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도 도토리나무도 없다고, 참이야?

2023-12-14

봄의 숲이 화려함으로 물들어 가는 시기라면, 가을은 풍요로움이 깊어지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가을은 단풍의 화려함도 있습니다만,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많은 동물을 먹여 살리는 ‘도토리나무’의 풍요로움에 미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들

파주 덕진산성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여럿 있지만 사실 도토리나무는 없습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요? 풀어서 설명하자면,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는 있지만, 식물 이름 중에는 도토리나무가 없다는 뜻입니다. 참나무과 식물의 열매를 주로 도토리라고 부르는데, 참나무라는 이름을 갖는 식물도 없습니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해 있을 뿐이죠. 서양에서 말하는 오크(Oak)가 이 참나무를 말합니다. 이름에 ‘참’이 들어간 생물은 많습니다. 여기서 참이란 ‘진짜’를 말하는 것으로 으뜸이거나 대표적인 것에 접두사로 붙는 말입니다. 

즉, 예로부터 참나무는 쓰임새가 많은 나무였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 땔감이나 농기구를 만들 때 굉장히 유용한 식물이었으며, 나무가 생산해 내는 열매는 어려운 시기에 사람과 숲을 먹여 살리는 구황작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서양에서는 술통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술에서 나는 은은한 참나무 향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숲의 극상림(안정화된 숲의 마지막 단계)에서 주요 수종은 이런 참나무입니다만, 참나무가 잡목으로 취급받아 베어져 나가는 일이 잦아 안타깝습니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는 다양합니다. 낙엽수인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를 비롯하여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그리고 남쪽에서 상록으로 자라는 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졸가시나무, 붉가시나무 등이 있습니다. 참나무속은 아니지만 모밀잣밤나무속의 구실잣밤나무의 열매도 도토리로 부릅니다. 떫은맛이 없어 생으로도 먹을 수 있는 열매를 가진 구실잣밤나무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가로수였으나 최근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도토리나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도토리나무는 크게 여섯 종류입니다. 

갈참나무는 갈나무와 참나무의 합성된 이름으로 갈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 역시 없지만, 색이 변해 떨어지는 잎을 가진 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장 흔하게 분포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떡을 찔 때 시루 바닥에 깔았다는 떡갈나무는 잎 뒷면에 털이 많아 일본에서 떡을 싸는 용도로 쓰였다고 합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떡갈나무 잎의 향이 떡에 배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신발 밑창에 깔았다는 신갈나무의 잎은 잘 찢어지는 탓에 실제로 쓰였는지는 의문입니다. ‘식물명 유래집’에서 밝힌 것처럼 신발 한 켤레를 의미하거나, 혹은 흙에 찍힌 발의 모양을 닮아 이름이 붙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듯합니다. 

잎이 작아 졸병인 졸참나무는 열매의 크기도 작고 길쭉한 편입니다. 

밤나무와 비슷하게 잎이 좁고 긴 상수리나무와 비교적 큰 열매가 열리는 굴참나무도 대표적인 도토리나무입니다. 간혹 상수리나무 이름 유래에 대해서 임금께서 피난하실 때 수라상에 올라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을 듣기도 하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상수리나무는 “상실”이 열리는 나무를 뜻하는 말이고, 상실은 상수리나무의 열매를 말합니다. 다만 상수리와 굴참나무는 다른 종류의 도토리나무와 잎의 형태도 다르고 도토리도 비교적 크고 굵습니다. 

요즘은 크게 구분 짓지는 않습니다만, 아직 연세 많은 노인들은 갈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의 열매는 도토리라 부르고,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의 열매는 상수리라 하여 도토리 가루를 만들 때 두 종류의 열매를 분리하기도 합니다. 옛사람들은 도토리와 상수리를 다른 열매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갈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는 매우 다양한 교잡종이 생기지만 상수리, 굴참나무와는 교잡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거론했던 가시나무나 구실잣밤나무의 열매도 도토리묵을 만드는 가루로 쓰인다고 합니다. 


도토리는 숲에 양보하세요

왼쪽부터 굴참나무 열매, 갈참나무 열매, 신갈나무 열매, 졸참나무 열매


도토리묵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간단합니다. 도토리 가루와 물을 1:5, 혹은 1:6 정도의 비율로 잘 개어 소금간을 살짝 하고 불 위에 올려 잘 젓다가 기포가 터지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들기름을 살짝 넣어 뜸을 들인 후 틀에 부어 식히면 끝입니다. 하지만 가루를 만드는 과정은 고단합니다. 도토리는 그냥 먹으면 탄닌 성분 때문에 떫은맛이 강해 갈아낸 가루를 물에 섞어 쓴맛을 빼고 말리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합니다. 또한 도토리 속 대부분에 애벌레가 들어있어서 일일이 쪼개 말리는 일도 있습니다.

지금은 대체로 숲이 풍요로워 도토리를 구하는 것이 수월해진 편이지만, 구황작물로 이용되던 시기에는 도토리를 어떻게 구할 수 있었을까요? 연료로 나무를 쓰던 시절에는 가까운 산에 나무가 귀했던 터라 도토리를 구하려면 먼 산으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깁니다. 다행스럽게도 상수리나무는 깊은 산에 살기보다 사람 가까이 사는 나무여서 상수리 열매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이런 탓에 마을 가까이 상수리나무는 베지 않고 놔뒀다고 합니다.

도토리나무는 무수히 많은 도토리를 만들지만, 그중 실제로 싹을 틔우는 도토리는 극히 일부입니다. 도토리나무는 아주 작은 확률로 싹이 트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많은 수의 열매를 만들어 냅니다. 덕분에 숲은 도토리나무의 풍요로움으로 생태계를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도토리 하면 떠오르는 작은 친구, 도토리를 두고 인간과 경쟁해야 하는 다람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상수리나무 어원의 오해처럼 이 작은 친구도 많은 오해를 받는 듯합니다. 가을철에 볼 주머니가 터질 듯 많은 도토리를 모아 여기저기 묻어두는 다람쥐는 머리가 나빠서 그 도토리를 다 캐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있을까요? 아직 묻어둔 도토리를 찾지 못해서 굶어 죽은 다람쥐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로 겨울철 활동이 없거나 가끔 잠에서 깨어 먹이 활동을 하더라도, 잠을 자는 굴속이나 그 가까이 먹이를 저장하기 때문에 먹이를 못 찾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외국의 경우 다람쥐가 이곳저곳에 도토리를 묻어두는 습성이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다람쥐도 일부 먹이를 땅에 묻기는 해도 인간처럼 탐욕스럽지 않아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취하게 됩니다. 그 덕분에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도토리는 싹을 틔우고 숲은 계속해서 건강할 수 있습니다.


글·사진 | 김경훈 자연탐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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