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 피다

2018-03-01

변산바람꽃 ⓒ김경훈


겨울이 자기를 찾아온 귀한 손님, 철새들과 함께 새 계절에게 자리를 내줄 채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벌써 아랫녘에서는 봄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봄은 참 신비합니다. 설레는 맘을 불러오니까요. 먹이가 부족해지는 계절을 잘 이겨낸 기쁨인지, 아니면 추위에 잔뜩 움츠렸던 몸을 마음껏 펼 수 있어서인지 그 설렘의 정체를 잘 모르겠습니다. 

봄이 와서 땅이 녹으면 움츠렸던 몸을 활짝 피는 것은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속의 씨앗은 싹을 틔워 올리고, 땅에 납작 엎드려 있었던 잎 돋아 올려 꽃과 열매를 준비해야 하니 바쁠 만도 하지요. 덕분에 냉이며 쑥, 씀바귀 등 봄철 입맛을 돋우고 겨우내 부족했던 양분을 채워줄 나물이 가득해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합니다. 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람들마다 소쿠리 가득 냉이를 캐어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흰 냉이의 꽃과 노란 꽃다지의 꽃으로 들판이 가득합니다. 그 즈음 남도의 논에는 자운영이 그득하겠지요.

 

할미꽃 ⓒ김경훈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들판은 조금 여유롭지만 아직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숲은 더욱 부지런해야 합니다. 나무가 무성히 잎을 내어 그늘이 생기면 생존에 불리하니 숲의 작은 식물은 빨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아직 차가운 날씨에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이 적으니 꽃은 크고 화려할수록 좋을 것입니다. 덕분에 봄철 숲속의 꽃은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복수초처럼 쌓여 있는 눈을 이기고 나오거나 숲 안을 온통 하늘빛으로 물들이는 왜현호색의 모습을 보면 쉽사리 발길을 떼기 어렵습니다. 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지역명이 이름에 붙은 변산바람꽃은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만나봐야 할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잎에 솜털이 가득하여 노루의 귀를 닮았다는 노루귀를 보면 노루가 우리와 참으로 친숙했던 동물임을 다시 느끼게 해줍니다. 오줌을 싼것도 모자라서(노루오줌-풀) 귀(노루귀-풀)도 있고, 발(노루발-풀)도 있고, 심지어 궁뎅이(노루궁뎅이-버섯)까지 나무에 붙여 놨으니까요. 

 

복수초 ⓒ김경훈

 

얼레지의 잎은 묵나물로 이용되지만 화려한 꽃에 빠져 들다보면 잎을 뜯어 먹는다는 생각은  못하게 됩니다. 얼레지 못지않게 화려한 처녀치마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해 꽃이 피면 더 반갑습니다. 봄꽃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깽깽이풀은 개체가 늘어나서 멸종위기 종에서는 해제되었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야 할 식물입니다. 줄기 끝 열매가 마치 할머니의 머리를 풀어 헤친 것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할미꽃(백두옹)은 무덤 곁을 선호합니다. 할미꽃 옆에서 앙증맞은 크기의 구슬붕이와 큰구슬붕이, 붓꽃보다 키가 작고 꽃이 화려한 각시붓꽃, 풀과 나무의 중간인 애기풀 등이 봄을 함께 나눕니다. 봄 햇살과 이 녀석들이 함께하면 남의 묘인 것도 잊고 한참을 앉아있게 됩니다.  

물찬제비처럼 수려하다는 제비꽃도 봄에 꽃을 피는데, 제비꽃, 흰제비꽃, 호제비꽃, 둥근털제비꽃, 노랑제비꽃 등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종류가 등장합니다.

봄 햇살이 더욱 따사로워지면 들판도 봄꽃으로 가득해집니다. 냉이와 꽃다지를 시작으로 양지 바른 곳의 양지꽃, 아기 손 같은 꽃줄기의 꽃마리나 봄맞이꽃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면 봄이 깊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나무의 꽃도 풀꽃 못지않습니다. 이미 겨울부터 꽃이 피는 동백을 시작으로 매화, 벚나무,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와 개나리 등혼을 쏙 빼 놓을 정도로 다양한 종들이 꽃을 피웁니다.  

 

매화말발도리 ⓒ김경훈

 

북쪽의 너도바람꽃부터 한라산의 흰그늘용담까지 봄꽃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채색에 가까웠던 겨울의 자연색을 변화시킵니다. 숲속 산벚나무의 꽃잎이 눈처럼 쌓일 때면, 이미 봄은 짙게 익어 있습니다. 잠깐 방심해서 그해 봄꽃을 만나지 못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죠. 그러니 지금 봄꽃 나들이에 나서보세요.

 

글•사진 | 김경훈 자연탐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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