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저자도, 흘러라 한강

2023-03-07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 두모포라고 부른다. 조선 전기 최고 권신 한명회가 말년 압구정을 지어 강 건너 두모포의 풍광을 즐겼다고 한다. 지금은 강변북로 두모교가 뚝섬에서 반포대교를 이으면서 경관을 가려버렸다. 두모포에는 하중도 저자도가 있었다. 저자도의 모래는 70년대 압구정 아파트 개발을 위해 쓰였는데, 90년대부터 다시 퇴적되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최근 수년 동안 저자도는 물 흐름에 따라 잠겼다가 드러났다가 했는데, 2022년 여름 수도권 폭우 이후로는 잠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저자도를 아시나요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두모포(중앙 상단 교각부) 왼쪽 아래에 모래섬 저자도 ⓒ김동언


사실 저자도만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한강종합개발 이전의 한강에는 모래사장만 발달했던 것이 아니었다. 곳곳에 하중도가 있었다. 지금은 밤섬, 노들섬, 선유도 정도만 남아있고, 밤섬 정도가 자연성을 간직해 보호받고 있다. 밤섬은 1968년 폭파되어, 그 토석이 여의도 윤중제를 쌓는 데 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섬은 해마다 퇴적을 거듭해 완연히 섬으로서 되살아났고 섬 내의 생물다양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1999년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2012년 람사르습지로 등록해 보호하고 있다.

저자도는 면적이 밤섬보다 훨씬 작지만,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위치에 있어서 생태적 가치는 밤섬 못지않게 크다. 지난해 2월 말 무렵 이곳에 큰고니가 나타나자, 탐조가들 사이에선 기쁨과 우려가 교차했다. ‘두모포에 큰고니 날아오르고, 아이들 멱 감는 한강’은 서울시가 2013년 발표한 ‘한강자연성회복기본계획’의 2030년 목표다. ‘벌써 절반은 이룬 것 아닌가!’란 생각은 섣부른 단견이다. 2019년 ‘중랑천 생태회복 및 친수문화 조성공사’가 시작된 뒤로, 철새들의 개체수가 현저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저 기본계획과 조성공사 같은 사업들이 추진되는 가운데 ‘반짝’ 고니가 출현한 것에 가까운 것이 현실인 셈이다.

최근엔 중랑천 하류 철새보호구역에 탐조대를 설치했는데, 탐조대에 놓인 망원경을 조금 들어 올리면 서울숲에 자리 잡은 고층 아파트 갤러리아포레를 겨눌만한 자리다. 허나, 망원경은 맞은편 둔치 아래에 모인 철새를 볼 수 있을 만큼만 움직인다. 지난해 겨울철까지만 해도 바로 그 자리에 모여 놀던 원앙이 자취를 감췄다.

‘중랑천 생태회복 및 친수문화 조성공사’뿐 아니라, 앞으로 서울 곳곳에서 이뤄질 수변감성도시나, 한강르네상스의 뒤를 잇는 개발 사업들이 지향하는 것은 관광명소화다. 인근 주민부터 해외 관광객까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돈을 쓰게 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이다. 교통 인프라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시설들, 인접한 곳에 상업시설들이 들어서기 좋게 만드는 규제 완화가 패키지로 들어서기 때문에, 사업 하나의 영향만 따지면 많은 것을 놓친다. 생물다양성이니, 환경적 고려니 하는 것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부풀린 추정치로 추진하는 서울항 사업

경인운하 한강 갑문. 엄청난 물동량 수송과 여객 수송을 호언장담했던 경인운하사업은 혈세만 집어삼킨 실패한 사업으로 판명난 지 오래다 ⓒ서울환경연합


한강을 서울 환경생태계의 중심으로 보기보다 먼저 개발의 대상으로 삼은 대표적인 기획이 ‘서울항 조성사업’이다. 이 사업은 이미 타당성이 부족하고 생태계 훼손 우려로 2012년에 폐기된 사업이지만, 오세훈 시장이 2021년 보궐선거로 당선하면서 계속 거론됐다. 결국 2023년부터 예산을 편성해, 지난 2월 8일 본격적으로 기본계획 및 타당성조사 용역을 나라장터에 공고했다.

‘서울항 조성사업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의 과업내용서를 보면, 사업의 1차적 범위가 2010년 여의도에 지정한 항만구역(37만790㎡)이지만, 2차적 범위를 서울시계 한강 수역( 30.892㎢)과 경인아라뱃길로 잡고 있다. 서울항 조성사업은 여의도에 국제여객터미널과 부대시설들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서울의 한강 전체를 사업의 범위로 본다는 뜻이다. 이 용역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대략 예측이 가능하다. 서울시가 2009년에 내놓은 ‘서해주운 기본설계 보고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딱 네 가지다. 경인운하가 완성됐고, 5000톤급 선박이 드나들도록 양화대교 개선사업을 완료했고, 운하의 물류 기능과 용산터미널을 삭제한 것이다.

우선 ‘서해주운사업에 대한 기본설계 보고서’에 따르면, 인천항의 여객수요의 25% 정도를 서울항이 수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천항 이용객의 주소지를 따라 배분한 것으로, 가까운 곳에 여객터미널이 있으면 거기서 배를 탈 것이라는 단순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경인운하 김포터미널에 가까이 사는 이용객들은 그쪽으로 가야하지만, 현재 김포터미널이 인천항의 여객수요를 그만큼 흡수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참 터무니없는 가정임을 알 수 있다.

서울항을 출발해 인천항으로 배를 타고 가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4시간은 걸린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면 모를까, 갑갑한 동굴을 통과하는 듯한 경인운하를 지나는 동안 그저 승선 시간만 늘어날 뿐이다. 더군다나 서울시는 해외여행을 위한 대형 크루즈선을 타기 위해 5000톤급 배로 인천항까지 와서, 더 큰 배로 환승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있다. 결국 또 배를 갈아타야 한다면, 서울항에서 배로 출발하는 경로는 더욱 번거로울 뿐이다.


어민 피해, 김포 침식 고양 퇴적, 녹조 창궐

2022년 11월 15일 서울시의회 2023년 예산심의 본회의가 열리는 서울시의의회 회관 앞에서 이동이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이 ‘서울항 조성사업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환경연합


아무리 따져 봐도 사업성이 유리하지 않다면, 시민들의 혈세로 대형토목사업을 추진하는 일은 해선 안 된다. 문제는 또 있다. 이 사업은 생태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가장 큰 악영향은 강바닥을 긁어내 모래를 퍼내는 준설이다. 서울시는 매년 5만㎥ 정도 강바닥을 준설한다. 서울항을 만들고, 5000톤급 선박을 다니게 하려면, 적어도 수심 6m를 유지해야 한다. 현재 수심은 3.5~4m를 유지하고 있는데, 적어도 2m 이상 더 파내야 하는 셈이다. 여기서부터 다양한 문제가 제기된다. 방화대교부터 한강의 절반은 고양시 구간이고, 행주어촌계 어부들이 어업활동을 하는 곳이다. 최근까지도 어부들은 서울시를 상대로 물재생센터 하수처리수 문제로 소송전을 이어갔다. 강바닥을 더 깊이 파내 생태계 악영향이 오면 반드시 어업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므로 불필요한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김포 쪽으로 치우쳐 흐르는 강물 흐름이 더 거세질 것이다. 지금도 한강의 물 흐름을 가로 막은 신곡수중보의 가동보 수문이 김포 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김포 쪽은 침식되고, 고양 쪽은 퇴적되어 장항습지의 육화가 점점 진행되고 있다. 배가 지나가는 김포 쪽으로 많은 양의 준설을 한다면, 이러한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다.

더욱 치명적인 일은 여름철 한강에 녹조 창궐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수심을 더 깊이 파내서 더 많은 양의 물을 가두는 것은 녹조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최근 낙동강의 녹조의 독소가 농작물에서도 검출된 사실이 밝혀졌다. 김포평야의 물은 한강에서 공급된다. 녹조로 가득한 물이 김포평야 곳곳을 흐르고, 거기서 자란 농작물이 우리 밥상까지 오르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김포평야에서 재배한 쌀은 수도권 벼 생산량의 6%나 된다.


저자도를 다시 파내지 마라

강바닥을 퍼내는 일은 다양한 이유에서 이뤄진다. 그동안 홍수와 침수로부터 도시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제방을 높이 쌓고, 강바닥을 퍼내서 한꺼번에 물이 빠져나갈 면적을 키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또 한편으론 평소에 강을 즐기고 이용하기 위한 각종 시설을 설치하느라 물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알고도, 무리하게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런 판단에 따라, 밤섬도 폭파하고, 강바닥을 준설하고, 운하도 만들고, 각종 수상시설을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뒷전이 된 것은 자연으로서의 한강이다. 한강은 여러 개발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자연성을 조금씩 회복해왔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던 대로 큰고니가 두모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봄이 오기 전 두모포에서 큰고니를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철새들이 안전하게 쉬어갈 수 있는 저자도를 다시는 퍼내선 안 된다.


글 | 김동언 서울환경연합 정책국장


주간 인기글





03039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3
TEL.02-735-7088 | FAX.02-730-1240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