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에너지 전환 발목잡기

한울원전단지 사진제공 한울원자력본부

민주당 송영길 의원의 ‘신한울 원전 3, 4호기 건설 재개를 검토해야 한다’는 발언 이후 탈원전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정치공세가 더 불이 붙고 있다.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재생에너지 늘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증가만큼 줄여야 할 것은 원전이 아니라 석탄이다. △신울진 3, 4호기를 건설하는 대신 노후 석탄발전소를 조기에 퇴출시키자는 것이다. 송 의원은 충심의 제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송 의원의 주장과 달리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급격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탈원전 정책을 채택한 세계 어떤 나라보다 60년 이상이라는 느리고 장기간에 걸친 탈원전 정책을 수립했다. 이렇게 장기간 계획이 나온 까닭은 건설 중인 5기 모두를 60년 수명까지 허용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건설 단계에 들어가지 않은 미착공 신규원전계획만 취소했을 뿐이다.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원전 개수와 발전용량은 최고점에 도달해 탈원전 정부라 표현하는 게 무색한 상황이다.


 미세먼지를 핵으로 잡자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20퍼센트까지 확대한다는 계획도 재생에너지 발전 속도를 보면 너무 보수적인 목표치다. 2017년 OECD 국가들 평균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24퍼센트인데 비해 우리는 현재 7퍼센트 수준으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실제로 작년 한 해만 원전 2기에 해당하는 2.2GW 용량의 태양광발전이 늘어났고,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20퍼센트는 오히려 낮은 목표라 진단하고 있다. 지금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늦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더 적극적인 정책과 노력이 필요하다. 

 노후석탄발전소를 줄이고 신규원전을 짓자는 주장 역시 합리적인 대책이 아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석탄발전소를 줄여야 하는 것은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위험을 더 큰 위험으로 해결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근본적으로 석탄과 원전에 의존하는 전력정책을 고수하며, 재생에너지 확대를 미래 과제로만 미루는 것으로는 미세먼지도 기후변화도 해결할 수 없다. 에너지절약과 효율화를 통해 최대한 발전소 증설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석탄과 원전을 동시에 줄여야 미세먼지 문제도, 원전의 위험도, 온실가스 감축도 동시에 해결 가능하다.   

 

탈원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실체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의 과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가야할 과제다. 여기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원자력학계와 보수야당, 보수언론 등은 합세하여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을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는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제대로 된 검증과 대안 제시는커녕 ‘태양광 패널 중금속 오염’, ‘탈원전 때문에 미세먼지 증가’ 같은 가짜뉴스만을 퍼뜨리기에 바쁘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박근혜 탄핵을 부정하는 단체까지 합세해 탈원전 반대에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가칭 ‘탈원전 반대와 신한울 3, 4호기 건설재개 서명운동본부’는 33만5600명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서명운동에는 자유한국당 최연혜, 강석호, 이채익, 윤상직 의원을 비롯해 주한규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김병기 한수원 노조위원장, 나라지킴이고교연합 등이 함께했다. 

 꺼져가는 원전을 살리자고 나서는 이들에게 원전의 안전과 핵폐기물은 관심사가 아니다. 안전하게 폐기처리가 가능한 태양광 패널 문제에는 난리를 치지만, 10만 년 동안 독성을 내뿜지만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핵폐기물 문제에는 말이 없다. 원전 격납건물에 벌집처럼 구멍이 송송 뚫리고, 망치가 발견되어도 “원전은 안전하다”고만 외치면 그만이다. 여전히 원전 건설만을 외치는 원자력계와 국정농단과 탄핵을 부정하는 세력, 반 문재인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는 조합에 보수언론까지 합세하여 모든 문제를 기승전 탈원전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가.   


 신한울 3, 4호기 재개는 있을 수 없어

지난 1월 17일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광화문에서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찬핵 정치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운동연합

신한울 3, 4호기는 경상북도 울진군에 추진되었다. 예전에는 울진원전으로 불렀으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위험과 부정적 인식이 강해지면서 지역의 요청으로 한국수력원자력은 명칭을 한울로 변경했다. 

 신한울 3, 4호기는 지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이미 백지화되어 계획에서 제외되었다. 이미 공사를 진행중이던 신고리 5, 6호기와 달리 신한울 3, 4호기는 건설허가도 받지 않은 계획 단계에 있었다. 그럼에도 원자력계는 매몰비용을 주장하고 있다. 허가도 받기 전에 일부터 치르고 보는 원전산업계의 잘못된 관행이 빚어낸 문제다. 건설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착공을 위해 발주부터 하고, 거꾸로 안전성 검토 등 허가를 압박하는 소위 원자력계가 일하는 방식으로 인한 손실 책임을 국민들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서울행정법원의 월성1호기 수명연장 허가 취소 판결에서도 동일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감사원도 지난해 이 문제를 개선하라고 감사결과를 냈다. 

 문제는 울진에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1, 2호기와 운영 중인 6기를 포함해 원전이 8기나 된다는 점이다. 지금도 많은데 울진에 2기를 더 추가한다면 세계에서 유례없는 최대밀집 위험지역이 된다. 후쿠시마 사고에서 봤듯이 한 부지 내에 여러 개의 원전을 운영하는 것은 사고의 위험과 규모를 키우고, 대처가 어렵다. 이는 단지 울진이 아니라 전국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신한울 3, 4호기는 송전선로 대책도 없다. 현재 동해안 지역은 신울진 원전 1, 2호기 외에도 강릉, 삼척 등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발전소들에서 생산된 전력은 지역 내에서 사용할 곳이 없기 때문에 서울수도권으로 보낼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이를 위해 한국전력이 동해안에서 수도권까지 500kV 초고압송전선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역 주민들의 큰 반대가 예상돼 안정적인 송전선로 확보가 가능할지 불확실하다. 신한울 3, 4호기의 경우 현재 추진 중인 송전선로에도 포함돼 있지 않아 송전조차 불가능하다. 


 원전은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없어

 한국에서 원전이 가동된 지 40년 동안 과연 원전 소재지역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원전을 더 짓자고 하는 울진의 경우도 8기의 원전이 들어서는 동안 지역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지역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지난 몇 년간 울진의 재정자립도 역시 15~18퍼센트로 원전이 없는 작은 기초지자체와 비슷한 전국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원전이 지역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원전 추진론자들의 말들이 거짓말이었음은 이미 드러났다.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계속 검출되고, 갑상선암에 걸려 피해를 보상해달라는 원전 소재지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원전 담벼락 바로 앞에서 일상적인 방사선 피폭과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이 이주를 하고 싶어도 집을 팔지 못해 떠나지 못하고 있다. 헌법에도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가 박탈된 지 오래다. 여기에 원전을 더 짓는다면 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그럼에도 원자력계와 보수야당은 원전 2개 더 짓지 않으면 원전산업이 몰락한다고 협박하고 원전 수출로 산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쓰비시, 도시바, 히타치 등 세계적인 원전 기업들이 터키, 베트남, 영국 등에서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며 원전사업에서 잇따라 손을 떼고 있다. 이는 원전 시장 자체도 축소되었지만, 강화된 안전규제로 경제성이 떨어지고, 운영을 통해 자본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변해 위험부담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원자력의 꺼져가는 불꽃에 우리의 미래를 걸어서는 안 된다. 

 

 글 /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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