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차 한대가 겨우 지날 갈 정도의 길을 따라 20기의 풍력발전기가 이어져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삐삑” “삐삑” 차량 블랙박스 경보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는 심하게 요동쳤다. 간혹 시멘트로 포장된 구간도 나왔지만 대부분 비포장 도로. 예상하지 못한 코스였다. ‘풍력 아카데미’ 수강생들과 함께 태기산 풍력발전단지를 보러 가는 길, ‘발전단지’와 ‘개발’이 주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정비’라는 이름으로 산을 깎아 번듯한 건물들을 세우고 도로를 넓히고 포장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흔들렸다. ‘여기는 태기산 정상입니다. 해발 980미터’라는 이정표를 지나 ‘태기산 풍력발전 7호기’까지 가는 길만 해도 선입견이 사실로 여겨졌다. 7호기를 지나면서 예상이 빗나갔다.
태기산 풍력발전 건설 후 11년
능선을 따라 더 올라갈수록 길은 험해져 길 폭이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까 싶게 좁아졌다. 그마저도 길섶에서 자란 식물들이 뻗쳐 차 옆구리를 사정없이 긁어댔다. 왜 입구에 업무 차량 외의 통행 제한 안내문이 붙어있어야 하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오가는 내내 풍력발전기 앞에 주차된 1톤 트럭 이외의 차량 운행을 보지 못했다. 차 한 대 지나기 힘든 좁은 길을 따라 풍력발전기들이 차례로 서있었다. 각 풍력발전기는 300~400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총 7킬로미터 구간에 20기가 배치돼 있었다. 한참을 달려 한 풍력발전기 앞에 내렸다.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제쳐도 날개가 잘 보이지 않아 뒷걸음질 쳤다. 높이 80미터 탑에 달린 날개는 한쪽 길이만 40미터에 달한다. 산 아래에서는 풍력발전기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풍력발전기 주변에 나무들이 빼곡하다. 벌목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풍력발전기가 워낙 크다보니 다 자란 나무들도 그 앞에선 작아만 보였다.
생태자연도를 조사·평가하는 국립생태원은 2016년 태기산 일부 지역 생태자연도를 2007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 등급이 상향된 구간에 풍력발전기 설치 지역이 포함돼 있다. 그 외 설치 구간은 2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적어도 태기산 풍력발전 운영으로 인한 자연 훼손은 없었다는 뜻이다.
이날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날개가 천천히 돌아가는지라 소음이 크지 않았다. “웅~” 하는 소리만 낮게 울렸다. 바람이 좀 더 불어 날개가 더 빨리 돌아갔다면 분명 소음은 이보다 컸을 것이다. 주변 인가가 소음 피해를 입지 않을까 싶어 둘러보니 인가가 보이지 않는다. 지도앱을 열고 살펴보니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초입에 위치한 1호기를 기점으로 1킬로미터 반경에는 노인복지시설 한 곳뿐, 드문드문 건물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인가들은 2킬로미터 밖에 있다. 풍력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그곳까지 전달될까?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풍력발전기 앞에서 저마다 한 마다씩 감상평을 던졌다. “거대한 인공나무 같지 않아요?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나무처럼 풍력발전기가 온실가스 내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하고 있잖아요.” 두 팔을 벌려 발전기를 감싸 안을 듯한 포즈로 한 수강생이 말했다.
육백산 풍력의 오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자리한 육백산은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유림 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출입허가를 받아 육백산 풍력발전단지 예정지로 들어갔다.
유니슨은 한국남부발전과 함께 2011년부터 이 일대에 30.2MW 규모의 풍력발전단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은 풍력발전 도입에 적극적이다. 풍력발전 예정지 인근(3킬로미터 이내) 마을인 황조리, 신리, 상마읍리 등 3개 마을 주민들은 육백산 풍력추진위원회를 꾸려 발전사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사업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2017년 사업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했지만 반려됐다. 사업예정지의 생태자연도가 1등급으로 상향 조정되어 개발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유니슨이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고 한 달 뒤 국립생태원은 사업지역 생태자연도 등급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향 조정해 확정 고시했고 원주지방환경청은 이에 근거해 평가서를 반려했다. 환경부의 등급 상향 이유는 ‘고위평탄면의 학술적 가치 보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육백산 정상은 평탄한 지면이 넓게 펼쳐진 고위평탄면 지형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사업자는 환경부와의 협의를 통해 고위평탄면 지역을 피해 풍력발전기 입지를 수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풍력발전에 따른 생태축 단절 등 육백산 자연환경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생태자연도 1등급이라 풍력개발 등의 개발행위가 불가능하다는 육백산은 이미 산림청의 벌목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환경부의 자연환경 훼손 우려를 비웃듯 현장은 곳곳이 훼손돼 있었다. 산 곳곳에 여러 갈래로 길이 나 있었고 벌목사업도 곳곳에서 진행된 상태다. 몇 그루를 솎아낸 정도가 아니라 나무 한 그루 남김없이 죄다 베어버렸다. 그 면적도 광범위했다. 수강생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대규모 벌목사업을 벌인 곳은 다름 아닌 산림청. 산림청은 육백산을 경제림으로 지정해 목재 생산을 위한 벌목과 조림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생태자연도 1등급이라 개발행위가 불가능하지만 산림법에 따른 이러한 산림청의 개발행위는 막을 수 없다.
역으로 생각하면 산림청이 이미 개발한 지역과 임도를 이용하면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풍력발전을 설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림청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유니슨은 풍력발전을 위해 산림청에 ‘산지일시사용 협의’를 요청했지만 산림청은 「국유림의 경영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용계획이 확정된 경제림 육성단지는 대부가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바람을 기대하는 주민들
하산 길, 마을 주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풍력발전사업이 무산될까 걱정했다. 주민들이 풍력발전사업을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풍력사업이 ‘주민참여형’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추진 과정에서 주민의견 수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또 이를 통해 이익을 공유하는 ‘주민참여형 풍력사업모델’을 마련해 사업을 하기로 사업자가 주민들에게 약속했고 이러한 내용으로 합의서도 작성했다. 이날 주민들과 만난 허화도 유니슨 대표는 그 사실을 재삼 확인했다.
주민들의 기대는 크다. 도계지역은 과거 국내 최대 석탄생산지 중 하나였지만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사업으로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도 급격히 쇠락했다. 일자리를 찾아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고 남은 이들은 여전히 탄광에 기대 살고 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다. 주민들은 풍력이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마을의 새로운 활력소, 바람을 일으켜 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지역경제 살리겠다고 원전까지 짓겠다고 한 곳이에요. 원전은 막아냈지만 풍력은 다르잖아요. 위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풍력 전기를 팔아 적더라도 이익을 나눌 수도 있고 풍력발전기 아래에서 약초를 재배하거나 염소도 키울 수 있잖아요, 관광단지를 만들 수도 있잖아요.”
주민들의 얼굴엔 기대감이 역력했다. 주민들의 바람대로 풍력발전은 마을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다줄 것인가. 멈춘 바람은 다시 돌아갈 것인가.
글 / 박은수 기자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차 한대가 겨우 지날 갈 정도의 길을 따라 20기의 풍력발전기가 이어져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삐삑” “삐삑” 차량 블랙박스 경보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는 심하게 요동쳤다. 간혹 시멘트로 포장된 구간도 나왔지만 대부분 비포장 도로. 예상하지 못한 코스였다. ‘풍력 아카데미’ 수강생들과 함께 태기산 풍력발전단지를 보러 가는 길, ‘발전단지’와 ‘개발’이 주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정비’라는 이름으로 산을 깎아 번듯한 건물들을 세우고 도로를 넓히고 포장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흔들렸다. ‘여기는 태기산 정상입니다. 해발 980미터’라는 이정표를 지나 ‘태기산 풍력발전 7호기’까지 가는 길만 해도 선입견이 사실로 여겨졌다. 7호기를 지나면서 예상이 빗나갔다.
태기산 풍력발전 건설 후 11년
능선을 따라 더 올라갈수록 길은 험해져 길 폭이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까 싶게 좁아졌다. 그마저도 길섶에서 자란 식물들이 뻗쳐 차 옆구리를 사정없이 긁어댔다. 왜 입구에 업무 차량 외의 통행 제한 안내문이 붙어있어야 하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오가는 내내 풍력발전기 앞에 주차된 1톤 트럭 이외의 차량 운행을 보지 못했다. 차 한 대 지나기 힘든 좁은 길을 따라 풍력발전기들이 차례로 서있었다. 각 풍력발전기는 300~400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총 7킬로미터 구간에 20기가 배치돼 있었다. 한참을 달려 한 풍력발전기 앞에 내렸다.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제쳐도 날개가 잘 보이지 않아 뒷걸음질 쳤다. 높이 80미터 탑에 달린 날개는 한쪽 길이만 40미터에 달한다. 산 아래에서는 풍력발전기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풍력발전기 주변에 나무들이 빼곡하다. 벌목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풍력발전기가 워낙 크다보니 다 자란 나무들도 그 앞에선 작아만 보였다.
생태자연도를 조사·평가하는 국립생태원은 2016년 태기산 일부 지역 생태자연도를 2007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 등급이 상향된 구간에 풍력발전기 설치 지역이 포함돼 있다. 그 외 설치 구간은 2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적어도 태기산 풍력발전 운영으로 인한 자연 훼손은 없었다는 뜻이다.
이날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날개가 천천히 돌아가는지라 소음이 크지 않았다. “웅~” 하는 소리만 낮게 울렸다. 바람이 좀 더 불어 날개가 더 빨리 돌아갔다면 분명 소음은 이보다 컸을 것이다. 주변 인가가 소음 피해를 입지 않을까 싶어 둘러보니 인가가 보이지 않는다. 지도앱을 열고 살펴보니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초입에 위치한 1호기를 기점으로 1킬로미터 반경에는 노인복지시설 한 곳뿐, 드문드문 건물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인가들은 2킬로미터 밖에 있다. 풍력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그곳까지 전달될까?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풍력발전기 앞에서 저마다 한 마다씩 감상평을 던졌다. “거대한 인공나무 같지 않아요?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나무처럼 풍력발전기가 온실가스 내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하고 있잖아요.” 두 팔을 벌려 발전기를 감싸 안을 듯한 포즈로 한 수강생이 말했다.
육백산 풍력의 오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자리한 육백산은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유림 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출입허가를 받아 육백산 풍력발전단지 예정지로 들어갔다.
유니슨은 한국남부발전과 함께 2011년부터 이 일대에 30.2MW 규모의 풍력발전단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은 풍력발전 도입에 적극적이다. 풍력발전 예정지 인근(3킬로미터 이내) 마을인 황조리, 신리, 상마읍리 등 3개 마을 주민들은 육백산 풍력추진위원회를 꾸려 발전사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사업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2017년 사업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했지만 반려됐다. 사업예정지의 생태자연도가 1등급으로 상향 조정되어 개발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유니슨이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고 한 달 뒤 국립생태원은 사업지역 생태자연도 등급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향 조정해 확정 고시했고 원주지방환경청은 이에 근거해 평가서를 반려했다. 환경부의 등급 상향 이유는 ‘고위평탄면의 학술적 가치 보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육백산 정상은 평탄한 지면이 넓게 펼쳐진 고위평탄면 지형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사업자는 환경부와의 협의를 통해 고위평탄면 지역을 피해 풍력발전기 입지를 수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풍력발전에 따른 생태축 단절 등 육백산 자연환경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생태자연도 1등급이라 풍력개발 등의 개발행위가 불가능하다는 육백산은 이미 산림청의 벌목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환경부의 자연환경 훼손 우려를 비웃듯 현장은 곳곳이 훼손돼 있었다. 산 곳곳에 여러 갈래로 길이 나 있었고 벌목사업도 곳곳에서 진행된 상태다. 몇 그루를 솎아낸 정도가 아니라 나무 한 그루 남김없이 죄다 베어버렸다. 그 면적도 광범위했다. 수강생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대규모 벌목사업을 벌인 곳은 다름 아닌 산림청. 산림청은 육백산을 경제림으로 지정해 목재 생산을 위한 벌목과 조림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생태자연도 1등급이라 개발행위가 불가능하지만 산림법에 따른 이러한 산림청의 개발행위는 막을 수 없다.
역으로 생각하면 산림청이 이미 개발한 지역과 임도를 이용하면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풍력발전을 설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림청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유니슨은 풍력발전을 위해 산림청에 ‘산지일시사용 협의’를 요청했지만 산림청은 「국유림의 경영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용계획이 확정된 경제림 육성단지는 대부가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바람을 기대하는 주민들
하산 길, 마을 주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풍력발전사업이 무산될까 걱정했다. 주민들이 풍력발전사업을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풍력사업이 ‘주민참여형’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추진 과정에서 주민의견 수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또 이를 통해 이익을 공유하는 ‘주민참여형 풍력사업모델’을 마련해 사업을 하기로 사업자가 주민들에게 약속했고 이러한 내용으로 합의서도 작성했다. 이날 주민들과 만난 허화도 유니슨 대표는 그 사실을 재삼 확인했다.
주민들의 기대는 크다. 도계지역은 과거 국내 최대 석탄생산지 중 하나였지만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사업으로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도 급격히 쇠락했다. 일자리를 찾아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고 남은 이들은 여전히 탄광에 기대 살고 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다. 주민들은 풍력이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마을의 새로운 활력소, 바람을 일으켜 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지역경제 살리겠다고 원전까지 짓겠다고 한 곳이에요. 원전은 막아냈지만 풍력은 다르잖아요. 위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풍력 전기를 팔아 적더라도 이익을 나눌 수도 있고 풍력발전기 아래에서 약초를 재배하거나 염소도 키울 수 있잖아요, 관광단지를 만들 수도 있잖아요.”
주민들의 얼굴엔 기대감이 역력했다. 주민들의 바람대로 풍력발전은 마을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다줄 것인가. 멈춘 바람은 다시 돌아갈 것인가.
글 / 박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