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소리 울리던 곳에 스라소니 울음이 들린다

2018-06-01

튀링엔주 그뤼네스반트의 초지 보호지역. 오른쪽 표지판은 그뤼네스반트 소개, 왼쪽 표지판은 지뢰위험지역 경고
 

과거 동서독 민족분단의 가슴 아픈 현장인 베를린 장벽은 이제 베를린 관광의 명물이다.  동서독 대결과 냉전의 최전선이 베를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판 DMZ라 할 수 있는 동서독 국경도 서독으로 이탈하려는 동독 주민들을 막고자 이중 철조망, 지뢰, 감시탑, 군인 등으로 삼엄하게 무장되어 있었다. 민족분단의 장벽과 철조망이 걷히기까지 이 두 곳에서는 9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한편, 서독의 환경단체 독일환경자연보전연합(BUND)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새들이 접경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 곳이 생태적으로 중요한 곳임을 알리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붕괴된 지 딱 한 달 뒤인 1989년 12월 9일, 동서독-체코 국경의 작은 도시 호프(Hof)에서 분트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동서독 전역에서 400명이 넘는 자연보전단체 관계자들이 참가하여 “동서독 접경지대를 중앙 유럽의 생태적 중추로 보호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로써 ‘죽음의 지대’였던 곳이 ‘그뤼네스반트’라는 이름으로 통일시대의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되었다.

 

녹색 생명의 띠, 그뤼네스반트 

그뤼네스반트(Grünes Band)는 ‘녹색 띠’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Green Belt(그린벨트)’로 번역돼 불린다. 그뤼네스반트를 처음 소개하면서 우리도 익숙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와 구별하고자 영어 번역 대신 원어 그대로 그뤼네스반트로 부르기로 했다. 그뤼네스반트는 DMZ 일원처럼 수십 년간 민족분단과 냉전으로 사람의 접근과 이용이 극도로 통제되어 자연생태계의 보고가 되었다. 폭이 좁지만 1393킬로미터의 선형지대에 109가지 다양하고 중요한 비오톱 유형이 있으며, 먹황새, 유럽수달, 스라소니, 유럽살쾡이, 복주머니란 등 독일 적색목록에 오른 600종 이상의 희귀 및 멸종 위기종들이 서식하고 있다. 또 엘베(Elbe) 강 생물권보전지역, 하르츠(Harz) 국립공원, 뢴(Rhön) 생물권보전지역 등 150여 개 크고 작은 보호지역들을 연결하는 생태네트워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뤼네스반트의 특별함은 생태적 가치에만 있지 않다. 과거 ‘철의 장막’의 핵심지역이자 민족분단의 최전방인 ‘역사기념경관’으로서, 그리고 9개 연방주 40개 시군의 다양한 지역문화가 어우러진 곳으로서 ‘생태+역사+문화’를 결합한 보전, 교육, 지속가능관광의 장으로 발전하였다. 더 나아가 독일 그뤼네스반트의 개념과 보전 활동은 유럽을 가로지르는 ‘철의 장막’ 전체로 확대되어 2004년 유럽그린벨트(European Green Belt) 협력사업을 태동시켰다.


통일 후 도전과 대응   

30년이 되어가는 그뤼네스반트의 역사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무너지고 1990년 10월 3일 동서통합을 이룬 통일연방정부는 구 동서독 간 제도, 경제, 사회적 통합에 총력을 기울인 반면에, 통일 후 10여 년이 지나도록 그뤼네스반트의 보전·관리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통일 직후부터 집약농업, 도로, 건물 등으로 그뤼네스반트 여러 곳들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또 그뤼네스반트 면적의 약 3분의 1이 시군이나 개인 소유지이어서 장기적 보전이 어렵고, 토지소유권과 관리주체가 조각보처럼 나뉜 곳들이 많아 생태연결, 보전·관리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컸다.  

초록주식증서

 

이런 문제는 통일 당시부터 큰 논란이 된 접경지역 토지소유권 정책에 기인한다. 그뤼네스반트의 가치에 무관심했던 통일연방정부가 1996년 접경토지법을 제정하고 구 동독 접경지역 토지를 개인에게 반환하고 매각을 추진해 사유지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뤼네스반트 가치에 대한 인식이 독일과 유럽에서 확대된 2005년이 되어서야 토지 매각이 중단되고 보전관리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주정부와 유관 재단에 토지를 이양하는 공유화 정책으로 전환됐다.  

다행히 현재 그뤼네스반트 면적의 약 87퍼센트가 자연서식지에 가까워 생태네트워크로서 기능이 가능하고 실제로 여러 보호지역들이 지정돼 있다. 이러한 결과는 그뤼네스반트를 탄생시킨 BUND, NABU, Heinz Sielman 재단과 같은 민간단체의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노력, 전문적 역량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또한 민간단체, 주정부, 연방정부가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하면서 그뤼네스반트 보전과 지속가능한 활용을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그뤼네스반트의 과제  

과거 군용차량 통행로. 두 개의 콘크리트 패널로 이루어진 군용차량 통행로는 이제 방문객들의 탐방로로 이용되고 있다
 

2014년에 설립 25주년을 맞이한 그뤼네스반트의 큰 과제는 도로, 농지 등으로 끊어진 ‘녹색 띠’를 제대로 된 생태통로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유지 매입과 관리, 훼손지 복원, 보호지역 지정사업 등이 이루어져 왔다. 그뤼네스반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튀링엔 주의 경우를 보면, 농지개혁정책과 연계하여 보전에 필요한 토지를 매입·교환·병합하여 토지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또 환경단체 BUND도 보전복원이 필요한 사유지를 직접 사들여 관리하고 있는데 2016년까지 사들인 면적이 750헥타르를 넘어섰다. 토지매입비용은 시민들의 ‘초록주식기금(Gr그뤼네스반트가 DMZ에게 독일의 그뤼네스반트는 한반도의 DMZ와 역사적, 생태적, 정서적으로 많은 점들을 공유하기에, 한반도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는 그뤼네스반트의 경험과 교훈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뤼네스반트는 통일 후 여러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DMZ보다 5배나 긴 옛 접경지역의 대부분(전체 면적의 87퍼센트)이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남아있고 국가의 중요 생태축과 생태역사 교육과 지속가능관광의 장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 DMZ의 미래의 몇 가지 모습을 그뤼네스반트 거울에 비춰보자.

첫째, 통일 후 동서독 접경지역의 토지소유권 문제는 생태계 보전과 사회적 통합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한반도 통일 후 DMZ 일원의 생태경제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지혜롭게 대응하는데 그뤼네스반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둘째, 독일 그뤼네스반트가 모태가 되어 유럽그린벨트 협력을 이끌어 낸 것처럼, DMZ의 생태평화적 가치와 노력을 동북아, 중앙아시아로 연계·확대한다. 또 DMZ와 그뤼네스반트가 중심거점이 되어 이를 유럽그린벨트로 연결한 ‘유라시아 생태평화 네트워크(벨트)’ 협력을 함께 추진한다.   

셋째, 통일 후 DMZ가 단기적 개발이익에 무분별하게 희생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뤼네스반트처럼 통일국가의 귀중한 생태·역사·문화적 유산으로서 보전·활용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보전 담당 부처의 의지와 정책수립만으로는 어렵다. 접경지역 주민을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DMZ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해 공감지지하도록 유도하는 체계적인 접근과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 환경단체들이 지역주민과 시민들의 참여를 위해 수행한 조직적, 창의적인 활동들이 그뤼네스반트 성공의 밑바탕이 됐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환경부도 DMZ 보전 체계를 확고히 만들기 위해 DMZ 보전에 경험과 역량이 있는 엔지오들을 실질적인 민-관 협력 파트너로 적극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 그뤼네스반트 사업 담당자가 필자에게 건넨 이야기를 다함께 새기고 싶다. “독일은 갑작스럽게 통일을 맞았고 그 당시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독일의 경험을 그대로 한국에 가져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점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대결이 사라질 때 DMZ에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보전 관계자들은 갖고 있어야 한다.” 

 

글・사진 | 심숙경 아시아에너지환경지속가능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 유네스코 MAB국제조정이사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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