명한 ‘문정댐’ 예정지 함양군은 조용했다. 댐에 대한 이해부족과 폐쇄된 지역적 특성은 ‘반대’라는 용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국가계획’에 반대하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는 지역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댐 예정지 산골마을에 좁은 사랑방을 얻어 자원봉사활동가를 파견하였다. 진주환경연합 대학생회를 조직하던 그 청년자원봉사자는 그해 여름을 현장에서 살았다. 논밭으로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활동한 끝에 지리산댐 예정지가 빤히 바라보이는 함양군 문정리 폐교된 운동장에서 주민궐기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주민조직이 이뤄지고 난 뒤 남강 둔치에서 가진 궐기대회는 진주지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집회였다. 통상적인 반대집회가 아니었다. 정부의 물 정책에 대한 도전이었고 저항이었다. ‘근조 낙동강’이라는 만장이 휘날렸고, ‘낙동강을 살리라’는 구호가 주를 이뤘다. 그러는 사이 산청군에 계획되었던 덕천강댐은 지역주민과 지자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흐지부지 계획에서 빠져버렸다.

 

마침내 확대되는 댐 반대운동

지리산댐 예정지 상류지역 ‘실상사’에서 두 승려가 진주환경연합을 방문했고, 나는 실상사를 찾아가 반대운동에 함께해줄 것을 호소했다. 마침내 댐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 실상사가 움직이면서 반대운동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실상사를 중심으로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이 창립되었고, 지리산 권역 시민사회 및 종교계를 통틀어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연대’가 출범했다. 훗날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은 생명평화결사로,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연대’는 마지막까지 지리산댐 반대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해온 ‘지리산생명연대’로 조직이 재편되었다.

중앙환경연합은 정부가 발표한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 따라 전국 12개 댐예정지역 대책위와 이들 연대체 및 중앙의 각 환경단체를 묶어 ‘댐반대 국민행동’을 조직해 전국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2001년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과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연대’는 지리산을 시작으로 생명평화 탁발순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9월 나는 ‘댐반대 국민행동’의 사업으로 전국 12개 댐 예정지를 자전거를 타고 순회하는 댐 반대 1인 시위에 돌입했다. 16박17일간 진행된 댐 반대 자전거 1인 시위는 한국 최초의 다목적댐인 진주 남강댐에서 시작했다. 함양 안의댐, 김천 부항댐, 상주 이안천댐, 군위 화북댐, 영주 송리원댐, 영덕 옥계댐, 울진 왕피천댐, 양구 밤성골댐, 포천 한탄강댐, 예천 지천댐, 순창 섬진강댐, 함양 지리산댐 예정지를 돌면서 9개 지역에서 자치단체장과 면담을 가졌고, 지역대책위와 집회를 조직했다. 이들 예정지 중 부항댐과 화북댐, 송리원댐, 한탄강댐은 이미 건설되어버렸다.

 

수자원정책을 뒤흔든 지리산 댐

당초 지리산댐 계획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부산 시민들의 상수원인 낙동강 수질이 4등급으로 떨어지자 지리산에 2개의 대형댐을 건설하여 1급수 상수원수를 확보하고 낙동강 물에 희석해 2급수의 상수원수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지리산을 그대로 물려주세요” 아이들의 퍼포먼스 ⓒ최화연

우리는 낙동강을 포기하는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물관리 일원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자원공사의 환경부 이관도 주장했다. 침묵하던 환경부도 나섰다. 환경부와 건설부, 환경단체는 마침내 ‘낙동강 물이용 조사단’을 발족시켰다. 낙동강수계 댐의 적정운용을 비롯해 이수와 치수, 대체상수원 개발 등 낙동강이 안고 있는 물 문제를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토록 하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신규 댐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미 설치된 낙동강 수계 대형댐을 적정하게 운용할 것과 낙동강 본류 및 지류수계에서 강변여과수를 개발해 대체상수원으로 이용하는 것과 본류 수변습지를 활용해 낙동강의 자정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권고안이 나왔다. 이후 지리산댐 건설계획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당초 식수전용댐에서 다목적댐으로 바뀌었다. 정권이 바꾸자 계획이 보류되기도 했다. 정부의 수자원장기종합대책에서도 사실상 백지화된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댐 계획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홍수조절용 댐’의 가면을 쓴 것이다. 지역 토건세력과 정치집단은 또 들썩였다. 댐을 유치해 지역발전을 이뤄야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지리산댐백지화 함양군대책위원회’와 ‘지리산생명연대’는 20년 동안 정치지형이 바뀔 때마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이런 상황을 겪어야 했다.

 

마침내 이룬 승리, 종지부를 찍다

지난 9월 환경부는 지리산댐을 비롯해 모든 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정부 주도의 댐 건설계획은 없을 것이며 지방정부가 필요에 의해서 요청할 경우에도 타당성을 검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겠다고 했다. 

“지리산댐은 죽음이다”를 외치는 활동가들 ⓒ댐반대국민행동

그에 앞서 문재인 정부는 정부조직법을 바꾸었다. 우리가 그동안 줄곧 주장해왔던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그동안 국토부가 독점해온 수자원개발과 관리정책을 환경부로 이관한다는 것이었다. 국토부와 수자원공사는 기존의 시설관리만 맡게 된다는 것이었다. 많이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획기적인 전환이기도 하다.

이로써 댐의 시대는 끝났다. 상실과 반목의 시대는 끝났다. 전쟁 다음으로 가혹한 것이 댐이었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아 없애버리는 극단의 토건사업, 댐은 이제 영영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에필로그

지난 21년, 지리산댐 반대운동은 내 인생의 한복판을 가로질러갔다. 환경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정부계획은 나에게 참으로 가혹했다. 정권이 바뀌어 잠시 한가한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었지만 가슴속은 언제나 지리산댐이었다.

그리고 나는 환경운동의 일선을 벗어나 지리산으로 들어왔고, 그 빈자리를 아들 녀석이 메꾸었다. 21년 전, 1997년 9월 진주환경운동연합에서 지리산댐 반대 성명을 발표한 활동가 아버지가 있었고, 21년이 지난 2018년 9월 지리산생명연대에서 정부의 지리산댐계획 백지화 발표를 듣게 된 활동가 아들 녀석이 있었다.

지리산 댐, 회한이 깊다.

  

글 | 김석봉 환경운동연합 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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