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고장난 경주방폐장, 진짜 문제는 설계 결함

준공식이 열린 지 1년 만에 설계 결함이드러난 경주 방폐장으로 중저준위 방폐물을 실은 운반 차량들이 반입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국가에서 설치한 40년짜리 대형 펌프가 불과 1년 만에 모두 고장 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확히 기술하면 경주 방폐장의 지하수를 퍼내기 위해서 설치한 8기의 배수펌프 중 7기가 고장 나서 새것으로 교체됐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이 충돌했다. 책임자인 이종인 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관리부실’에 대해 ‘사과’했고 환경연합은 ‘설계결함’을 지적하며 ‘경주 방폐장 가동 중단 및 안전성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1년 만에 고장 난 경주 방폐장

먼저, 경주 방폐장에 대해 간략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주 방폐장은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영구 처분하는 곳이다. 즉, 고준위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제외한 모든 핵폐기물이 이곳으로 온다. 이곳은 본래 신월성 원전 3, 4호기 예정 부지였으나 방폐장으로 전용됐다. 당연히 바닷가에 인접해 있다. 정부는 이 일대에 총 80만 드럼을 처분할 수 있는 방폐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현재 1단계 공사인 10만 드럼 규모의 동굴식 처분장을 2015년 준공하여 운영하고 있다.

동굴식 처분장은 해수면보다 약 100미터 아래에 있고 지표면(방폐장 입구)에서 약 200미터 지하에 있다. 지하에 직경 30미터 높이 5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사일로(원통형 처분장)를 6기 건설해 놓았다. 이곳에 10만 드럼의 핵폐기물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운영동굴, 건설동굴, 수직구 등 3개의 통로가 지상에서 사일로에 연결되어 있다.

경주 방폐장은 건설 초기부터 숱한 안전성 논란에 휩싸여 왔다. 불량 암반, 지하수 다량 유출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일로 주변에 10개의 단층이 존재하는 등 암반이 매우 불안정하다. 이것이 직접적으로 지하 구조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깨어진 암반 사이로 하루 평균 2000톤의 지하수가 흐르고 있다. 지하수는 지하 구조물을 부식시키고 방사능 오염을 확산시킨다.

원자력환경공단(이하 공단)은 지하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일로 아래쪽에 집수정을 만들고 배수펌프를 설치했다. 200미터 지하에서 매일 수천 톤의 지하수를 뽑아 올리고 있다. 지하수가 흐르는 배수관은 수직구를 통해 지상으로 연결된다.

고장 난 배수펌프를 교체한 시기는 2015년 9월이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이 사실을 보고받은 것은 올해 2월이고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4월이다. 40년짜리 배수펌프가 사용 1년 만에 대부분 고장 난 것도 문제지만, 규제기관인 원안위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큰 우려를 자아낸다.

공단이 밝힌 배수펌프 고장 원인은 이물질에 의한 펌프의 마모였다. 지하수에 이물질이 많은 이유를 암반을 보강하기 위해 주입한 쇼크리트의 석회질 성분으로 꼽았다. 지하 동굴을 뚫으면서 갈라진 암반을 붙이는데 사용한 시멘트 풀이 원인이란 것이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해수 유입’으로 보인다. 방폐장은 바닷가에 인접해 있고 배수펌프는 해수면보다 100미터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매일 수천 톤의 지하수를 뽑아내면 바닷물도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모이게 된다. 실제로 방폐장에서 배출되는 지하수는 일반 담수보다 염도(염소이온 농도)가 45배 이상 높다. 지하수의 염분이 쇼크리트의 석회질 성분과 반응해 이물질이 다량으로 발생했다. 염분은 배수펌프 자체도 부식시킨다. 공단이 배수펌프를 교체하면서 기존의 탄소강 재질을 염분에 강한 스테인리스강 재질로 교체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럼 이번 사태는 스테인리스강 재질의 배수펌프로 교체했으니 그냥 박수 치고 넘어가면 될 일인가?

 

문제는 설계결함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해수 유입을 설계에 반영하지 않은 ‘설계결함’에 있다. 그리고 설계결함은 더 넓은 범위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말, 환경연합에 익명의 제보가 접수됐다. 제보는 방폐장의 설계결함을 여럿 지적하고 있었으나 당시로선 그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보는 배수펌프 고장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제보는 크게 네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사일로 하부의 지하수 저장조에서 지상부로 연결되는 210미터 수직구의 내진설계 누락으로 지진 발생 시 배수관 파열로 사일로 침수. 둘째, 지하수의 화학적 성분(염분 및 황 등) 변화와 영향을 설계에 반영하지 않아서 배수펌프 및 배수관 조기 산화 및 콘크리트 수명 단축. 셋째, 지하수 발생량 예측 실패에 따른 배수펌프 과부하로 수명 단축. 넷째, 배수펌프 및 배수관에 내구(부식)성이 강한 스테인리스강 대신 탄소강 사용 등이다 

배수펌프 교체로 제보 내용은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이쯤 되면 경주 방폐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안전성을 원점에서 재조사해야 한다. 지난 4월 원안위에 출석한 방폐장 배수설비 설계자는 “공단이 담수 조건으로 설계조건을 제시했다.”며 설계결함을 시인했다. 그런 만큼 ‘수직구의 내진설계 누락’ 등 의혹을 시급히 확인해야 한다. 수직구의 내진설계가 중요한 것은 지하수 배수관이 수직구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직구가 붕괴되면 배수설비 전체가 붕괴되고 사일로가 침수된다.

위 네 가지 의혹에 대해서 공단은 5월 7일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특히, 수직구의 내진설계 누락에 대해서 “수직구는 국토교통부의 ‘터널내진설계’ 기준에 따라 내진설계가 적용”됐다고 해명했다. 많은 언론이 공단의 반박 보도자료와 함께 이 문제를 일단락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공단이 밝힌 ‘터널내진설계’에 있다.

국토교통부의 ‘터널내진설계’ 기준은 우리가 도로에서 쉽게 만나는 터널에 적용되는 내진설계를 일컫는다. 이것은 원자력 시설에 적용되는 내진설계보다 한참 낮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방폐장 수직구에 적용된 내진설계는 결국 ‘0.11g’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공단은 방폐장에 적용된 내진설계는 핵발전소의 원자로 건물과 같은 ‘0.2g’를 적용했다고 늘 자랑했다. 그러나 사일로에만 0.2g를 적용했을 뿐, 수직구, 운영동굴, 건설동굴 등은 모두 0.11g를 적용한 사실이 이번 논쟁을 통해 밝혀졌다.

경주 방폐장 안전성의 핵심은 배수설비다. 배수관이 병설된 210미터의 수직구에 적용한 0.11g의 내진설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진으로 생성된 10개의 단층이 방폐장 부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가동 중인 10만 드럼 규모의 1단계 처분장은 건설 당시 10년 사용 후 폐쇄할 계획이었다. 아마도 10년 사용할 시설이었기 때문에 내진설계를 낮게 적용한 듯하다. 그러나 핵폐기물 관리 정책이 변하면서 40년 사용으로 늘어났다. 안전을 위해서는 배수설비를 300년 동안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원안위는 안전성 조사해야

이처럼 경주 방폐장은 해수 유입을 설계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내진설계도 충분하지 못하다. 정확한 내진설계 규모(0.11g)를 밝히지 않은 채 ‘터널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했다는 해명으로 어물쩍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이는 안전분야의 공공기관으로서 올바르지 못한 처사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듯이 거대 국책사업인 경주 방폐장의 안전성을 재론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경주 방폐장은 부지를 선정하는 데 19년이 소요됐고, 2005년 부지선정 이후 2015년 1단계 처분장 준공까지 다시 10년간 공사를 했다. 투자된 공사비만 1조5천억 원이 넘는 국가사업이다. 

그렇지만 방폐장 건설 과정에서 ‘해수유입과 내진강도’를 설계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정황과 증거 들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공단은 현란한 데이터를 들이대며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계속 강변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이참에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안전성 공동조사를 받아들여 깔끔하게 털고 가야 한다. 여기에 규제기관인 원안위의 역할이 있다.

 

글 |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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