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에 창궐한 재선충

2020-03-01


재선충이 발병한 태종대 ⓒ이성근

 

“부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장소는?” 이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부산 방문객들의 답은 ‘태종대와 해운대’이다. 신라 태종과 조선 태종이 방문해 이곳의 경관을 즐겼을 만큼 태종대는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 경관의 절반은 태종대, 그리고 태종대와 연결된 해안에 자리한 해송, 곰솔, 동백, 후박, 섬엄, 다정큼 같은 200여 종에 달하는 수목이 만드는 숲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태종대 바다숲을 우점하고 있는 나무가 솔이다. 태종대 경관 구성 요소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소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그 소나무들이 위험에 빠졌다. 전례 없는 재선충의 창궐로 태종대 솔숲이 고사 위기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태종대 솔숲을 덮친 공포

이대로라면 태종대 식생의 90퍼센트를 점하는 곰솔림의 전멸까지 예측된다. 최악의 경우 국가명승 17호의 지위조차 사라질 수 있다. 제주도와 다도해국립공원에 몰아친 재선충의 창궐과 피해 상황을 고려한다면 태종대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된다. 태종대 경관 구성의 핵심 요소인 송림의 집단적 고사는 태종대를 태종대이게 하는 경관 자원의 왜곡과 이질화를 강제하고 있다.

현재 태종대 일원에서 서식하는 소나무는 대부분 곰솔이다. 곰솔은 한 번 사라지면 복원이 쉽지 않다. 바닷가의 척박한 토양에 적응해 버틴 나무들이다 보니 대체가 어려운 것이다. 난감한 상황이다. 태종대의 경우 다른 수목으로 대체하려 해도 역사적인 생태경관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태종대의 가치가 역사와 생태가 어우러진 경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현장 관찰과 주요 시점별 현장 사진을 분석한 결과 해당 지역의 소나무들이 고사한 시점은 2019년 하반기부터다. 고사의 원인은 재선충에 의한 감염 의심목으로 추정되며 일부는 잎마름병도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소나무재선충병(Pine wilt disease)은 기주 수목-매개충-병원체 등 3가지 요인 간의 밀접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단기간에 급속히 나무를 고사시키는 시들음병을 말한다. 한 번 감염되면 치료와 회복이 불가능하고 100퍼센트 고사하는 치명적인 산림병이다. 소나무재선충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고사목에 서식하고 있던 매개충의 몸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건강한 나무로 이동하게 되면서 소나무 재선충병을 확산시키게 된다. 몸속에 소나무재선충을 보유하고 있던 솔수염하늘소(Monochamus alternatus) 성충이 건강한 나무의 수피를 갉아 먹을 때 생기는 상처를 통해 소나무재선충이 나무줄기 내로 침입하게 된다. 소나무재선충이 침입한 나무는 급속하게 증식된 소나무재선충에 의해 송진 분비가 멈추고 알코올, 테르펜과 같은 휘발성 물질이 분비되고 또한 수분과 양분의 흐름에 이상이 발생하여 죽게 된다.

 

왜 이렇게 악화됐나  

그동안 관계 기관은 태종대 만큼은 재선충 발생을 차단시켜 왔다고 자부하고 또 발생된 감염목은 신속하게 솎아 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답사 결과, 현장이 말하는 진실은 좀 달랐다. 베어낸 감염목의 처리가 어려운 현장 상황을 십분 이해한다 쳐도 처리과정에서 납득되지 않는 여러 의혹들이 존재한다. 그런 일들의 끝에 예산 문제가 있다. 평지 작업이 아닌 가파른 급경사지에서 평지 비용으로 방재용역을 발주하고 이를 수주한 업체들은 비용에 맞춰 일하다보니 적정 처리에 구멍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런  ‘대충’ 처리가 태종대를 즐겨찾는 붙박이 낚시꾼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낚시꾼들이 ‘항의’했다는 정도이고 보면 감염목 처리와 감염 현장 관리가 어떠했나 미루어 알 만하다. 훈정(모아서 약품을 치고 비닐로 덮는 처리법)처리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되다 보니 베어낸 감염목을 해안으로 굴러 떨어뜨려 처리한 듯했다. 이를 증명할 기록사진은 없지만 해안에 소나무 수피 파편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니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2020년 2월 현재 태종대 재선충 발병 상황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현재 주요 감염지대는 영도등대 옆 동남북 해안으로 태종산 해발 130미터에서 남동쪽 등대자갈마당을 비롯하여 하리쪽 해안 가장자리의 기암절벽 지대이다. 지역언론에서는 부산그린트러스트가 2월 초순 조사 후 발표한 성명 자료에 따라 약 8만5400제곱미터라고 감염지대 면적을 소개하고 있으나, 2월 하순인 현재에는 약 14만5000제곱미터로 피해지대가 늘었다.

 

 

지난 2월 18일 긴급히 꾸려진 재선충병 관련 민관전문가들이 선박을 이용해 현장을 조사했다. 현장을 처음 본 전문가들은 크게 놀라 “어떻게 저렇게 확산되도록 그냥 있었냐?”고 분개하고 대처에 의문을 제기했다. 태종대 솔숲에 대해 부산시설공단은 ‘태풍으로 인한 염해 피해목이 많다’고 말해 왔지만, 이런 발표는 태풍 발생 시기와 경로 등을 고려하면 신뢰성이 떨어진다. 염해 피해도 있지만, 더하여 재선충병이 전파되면서 솔숲의 피해가 복합화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부산그린트러스트가 2019년 12월 태종대 재선충 피해를 확인하고 기존 방문자들의 면담조사, SNS와 블로그 등의 사진 조사를 통해 역추적해보니 태종대 재선충병 발생은 10월 하순까지 거슬러올라갔다. 

 

기후위기와 재선충 창궐의 생태적 진실

현재, 부산시와 시설공단은 태종대 재선충병 대처에 공조를 취해, 필요 예산을 관계당국과 협의 중이며 이후 아래와 같이 대책을 강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늘 하던 일반적 방제대책이다. 현장조사에 동행했던 고신대 문태영 교수는 “솔숲은 단지 소나무만 있는 숲이 아니다. 솔숲이 인근 생태계와 맺고 있는 생태적 연관성을 고려한 방제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절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방제 대책에서 생태적 이해와 절박한 의지가 안 보인다는 비판이다. 피해지역은 반딧불이 서식지와 중첩된다. 관할 지자체도 2019년까지 18회나 ‘반딧불이 관찰체험행사’를 개최해 왔다. 태종대에 서식하는 ‘파파리반딧불이’와 ‘늦반딧불이’는 매년 6월에서 9월 중순까지 만날 수 있다. 해무가 필 때 태종대 푸른 솔숲 사이 기암절벽 위로 날아오르는 반딧불이의 불빛이 방제로 인해 사라지고 그저 솔숲만 남는다면 그건 결코 방제 성공으로 볼 수 없다. 

고온건조한 기후를 좋아하는 재선충의 매개충들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이상증식할 가능성은 매우 높은 확률로 존재한다. 재선충병의 확산은 기후재앙의 다른 얼굴인 것이다. 최근 부산시가 국제관광 거점도시에 선정되고 이런 저런 고탄소 관광개발계획이 들썩거린다. 기후 안정의 토대 없이 그런 개발사업들이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태종대에 솔숲이 없어지고 반딧불이가 사라진 뒤에 과연 부산을 찾을 매력이 있기나 할 것인가? 태종대 재선충의 창궐이 경고하는 시대의 생태적 진실에 눈 떠야 할 때다.

 

 

글·사진 /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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