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어느 한 도시에서 유독 암 발병률이 전국 평균의 350배에 달한다고 생각해보자. 암 발병률이 급증한 원인을 자발적으로 살펴본 주민들이 특정 이유를 지목하고 주장한다. 문제가 공론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항의를 이어가자 이 도시는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암 환자 수십 명을 찾아가 암 발병 원인을 조사했다. 하지만, 구체적 원인은 찾지 못한 채로 한결같이 ‘최근 부쩍 높아진 자외선지수와 미세먼지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자연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원인조사자들은 특정 암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제품(오직 이 마을에서만 쓰는)을 생산하는 기업의 소속 전문가 또는 연관된 사람들이며, 이 기업의 소유는 시이다. 물론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시의 직원도 함께 조사에 참여했다.
산림청과 치산기술협회
창원 쌀재터널 산사태 지역. 급경사 사면에 임도를 조성하여, 사면 상부로는 절토가, 하부로는 석축쌓기가 진행되었다. 쌓은 석축이 무너지면서 산사태가 일어났지만, 결론은 폭우에 의한자연재해다 ⓒ홍석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라면 과연 이 조사 결과가 ‘객관적’이고, 급증한 암의 발병 원인이 ‘자연현상’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를 섭외하여 원점에서 새롭게 조사를 진행하라는 주장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과학적 결과도 아닌, 암 환자를 방문하여 외관을 살펴본 것만으로 이런 추측성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신뢰의 비율을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당연히 이런 결론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최근 ‘기후위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인류의 안일한 행태를 막고자 선택된 단어가 오히려 위기를 조장한 행위들에 면죄부를 주는 용어로 악용되고 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재난도 그 원인을 면밀하게 따지지 않고 모두 ‘기후위기’ 때문이라는 만병통치약 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재난의 원인을 자연으로 돌리는, 왜곡을 교묘하게 정당화하고 있다.
제방이 무너지고, 교량이 떠내려가고, 산에 쌓아 올린 석축이 무너져내려 마을을 덮쳐도 모두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한 자연재해로 귀결된다. 그 어느 때보다 길고 강력한 장마를 거친 올해 여름, 우리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산사태에 떨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사태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집과 마을이 초토화되었다. 최근 커다란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실종자 수색과정 중 목숨을 잃은 해병대 장병의 문제 발단 또한 산사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이 발생한 산사태는 모두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 때문일까?
산사태의 원인을 조사하는 기관은 산림청이다. 물론 치산기술협회에 용역을 주어 진행하지만, 치산기술협회가 산림청 산하의 특수기관이며 해당 조사에 산림청 직원이 동행하니 한 기관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치산기술협회의 협회장과 고위직을 살펴보면 오히려 산림청의 산하기관이라기보다는 상위기관으로 보일 정도다. 치산기술협회는 2008년 창립된 후 곧바로 산림청 특수법인으로 인가된다. 특수법인 인가 이전인 초대 협회장을 제외하고, 특수법인이 된 후 2대 협회장부터 지금까지는 모두 전직 산림청장이 협회장을 맡았다(3대 협회장 김남균(2018~2022)은 유일하게 산림청장이 아닌, 산림청 차장 출신으로 협회장이 되었는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긴 시간 동안의 산림청장은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인 대학교수가 역임했다. 그 영향으로 판단된다). 결국 산림청장 시절 임도사업과 벌목사업, 숲 가꾸기 사업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그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한 책임자로서 관련 재난에 대해서 객관적 평가를 진행할 것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신뢰를 현저히 잃게 된다. 논외로 일련의 흐름에서 역대 협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현 산림청장을 맡고 있는 남성현 청장도 은퇴 후 이 자리로 갈지는 유심히 지켜볼 관전포인트 중 하나이다.
임도 산사태 발생 확률 330배 넘어
산사태가 발생한 쌀재터널 인근 야산. 각진 돌은 임도에 쌓은 석축으로, 작은 돌은 무너지면 같이 내려온 돌로 보인다 ⓒ홍석환
산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7월 31일자 동아일보 기사(‘임도 전체가 아닌 부실임도가 문제다’)에 중요한 조사자료가 하나 인용된다. 올해 7월 26일까지 발생한 산사태는 총 890건이고 이 중 임도에서 발생한 것은 316건으로 총산사태의 35.5%에 이른다는 자료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해당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일부 부실하게 조성됐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임도가 산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건 맞지만 모든 임도가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위 자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절대 산림청 관계자의 인터뷰와 같이 임도가 문제가 아니라는 의도로 해석될 수 없는 자료이기에 그렇다. 임도가 우리나라 산림에서 차지하는 면적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펴보면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최근 조성하는 산불 진화 임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조성되는 임도의 폭은 3m 전후로 조성된다. 현재 우리나라에 조성된 임도의 길이는 약 2만5000km이다. 이 길이의 임도가 차지하는 면적 비율은 우리나라 전체 산림의 0.1%를 조금 넘는다. 결국, 산림 면적의 0.1%에서 35.5%의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니 나머지 99.9%의 산림에서 발생한 산사태와 비교하였을 때, 발생 확률은 무려 350배가 넘는 셈이 된다. 그리고, 관계자의 주장과는 달리 임도에서 발생한 많은 산사태들이 관리되지 않은 임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최근 조성된 신규 임도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 또한 집중해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 유독 임도에서 이렇게 많은 산사태가 발생할까? ‘기후위기’로 인한 국지성 호우가 신기하게도 임도에만 내리는 것일까? 아니면, 산사태에 취약한 곳만 골라서 임도를 조성하는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숲은 연약지반을 지탱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 뿌리만이 아니라 숲의 잎과 줄기 또한 산사태를 막는다. 임도는 필연적으로 숲의 나무를 베어낸 후, 안정되어 있던 토양을 자르고 쌓았기 때문에 산사태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료: 키즈현대 홈페이지
숲속의 나무들은 산사태를 예방한다. 산림청 홈페이지에도 자세하게 나와 있다. 먼저, 폭우에 의한 지표 유출수를 막는다. 폭우가 한꺼번에 토양에 떨어지는 것을 나뭇잎과 잔가지가 막아 빗물이 흘러내리는 시간을 지연시켜 산사태를 막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뿌리로 토양을 단단하게 잡고 있기 때문에 역시 산사태를 막는다. 이러한 효과를 산림청은 숲의 ‘우산효과’, ‘말뚝효과’, ‘그물효과’라는 이름을 붙여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임도는 이런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오랜 시간 안정된 토양을 한쪽은 깎고, 다른 한쪽은 쌓아서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깎은 곳은 상부의 흙을 지탱하는 부분이 사라졌기 때문에 구조적 안정성이 크게 훼손되고, 쌓은 곳은 기존 토양과는 달리 안정화가 안 되었기에 산사태에 취약해진다. 하부 토양은 기존 토양에서 자라던 나무 또한 사라지기 때문에 기존 토양 또한 숲의 산사태 예방 효과가 사라지게 되니, 상부보다 2중으로 취약해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임도를 조성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물을 한 곳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고, 모은 물을 유출하는 유출구 주변은 늘 큰 위험을 안게 되어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산림에 조성한 임도는 다른 산림에 비해 무려 350배나 많은 산사태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임도보다 산사태를 더욱 크게 유발하는 사업이 벌목임은 당연해진다. 대규모 면적에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던 나무를 모두 베어내니 최소 몇 년간은 산사태에 취약한 상태로 그대로 노출된다. 결국, 벌목지와 임도를 제외하고 자연적으로 일정 기간 안정된 숲에서 발생하는 산사태는 비율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음은 자명하다. 이렇기에 산사태 지역 십중팔구가 임도와 벌목을 포함해 인위적 산림훼손이 진행된 지역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산림훼손을 유발하는 사업은 산림청의 사업만이 전부는 아니다. 친환경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산림을 훼손하는 산지태양광이나 산지풍력 또한 똑같이 산사태 빈도를 크게 높이는 사업임을 인지해야만 한다.
산사태 원인조사에 제3의 전문가 참여해야
충주시 임도 산사태 지역 복원현장. 불안정한 임도 사면에 커다란 돌들을 쌓아 올렸지만, 또다시 쉽게 무너져내렸다. 엉뚱한 곳에 세금이 쓰이고, 그 세금은 또 다른 재앙으로 우리를 위협한다 사진 제공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
자연이 40억 년 이상의 오랜 시간 동안 지구환경에 적응하고 안정시킨 숲을 갓 지구에 나타난 인간이 파헤치며 내세우는 논리가 ‘숲을 가꾼다’는 말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해 주지 않으면 자연은 황폐화된다고 하는 말을 염치도 없이 하고 있다. 자연 속의 생물들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끊임없는 경쟁에 놓여있고, 그 과정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팽팽한 균형을 이룬다. 그러면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진화하게 된다. 이것이 공진화이다. 늘 안정적이지는 않으니, 어느 한 곳에서 그 균형이 깨어지게 되면 폭발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그 환경에 적합한 최적의 균형을 스스로 찾아간다. 그래서 ‘스스로 그러한’ 것이 자연이다.
지금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필자도, 그리고 그 누구도 임도가 우리나라 모든 산사태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 핵심은 아무리 이상기후로 인해 강우강도가 강해졌다 해도, 아무리 국지적 폭우가 잦아졌다 해도, 그게 특정 시설을 강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드시 우리나라 산림에서 임도가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원인조사의 결과이다. 평균보다 350배나 많은 산사태가 발생함에도 언제나 조사 결과는 폭우에 의한 자연재해로 귀결되는 이유를 묻는 것이다. 급경사 사면의 토양을 깎아내리고 쌓아 올린 석축이 그대로 무너져 산 아래까지 흘러 내려간 산사태도 폭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결론이 나고, 임도를 만들고 배수로를 조성한 곳에서 우수유출구 주변의 산림사면이 통째로 무너진 산사태도 폭우 때문이라 결론을 낸다.
350배나 많은 산사태가 유발되는 시설을 조성한 곳도 산림청이고, 산사태의 원인을 조사하는 곳도 산림청이며, 이 산사태를 복구하는 곳도 산림청이다. 국민을 위해 세금을 집행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라 산림청의, 산림청에 의한, 산림청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기관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없다. 아니, 오히려 재난위험에 떨어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로 실험 대상이 된 건 아닌가 한다.
산사태 원인조사를 산림청 관계자가 아닌 제3의 전문가가 진행하는 것은 산림청 입장에서도 국민들이 지니는 의구심을 풀 최선의 방법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오비이락(烏飛梨落)’식의 주장은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다.
글 |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우리나라 어느 한 도시에서 유독 암 발병률이 전국 평균의 350배에 달한다고 생각해보자. 암 발병률이 급증한 원인을 자발적으로 살펴본 주민들이 특정 이유를 지목하고 주장한다. 문제가 공론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항의를 이어가자 이 도시는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암 환자 수십 명을 찾아가 암 발병 원인을 조사했다. 하지만, 구체적 원인은 찾지 못한 채로 한결같이 ‘최근 부쩍 높아진 자외선지수와 미세먼지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자연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원인조사자들은 특정 암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제품(오직 이 마을에서만 쓰는)을 생산하는 기업의 소속 전문가 또는 연관된 사람들이며, 이 기업의 소유는 시이다. 물론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시의 직원도 함께 조사에 참여했다.
산림청과 치산기술협회
창원 쌀재터널 산사태 지역. 급경사 사면에 임도를 조성하여, 사면 상부로는 절토가, 하부로는 석축쌓기가 진행되었다. 쌓은 석축이 무너지면서 산사태가 일어났지만, 결론은 폭우에 의한자연재해다 ⓒ홍석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라면 과연 이 조사 결과가 ‘객관적’이고, 급증한 암의 발병 원인이 ‘자연현상’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를 섭외하여 원점에서 새롭게 조사를 진행하라는 주장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과학적 결과도 아닌, 암 환자를 방문하여 외관을 살펴본 것만으로 이런 추측성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신뢰의 비율을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당연히 이런 결론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최근 ‘기후위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인류의 안일한 행태를 막고자 선택된 단어가 오히려 위기를 조장한 행위들에 면죄부를 주는 용어로 악용되고 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재난도 그 원인을 면밀하게 따지지 않고 모두 ‘기후위기’ 때문이라는 만병통치약 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재난의 원인을 자연으로 돌리는, 왜곡을 교묘하게 정당화하고 있다.
제방이 무너지고, 교량이 떠내려가고, 산에 쌓아 올린 석축이 무너져내려 마을을 덮쳐도 모두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한 자연재해로 귀결된다. 그 어느 때보다 길고 강력한 장마를 거친 올해 여름, 우리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산사태에 떨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사태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집과 마을이 초토화되었다. 최근 커다란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실종자 수색과정 중 목숨을 잃은 해병대 장병의 문제 발단 또한 산사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이 발생한 산사태는 모두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 때문일까?
산사태의 원인을 조사하는 기관은 산림청이다. 물론 치산기술협회에 용역을 주어 진행하지만, 치산기술협회가 산림청 산하의 특수기관이며 해당 조사에 산림청 직원이 동행하니 한 기관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치산기술협회의 협회장과 고위직을 살펴보면 오히려 산림청의 산하기관이라기보다는 상위기관으로 보일 정도다. 치산기술협회는 2008년 창립된 후 곧바로 산림청 특수법인으로 인가된다. 특수법인 인가 이전인 초대 협회장을 제외하고, 특수법인이 된 후 2대 협회장부터 지금까지는 모두 전직 산림청장이 협회장을 맡았다(3대 협회장 김남균(2018~2022)은 유일하게 산림청장이 아닌, 산림청 차장 출신으로 협회장이 되었는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긴 시간 동안의 산림청장은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인 대학교수가 역임했다. 그 영향으로 판단된다). 결국 산림청장 시절 임도사업과 벌목사업, 숲 가꾸기 사업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그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한 책임자로서 관련 재난에 대해서 객관적 평가를 진행할 것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신뢰를 현저히 잃게 된다. 논외로 일련의 흐름에서 역대 협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현 산림청장을 맡고 있는 남성현 청장도 은퇴 후 이 자리로 갈지는 유심히 지켜볼 관전포인트 중 하나이다.
임도 산사태 발생 확률 330배 넘어
산사태가 발생한 쌀재터널 인근 야산. 각진 돌은 임도에 쌓은 석축으로, 작은 돌은 무너지면 같이 내려온 돌로 보인다 ⓒ홍석환
산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7월 31일자 동아일보 기사(‘임도 전체가 아닌 부실임도가 문제다’)에 중요한 조사자료가 하나 인용된다. 올해 7월 26일까지 발생한 산사태는 총 890건이고 이 중 임도에서 발생한 것은 316건으로 총산사태의 35.5%에 이른다는 자료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해당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일부 부실하게 조성됐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임도가 산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건 맞지만 모든 임도가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위 자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절대 산림청 관계자의 인터뷰와 같이 임도가 문제가 아니라는 의도로 해석될 수 없는 자료이기에 그렇다. 임도가 우리나라 산림에서 차지하는 면적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펴보면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최근 조성하는 산불 진화 임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조성되는 임도의 폭은 3m 전후로 조성된다. 현재 우리나라에 조성된 임도의 길이는 약 2만5000km이다. 이 길이의 임도가 차지하는 면적 비율은 우리나라 전체 산림의 0.1%를 조금 넘는다. 결국, 산림 면적의 0.1%에서 35.5%의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니 나머지 99.9%의 산림에서 발생한 산사태와 비교하였을 때, 발생 확률은 무려 350배가 넘는 셈이 된다. 그리고, 관계자의 주장과는 달리 임도에서 발생한 많은 산사태들이 관리되지 않은 임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최근 조성된 신규 임도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 또한 집중해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 유독 임도에서 이렇게 많은 산사태가 발생할까? ‘기후위기’로 인한 국지성 호우가 신기하게도 임도에만 내리는 것일까? 아니면, 산사태에 취약한 곳만 골라서 임도를 조성하는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숲은 연약지반을 지탱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 뿌리만이 아니라 숲의 잎과 줄기 또한 산사태를 막는다. 임도는 필연적으로 숲의 나무를 베어낸 후, 안정되어 있던 토양을 자르고 쌓았기 때문에 산사태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료: 키즈현대 홈페이지
숲속의 나무들은 산사태를 예방한다. 산림청 홈페이지에도 자세하게 나와 있다. 먼저, 폭우에 의한 지표 유출수를 막는다. 폭우가 한꺼번에 토양에 떨어지는 것을 나뭇잎과 잔가지가 막아 빗물이 흘러내리는 시간을 지연시켜 산사태를 막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뿌리로 토양을 단단하게 잡고 있기 때문에 역시 산사태를 막는다. 이러한 효과를 산림청은 숲의 ‘우산효과’, ‘말뚝효과’, ‘그물효과’라는 이름을 붙여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임도는 이런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오랜 시간 안정된 토양을 한쪽은 깎고, 다른 한쪽은 쌓아서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깎은 곳은 상부의 흙을 지탱하는 부분이 사라졌기 때문에 구조적 안정성이 크게 훼손되고, 쌓은 곳은 기존 토양과는 달리 안정화가 안 되었기에 산사태에 취약해진다. 하부 토양은 기존 토양에서 자라던 나무 또한 사라지기 때문에 기존 토양 또한 숲의 산사태 예방 효과가 사라지게 되니, 상부보다 2중으로 취약해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임도를 조성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물을 한 곳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고, 모은 물을 유출하는 유출구 주변은 늘 큰 위험을 안게 되어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산림에 조성한 임도는 다른 산림에 비해 무려 350배나 많은 산사태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임도보다 산사태를 더욱 크게 유발하는 사업이 벌목임은 당연해진다. 대규모 면적에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던 나무를 모두 베어내니 최소 몇 년간은 산사태에 취약한 상태로 그대로 노출된다. 결국, 벌목지와 임도를 제외하고 자연적으로 일정 기간 안정된 숲에서 발생하는 산사태는 비율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음은 자명하다. 이렇기에 산사태 지역 십중팔구가 임도와 벌목을 포함해 인위적 산림훼손이 진행된 지역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산림훼손을 유발하는 사업은 산림청의 사업만이 전부는 아니다. 친환경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산림을 훼손하는 산지태양광이나 산지풍력 또한 똑같이 산사태 빈도를 크게 높이는 사업임을 인지해야만 한다.
산사태 원인조사에 제3의 전문가 참여해야
충주시 임도 산사태 지역 복원현장. 불안정한 임도 사면에 커다란 돌들을 쌓아 올렸지만, 또다시 쉽게 무너져내렸다. 엉뚱한 곳에 세금이 쓰이고, 그 세금은 또 다른 재앙으로 우리를 위협한다 사진 제공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
자연이 40억 년 이상의 오랜 시간 동안 지구환경에 적응하고 안정시킨 숲을 갓 지구에 나타난 인간이 파헤치며 내세우는 논리가 ‘숲을 가꾼다’는 말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해 주지 않으면 자연은 황폐화된다고 하는 말을 염치도 없이 하고 있다. 자연 속의 생물들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끊임없는 경쟁에 놓여있고, 그 과정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팽팽한 균형을 이룬다. 그러면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진화하게 된다. 이것이 공진화이다. 늘 안정적이지는 않으니, 어느 한 곳에서 그 균형이 깨어지게 되면 폭발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그 환경에 적합한 최적의 균형을 스스로 찾아간다. 그래서 ‘스스로 그러한’ 것이 자연이다.
지금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필자도, 그리고 그 누구도 임도가 우리나라 모든 산사태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 핵심은 아무리 이상기후로 인해 강우강도가 강해졌다 해도, 아무리 국지적 폭우가 잦아졌다 해도, 그게 특정 시설을 강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드시 우리나라 산림에서 임도가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원인조사의 결과이다. 평균보다 350배나 많은 산사태가 발생함에도 언제나 조사 결과는 폭우에 의한 자연재해로 귀결되는 이유를 묻는 것이다. 급경사 사면의 토양을 깎아내리고 쌓아 올린 석축이 그대로 무너져 산 아래까지 흘러 내려간 산사태도 폭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결론이 나고, 임도를 만들고 배수로를 조성한 곳에서 우수유출구 주변의 산림사면이 통째로 무너진 산사태도 폭우 때문이라 결론을 낸다.
350배나 많은 산사태가 유발되는 시설을 조성한 곳도 산림청이고, 산사태의 원인을 조사하는 곳도 산림청이며, 이 산사태를 복구하는 곳도 산림청이다. 국민을 위해 세금을 집행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라 산림청의, 산림청에 의한, 산림청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기관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없다. 아니, 오히려 재난위험에 떨어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로 실험 대상이 된 건 아닌가 한다.
산사태 원인조사를 산림청 관계자가 아닌 제3의 전문가가 진행하는 것은 산림청 입장에서도 국민들이 지니는 의구심을 풀 최선의 방법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오비이락(烏飛梨落)’식의 주장은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다.
글 |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