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와 농어민을 내좇는 자들이 있다

2022-01-01

산책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마정벌판을 나섰다. 방호벽을 지나 벌판을 접어들자 멀리 북한의 송학산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몇 발자국 안 갔는데 코앞에 기러기들이 앉아서 졸고 있다. 저 멀리 철책선 앞 기러기 떼도 날아든다. 먼저 와 졸고 있는 큰기러기들이 있는 바로 옆 논으로 와 걸신들린 듯 먹는다. 산책을 포기했다. 몇 발자국 더 가면 기러기들이 놀라서 날아가기 때문이다. 겨울 벌판 기러기 떼가 오가는 사람을 피해 힘겹게 먹이터를 찾아다닌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민간인통제구역 안 농경지가 편히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 마지막 먹이터마저 그냥 놔두지 않을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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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통제구역 안 임진강변 논을 불법으로 매립하고 있는 현장 ⓒ노현기


“우린 예전부터 그렇게 했는데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2월 20일 인천 서구구민회관에서 경인운하(현 경인아라뱃길) 환경영향평가 공청회가 열렸다. 당시 경인운하 찬반양측의 고성과 항의로 아수라장이었지만 공청회는 열렸다. 좌장도, 전문가라는 ‘박사님’들도 아수라장 속에서 꿋꿋하게 준비한 원고를 낭독했다. 그렇게 혈세 2조 원을 들여 만든 경인아라뱃길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해마다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똑같은 상황이 2021년 11월 24일 파주 문산행복센터에서 벌어졌다.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환경영향평가(초안) 공청회였다. 임진강대책위와 파주어촌계는 지난 6월 17일 주민설명회가 열릴 때 아무 의견도 반영하지 않는 “명분 쌓기용 의견수렴절차 일체를 거부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공청회 신청도 하지 않았다. 확인 결과 다른 어떤 곳도 공청회를 신청하지 않았다.  

공청회장에 들어가니 찬성측 패널은 한국도로공사 2명과 환경영향평가 용역사 간부 3명이었다. 주민대표라며 참석한 패널은 달랑 둘이었다. 공청회에 온 분들은 주민패널 선정 기준이 뭐냐며 항의하며 연단 위로 올라가 항의했다. 그런데 한국도로공사는 아수라장이 된 연단에서 사업개요를 설명하고 좌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이날 한국도로공사 측은 기필코 공청회 ‘폐회’를 선언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날 좌장은 경인운하(경인아라뱃길) 공청회 때 좌장보다 얼굴이 두껍지 못했던 것 같다. 좌장과 주민 측 패널들이 모두 못하겠다고 하여 결국 공청회 ‘무산’을 선언했다.

그러고도 한국도로공사는 뻔뻔하게 공청회를 했다고 보고한다. 2021년 12월 7일 ‘주민의견 수렴 반영여부 공고’에 연단 위에서 항의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까지 첨부해 올렸다.

“우린 예전부터 그렇게 했는데요.” 언젠가 한국도로공사의 한 간부와 통화할 때 들은 말이다. “예전부터 하던 그게 문제다. 정권이 바뀌었으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랑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한 반박이었다. 


두루미와 농어민 내쫓는 막개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가 지금의 안으로 만들어지면 소위 ‘평화대교’로 인해 임진강 수생태계가 망가진다. 그러면 임진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민들도 생계를 잃는다. 물고기와 어민들은 같은 팔자를 타고 났다. 평화대교를 통과한 도로는 장단반도 왼편 DMZ남방한계선을 따라 산줄기를 가르며 민간인통제구역의 장단반도, 점원리, 백연리 벌판 옆을 지난다. 

이 도로 영향권에 두루미류 476마리가 파주 DMZ와 임진강을 포함한 민간인통제구역 내에서 2021년 2월 18일 됐다. 2021년 1월 26일에는 479마리가 관찰됐다(파주환경연합과 국립경상대 이수동 교수팀의 「파주 민통선 두루미류 서식현황 조사」 결과). 파주 DMZ 일원의 두루미류는 최근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통일촌 주민들은 관광객과 차량출입이 줄어들면서 두루미류가 늘어났다고 한다. 파주는 2019년 9월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발병으로 민통선 관광이 중단된 이후 코로나19까지 이어지면서 관광을 위한 민통선 출입이 중단됐다. 역설적으로 새들에게는 환경이 좋아진 것이다.   

임진강대책위가 집계한 임진강하구의 멸종위기종(『한국의 민물고기』,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의 문헌기록 포함)이 50종이다. 대부분은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보기에 이 도로는 남북연결도로로 보이지 않는다. 고속도로 옆의 백만 평 장단반도와 노상리, 점원리, 백연리 논을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논이 개발되면 농민들 대부분은 쫓겨날 것이다. 농사짓는 분들 대부분이 임대농이기 때문이다. 소유주는 대부분 외지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4대강을 추진하던 관료들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예전부터 하던 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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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가에서 쉬다가 논으로 먹이활동을 하러 떠나는 기러기떼 ⓒ김경훈


‘논에 건설폐기물 묻어도 된다’ 는 관료들

2021년 8월까지 파주지역의 논습지 291만㎡에 토사와 순환토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건설폐기물이 부어졌다. 이중 파주시가 불법으로 확인하고 적발한 건수가 149건, 50만㎡에 달한다. 민간인통제구역 내의 논도 4월부터 6월까지만 7만3662㎡가 매립됐다. 이중 상당수는 불법, 탈법이다. 모두 두루미 먹이터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민간인통제구역 안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임진강변 하천부지의 논 5만7195㎡을 불법으로 매립하려 했다. 파주환경연합이 파주시에 2021년 1~8월까지 비산먼지신고 내역을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결과와 4월부터 6월까지 육군1사단에 정보공개청구하여 받은 민북지역 출입승인한 덤프트럭 차량 대수를 통해 파악한 규모가 그러하다. 다행히 농민과 어민들의 제보로 일찍 이런 사실이 드러나 사단에 출입승인을 받은 만큼 매립하지 못했다.   

그런데 논에 멀쩡한 흙을 붓는 것이 아니었다. 건설폐기물을 붓고 있었다. 흡사 어느 재개발현장의 쓰레기를 그대로 퍼부은 듯한 곳도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행정규칙, 농지법시행규칙, 대기환경보전법, 건설폐기물 관리에 관한 규정… 이 법들의 시행령, 시행규칙, 행정규칙 등은 국토에 순환토사라는 이름의 건설폐기물을 부어도 된다고 명시했다. 게다가 농지법 시행규칙 별표1에는 논에도 건설폐기물을 부어도 된다고 명시했다. 농지법 시행규칙 별표1은 2016년 12월에 개정했다. ‘나라를 나라답게’라며 시민들이 촛불을 들던 그 겨울, 관료들은 밥상에 건설폐기물을 부어도 된다는 몹쓸 법을 만들었다.  

그렇게 ‘선출되지 않은 제3의 권력’, 관료. 그들이 국토를 망치고 있다. 두루미들이 먹이터를 잃고, 개구리들은 집에서 쫓겨난다. 얘들보다 농민들이 먼저 밀려난다. 늙어서 농사를 포기하고, 그 땅을 사들인 토지주와 그 뒤에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민간인통제구역을 대폭 해제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해제 이후 우려되는 점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지 지켜볼 일이다.  


글 | 노현기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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