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만 봄꽃이더냐

2023-04-03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최근 한 인기 드라마의 예고편에 나온 고사입니다.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고, 높은 권력도 십 년, 오래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고사의 내용처럼 권력의 끝은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꽃이 떨어지는 것은 자기의 역할을 다한 것이며, 떨어지는 꽃잎도 감동이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꽃이 벚나무의 꽃이 아닐까 싶습니다. 벚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가로수 및 조경수로 많이 심어서 봄의 정취를 느끼기 아주 좋은 편입니다. 이렇게 주변에서 흔하게 볼수있으며 화려한 봄꽃을 피우니 ‘봄’ 하면 벚나무의 꽃을 떠올리기 쉽지만, 꽤 다양한 나무의 꽃이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실나무와 동백나무

매실나무


같은 장미과 식물이어서 벚나무 꽃과 비슷하지만 먼저 꽃이 피는 매실나무(매화)는 벚나무처럼 꽃이 나무를 화려하게 뒤덮지는 않지만, 화려한 색상이나 나무의 울퉁불퉁한 투박함으로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매실나무는 재배종으로 야생에서 찾아보기는 드문 편입니다. 물론 벚나무나 왕벚나무의 경우도 조경수로 식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잔털벚나무, 산벚나무 등이 흔하게 자생하므로 매실나무와는 위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실나무와 벚나무의 꽃은 꽃자루를 보면 쉽게 구분이 가능한데, 꽃자루가 길게 나와 있는 나무가 벚나무입니다.

겨울부터 봄까지 가장 이르게 꽃을 피우는 나무를 꼽으라면 동백나무가 있습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나무라는 유래를 가진 것처럼 주로 남부 해안 지역에서 관찰할 수 있어서 봄꽃나무에서는 빠지곤 합니다. 사실 동백나무는 덕적도를 비롯한 서해안 많은 섬에 분포하고 있으며, 백령도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동백꽃은 주로 동박새가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식물입니다. 우리나라 야생에는 동백꽃만큼 붉은색을 갖는 꽃을 찾아보기가 힘든데, 곤충이 붉은색을 보지 못하는 이유와 관계가 있습니다. 풍매를 하는 식물이야 꽃이 화려할 필요가 없고, 충매를 하는 식물은 곤충이 볼수있는 색을 가져야 하니 붉은색으로 필 이유가 없죠. 붉은색에 민감한 동물은 조류와 영장류인데, 과일을 먹는 동물들은 식물과 공진화해온 결과로 색에 민감하게 되고, 식물은 동물에게 씨앗을 이동시켜 주는 대가로 열매가 잘 익었음을 색을 통해 알려주게 됩니다. 동백꽃이 겨울에서 이른 봄 사이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아직 곤충이 활동하기 어려운 시기에 동박새는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백나무


동백나무의 열매로 기름을 짜서 쓰기도 하는데, 머릿기름으로 쓰이고 식용도 가능합니다.

제주 동백동산에서는 식용 동백기름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식용보다는 머릿기름으로 많이 이용되던 동백기름은 귀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또 서식지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는 동백기름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용으로 이용하던 식물이 몇 가지 있는데, 피마자(아주까리)와 생강나무입니다.


생강나무와 목련

생강나무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강나무라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생강나무의 열매에서 짠 기름을 동백나무 대용으로 이용한 이유는 강원도 지역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동박나무)로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생강나무의 꽃 역시 봄을 대표하는 나무꽃입니다. 특히 숲의 많은 나무가 잎을 달기 전에 눈에 띄는 노란 꽃을 피우기 때문에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는 산수유나무와 생김이 비슷하여 비교되기도 하는데, 앞서 매실나무와 벚나무처럼 꽃자루가 없거나 짧은 쪽이 생강나무이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산수유나무는 구례 등지를 제외하면 야생에 있는 경우가 아주 드문 편이기 때문에, 숲속에서 만나는 봄의 노란 꽃은 등산로에 식재된 것이 아니라면 생강나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봄철 생강나무의 꽃을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면 소설의 내용처럼 알싸한 향을 느껴볼 수도 있습니다.

봄꽃 중 목련이나 백목련의 꽃도 차로 마시면 인기가 좋습니다. 꽃봉오리를 한방에서 ‘신이(申夷)’라고 부르는데, 꽃봉오리를 하루 정도 실온에 보관했다가 꽃잎을 펴서 말린 후 덖어내면 아주 좋은 꽃차가 완성됩니다. 굳이 꽃을 수고스럽게 펴지 않더라도 잘 말려 보관하기만 하면 목련꽃차를 1년 동안 즐길 수 있습니다.


올괴불나무와 참나무, 버드나무

올괴불나무


숲에서 생강나무의 노란빛에 빠져 있다 보면 올괴불나무의 꽃을 놓치기 쉽습니다. 접두사로 붙는 “올”은 빠르다는 의미를 갖는데, 그만큼 빠른 시기에 꽃이 피는 나무 중 하나입니다. 올괴불나무의 꽃은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수려한 편입니다만, 가는 가지에 작은 꽃들이 붙어 피다 보니 짙은 색을 띄는 개체가 아니면 못 보고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가지도 매우 가늘고 꽃이 작아 바람에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사진을 담아내기도 매우 힘든 편입니다.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더라도 이른 봄, 꽃 피는 나무는 매우 다양합니다. 꽃가루를 바람에 날리는 참나무류나 개암나무 등은 나뭇잎이 꽃가루받이를 방해하기 전에 꽃이 피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풍매를 하는 식물의 꽃은 화려하지 않아 숲을 공부하거나 나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관심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풍매를 하는 식물은 꽃가루가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날아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양의 꽃가루를 만나야 하고, 꽃가루를 날리는 시기에 비가 오면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봄에 비가 오지 않는 게 유리하다고 합니다. 과거 천수답에 의존하여 논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봄에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농사가 풍년이 들면 도토리가 흉년이 든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생겨났다고 합니다.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돕는 식물이고,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만날 수 있으며 나무 자체는 인기가 좋은 편이지만 꽃 취급받지 못하는 버드나무의 꽃도 있습니다. 버드나무는 물가에 흔하게 자라고 쓰임새가 매우 다양한 식물입니다. 통증을 완화하는 성분이 있어 과거 여린 가지를 짓이겨 칫솔로 이용하기도 하였으며, 산후통이 있을 때 버드나무를 입에 물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진통제인 아스피린의 원료가 흰버드나무의 껍질에서 추출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버드나무, 왕버들, 용버들, 갯버들, 키버들 등 다양한 종류의 버드나무가 있습니다. 하천에서 흔하게볼수있는 갯버들이나 키버들의 꽃봉오리는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봄에 찾아볼 수 있어, 가지를 꽃병에 꽂아 봄을 느끼기도 합니다. 버드나무를 가로수로 이용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봄철 날리는 버드나무 꽃가루(실제로는 종자를 날리기 위한 털)가 기관지염이나 눈병을 유발한다는 오해(?)를 받아 버드나무 가로수를 모두 베어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벚꽃이 아니어도 다양한 봄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에 활력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봄꽃나무를 만나보시길.



글 | 김경훈 자연탐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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