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과일은 사과다. 노정옥 전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이 2018년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과일 12종의 섭취 실태와 선호도를 분석한 결과다. 과일의 왕 사과는 앞으로도 왕좌에서 평안할까? 사과 주산지로 이름 높던 두 도시의 ‘1970년대 이후 과수산업 흥망사’를 살펴보면, 사과의 미래가 그리 평탄치 않으리란 예측을 고개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충주 사과 이야기
충주시에서 유의미한 면적의 사과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였다. 1960년 충주시 사과 재배면적은 33ha에 불과했지만 1965년에는 277ha로 9배가량 늘었고 1970년이 되자 1252ha로 괄목할 만한 확대를 이루었다. 그리고 5년 만인 1975년에는 2486ha로 늘면서 이 도시 역사상 지금까지도 재배면적으로서는 정점을 찍었다. 1980년이 되자 약간 재배면적이 줄어 2331ha가 됐고 생산량도 1975년보다 549t(M/T)이 줄어든 2만582t이었지만 충주의 사과 과수원들은 이때까지는 놀라운 기세로 그 수와 재배면적, 생산량을 늘리고 있었다.
충주시 사과 재배면적은 1980년 이후 면적 대비 생산량이 정비례하지 않는다. 면적은 줄어가는데 생산량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재배기술의 발달과 과원의 수는 줄어도 대형화되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충주시 농업소득과 과수연구팀 통계자료에 따르면, 충주시 사과 재배면적은 2000년 1588ha까지 줄었지만 그해 생산량은 2만7583t으로 재배면적이 최대였던 1975년보다 오히려 6000t 이상 늘었다. 2000년을 기점으로 충주시 사과 재배면적은 다시 점차 늘어 2015년에는 1933ha로 회복됐고 생산량도 역대 최대인 3만4156t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7년이 지난 2022년 올해 사전신고된 재배지 면적은 1092ha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과수화상병 확산으로 피해가 커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올해 5월 중순까지만 1만 그루, 11만㎡의 과수원이 사과나무를 땅에 파묻고 폐원했다. 과수화상병은 ‘에르위니아 아밀로보라’라는 병균이 옮긴다. 월동한 이 병균은 봄이 돼 기온이 18℃ 이상 따뜻해지면 벌 등 꽃가루받이(수분)를 돕는 곤충들에 의해 확산되는데 하루만에 백여 그루 가까이 감염시킬 정도로 감염력이 강하다. 한 그루라도 감염되면 과원 전체를 매몰해야 하고 이후 3년간 재배가 금지될 정도로 심각한 병이다. 아열대로 변해가는 기후변화의 핫스팟 한반도에서 이 과수 불치병 퇴치는 난제일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해충과 병균의 창궐이 충주시 사과 재배를 반토막 낸 주범이라면 1970년대 우리나라 사과 주산지 가운데 하나였던 대구의 몰락, 거의 지역적 멸종 수준의 대구 사과 실종사건은 더욱 직접적인 기후변화의 결과다. 바로 기온 상승 그 자체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대구 사과 이야기
사과 재배는 기후 영향이 절대적이다. 4~10월 사이가 생육기간인데 평균기온 13~21℃, 밤 기온이 높지 않은 지역이 재배 적합지이다. 일교차가 큰 서늘한 지역이 생산 적지라는 뜻이다. 겨울 평균기온이라는 더욱 직접적인 기온 제한도 걸려있다. 사과나무는 7℃ 이하 환경에서 1400시간(58일 이상) 그러니까 적어도 2달은 보낼 수 있어야 봄에 꽃을 정상적으로 피운다. 저온 충족도가 확보되지 못하면 맛있는, 그러니까 상품성 높은 사과 재배는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사과의 기후적 재배한계를 충족시키는 지역은 1970년대와 2000년대 그리고 2020년 이후가 다르다. 온난화로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기후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 주산지와 해당 지역의 기온 변화로 이를 명백히 알 수 있다. 1970년대 사과는 제주도, 경남과 전남 해안지대를 제외한 전국에서 재배됐다. 그러나 약 40년 동안 상업적 사과 재배의 남방한계선은 북상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대구다. 사과 주산지의 위치에서 아예 상업적 재배가 어려운 지역으로 급락한 것이다.
1970년대 대구의 4~10월 사과 생육기의 평균기온은 20.2℃로 한계선인 21℃에 육박했지만 여전히 전국 5대 사과 주산지의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2000~2009년 사이 대구의 사과 생육기 평균기온은 21.1℃로 높아졌고 대구 사과는 명성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퇴출되다시피 했다. 해마다 생산량이 줄어들고 결국 사과나무가 꽃조차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봄을 맞게 된 농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상처를 오늘날 창창한 사과 재배지로 명성 높은 문경을 비롯한 한반도 중부의 고지대 과수원, 경북 북부와 그리고 양구 같은 강원도 북부의 사과 재배지 농민들은 겪지 않아도 될까?
범인은 누구인가
밝은 전망이 어렵다. 사과는, 과수농업은, 아니 꽃가루받이를 필요로 하는 모든 농업의 운명은 점증하는 근본적 위기 속에 있다. 야생과 농경 지의 모든 꽃 피는 식물의 80%를 수분하는 존재이자 인간이 기르는 100대 작물 가운데 71종의 수분을 책임지는 존재(유엔식량농업기구), 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봄 양봉농가들의 “벌통이 비었다.”는 신고가 잦아졌다. 벌통에서 30~90%의 벌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두 곳이 아닌 전국적인 꿀벌 실종사건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십여 년 전부터 반복적인 ‘낭충봉아병’의 창궐로 토종벌 군락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지만 양봉에 비해 규모가 작아 사회 전체의 주목을 끌진 못했다. 그러나 ‘낭충봉아병’이 아닌 ‘실종에 의한 벌집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자 세간의 근심이 커진 것이다. 군집붕괴현상(CCD)으로 불리는 꿀벌 실종사건이 최초로 보고된 것은 2006년 미국에서였다. 남부 플로리다 주의 꿀벌 월동지에서 벌집을 열어본 양봉업자들은 대부분의 벌통에서 군집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벌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2007년부터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꿀벌 실종사건을 조사한 이들은 원인이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이하 N살충제)라는 것을 밝혀냈다.
유럽연합(EU)은 2013년 3종의 N살충제 사용에 대해 2년 동안 밀원식물에 대한 사용금지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반발해 N살충제 생산사인 바이엘과 신젠타 사는 영국 생태수문학연구센터(Centre for Ecology and Hydrology)에 실외실증연구를 의뢰하면서 자사의 억울함을 풀어줄 결과가 나올 거라 자신했다. 그러나 2017년 6월 나온 연구결과는 ‘N살충제에 노출된 꿀벌이 겨울나기를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었다. EU는 2018년 N살충제 실외 사용 전면 금지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은 2020년부터 발효됐다. 미국도 메인 주에서 제한적 금지 결정을 내렸고 미국 내 NGO들은 전면적 금지법 통과를 위한 서명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N살충제는 벌 실종사건의 단독 주범일까?
지난 5월 20일 서울환경연합이 주최한 ‘Save Our Bees!! 꿀벌과 야생벌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로 나선 이홍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은 ‘20여 년간 관찰하고 있는 한강공원, 보라매공원 등지에서 야생벌의 90%가 사라졌다’고 보고하고 벌 실종을 부른 원인으로 살충제만이 아니라 벌 건강을 해치는 병해충, 대기오염, 인공조경, 밀원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꽃들이 조경되는 도시공간의 확대, 야생 숲을 밀어내는 농경지 확대, 그리고 이런 모든 원인의 상위에 있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꼽았다.
토론자로 나선, 김일숙 <더비키스> 대표(무 항생제·살충제 양봉)는 “주변 논밭에서 사용하는 농약이 꿀벌을 위협하고 있으며, 벌통 숫자를 늘리려고 무리하게 벌 집단을 나누고 천적인 ‘응애’ 제거를 위해 살충제에 의존하는 탓에 벌들의 면역력 약화가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화학적 방제와 가혹하게 꿀·프로폴리스를 채취하는 약탈적 양봉으로 인해 생존에 필요한 면역성분이 함유된 섭식에 실패한 벌들이, 기후변화로 따뜻해진 겨울에 먹이활동을 하러 벌통을 나선 뒤 탈진한 채 귀가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도 “이 문제는 기후변화, 식량위기, 살충제, 유기농업, 토양보호, 생물다양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시민사회 전체가 연대하는 △벌의 생태와 위기실태조사를 위한 시민과학 활성화 △벌 등 수분매개자를 위한 서식처 정원 운동 전개와 수분매개자에 대한 시민인식 개선 △서식지 보호 및 생태적 관리 강화 △동물복지 양봉 확대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 살충제 금지 입법운동의 전개 등 종합적인 수분매개자 보호운동을 제안했다.

돈 되는 것만 지킬 순 없다
이대로라면, 사과꽃 핀 과수원에 꿀벌과 뒤영벌의 날개소리 요란한 풍경은 사라진 전설이 될지 모른다. 벌을 지키는 일과 온난화 기세를 타고 창궐하는 과수화상병을 방제하는 일, 기후변화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일은 분리된 별개의 과제가 아니다. 북상을 강요당하는 사과의 운명과 침묵의 봄을 강요받는 벌들의 운명도 별개가 아니다. 돈 되는 사과만 살리고, 돈 되는 벌만 지킬 방도는 없다. 지구 전체를 지키기 위한 우리 전체의 대응이 필요하다. 생명에 관련된 일이란 그런 것이다.
| 박현철 편집주간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과일은 사과다. 노정옥 전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이 2018년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과일 12종의 섭취 실태와 선호도를 분석한 결과다. 과일의 왕 사과는 앞으로도 왕좌에서 평안할까? 사과 주산지로 이름 높던 두 도시의 ‘1970년대 이후 과수산업 흥망사’를 살펴보면, 사과의 미래가 그리 평탄치 않으리란 예측을 고개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충주 사과 이야기
충주시에서 유의미한 면적의 사과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였다. 1960년 충주시 사과 재배면적은 33ha에 불과했지만 1965년에는 277ha로 9배가량 늘었고 1970년이 되자 1252ha로 괄목할 만한 확대를 이루었다. 그리고 5년 만인 1975년에는 2486ha로 늘면서 이 도시 역사상 지금까지도 재배면적으로서는 정점을 찍었다. 1980년이 되자 약간 재배면적이 줄어 2331ha가 됐고 생산량도 1975년보다 549t(M/T)이 줄어든 2만582t이었지만 충주의 사과 과수원들은 이때까지는 놀라운 기세로 그 수와 재배면적, 생산량을 늘리고 있었다.
충주시 사과 재배면적은 1980년 이후 면적 대비 생산량이 정비례하지 않는다. 면적은 줄어가는데 생산량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재배기술의 발달과 과원의 수는 줄어도 대형화되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충주시 농업소득과 과수연구팀 통계자료에 따르면, 충주시 사과 재배면적은 2000년 1588ha까지 줄었지만 그해 생산량은 2만7583t으로 재배면적이 최대였던 1975년보다 오히려 6000t 이상 늘었다. 2000년을 기점으로 충주시 사과 재배면적은 다시 점차 늘어 2015년에는 1933ha로 회복됐고 생산량도 역대 최대인 3만4156t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7년이 지난 2022년 올해 사전신고된 재배지 면적은 1092ha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과수화상병 확산으로 피해가 커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올해 5월 중순까지만 1만 그루, 11만㎡의 과수원이 사과나무를 땅에 파묻고 폐원했다. 과수화상병은 ‘에르위니아 아밀로보라’라는 병균이 옮긴다. 월동한 이 병균은 봄이 돼 기온이 18℃ 이상 따뜻해지면 벌 등 꽃가루받이(수분)를 돕는 곤충들에 의해 확산되는데 하루만에 백여 그루 가까이 감염시킬 정도로 감염력이 강하다. 한 그루라도 감염되면 과원 전체를 매몰해야 하고 이후 3년간 재배가 금지될 정도로 심각한 병이다. 아열대로 변해가는 기후변화의 핫스팟 한반도에서 이 과수 불치병 퇴치는 난제일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해충과 병균의 창궐이 충주시 사과 재배를 반토막 낸 주범이라면 1970년대 우리나라 사과 주산지 가운데 하나였던 대구의 몰락, 거의 지역적 멸종 수준의 대구 사과 실종사건은 더욱 직접적인 기후변화의 결과다. 바로 기온 상승 그 자체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대구 사과 이야기
사과 재배는 기후 영향이 절대적이다. 4~10월 사이가 생육기간인데 평균기온 13~21℃, 밤 기온이 높지 않은 지역이 재배 적합지이다. 일교차가 큰 서늘한 지역이 생산 적지라는 뜻이다. 겨울 평균기온이라는 더욱 직접적인 기온 제한도 걸려있다. 사과나무는 7℃ 이하 환경에서 1400시간(58일 이상) 그러니까 적어도 2달은 보낼 수 있어야 봄에 꽃을 정상적으로 피운다. 저온 충족도가 확보되지 못하면 맛있는, 그러니까 상품성 높은 사과 재배는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사과의 기후적 재배한계를 충족시키는 지역은 1970년대와 2000년대 그리고 2020년 이후가 다르다. 온난화로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기후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 주산지와 해당 지역의 기온 변화로 이를 명백히 알 수 있다. 1970년대 사과는 제주도, 경남과 전남 해안지대를 제외한 전국에서 재배됐다. 그러나 약 40년 동안 상업적 사과 재배의 남방한계선은 북상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대구다. 사과 주산지의 위치에서 아예 상업적 재배가 어려운 지역으로 급락한 것이다.
1970년대 대구의 4~10월 사과 생육기의 평균기온은 20.2℃로 한계선인 21℃에 육박했지만 여전히 전국 5대 사과 주산지의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2000~2009년 사이 대구의 사과 생육기 평균기온은 21.1℃로 높아졌고 대구 사과는 명성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퇴출되다시피 했다. 해마다 생산량이 줄어들고 결국 사과나무가 꽃조차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봄을 맞게 된 농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상처를 오늘날 창창한 사과 재배지로 명성 높은 문경을 비롯한 한반도 중부의 고지대 과수원, 경북 북부와 그리고 양구 같은 강원도 북부의 사과 재배지 농민들은 겪지 않아도 될까?
범인은 누구인가
밝은 전망이 어렵다. 사과는, 과수농업은, 아니 꽃가루받이를 필요로 하는 모든 농업의 운명은 점증하는 근본적 위기 속에 있다. 야생과 농경 지의 모든 꽃 피는 식물의 80%를 수분하는 존재이자 인간이 기르는 100대 작물 가운데 71종의 수분을 책임지는 존재(유엔식량농업기구), 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봄 양봉농가들의 “벌통이 비었다.”는 신고가 잦아졌다. 벌통에서 30~90%의 벌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두 곳이 아닌 전국적인 꿀벌 실종사건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십여 년 전부터 반복적인 ‘낭충봉아병’의 창궐로 토종벌 군락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지만 양봉에 비해 규모가 작아 사회 전체의 주목을 끌진 못했다. 그러나 ‘낭충봉아병’이 아닌 ‘실종에 의한 벌집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자 세간의 근심이 커진 것이다. 군집붕괴현상(CCD)으로 불리는 꿀벌 실종사건이 최초로 보고된 것은 2006년 미국에서였다. 남부 플로리다 주의 꿀벌 월동지에서 벌집을 열어본 양봉업자들은 대부분의 벌통에서 군집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벌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2007년부터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꿀벌 실종사건을 조사한 이들은 원인이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이하 N살충제)라는 것을 밝혀냈다.
유럽연합(EU)은 2013년 3종의 N살충제 사용에 대해 2년 동안 밀원식물에 대한 사용금지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반발해 N살충제 생산사인 바이엘과 신젠타 사는 영국 생태수문학연구센터(Centre for Ecology and Hydrology)에 실외실증연구를 의뢰하면서 자사의 억울함을 풀어줄 결과가 나올 거라 자신했다. 그러나 2017년 6월 나온 연구결과는 ‘N살충제에 노출된 꿀벌이 겨울나기를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었다. EU는 2018년 N살충제 실외 사용 전면 금지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은 2020년부터 발효됐다. 미국도 메인 주에서 제한적 금지 결정을 내렸고 미국 내 NGO들은 전면적 금지법 통과를 위한 서명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N살충제는 벌 실종사건의 단독 주범일까?
지난 5월 20일 서울환경연합이 주최한 ‘Save Our Bees!! 꿀벌과 야생벌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로 나선 이홍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은 ‘20여 년간 관찰하고 있는 한강공원, 보라매공원 등지에서 야생벌의 90%가 사라졌다’고 보고하고 벌 실종을 부른 원인으로 살충제만이 아니라 벌 건강을 해치는 병해충, 대기오염, 인공조경, 밀원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꽃들이 조경되는 도시공간의 확대, 야생 숲을 밀어내는 농경지 확대, 그리고 이런 모든 원인의 상위에 있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꼽았다.
토론자로 나선, 김일숙 <더비키스> 대표(무 항생제·살충제 양봉)는 “주변 논밭에서 사용하는 농약이 꿀벌을 위협하고 있으며, 벌통 숫자를 늘리려고 무리하게 벌 집단을 나누고 천적인 ‘응애’ 제거를 위해 살충제에 의존하는 탓에 벌들의 면역력 약화가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화학적 방제와 가혹하게 꿀·프로폴리스를 채취하는 약탈적 양봉으로 인해 생존에 필요한 면역성분이 함유된 섭식에 실패한 벌들이, 기후변화로 따뜻해진 겨울에 먹이활동을 하러 벌통을 나선 뒤 탈진한 채 귀가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도 “이 문제는 기후변화, 식량위기, 살충제, 유기농업, 토양보호, 생물다양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시민사회 전체가 연대하는 △벌의 생태와 위기실태조사를 위한 시민과학 활성화 △벌 등 수분매개자를 위한 서식처 정원 운동 전개와 수분매개자에 대한 시민인식 개선 △서식지 보호 및 생태적 관리 강화 △동물복지 양봉 확대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 살충제 금지 입법운동의 전개 등 종합적인 수분매개자 보호운동을 제안했다.
돈 되는 것만 지킬 순 없다
이대로라면, 사과꽃 핀 과수원에 꿀벌과 뒤영벌의 날개소리 요란한 풍경은 사라진 전설이 될지 모른다. 벌을 지키는 일과 온난화 기세를 타고 창궐하는 과수화상병을 방제하는 일, 기후변화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일은 분리된 별개의 과제가 아니다. 북상을 강요당하는 사과의 운명과 침묵의 봄을 강요받는 벌들의 운명도 별개가 아니다. 돈 되는 사과만 살리고, 돈 되는 벌만 지킬 방도는 없다. 지구 전체를 지키기 위한 우리 전체의 대응이 필요하다. 생명에 관련된 일이란 그런 것이다.
| 박현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