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발이’를 기다리며... 한강의 마지막 황제, 참수리

2020-02-01


‘하늘의 사자’ 참수리(별명 왕발이). 육상의 지배자가 사자라면 하늘의 지배자는 참수리다. 겨울철 한강을 찾은 참수리가 갈기 깃을 자랑하며 자세를 바로 잡고 있다

 

맹금류(Rapter). 날짐승 가운데 사냥하는 새. 그 맹금류 중 가장 대형이며 또한 가장 위풍당당한 외모의 새가 바로 참수리(Steller’s Sea Eagle)다! 참수리는 우리나라에 11월 말 찾아와 이듬해 3월 초 돌아가는 겨울철새다. 한국, 러시아, 중국, 일본에만 분포하는 참수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세기 초 독일 박물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Georg Wilhelm Steller, 1709~1746)가 시베리아를 탐험하면서 발견한 대형 바다수리에 자기 이름을 붙이면서부터다.

참수리의 아종인 한국참수리는 1884년 함경도에서 처음 포획됐다. 그 참수리는 중국 상하이 지카웨이 동물원에 갇혀 있다가 1908년 폐사했다. 한민족뿐 아니라 한국 참수리에게도 불행한 시대였다. 한반도를 찾은 서구 열강의 학자와 사업가들은 참수리들을 마구 포획했다. 상하이 지카웨이 동물원은 물론 영국의 런던, 프랑스 마르세이유(1897년 폐사 기록 확인), 독일의 베를린과 함부르크 동물원에 끌려간 한국참수리들은 사육되고 전시되다 죽으면 박제가 됐다. 그러면서도 그 정확한 기록조차 남기지 못했다. 당시 한국참수리 둥지를 털던 일본인 학자 하찌스까는 ‘한국참수리는 참수리보다 덩치는 좀 작지만, 영리하고 사나워 다루기 힘들다’는 기록을 남겼다.

 

‘힘 센 내가 나설게 !’ 한강 얼음판 위에서 쉬고 있던 참수리 부부 중 암컷(왼쪽)이 흰꼬리수리의 먹잇감을 뺏으려고 출격하고 있다

 

한국참수리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1928년 일제가 5마리의 어린 새를 함경도에서 채집해 창경원 전신인 이왕동물원에 보냈고, 하찌스까가 사진으로 남겼다는 것인데 그 사진은 남아있지 않다. 수년 후 이왕동물원의 한국참수리 가운데 4마리가 죽자 하찌스까는 일본으로 사체 송환을 요구했다. 박제할 요량이었겠지만, 선박에 실려 일본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체들은 부실한 냉동시설 탓에 모두 부패하고 말았다. 이왕동물원에 남은 마지막 한 마리가 어찌 됐는가에 관해서는 기록이 없다. 해방 이후 거의 35년이 지난 1980년 창경원동물원 수장고를 찾은 고 김수일 박사는 낯선 대형 맹금류 박제를 보고 사진에 담았다. 바로 1928년에 잡혀 이왕동물원에 보내졌던 5마리 중 마지막 남은 한 마리, 그 한국참수리였다. 그러나 1983년 창경원동물원이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이 박제의 행방도 묘연해졌다. 자료와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부른 ‘상실’이 아닐 수 없다.  

한국참수리의 멸종 이후, 지금 우리나라를 찾는 참수리는 모두 러시아에서 번식한 개체들인데 겨울마다 30여 마리가 찾아온다. 수도권역 한강에 참수리 어미새 2마리와 어린새 3마리가 매년 같은 장소에서 월동한다. 2004년 한강에서 참수리 성조 2마리를 처음 본 이후, 겨울철이면 이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주말을 보내게 됐다. 이들 무리의 리더는 암컷 참수리였는데 오른쪽 발이 유난히 더 컸다. ‘왕발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고 사진 기록을 남겨왔다. 본래 맹금류는 암컷이 수컷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 한강에 ‘왕발이’가 나타나면 다른 참수리나 또 다른 맹금류의 일종인 흰꼬리수리까지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왕발이는 스스로 사냥하기보다 다른 참수리나 흰꼬리수리가 사냥한 먹잇감을 뺏는 경우가 많았다. 

 

커다란 누치 사냥에 성공한 참수리가 미사리 한강변 얼음판에서 울음소리를 내며 환호하고 있다


참수리는 동물원에서 약 40년 정도 산 기록이 남아 있지만, 혹독한 야생에서는 그 수명이 훨씬 짧다. 꼬리가 완전 하얗고, 어깨에 하얀 깃털을 갖춘 성조깃을 띠려면, 최소 7년은 되어야 한다. ‘왕발이’는 사냥의 적극성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었다. 이미 노년층에 접어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지난 15년간 해를 거르지 않고 찾아오던 ‘왕발이’가 올해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수명을 다했거나, 이동 중 사고사를 당한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먹먹하다. 팔당댐 옆 검단산 자락에서 쏜살같이 날아내려 어른 팔뚝보다 큰 누치를 순식간에 낚아채서 하늘로 솟구치던 ‘왕발이’의 모습이 이토록 선명한 기억으로 살아있는데…! 

 

참수리의 양발차기. 참수리가 사냥한 비오리를 노리는 흰꼬리수리에게 참수리 수컷이 양발 공격을 하고 있고, 암컷은 먹다 남은 비오리를 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고 있다 


수많은 날짐승 가운데 정점의 지배자인 참수리는 한강생태계에서도 최고위 포식자다. 겨울 한강에 이 생태계의 황제인 참수리가 날면 한강생태계의 모든 존재들은 먹고 먹히는 엄중한 생명의 질서 아래 침묵한다. 자연계에서는 참수리를 위협할 만한 존재가 없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든 인공시설물들은 참수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진정 무서운 대적자이다. 팔당대교와 미사리 한강 주변 습지가 사라지고, 우후죽순 돌출하는 고층빌딩들 속에서 참수리가 설 땅은 점점 좁아져 왔다. 한강 주변 개발이 더 진행된다면 지금 찾아오고 있는 참수리들이 한강의 마지막 황제가 될 확률이 높다. 

 

‘한강에서는 내가 황제 !’ 겨울철 한강의 최후 포식자 참수리가 한강 하늘을 날며 먹이를 찾고 있다

 

올 겨울 한강생태계 황제들의 여황, ‘왕발이’가 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왕발이’를 기다린다. 그래도 이 또한 자연의 질서에 따른 사건이 아니겠나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그녀의 일족들을 한강에서 더 보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분명 말로만 자연성 회복을 외치며 실제로는 한강 수변 개발에 더 관심을 쏟는 우리,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15년 넘게 기록해온 참수리의 일상을 담은 사진기록을 공유(https://terms.naver.com/list.nhn?cid=63398&categoryId=66336)한다. 

 

더 많은 이들이 이 겨울 진객들의 안전한 도래와 귀향을 응원해주기 바란다.

 

글・사진 / 김연수 생태사진가, 연합뉴스 기자

 

* 더 많은 사진은 월간 함께사는길 2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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