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록습지 하류쪽 물억새 군락 Ⓒ함께사는길 이성수
만추의 오후 세 시, 햇살이 제 기운을 다 쓰고 쇠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때. 장록습지에 닿았다. 송정역에서 내려 광주 도심 외곽길을 걸어왔다. 오른쪽으로 금호타이어 공장이 왼쪽으로는 광주공항이 있다. 다리 건너가 목데크 깐 길을 걷는다. 밟자마자 이내 ‘포옥’ 꺼지는 푹신한 흙길 이어지고 자욱이 시야를 물들이는 물억새, 물억새. 버드나무 아래 황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 속에 물억새 지천이다. 그 사이사이 검고 푸른 물이 웅덩이져 작은 소를 이룬 것들이 눈길 닿는 데마다 흩어져 있다. 물억새 군락이 그치는 곳에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수평 데칼코마니한 강물이 흐른다. 황룡강이다.
내장산을 두고 북쪽 정읍의 남서쪽이 전남 장성군이다. 장성군 입암산 습지에서 발원한 황룡강은 장성에서 인공조성한 큰 호수인 장성호를 지나 남서행하다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지나 영산강 본류와 합쳐진다. 50km에 이르는 황룡강의 사행, 그 구불거림의 끝녘 8km 구간에 장록습지가 자리한다. 호남 제일 대도시인 광주의 도심을 지나는 길이다. 호남대 입구에서 영산강 합류부까지 8km 구간에 위치한 여의도 면적 정도의 2.7㎢가 국가습지보호지역 장록습지다. 2020년 환경부의 26번째 보호습지로 지정됐는데 5개의 하천형 국가습지 가운데 유일하게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 지역 특유의 습지생태계라는 가치 외에 이 습지의 독특함이, 귀함이 바로 거기에 있다. 도시가 습지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장록습지에서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안개에 휩싸인 장록습지의 아침 Ⓒ함께사는길 이성수
장록습지의 국가습지 지정 과정은 드라마였다. 2008년 환경부 전국내륙습지조사에서 장록습지의 생태가치는 ‘상’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4대강사업이 진행됐고 영산강 6공구에 장록습지 구간이 포함된 탓에 크게 훼손돼 국가습지로 지정할 수 없었다. 2013년 4대강사업의 악영향을 자연 스스로 치유해 옛모습을 되찾아가자 지역사회에서 국가습지 지정운동이 일어났다. 2017년 광주광역시는 환경부에 장록습지 구간의 생태조사를 의뢰했다. 10개월간의 조사 결과 도심습지에서는 보기 힘든 생물다양성이 확인됐다. 그러나 국가습지 지정 시도는 레포츠 시설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 위주 황룡강변 개발론에 밀렸다. 개발과 보전 대립이 격화됐다. 갈등관리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여론통합 노력이 시작됐다. 2020년 1월부터 진행된 이 작업을 통해 주민과 전문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부처 관계자들은 객관적 여론조사라는 큰 합의를 이루었다. 같은 해 11월 28일 10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가 진행됐다. 놀라운 것은 개발 기대심리가 크리라 예상한 장록습지 인근 5개 동 주민들이 국가습지 지정에 높은 비율로 찬성했다는 점이다. 총 85.8%의 시민들이 국가습지 지정에 찬성했다. 환경부는 2020년 12월 7일 장록습지를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지역주민과 생태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습지생태계를 개발 위기에서 건져낸 것이다.

거꾸로여덟팔나비 Ⓒ광주환경운동연합
물안개 피어오르는 장록습지의 아침은 몽환의 비경이다. 꿈결 같은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이 습지의 야생생물은 829종에 이른다.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삵을 포함한 포유류 10종, 멸종위기종 새호리기, 흰목물떼새를 비롯한 조류 72종이 살아간다. 우렁이나 다슬기·이매패류 같은 담수성 무척추동물 48종과 피라미, 점줄종개 같은 5종의 한국특산종을 비롯한 25종의 어류도 서식한다. 양서·파충류도 7종이나 서식하고 있다. 168종의 식물플랑크톤과 군락을 이룬 물억새·버드나무·달뿌리풀 등 179종의 식물이 습지 야생생물들의 먹이와 터전이 되어주고 있다. 320종의 육상곤충도 발견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장록습지. 도심 속 습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광주광역시
장록습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위협요소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먼저, 광주시가 추진하는 ‘Y벨트사업’. 이 사업은 황룡강과 영산강이 만나는 와이자형 지대를 관광벨트로 개발하는 것인데 생태적 개발을 모토로 하고 있으나 장록습지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생태보전을 우선으로 하는 사업 진행이 되도록 지역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요하다. 둘째로, 장록습지의 특징인 드넓은 퇴적지에는 그 사이에 작은 소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데 문제는 육상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국가습지 지정구간 위의 황룡강 중류까지 흐름을 최대한 자연형 하천으로 유지해 장록습지 내의 작은 소들이 안정적으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로 지정 전 생태조사에서 가치가 인정된 3.06㎢ 구간 가운데 개발할 요량으로 지정에서 제외한 0.31㎢를 신속히 국가습지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수달 서식처가 확인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구간이어서 습지의 생태적 연속성을 생각하면 추가 지정이 필요하다. 도시는 습지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장록습지의 내일에 그 답이 있을 것이다.
글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 이 기사는 국립생태원 습지센터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장록습지 하류쪽 물억새 군락 Ⓒ함께사는길 이성수
만추의 오후 세 시, 햇살이 제 기운을 다 쓰고 쇠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때. 장록습지에 닿았다. 송정역에서 내려 광주 도심 외곽길을 걸어왔다. 오른쪽으로 금호타이어 공장이 왼쪽으로는 광주공항이 있다. 다리 건너가 목데크 깐 길을 걷는다. 밟자마자 이내 ‘포옥’ 꺼지는 푹신한 흙길 이어지고 자욱이 시야를 물들이는 물억새, 물억새. 버드나무 아래 황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 속에 물억새 지천이다. 그 사이사이 검고 푸른 물이 웅덩이져 작은 소를 이룬 것들이 눈길 닿는 데마다 흩어져 있다. 물억새 군락이 그치는 곳에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수평 데칼코마니한 강물이 흐른다. 황룡강이다.
내장산을 두고 북쪽 정읍의 남서쪽이 전남 장성군이다. 장성군 입암산 습지에서 발원한 황룡강은 장성에서 인공조성한 큰 호수인 장성호를 지나 남서행하다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지나 영산강 본류와 합쳐진다. 50km에 이르는 황룡강의 사행, 그 구불거림의 끝녘 8km 구간에 장록습지가 자리한다. 호남 제일 대도시인 광주의 도심을 지나는 길이다. 호남대 입구에서 영산강 합류부까지 8km 구간에 위치한 여의도 면적 정도의 2.7㎢가 국가습지보호지역 장록습지다. 2020년 환경부의 26번째 보호습지로 지정됐는데 5개의 하천형 국가습지 가운데 유일하게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 지역 특유의 습지생태계라는 가치 외에 이 습지의 독특함이, 귀함이 바로 거기에 있다. 도시가 습지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장록습지에서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안개에 휩싸인 장록습지의 아침 Ⓒ함께사는길 이성수
장록습지의 국가습지 지정 과정은 드라마였다. 2008년 환경부 전국내륙습지조사에서 장록습지의 생태가치는 ‘상’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4대강사업이 진행됐고 영산강 6공구에 장록습지 구간이 포함된 탓에 크게 훼손돼 국가습지로 지정할 수 없었다. 2013년 4대강사업의 악영향을 자연 스스로 치유해 옛모습을 되찾아가자 지역사회에서 국가습지 지정운동이 일어났다. 2017년 광주광역시는 환경부에 장록습지 구간의 생태조사를 의뢰했다. 10개월간의 조사 결과 도심습지에서는 보기 힘든 생물다양성이 확인됐다. 그러나 국가습지 지정 시도는 레포츠 시설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 위주 황룡강변 개발론에 밀렸다. 개발과 보전 대립이 격화됐다. 갈등관리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여론통합 노력이 시작됐다. 2020년 1월부터 진행된 이 작업을 통해 주민과 전문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부처 관계자들은 객관적 여론조사라는 큰 합의를 이루었다. 같은 해 11월 28일 10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가 진행됐다. 놀라운 것은 개발 기대심리가 크리라 예상한 장록습지 인근 5개 동 주민들이 국가습지 지정에 높은 비율로 찬성했다는 점이다. 총 85.8%의 시민들이 국가습지 지정에 찬성했다. 환경부는 2020년 12월 7일 장록습지를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지역주민과 생태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습지생태계를 개발 위기에서 건져낸 것이다.
거꾸로여덟팔나비 Ⓒ광주환경운동연합
물안개 피어오르는 장록습지의 아침은 몽환의 비경이다. 꿈결 같은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이 습지의 야생생물은 829종에 이른다.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삵을 포함한 포유류 10종, 멸종위기종 새호리기, 흰목물떼새를 비롯한 조류 72종이 살아간다. 우렁이나 다슬기·이매패류 같은 담수성 무척추동물 48종과 피라미, 점줄종개 같은 5종의 한국특산종을 비롯한 25종의 어류도 서식한다. 양서·파충류도 7종이나 서식하고 있다. 168종의 식물플랑크톤과 군락을 이룬 물억새·버드나무·달뿌리풀 등 179종의 식물이 습지 야생생물들의 먹이와 터전이 되어주고 있다. 320종의 육상곤충도 발견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장록습지. 도심 속 습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광주광역시
장록습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위협요소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먼저, 광주시가 추진하는 ‘Y벨트사업’. 이 사업은 황룡강과 영산강이 만나는 와이자형 지대를 관광벨트로 개발하는 것인데 생태적 개발을 모토로 하고 있으나 장록습지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생태보전을 우선으로 하는 사업 진행이 되도록 지역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요하다. 둘째로, 장록습지의 특징인 드넓은 퇴적지에는 그 사이에 작은 소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데 문제는 육상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국가습지 지정구간 위의 황룡강 중류까지 흐름을 최대한 자연형 하천으로 유지해 장록습지 내의 작은 소들이 안정적으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로 지정 전 생태조사에서 가치가 인정된 3.06㎢ 구간 가운데 개발할 요량으로 지정에서 제외한 0.31㎢를 신속히 국가습지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수달 서식처가 확인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구간이어서 습지의 생태적 연속성을 생각하면 추가 지정이 필요하다. 도시는 습지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장록습지의 내일에 그 답이 있을 것이다.
글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 이 기사는 국립생태원 습지센터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