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포늪의 가을 아침
“와그작” 소리 나게 사과대추를 깨물었다. 단물이 목을 적셨다. 종일 다섯 개의 늪을 다니며 촬영한 뒤였다. 발은 무거웠고 우리는 지친 상태였다. 우포늪생태관 주차장에 장터를 열었던 농민들이 매대를 접고 철시하는 가운데 대추 한 봉 사들고 온 길이다. 제2관찰대에서 지는 노을을 촬영하고 그날 취재를 마감할 참이었다. 막상 관찰대에 올랐지만 노을은 기대 이하였다. 지는 해의 빛이 돕지 않는 풍경은 심심했다. 마지막 한 컷에 대한 기대를 접는 순간, 놓아버린 풍선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슬쩍 바람 불고 땀이 식었다. 밀려오는 어둠에 늪이 젖어가고 서로 떨어져 있던 새들이 조금씩 모여들었다. 이내 한 덩이가 되어 그들은 밤의 무채색 속으로 사라져갔다. 우포늪의 가을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소목나루의 이마배(거룻배)
1억4000만 년 전 한반도와 더불어 우포늪(소벌)이 생성됐다. 늪 주변 퇴적암층에 공룡 발자국, 곤충 화석이 남아있다. 기원전 4000년경 빙하기가 끝나고 낙동강이 흐를 때 우포늪은 낙동강의 배후습지가 됐다. 우포늪은 인근 네 개 늪과 잇달아 있다. 목포늪(나무벌), 사지포늪(모래벌), 쪽지벌, 산밖벌(복원습지)까지 합한 다섯 늪의 총면적은 25만5000㎡에 이른다. 우포늪 면적이 전체 면적의 3분의 1이 넘는 8547㎡에 달하는데 국내 최대 내륙자연습지이다. 우포늪은 1998년 람사르협약 등록습지가 됐고 우포늪 일원은 2018년 세계 최초의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됐다.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이 우포늪으로 흘러드는데 우포늪을 거쳐 서남쪽 쪽지벌과 산밖벌을 지나 낙동강으로 나아간다. 우포를 중심으로 동쪽의 사지포, 북쪽의 목포, 남동쪽의 쪽지벌과 복원습지인 산밖벌이 연결된다. 우포 서쪽이 쪽지벌과 연결되는데 그 사이에 사초와 버들 군락지가 놓여 있다. 우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랑’이 그 군락지에서 뻗어 나와 동쪽 토평천 유입역의 잠수교 앞까지 이른다. 그 이랑은 1970년대 농지 개발을 위해 쌓았던 제방의 흔적인데, 시간과 자연의 생명력이 우포의 한 풍경으로 바꿔 놓았다.

쪽지벌에서 토평천 유입지 쪽으로 길게 뻗은 옛 제방의 흔적은 이제 우포의 한 풍경이 됐다. 그 풍경 위에도 가을이 왔다
1200여 종의 생물들이 습지를 지키는 농어업에 종사하는 인근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잎을 피우는 식물인 가시연꽃을 비롯해 800여 종의 수생식물과 수목이 서식하고 있는데 철마다 다른 새무리가 날아온다. 우포와 인근 습지들은 큰고니와 노랑부리저어새 같은 겨울철새들, 물총새와 물꿩 같은 여름철새들, 논병아리와 딱새, 수리부엉이 같은 텃새들, 길 가다 들리는 댕기물떼새나 청다리도요, 꺅도요 같은 나그네새들을 비롯한 조류 200여 종의 삶터다. 창녕군은 우포따오기복원센터를 통해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따오기(천연기념물 198호) 복원사업을 진행중인데 증식에 성공해 따오기를 자연방사하고 있다. 담비나 삵, 수달 같은 멸종위기 포유류들도 우포늪의 식구들이다. 가물치, 참붕어, 강준치, 잉어, 메기 같은 민물어류와 논우렁, 귀이빨대칭이 같은 패각류도 살아간다. 알을 등에 지고 다니는 물자라를 비롯해 꼬마줄물방개 같은 수서곤충들도 함께 살고 있다. 조류 외의 서식 동물종은 200여 종에 이른다. 우포 그리고 우포와 벗한 습지들은 생물다양성이란 말이 현실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사지포에서 바라 본 우포늪 전경

우포늪의 식생을 대표하는 가시연꽃, 큰 잎은 2m까지 자란다. 수면을 가득 덮는 여름 우포의 시그니처 풍경을 연출한다 Ⓒ창녕군청

창녕군의 복원사업으로 수가 늘어나 자연방생된 따오기 Ⓒ창녕군청
자줏빛 자운영 꽃그림자 속 겨울철새들의 울음소리 잦아들고, 초록잎 넓게 펼친 가시연꽃의 장려한 여름을 지나 물억새 꽃술 바람에 날리는 가을이 되면 옛 가야를 일으킨 두 힘, 철과 쌀의 고장답게 우포 인근 들판에서는 벼들이 누런 고개를 숙인다. 나날이 겨울새들의 도래가 이어지고 마침내 수천수만의 기러기와 오리들이 구름처럼 날아오른다. 비행하는 그들 아래 늪지에 발 담근 채 부리 휘저어 먹이를 찾는 노랑부리저어새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이사이 안개 피어오르는 새벽 늪으로 대나무 장대 짚어 이마배(작은 거룻배) 밀고 가는 어부들이 수묵화가 되는 풍경도 자리할 것이다. 그 풍경이 햇살 속에서 색채화가 되는 순간을 부디 경험해 볼 일이다. 종의 차이를 넘어서는 생태적 공감의 경험은 ‘사람으로서의 나’에 대한 통찰의 기회를 주고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동기가 된다. 습지는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자주 내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우포 소요행(逍遙行)을 권한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사진 | 이성수 기자
※ 이 기사는 국립생태원 습지센터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우포늪의 가을 아침
“와그작” 소리 나게 사과대추를 깨물었다. 단물이 목을 적셨다. 종일 다섯 개의 늪을 다니며 촬영한 뒤였다. 발은 무거웠고 우리는 지친 상태였다. 우포늪생태관 주차장에 장터를 열었던 농민들이 매대를 접고 철시하는 가운데 대추 한 봉 사들고 온 길이다. 제2관찰대에서 지는 노을을 촬영하고 그날 취재를 마감할 참이었다. 막상 관찰대에 올랐지만 노을은 기대 이하였다. 지는 해의 빛이 돕지 않는 풍경은 심심했다. 마지막 한 컷에 대한 기대를 접는 순간, 놓아버린 풍선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슬쩍 바람 불고 땀이 식었다. 밀려오는 어둠에 늪이 젖어가고 서로 떨어져 있던 새들이 조금씩 모여들었다. 이내 한 덩이가 되어 그들은 밤의 무채색 속으로 사라져갔다. 우포늪의 가을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소목나루의 이마배(거룻배)
1억4000만 년 전 한반도와 더불어 우포늪(소벌)이 생성됐다. 늪 주변 퇴적암층에 공룡 발자국, 곤충 화석이 남아있다. 기원전 4000년경 빙하기가 끝나고 낙동강이 흐를 때 우포늪은 낙동강의 배후습지가 됐다. 우포늪은 인근 네 개 늪과 잇달아 있다. 목포늪(나무벌), 사지포늪(모래벌), 쪽지벌, 산밖벌(복원습지)까지 합한 다섯 늪의 총면적은 25만5000㎡에 이른다. 우포늪 면적이 전체 면적의 3분의 1이 넘는 8547㎡에 달하는데 국내 최대 내륙자연습지이다. 우포늪은 1998년 람사르협약 등록습지가 됐고 우포늪 일원은 2018년 세계 최초의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됐다.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이 우포늪으로 흘러드는데 우포늪을 거쳐 서남쪽 쪽지벌과 산밖벌을 지나 낙동강으로 나아간다. 우포를 중심으로 동쪽의 사지포, 북쪽의 목포, 남동쪽의 쪽지벌과 복원습지인 산밖벌이 연결된다. 우포 서쪽이 쪽지벌과 연결되는데 그 사이에 사초와 버들 군락지가 놓여 있다. 우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랑’이 그 군락지에서 뻗어 나와 동쪽 토평천 유입역의 잠수교 앞까지 이른다. 그 이랑은 1970년대 농지 개발을 위해 쌓았던 제방의 흔적인데, 시간과 자연의 생명력이 우포의 한 풍경으로 바꿔 놓았다.
쪽지벌에서 토평천 유입지 쪽으로 길게 뻗은 옛 제방의 흔적은 이제 우포의 한 풍경이 됐다. 그 풍경 위에도 가을이 왔다
1200여 종의 생물들이 습지를 지키는 농어업에 종사하는 인근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잎을 피우는 식물인 가시연꽃을 비롯해 800여 종의 수생식물과 수목이 서식하고 있는데 철마다 다른 새무리가 날아온다. 우포와 인근 습지들은 큰고니와 노랑부리저어새 같은 겨울철새들, 물총새와 물꿩 같은 여름철새들, 논병아리와 딱새, 수리부엉이 같은 텃새들, 길 가다 들리는 댕기물떼새나 청다리도요, 꺅도요 같은 나그네새들을 비롯한 조류 200여 종의 삶터다. 창녕군은 우포따오기복원센터를 통해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따오기(천연기념물 198호) 복원사업을 진행중인데 증식에 성공해 따오기를 자연방사하고 있다. 담비나 삵, 수달 같은 멸종위기 포유류들도 우포늪의 식구들이다. 가물치, 참붕어, 강준치, 잉어, 메기 같은 민물어류와 논우렁, 귀이빨대칭이 같은 패각류도 살아간다. 알을 등에 지고 다니는 물자라를 비롯해 꼬마줄물방개 같은 수서곤충들도 함께 살고 있다. 조류 외의 서식 동물종은 200여 종에 이른다. 우포 그리고 우포와 벗한 습지들은 생물다양성이란 말이 현실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사지포에서 바라 본 우포늪 전경
우포늪의 식생을 대표하는 가시연꽃, 큰 잎은 2m까지 자란다. 수면을 가득 덮는 여름 우포의 시그니처 풍경을 연출한다 Ⓒ창녕군청
창녕군의 복원사업으로 수가 늘어나 자연방생된 따오기 Ⓒ창녕군청
자줏빛 자운영 꽃그림자 속 겨울철새들의 울음소리 잦아들고, 초록잎 넓게 펼친 가시연꽃의 장려한 여름을 지나 물억새 꽃술 바람에 날리는 가을이 되면 옛 가야를 일으킨 두 힘, 철과 쌀의 고장답게 우포 인근 들판에서는 벼들이 누런 고개를 숙인다. 나날이 겨울새들의 도래가 이어지고 마침내 수천수만의 기러기와 오리들이 구름처럼 날아오른다. 비행하는 그들 아래 늪지에 발 담근 채 부리 휘저어 먹이를 찾는 노랑부리저어새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이사이 안개 피어오르는 새벽 늪으로 대나무 장대 짚어 이마배(작은 거룻배) 밀고 가는 어부들이 수묵화가 되는 풍경도 자리할 것이다. 그 풍경이 햇살 속에서 색채화가 되는 순간을 부디 경험해 볼 일이다. 종의 차이를 넘어서는 생태적 공감의 경험은 ‘사람으로서의 나’에 대한 통찰의 기회를 주고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동기가 된다. 습지는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자주 내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우포 소요행(逍遙行)을 권한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사진 | 이성수 기자
※ 이 기사는 국립생태원 습지센터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