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맞선 ‘시민불복종’

2015년 당시 평밭마을 농성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2017년 2월, 밀양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왜 이리 슬프기만 한지. 2월 13일,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송전탑반대 대책위원장 박호야 어르신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고향땅에 송전탑이 박히는 것을 못 견디게 아파했고, 끝까지 저항하셨던 분이다. 17일 오전에는 상동면 모정마을에서 유일하게 한전 합의를 거부했던 김영록 님이 돌아가셨다. 마을에서 이장을 오래하셨던 분이라 송전탑으로 망가진 마을공동체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연이은 궂긴 소식에 힘들어하고 있을 유가족과 765㎸송전탑반대대책위에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혹여나 잇따른 주민들의 죽음이 송전탑이 들어선 후 깊은 상실감 때문은 아닌지 걱정이다.
밀양 고통 외면한 법원

지난 2월 2일 검찰 및 주민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의 결과를 그대로 인용 판결했다. 변호인과 주민들은 재판 결과에 분노하면서도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 대한 국가 폭력에 진상을 밝히고 사죄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지난 2월 2일, 창원 지방법원은 송전탑 반대 시위에 나섰던 주민 15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60~70세가 넘은 주민들은 특수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1년씩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2015년 9월, 1심에서도 높은 형량을 선고하더니, 이번에도 마치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1심을 그대로 인용했다.
밀양주민들에게 이 판결은 너무나 중요하다. ‘유죄’냐 ‘무죄’냐를 떠나서 이 판결을 통해 자신들의 투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되새기고, 규정하며, 투쟁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법원의 판결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사법부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주민들은 지금 싸울 수 있는 수단을 통해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밀양송전탑투쟁이 법을 위반한 채 떼를 쓰면서 국가정책을 발목 잡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밀양송전탑주민법률지원단(권혁근, 배영근, 김동현, 정상규, 김자연, 신훈민, 서국화, 김태형 변호사) 모든 변호사들은 밀양주민들이 왜 저항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시민불복종’ 논리를 펼쳤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신고리 3, 4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북경남까지 보내기 위해 765kV 초고압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수급과 송전선로 용량 초과를 이유로 공사를 강행했지만, 결론적으로 신고리 3호기는 시험성적서 조작비리로 송전선이 아니라 발전소 자체가 문제였음이 드러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현재 발전설비 과잉으로 전기가 남아돌고 있다.
밀양송전선로 건설은 긴요하지 않은 사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밀양송전탑 건설 차질 때문에 전력수급에 위기가 올 것처럼 압박했고, 고령의 어르신들을 토끼몰이 하듯이 진압했고, 현장에서는 한전 직원들과 경찰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주민들의 인권을 짓밟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6월 11일. 주민과 시민, 수녀님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저항했지만 경찰 20개 중대와 한전직원들은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흙먼지 날리며 무너지는 움막에서 20여 명이 실신하고 부상당했다.
변호인단은 정부의 전력수급 정책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송전탑이 얼마나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마을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왜 시민불복종이 불가피했는지에 대해 자료와 근거를 제시했다. 대책위 이계삼 국장은 밀양송전선로 노선 선정의 부당함과 일방적 추진, 한전의 술책에 의한 마을공동체 분열 과정을 상세하게 증언하면서 결국 막다른 곳으로 내몰린 주민들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력을 상세하게 증언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주민들이 주장하는 시민불복종은 민주사회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방어권의 표현임에는 마땅하나, 이것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며, 주민들이 이번 사건 과정에서 경찰 및 찬성 주민들에게 행사한 불법적인 행위는 허용되지 아니한다”며 수많은 자료와 증언을 무시하고, 원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경찰의 무리한 입건과 기소남발 등 공권력이 행사한 폭력은 인정하지 않은 채, 주민들의 ‘시민 불복종’은 모두 폭력으로 인정했다. 심지어 주민들이 공사현장에 앉아있거나 공사 장비에 몸을 묶은 행위도 폭력이 되었다.
송전탑 때문에 이치우, 유한숙 어르신이 목숨을 끊었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지만 정부도, 국회도, 법원도, 그 어떤 곳도 밀양의 고통을 들어주지 않았다. 주민들이 겪은 비통함을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날 법원의 결정은 5차례에 걸친 공판에 노령의 몸을 이끌고 밀양과 창원을 오가며 최선을 다했던 밀양주민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겼다.
에너지 전환 주역 밀양주민들이지만

2016년 11월 9일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 261명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이 자리에서 밀양 주민들은 “전기가 이렇게 많이 남아돌고 있고, 그 사이 두 분의 어르신이 목숨을 끊었고, 밀양 5개면 주민들이 10년의 세월동안 그렇게 목숨을 걸고 막아서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비정상적인 힘을 느꼈다”며 “밀양도 최순실이가 짓밟으라고 지시했더냐?”고 분노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밀양송전탑싸움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인가? 밀양 주민들은 스스로를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밀양 송전탑 싸움은 일방통행이던 정부의 중앙집중식 전력정책에 균열을 냈다. 도시민들은 탈핵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을 만나면서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경기도가 2030 전력자립 정책을 만든 배경에는 밀양 송전탑 투쟁이 있었다.
지난해 전기위원회는 신한울 3, 4호기 원전사업 허가를 보류했다. 송전선로를 확보하지 않고 원전 건설을 추진했던 기존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신울진~신경기 765kV 송전선로 계획은 HVDC(초고압직류) 송전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이마저도 진행될지 미지수이다.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초고압 송전탑 건설이 어려워지면서 원전 건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이번 계획에서만은 전력수급에 환경안전사회적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 뜯어고쳐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밀양이 있어 ‘전환’을 위한 계기가 만들어졌다. 밀양 산골 속에서의 힘겨웠던 저항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확산되고 있다. 밀양송전탑투쟁 백서에 빽빽하게 기록된 밀양의 하루하루가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햇수로 12년에 접어드는 밀양송전탑 저항의 과정에서 밀양 주민들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투쟁의 성과는 한국사회를 바꾸고 있다지만 밀양주민들에게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 철탑은 들어서 전기가 흐르고, 갖고 있던 땅과 집의 가치는 곤두박질 쳤고, 마을공동체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찬성주민들은 선물과 공짜 여행을 가면서 반대주민들을 조롱하고 있다. 몸과 마음에 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냐 말이다. 바로 국가이다. 국가 폭력은 밀양에 너무나 잔인했다. 밀양의 절망을 우리가 방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불복종 운동
밀양 송전탑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재판에 대한 상고를 준비하고, 송전탑 건설이 마을 공동체 파괴에 미친 영향에 대한 보고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경북 청도, 횡성, 당진, 군산 주민들과 송전탑 주변지역의 재산과 건강 피해 조사를 청원하는 활동도 시작할 것이다. 밀양 주민들의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불복종’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상고재판에서는 재판부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결을 내려야 한다. 다른 판결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밀양싸움이 ‘시민불복종’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지지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 모두가 밀양송전탑 싸움에 대한 뿌리를 확인해야 한다. 이 싸움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밀양송전탑은 정부의 폭력적이고 엉터리 전력 정책의 부산물이자, 전형적인 국가 폭력이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밀양 주민들이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되찾고, 자존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한 명 두 명 떠나기 전에 정부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밀양송전탑 ‘시민불복종’ 인정투쟁에 모두 함께 하자!
글 | 이유진 녹색당 탈핵특별위원회 위원장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불복종’
2015년 당시 평밭마을 농성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2017년 2월, 밀양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왜 이리 슬프기만 한지. 2월 13일,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송전탑반대 대책위원장 박호야 어르신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고향땅에 송전탑이 박히는 것을 못 견디게 아파했고, 끝까지 저항하셨던 분이다. 17일 오전에는 상동면 모정마을에서 유일하게 한전 합의를 거부했던 김영록 님이 돌아가셨다. 마을에서 이장을 오래하셨던 분이라 송전탑으로 망가진 마을공동체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연이은 궂긴 소식에 힘들어하고 있을 유가족과 765㎸송전탑반대대책위에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혹여나 잇따른 주민들의 죽음이 송전탑이 들어선 후 깊은 상실감 때문은 아닌지 걱정이다.
밀양 고통 외면한 법원
지난 2월 2일 검찰 및 주민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의 결과를 그대로 인용 판결했다. 변호인과 주민들은 재판 결과에 분노하면서도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 대한 국가 폭력에 진상을 밝히고 사죄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지난 2월 2일, 창원 지방법원은 송전탑 반대 시위에 나섰던 주민 15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60~70세가 넘은 주민들은 특수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1년씩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2015년 9월, 1심에서도 높은 형량을 선고하더니, 이번에도 마치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1심을 그대로 인용했다.
밀양주민들에게 이 판결은 너무나 중요하다. ‘유죄’냐 ‘무죄’냐를 떠나서 이 판결을 통해 자신들의 투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되새기고, 규정하며, 투쟁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법원의 판결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사법부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주민들은 지금 싸울 수 있는 수단을 통해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밀양송전탑투쟁이 법을 위반한 채 떼를 쓰면서 국가정책을 발목 잡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밀양송전탑주민법률지원단(권혁근, 배영근, 김동현, 정상규, 김자연, 신훈민, 서국화, 김태형 변호사) 모든 변호사들은 밀양주민들이 왜 저항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시민불복종’ 논리를 펼쳤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신고리 3, 4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북경남까지 보내기 위해 765kV 초고압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수급과 송전선로 용량 초과를 이유로 공사를 강행했지만, 결론적으로 신고리 3호기는 시험성적서 조작비리로 송전선이 아니라 발전소 자체가 문제였음이 드러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현재 발전설비 과잉으로 전기가 남아돌고 있다.
밀양송전선로 건설은 긴요하지 않은 사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밀양송전탑 건설 차질 때문에 전력수급에 위기가 올 것처럼 압박했고, 고령의 어르신들을 토끼몰이 하듯이 진압했고, 현장에서는 한전 직원들과 경찰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주민들의 인권을 짓밟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6월 11일. 주민과 시민, 수녀님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저항했지만 경찰 20개 중대와 한전직원들은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흙먼지 날리며 무너지는 움막에서 20여 명이 실신하고 부상당했다.
변호인단은 정부의 전력수급 정책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송전탑이 얼마나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마을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왜 시민불복종이 불가피했는지에 대해 자료와 근거를 제시했다. 대책위 이계삼 국장은 밀양송전선로 노선 선정의 부당함과 일방적 추진, 한전의 술책에 의한 마을공동체 분열 과정을 상세하게 증언하면서 결국 막다른 곳으로 내몰린 주민들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력을 상세하게 증언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주민들이 주장하는 시민불복종은 민주사회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방어권의 표현임에는 마땅하나, 이것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며, 주민들이 이번 사건 과정에서 경찰 및 찬성 주민들에게 행사한 불법적인 행위는 허용되지 아니한다”며 수많은 자료와 증언을 무시하고, 원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경찰의 무리한 입건과 기소남발 등 공권력이 행사한 폭력은 인정하지 않은 채, 주민들의 ‘시민 불복종’은 모두 폭력으로 인정했다. 심지어 주민들이 공사현장에 앉아있거나 공사 장비에 몸을 묶은 행위도 폭력이 되었다.
송전탑 때문에 이치우, 유한숙 어르신이 목숨을 끊었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지만 정부도, 국회도, 법원도, 그 어떤 곳도 밀양의 고통을 들어주지 않았다. 주민들이 겪은 비통함을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날 법원의 결정은 5차례에 걸친 공판에 노령의 몸을 이끌고 밀양과 창원을 오가며 최선을 다했던 밀양주민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겼다.
에너지 전환 주역 밀양주민들이지만
2016년 11월 9일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 261명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이 자리에서 밀양 주민들은 “전기가 이렇게 많이 남아돌고 있고, 그 사이 두 분의 어르신이 목숨을 끊었고, 밀양 5개면 주민들이 10년의 세월동안 그렇게 목숨을 걸고 막아서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비정상적인 힘을 느꼈다”며 “밀양도 최순실이가 짓밟으라고 지시했더냐?”고 분노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밀양송전탑싸움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인가? 밀양 주민들은 스스로를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밀양 송전탑 싸움은 일방통행이던 정부의 중앙집중식 전력정책에 균열을 냈다. 도시민들은 탈핵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을 만나면서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경기도가 2030 전력자립 정책을 만든 배경에는 밀양 송전탑 투쟁이 있었다.
지난해 전기위원회는 신한울 3, 4호기 원전사업 허가를 보류했다. 송전선로를 확보하지 않고 원전 건설을 추진했던 기존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신울진~신경기 765kV 송전선로 계획은 HVDC(초고압직류) 송전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이마저도 진행될지 미지수이다.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초고압 송전탑 건설이 어려워지면서 원전 건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이번 계획에서만은 전력수급에 환경안전사회적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 뜯어고쳐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밀양이 있어 ‘전환’을 위한 계기가 만들어졌다. 밀양 산골 속에서의 힘겨웠던 저항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확산되고 있다. 밀양송전탑투쟁 백서에 빽빽하게 기록된 밀양의 하루하루가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햇수로 12년에 접어드는 밀양송전탑 저항의 과정에서 밀양 주민들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투쟁의 성과는 한국사회를 바꾸고 있다지만 밀양주민들에게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 철탑은 들어서 전기가 흐르고, 갖고 있던 땅과 집의 가치는 곤두박질 쳤고, 마을공동체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찬성주민들은 선물과 공짜 여행을 가면서 반대주민들을 조롱하고 있다. 몸과 마음에 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냐 말이다. 바로 국가이다. 국가 폭력은 밀양에 너무나 잔인했다. 밀양의 절망을 우리가 방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불복종 운동
밀양 송전탑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재판에 대한 상고를 준비하고, 송전탑 건설이 마을 공동체 파괴에 미친 영향에 대한 보고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경북 청도, 횡성, 당진, 군산 주민들과 송전탑 주변지역의 재산과 건강 피해 조사를 청원하는 활동도 시작할 것이다. 밀양 주민들의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불복종’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상고재판에서는 재판부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결을 내려야 한다. 다른 판결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밀양싸움이 ‘시민불복종’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지지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 모두가 밀양송전탑 싸움에 대한 뿌리를 확인해야 한다. 이 싸움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밀양송전탑은 정부의 폭력적이고 엉터리 전력 정책의 부산물이자, 전형적인 국가 폭력이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밀양 주민들이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되찾고, 자존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한 명 두 명 떠나기 전에 정부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밀양송전탑 ‘시민불복종’ 인정투쟁에 모두 함께 하자!
글 | 이유진 녹색당 탈핵특별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