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천변 버드나무 학살사건

2023-05-08

“버드나무는 왜 베어져야 했나요? 삼천의 물흐름을 방해했다고요? 아니요. 그저 우리에게 그늘과 풍광을 제공했을 뿐입니다.” 전주천변 버드나무 군락이 일거에 베어졌다. 홍수 예방을 핑계 삼아 전주시가 시민 의견 수렴도 없이 행한 일이다. 분노한 시민의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버드나무와 함께 추억도 베어졌다


벌목 전 남천교에서 바라본 전주천


벌목 후 남천교에서 바라본 전주천


전주시는 지난 3월부터 홍수 예방을 위한 유지관리를 한다며 전주천과 삼천 13km 구간에 걸쳐서 야생동물의 서식처인 수변 억새군락과 천변 아름드리 버드나무들을 무차별적으로 베어냈다. 학살과도 같은 벌목이었다.

특히 남천교에서 한벽당 구간의 버드나무와 억새군락은 한옥마을의 명소이자 많은 전주시민의 추억이 깃든 공간으로 여러 미디어에 소개됐던 곳이다. 잘린 버드나무 그루터기만 덩그러니 남은 곁은 억새군락이 있던 자리였다. 지금은 계절 꽃밭을 만든다며 이랑을 만들어 씨를 뿌렸는데 그게 다 금계국 등 외래종 일색이다.

전주천과 삼천의 물길 가장자리에 자연적으로 뿌리를 내린 버드나무와 시민들이 심고 가꾼 억새군락은 자연성을 회복한 전주천의 선물이었다. 전주천 자연하천조성사업 이후 20여 년 넘게 시와 시민이 함께 노력하여 만들어진 생태하천은 도시의 귀한 자산이자 자랑거리였다. 하천의 수변 식생은 야생동물의 은신처이자 서식처, 탄소흡수원으로 기능도 크다. 전주천에는 억새군락과 버드나무를 비롯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여울과 소, 하중도가 있어 수달, 원앙, 삵, 쉬리 등 법정 보호종을 포함한 다양한 야생동물과 물고기들을 불러 모았다. 이렇게 전주천은 민관 협의와 노력으로 자연하천 관리의 전국적인 모범이 되었다.

자치행정이 시민사회와 함께 일군 전주천의 아름다운 역사를 송두리째 베어낸 현 전주시정은 “하천 통수 면적을 확보해서 홍수를 예방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헛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천 홍수 원인은 집중호우, 하천지형, 유속, 도심 개발로 인한 지표면의 흡수력 감소 등 매우 다양하다. 하천 내 나무 역시 홍수에 영향을 주는 한 가지 요소일 수 있지만, 그 정도에 대한 평가도 없이 정확한 사전 조사와 벌목을 통한 홍수위 감소 자료 분석 등 객관적인 기준이나 근거도 없이 사업을 진행했다. 하천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그늘과 아름다운 풍광을 제공해주던 나무들을 시민 의견 수렴도 없이 전부 벌목하는 게 홍수 예방의 최우선 순위였을까.


분노한 시민의 목소리

남은 버드나무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이름을 적은 푯말을 설치했다


버드나무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을 알고 난 전주시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은 ‘언제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라도 했냐?’며 항의했다. 아직 베어지지 않은 나무를 지키기 위해 본인의 이름이 적힌 푯말을 만들어 나무 앞에 꽂아둔 시민도 있다. 이에 지난 3월 29일 전주권 시민단체와 8인의 시의원,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무차별 벌목에 대한 전주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전주천과 삼천의 경관과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하천 정책을 규탄했다.

사건 발생 이후 한 달째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전주시청 앞에서 1인 시위와 함께 온라인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5000여 명의 시민이 서명에 참여했다.

“익숙한 우리 풍경을 빼앗겼다. 너무나 참담한 마음이다.”, “전주천과 삼천, 그 속에 깃든 많은 것들이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사라지기 전에는 존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모를 수 있습니다.”, “슬픕니다. 전주시민의 추억이 담겨있는 나무입니다.” 등 서명과 함께 하천 벌목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베어진 버드나무를 애도하는 버드나무 추모제와 문화제도 열었다.


하천은 수로가 아니다

벌목된 버드나무와 그 너머로 보이는 남천교


전주시의 막무가내 벌목행정은 비단 전주천변에서만이 아니다. 지난 1월에는 한옥마을 오목대 숲의 상수리나무 40여 그루도 잘려나갔다. 그 뒤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아 전주천과 삼천에 자생하던 큰 나무들이 모조리 베어졌다.

나무 수난시대다.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하천의 수목들이 하루아침에 홍수 피해를 일으키는 쓸모없는 나무로 지목되어 잘려나갔다.

도심의 하천은 인간만이 이용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사는 공간이다. 하천의 나무와 수풀에 몸을 숨기며 살아가던 생물들은 살 곳, 갈 곳을 잃었다. 잘린 나무 밑동에 겹겹이 쌓인 나이테만큼 추억이 담겨있었다. 전주시정의 섣부른 정책으로 한순간에 하천 생태계가 위태로워졌다. 베어진 나무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다. 도심의 하천은 도시의 핏줄이다. 하천은 도시 수로가 아니다. 이용의 대상만이 아닌 보전해야 할 생태적 자산이다. 분노한 시민들의 꾸짖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전주시는 맹성과 함께 시정의 생태적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글 | 장진호 전북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팀장

사진 | 전북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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