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곳에 살고 있다. 삽질을 멈춰라”

2023-11-14

금호강 팔현습지를 소개하기 전에 금호강의 아픈 역사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대구를 관통하며 흐르는 금호강은 산업화의 아픔이 서린 국가하천이다. 금호강은 대구가 산업화의 열매를 따기 위해 버린 자식과도 같은 강이다. 대구가 섬유산업의 본고장이 됨에 따라 1980년대 이후 금호강 주변으로 우후죽순 들어선 섬유공장들. 산업화의 첨병과도 같았던 섬유공장들은 그곳에서 나오는 오폐수들을 그대로 금호강으로 쏟아부었다. 금호강이 커다란 하수구 역할을 한 것이다. 

설상가상 1980년 금호강 상류엔 영천댐이 들어서게 된다. 영천댐은 주목적이 포항제철에 공업용수를 대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다. 영천댐이 들어서게 되자 금호강으로 흐르는 강물은 줄어들게 되고, 섬유공장 등으로부터 막대한 오폐수들이 들어오면서 금호강은 서서히 죽어갔다. 시궁창으로 전락한 금호강에서는 그 어떤 생명들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물고기들이 떼죽음하고 악취가 진동을 하는 죽음의 강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것이 1990년대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1991년 낙동강에서 터진 페놀사태로 사회적 대반성이 일면서 강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조금씩 점오염원 관리와 같은 하천정화 활동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서 집중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하수종말처리장들과 2001년 안동의 임하댐과 영천댐이 도수관로로 연결되면서 임하댐의 물이 영천댐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물량에 여유가 생긴 영천댐이 하루 25만9천 톤씩 하천유지용수를 금호강 상류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때마침 섬유산업도 쇠퇴하면서 우후죽순 들어섰던 섬유공장들도 차츰 문을 닫게 되자 금호강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수질지표의 하나인 BOD(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가 수백ppm까지 치솟던 금호강은 그 수치가 차츰 줄어들어 3~4ppm으로 내려갈 정도로 수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고 그에 따라 사라졌던 야생동식물들도 되돌아오게 된다. ‘얼룩새코미꾸리’라는 멸종위기 1급 야생생물은 금호강 대구 구간에선 사라졌던 물고기다. 낙동강이 고향인 이 아름다운 물고기가 다시 금호강에 돌아와 살 정도로 수생태계 또한 개선된 것이다. 심지어 대칭이와 말조개 같은 큰 민물조개와 다슬기, 날도래 같은 저서생물들도 돌아왔다. 이들 저서생물들도 대거 돌아왔다는 것은 금호강의 수생태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증거다. 


‘숨은서식처’ 금호강 팔현습지 

금호강 팔현습지


수질과 수생계만 좋아진 것이 아니다. 육상 생태계 또한 살아났다. 수달과 삵과 같은 포유류와 원앙과 황조롱이 같은 조류들도 돌아왔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의 2022~2023년 생태조사와 3차 전국자연조사 결과에 의하면 어류, 조류, 포유류 합쳐서 모두 141종에 이르는 야생생물들이 금호강에 살고 있다.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하천과 산 가운데 도로가 가로지르면서 하천과 산으로 연결된 생태계가 단절돼 있다. 특히 금호강과 같은 도심하천은 거의 100% 단절돼 있다. 즉 고립된 생태계로 그 안에 인간의 개발 행위를 피해 숨어든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하천이 그들의 서식처요 그들의 집이 된 셈이다. 그런 곳이 금호강이고, 그 금호강에 팔현습지란 아름다운 습지가 있다. 

팔현습지는 대구 3대 습지 중 하나다. 이곳의 중요한 특징은 제봉이라는 야트막한 산과 금호강이 온전히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육상 생태계와 강 생태계가 잇닿아 있는 생태적 온전성이 살아있는 구간으로 금호강 대구 구간에서 거의 유일하다. 팔현습지에 법정보호종 야생생물들이 많이 목격이 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팔현습지에 ‘삽질’이 계획된 것이다. 원래는 수성구청이 ‘금호강 사색이 있는 산책로 조성사업’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이 사업이 국토부 사업으로 넘어갔다가 문재인 정부시절 물관리일원화로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받으면서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팔현습지 경계를 이루는 제방을 슈퍼제방으로 만드는 사업과 산책로 겸 자전거도로로 교량형 보도교 사업이 결합된 개발사업으로 계획됐다. 즉 치수사업(슈퍼제방)과 선심성 토건사업(보도교)이 결합된 사업이란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저 선심성 토건사업인 보도교가 제봉을 따라 건설되면서 제봉과 금호강의 연결성을 심각히 해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보도교가 지나가는 길목에 원시 자연성이 살아있는, 무려 393년 된 왕버들숲이 있다. 보도교 건설로 이 오래된 원시숲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곳 팔현습지는 제봉과 금호강이 온전히 연결된 생태적 온전성 덕분에 많은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수리부엉이 같은 법정보호종만 무려 12종에 이른다. 특히 저 왕버들숲과 제봉의 하식애 구간은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인간의 개발 등의 행위를 피해 마지막으로 숨어들 수 있는 생태 공간이다. 이를 생태학적 용어로 ‘숨은 서식처(cryptic habitat)’라 한다. 문제의 보도교 사업은 이 중요한 생태 공간인 숨은 서식처를 파괴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멸종위기종의 집에 환경부가 삽질을

400년 가까이 팔현습지에서 자리를 지킨 왕버들숲. 공사 구간을 알리는 빨간 깃발이 꽂혀있다


멸종위기종들의 마지막 서식처를 망치는 ‘삽질’을 계획하고 있는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환경부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국가하천 금호강을 관리하고 있고, 그 관리권을 이용해 하천환경정비사업이란 이름으로 팔현습지에 ‘삽질’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예산만 무려 367억 원이다. 이 많은 예산을 들여 생태적 온전성이 살아있는 멸종위기종들의 마지막 은신처인 ‘숨은 서식처’마저 밀어버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스스로 알리려는지 야생의 친구들이 하나둘 목격되기 시작했다. 올해 6월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가 목격되더니, 8월엔 멸종위기종 담비까지 목격됐다. 마치 위기를 느낀 이들 야생의 친구들이 “우리가 이곳에 살고 있다. 삽질을 멈춰라” 웅변하는 것만 같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이 팔현습지에서 목격한 법정보호종만 9종(수달, 삵, 담비, 수리부엉이, 얼룩새코미꾸리, 흰목물떼새, 남생이, 황조롱이, 원앙)에 이른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 후에 자체 실시한 생태조사에서 추가로 밝혀진 3종(큰고니, 큰기러기, 새매)까지 합쳐서 모두 12종에 이르는 법정보호종이 이곳 팔현습지에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런데 2022년 통과된 이 사업 환경영향평가서엔 단 3종의 법정보호종만 기록돼 있다. 환경영향평가가 엉터리로 진행된 것이다. 이에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원회’(이하 ‘금호강 공대위’)는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 문제를 제기했고 급기야 환경영향평가를 엉터리로 통과시켜준 대구지방환경청은 이 사업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검토하게 이른다. 이른바 ‘환경영향평가 거짓부실검토전문위원회’를 개최해 이 사업 환경영향평가의 거짓 부실을 판단하기로 한 것이다. 이 위원회는 오는 11월 초에 열리게 된다. 여기서 문제의 사업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이루어진 것이 밝혀지게 되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해야 하고 이 사업은 착공이 밀리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사업 자체가 불투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참 이상하다. 엉터리로 작성된 환경영향평가를 기반으로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이 사업을 계획하고 있고, 역시 환경부 산하 대구지방환경청이 이 사업의 적절성을 심의하는 이상한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환경부가 ‘삽질’을 계획하고, 그 삽질을 환경부가 역시 평가하는 이상한 구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대구지방환경청의 역할이 큰 이유다. 부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구지방환경청이 올바른 평가를 해주길 바라본다.


마지막 공간마저 빼앗으려 하는가

팔현습지의 주인들. 멸종위기종 수리부엉이, 담비, 남생이,  수달, 원앙


하천은, 특히 도심하천은 고립된 생태계로 마실 물이 있는 특성상 이곳에 야생동물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고 그렇게 고립된 생태계를 이룬 채 이곳에서 많은 야생동물이 살아가고 있다. 즉 하천은 이들 야생동물들의 서식처요 그들의 집인 것이다. 인간 개발을 피해 숨어든 마지막 공간이 하천인 것인데, 인간은 지금 그곳마저 내어놓으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천환경정비사업’이란 이름으로 혹은 ‘고향의 강 정비사업’이란 이름으로 야생동물의 집에 ‘삽질’을 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화두는 공존이다. 특히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존에 이르기 위해선 인간이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즉 꼭 필요한 개발은 해야 한다. 그러나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인간 편의를 위해 기획된 개발 사업들은 지양돼야 한다. 특히 하천에서는 말이다. 이것이 공존의 룰이다. 팔현습지에 계획된 선심성 토건사업인 보도교 사업은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니다. 안 해도 문제가 없는 사업이다. 즉 대안 노선으로 강촌햇살교란 다리를 이용해 강 건너편으로 이동을 충분히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회 길이 있는데도 원래 길도 없었던 산지 절벽 하식애 앞으로 굳이 교량을 놓아가면서 탐방로를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멸종위기종들을 내쫓으면까지 말이다. 이것이 지나친 인간의 욕심으로 공존의 질서를 깨트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팔현습지에서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벌이는 ‘삽질’은 중단돼야 한다. 환경부의 결단이 시급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글 |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사진제공 | 대구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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