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화작가 셸 실버스타인이 1964년에 발표한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전 세계인들에게 나무의 소중함을 알려준 작품이다. 사과나무 한 그루는 소년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고, 소년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사과를 내어주었고, 청년이 된 소년이 집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뭇가지를 베어 집을 짓게 해주었고, 장년이 된 소년이 멀리 떠나고 싶어 한 척의 배가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게 했고, 노인이 되어 돌아온 소년에게 나무는 의자가 되어 편히 쉬게 해주면서 행복했다고 동화는 전한다. 나무의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을 예찬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말’ 나무는 행복했을까?
나무가 사람으로 치면 팔다리를 다 떼주고 남은 몸뚱어리마저 바치는 극도의 희생을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는 건 ‘정말’ 인간 위주로 나무를 대상화한 이기적이고 과도한 의인화가 아닐 수 없다. 이 동화를 통해 나무를 숭고한 대상으로 이미지 메이킹할 수는 있지만, 모든 걸 송두리째 내주면서도 나무는 행복할 거라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건 나무에 대한 착취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일이 된다. 사실,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와 사회에서 나무는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의무와 희생만 강요당하고 있다. 사람이 나무에게 지켜야 할 사랑, 희생, 아니 윤리는 없을까? 그럴리가!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에 지친 인류세 시대, 그리고 그런 시대의 유력한 해법으로 떠오른 나무와 숲이 더 필요한 시대이다. 이제 나무에 대한 사람의 생태윤리가 필요한 시대이다.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지난 4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들이 ‘나무답게 살기 위한 나무의 권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회색 콘크리트와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로 뒤덮인 도시에서 만약 초록색 나무가 없다면 어떤 세상일까? 끔찍하기 그지없다. 나무들은 거리에서 아파트에서 학교에서 상가 앞에서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뜨거운 폭염과 시끄러운 소리, 매케한 배기가스와 미세먼지를 막아주고, 맑고 시원한 공기와 평안한 녹음을 제공해준다. 걷고 싶은 길을 내어주고, 도심에 새를 불러주고, 사람들이 배출한 탄소까지 흡수해준다. 나무가 건강해야 혜택이 많은데, 매년 가혹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잘리고 베어지고 있다.
도시에서 나무로 산다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각종 개발 사업에 하나둘씩 자리를 내주고 있다. 나무는 사람이 죽이고 있다.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은 행복하지 않다. 만약 나무가 말할 수 있다면 도시는 온통 절규와 비명의 목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도시와 사람들의 필요로 데려와서 심어놓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존중해 주지 않고 있다.
우리 주변의 나무들은 도시의 시설물, 누군가의 재물이기 전에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이다. 나무에 희생을 강요하는 일방적인 의무만 주어서는 안 되며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처음 해본 나무권리 선언 워크숍
지난 4월 1일, 서울환경연합은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는 시민들과 함께 나무권리 선언을 작성해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국내에서 고양시와 부산광역시에서 ‘나무권리 선언’이 발표된 적 있지만, 시민들과 함께 선언문을 작성해 보는 워크숍은 처음이다. 워크숍을 통해 그간 함부로 잘리고 베어진 나무를 보고 느꼈던 슬픔과 답답함을 공유하고 시민행동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참여한 시민들은 나무 권리를 위한 각자의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회색 도시에서 초록 나무가 행복한 권리”
“누군가의 착취나 학대의 대상이 아닌 온전히 늙어 죽을 권리”
“뿌리내린 곳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권리”
“함부로 잘리게 되는 민원과 행정을 거부할 권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권리, 자기 몸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생긴 대로 살 권리”
“일방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 이용당할 때 사전 양해나 존중받을 권리”
“타 존재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지지 않고 싹을 틔운 곳에서 온전한 몸으로 뿌리내릴 권리”
“인간이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 선택받고 결정 당하지 않을, 그리고 존재 자체를 인정받고 존중받아 영원히 존속할 권리”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권리, 나무 본연의 이름으로 불리며 이용 가치가 아닌 존재 자체로 인정받을 권리”
“일한 만큼 생존권을 보장하라! 무자비한 가지치기와 벌목은 그만, 나무는 살아있다.”
“나무에는 삶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 ‘나’와 같이 살아있는 존재 자체로”
“나무를 심은 것이 인간이라고 해서 뽑고 자를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자유롭게 살고 있듯이, 나무도 비록 스스로 자리를 정하지는 못했어도 그 자리에서 자유롭게 잘 살 권리가 있다.”
“나무는 마음껏 먹고, 마시고, 숨을 쉬며 살아갈 기본권이 있다. 나무는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잎을 펼치고 햇볕을 쬐면서 한 장소에서 사계절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 시민은 ‘나무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며 공존하며 도시를 살아갈 의무가 있다.”
나무에 법인격을 부여해야
크리스토퍼 D. 스톤은 1971년에 발간한 『법정에 선 나무들』에서 나무도 당사자적격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과 호수, 강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주체를 법원에 고소하거나,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자연물의 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실체에 권리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은 항상 엉뚱하다거나 놀랍고 혹은 우습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동물보호 운동을 통해 동물보호법이 제정되어 동물학대를 처벌하고 관리 의무를 강화해온 것처럼 이제는 학대받는 도시의 나무를 보호하는 생명권 도입이 필요하다.
나무의사 우종영은 인문과학 에세이 『바림』에서 가로수를 ‘제2의 시민으로’ 법인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로수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가로수는 괴물로 변할 것이다. 제도를 바꾸고 시민의식이 성숙되어야 괴물은 사라진다. 가로수는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수행하며 도시를 아름답게 가꾼다. 그들도 지능이 있으며, 고통을 느끼는 감각기관도 가지고 있다.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으니, 좋은 환경에서 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미래에 법인격을 부여받기 전에 당장에는 최소한의 복지개념을 도입하여 동물보호법에 준하는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나무권리를 위한 시민의 약속

나무권리선언 기자회견에 참가한 활동가가 광화문 가로수 앞에서 ‘나무는 살아있음을 드러낼 권리가 있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권리가 있다’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서울환경연합은 나무에게도 기본권이 있음을 알리고자 ‘나무답게 살기 위한 나무의 권리’ 기자회견을 지난 4월 3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했다. 시민들이 작성한 나무의 권리를 전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나무권리 선언을 발표했다. 도시의 나무가 처한 상황이 변화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 나무에 가해지는 과도한 착취와 몰이해의 시선을 거두고 나무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나무를 시민과 함께 공생하는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존중할 수 있도록 나무의 권리를 위해 행동할 것을 약속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하나. 나무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존엄한 가치를 가진다.
시민은 지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무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하나. 나무는 안전하고 쾌적한 자신의 생육공간을 보장받아야 한다.
시민은 나무의 고유한 특성과 개성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하나. 나무는 자신을 위협하는 훼손이나 착취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시민은 나무를 함부로 대하는 관행과 탐욕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하나. 나무는 법과 제도를 통해 복지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은 나무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워크숍과 기자회견을 진행한 조해민 생태도시팀 활동가는 “현 사회에서 나무의 권리를 말하는 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혁명과 싸움의 역사 위에서 우리가 지금 인간으로서 여러 권리를 당연하게 누릴 수 있게 되었듯, 가로수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활동을 통해 나무에도 기본권이 있음을 모든 이가 당연하게 여기게 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도시의 나무들도 뿌리 내린 곳에서 마음껏 가지를 펼치고, 때로는 자신의 몸에 대한 행정을 거부하기도 하면서, 마침내 온전한 몸으로 늙어 죽을 수 있는, 그 자연스러운 생애를 존중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자”라고 말했다.
서울환경연합은 오는 6월까지 가로수 시민조사단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나무 대접이 엉망인 신사동 가로수길,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가는 효자로 가로수길, ‘차 없는 거리’ 폐지된 연세로와 무자비하게 잘린 성산로 가로수길, 노원구 동일로 가로수길 등 서울 도심 가로수길 4곳에서 가로수 1500주를 조사한다. 시민들이 가로수의 크기와 건강성을 조사하여 시민과학 데이터를 만들어내면, 국립산림과학원의 도움을 받아 i-Tree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가로수의 대기오염 저감.탄소흡수.에너지절감.빗물유출감소 혜택과 경제적 가치를 분석한다. 우선, 온전한 가로수의 효용적 가치를 통해 나무의 존재가치를 알리고 시민과 상호관계를 돈독히 하는 방식으로 도시 나무의 돌봄과 권리 개선에 힘써나가기로 했다. 시민의 호응과 동참이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글 |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
미국의 동화작가 셸 실버스타인이 1964년에 발표한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전 세계인들에게 나무의 소중함을 알려준 작품이다. 사과나무 한 그루는 소년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고, 소년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사과를 내어주었고, 청년이 된 소년이 집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뭇가지를 베어 집을 짓게 해주었고, 장년이 된 소년이 멀리 떠나고 싶어 한 척의 배가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게 했고, 노인이 되어 돌아온 소년에게 나무는 의자가 되어 편히 쉬게 해주면서 행복했다고 동화는 전한다. 나무의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을 예찬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말’ 나무는 행복했을까?
나무가 사람으로 치면 팔다리를 다 떼주고 남은 몸뚱어리마저 바치는 극도의 희생을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는 건 ‘정말’ 인간 위주로 나무를 대상화한 이기적이고 과도한 의인화가 아닐 수 없다. 이 동화를 통해 나무를 숭고한 대상으로 이미지 메이킹할 수는 있지만, 모든 걸 송두리째 내주면서도 나무는 행복할 거라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건 나무에 대한 착취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일이 된다. 사실,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와 사회에서 나무는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의무와 희생만 강요당하고 있다. 사람이 나무에게 지켜야 할 사랑, 희생, 아니 윤리는 없을까? 그럴리가!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에 지친 인류세 시대, 그리고 그런 시대의 유력한 해법으로 떠오른 나무와 숲이 더 필요한 시대이다. 이제 나무에 대한 사람의 생태윤리가 필요한 시대이다.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지난 4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들이 ‘나무답게 살기 위한 나무의 권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회색 콘크리트와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로 뒤덮인 도시에서 만약 초록색 나무가 없다면 어떤 세상일까? 끔찍하기 그지없다. 나무들은 거리에서 아파트에서 학교에서 상가 앞에서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뜨거운 폭염과 시끄러운 소리, 매케한 배기가스와 미세먼지를 막아주고, 맑고 시원한 공기와 평안한 녹음을 제공해준다. 걷고 싶은 길을 내어주고, 도심에 새를 불러주고, 사람들이 배출한 탄소까지 흡수해준다. 나무가 건강해야 혜택이 많은데, 매년 가혹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잘리고 베어지고 있다.
도시에서 나무로 산다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각종 개발 사업에 하나둘씩 자리를 내주고 있다. 나무는 사람이 죽이고 있다.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은 행복하지 않다. 만약 나무가 말할 수 있다면 도시는 온통 절규와 비명의 목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도시와 사람들의 필요로 데려와서 심어놓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존중해 주지 않고 있다.
우리 주변의 나무들은 도시의 시설물, 누군가의 재물이기 전에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이다. 나무에 희생을 강요하는 일방적인 의무만 주어서는 안 되며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처음 해본 나무권리 선언 워크숍
지난 4월 1일, 서울환경연합은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는 시민들과 함께 나무권리 선언을 작성해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국내에서 고양시와 부산광역시에서 ‘나무권리 선언’이 발표된 적 있지만, 시민들과 함께 선언문을 작성해 보는 워크숍은 처음이다. 워크숍을 통해 그간 함부로 잘리고 베어진 나무를 보고 느꼈던 슬픔과 답답함을 공유하고 시민행동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참여한 시민들은 나무 권리를 위한 각자의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회색 도시에서 초록 나무가 행복한 권리”
“누군가의 착취나 학대의 대상이 아닌 온전히 늙어 죽을 권리”
“뿌리내린 곳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권리”
“함부로 잘리게 되는 민원과 행정을 거부할 권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권리, 자기 몸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생긴 대로 살 권리”
“일방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 이용당할 때 사전 양해나 존중받을 권리”
“타 존재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지지 않고 싹을 틔운 곳에서 온전한 몸으로 뿌리내릴 권리”
“인간이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 선택받고 결정 당하지 않을, 그리고 존재 자체를 인정받고 존중받아 영원히 존속할 권리”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권리, 나무 본연의 이름으로 불리며 이용 가치가 아닌 존재 자체로 인정받을 권리”
“일한 만큼 생존권을 보장하라! 무자비한 가지치기와 벌목은 그만, 나무는 살아있다.”
“나무에는 삶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 ‘나’와 같이 살아있는 존재 자체로”
“나무를 심은 것이 인간이라고 해서 뽑고 자를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자유롭게 살고 있듯이, 나무도 비록 스스로 자리를 정하지는 못했어도 그 자리에서 자유롭게 잘 살 권리가 있다.”
“나무는 마음껏 먹고, 마시고, 숨을 쉬며 살아갈 기본권이 있다. 나무는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잎을 펼치고 햇볕을 쬐면서 한 장소에서 사계절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 시민은 ‘나무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며 공존하며 도시를 살아갈 의무가 있다.”
나무에 법인격을 부여해야
크리스토퍼 D. 스톤은 1971년에 발간한 『법정에 선 나무들』에서 나무도 당사자적격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과 호수, 강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주체를 법원에 고소하거나,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자연물의 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실체에 권리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은 항상 엉뚱하다거나 놀랍고 혹은 우습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동물보호 운동을 통해 동물보호법이 제정되어 동물학대를 처벌하고 관리 의무를 강화해온 것처럼 이제는 학대받는 도시의 나무를 보호하는 생명권 도입이 필요하다.
나무의사 우종영은 인문과학 에세이 『바림』에서 가로수를 ‘제2의 시민으로’ 법인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로수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가로수는 괴물로 변할 것이다. 제도를 바꾸고 시민의식이 성숙되어야 괴물은 사라진다. 가로수는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수행하며 도시를 아름답게 가꾼다. 그들도 지능이 있으며, 고통을 느끼는 감각기관도 가지고 있다.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으니, 좋은 환경에서 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미래에 법인격을 부여받기 전에 당장에는 최소한의 복지개념을 도입하여 동물보호법에 준하는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나무권리를 위한 시민의 약속
나무권리선언 기자회견에 참가한 활동가가 광화문 가로수 앞에서 ‘나무는 살아있음을 드러낼 권리가 있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권리가 있다’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서울환경연합은 나무에게도 기본권이 있음을 알리고자 ‘나무답게 살기 위한 나무의 권리’ 기자회견을 지난 4월 3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했다. 시민들이 작성한 나무의 권리를 전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나무권리 선언을 발표했다. 도시의 나무가 처한 상황이 변화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 나무에 가해지는 과도한 착취와 몰이해의 시선을 거두고 나무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나무를 시민과 함께 공생하는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존중할 수 있도록 나무의 권리를 위해 행동할 것을 약속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하나. 나무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존엄한 가치를 가진다.
시민은 지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무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하나. 나무는 안전하고 쾌적한 자신의 생육공간을 보장받아야 한다.
시민은 나무의 고유한 특성과 개성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하나. 나무는 자신을 위협하는 훼손이나 착취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시민은 나무를 함부로 대하는 관행과 탐욕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하나. 나무는 법과 제도를 통해 복지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은 나무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워크숍과 기자회견을 진행한 조해민 생태도시팀 활동가는 “현 사회에서 나무의 권리를 말하는 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혁명과 싸움의 역사 위에서 우리가 지금 인간으로서 여러 권리를 당연하게 누릴 수 있게 되었듯, 가로수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활동을 통해 나무에도 기본권이 있음을 모든 이가 당연하게 여기게 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도시의 나무들도 뿌리 내린 곳에서 마음껏 가지를 펼치고, 때로는 자신의 몸에 대한 행정을 거부하기도 하면서, 마침내 온전한 몸으로 늙어 죽을 수 있는, 그 자연스러운 생애를 존중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자”라고 말했다.
서울환경연합은 오는 6월까지 가로수 시민조사단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나무 대접이 엉망인 신사동 가로수길,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가는 효자로 가로수길, ‘차 없는 거리’ 폐지된 연세로와 무자비하게 잘린 성산로 가로수길, 노원구 동일로 가로수길 등 서울 도심 가로수길 4곳에서 가로수 1500주를 조사한다. 시민들이 가로수의 크기와 건강성을 조사하여 시민과학 데이터를 만들어내면, 국립산림과학원의 도움을 받아 i-Tree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가로수의 대기오염 저감.탄소흡수.에너지절감.빗물유출감소 혜택과 경제적 가치를 분석한다. 우선, 온전한 가로수의 효용적 가치를 통해 나무의 존재가치를 알리고 시민과 상호관계를 돈독히 하는 방식으로 도시 나무의 돌봄과 권리 개선에 힘써나가기로 했다. 시민의 호응과 동참이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글 |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