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야당인 민진당 지도자의 단식과 수만 명 시민들의 거리 시위, 국회의 압박 한 가운데에 있었다. 결국 집권 국민당 시장들과 수 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대만 제4원전에 대해 “건설을 일시 중단하며, 재가동 여부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제4원전은 이미 3300억 대만달러(약 11조3000억 원)라는 막대한 건설비가 투입되었고 공정률 98퍼센트를 보이고 있었다. 마잉주 총통은 제4원전의 제1원자로는 이미 완공되었지만 안전검사가 끝나는 대로 폐쇄하고 제2원자로에 대해서는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는 그만큼 제4원전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에 있을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당 집권 정부는 국민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제4원전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 대만 시민들 ⓒLennon Ying-Dah Wong
제4원전 완공 직전 건설 중단 결정
사실 대만 제4원전의 건설 중단과 재개, 다시 중단의 과정은 지난했다.대만의 국영 대만전력공사(Taipower)는 국민당 정부 시절인 1996년, GE와 18억 달러의 경수로 및 초기 핵연료 공급계약을 체결해 1999년부터 제4원전 건설에 착수했다. 대만은 3곳의 부지에 6기의 원전이 가동중이며 원전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 1970년부터 시작된 대만의 반핵운동은 지진다발 지역인 대만에서 핵발전소가 완전히 폐쇄되어야 하고 그 첫 시작으로 신규원전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제4원전 건설 중단을 거세게 요구했다. 이는 주요 정치적 이슈가 되었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진당은 대만 반핵운동 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2000년 3월 총통 선거에 나선 민진당은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제4원전 건설 중단을 내세웠고 민진당의 천수이볜 후보는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룬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천수이볜 총통은 공약대로 2000년 10월에 30퍼센트 건설 공정률을 보이던 제4원전 건설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곧 큰 반발에 부딪치게 됐다. 국민당이 천수이볜 총통의 탄핵안을 들고 나왔고 주가도 44퍼센트나 폭락하는 등 대만 경제가 원전중도폐지 문제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다. 거기에 더해 2001년 1월 15일, 대만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대법관회의는 의회인 입법원의 승인 없이 정부가 원전 건설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법적인 하자가 있다면서 원전 건설 중단을 위해선 입법원의 표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입법원은 1월 31일 표결을 실시했고 제4원전 건설 재개 찬성 134, 반대 70, 기권 6으로 원전 건설을 재개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국 천수이볜 총통은 2월 13일 원전 건설을 재개한다는데 합의했다. 총통은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향후 탈원전의 실현을 도모한다’는 것을 첫 번째 합의 조건으로 달아 체면을 유지하려 했지만 오랫동안 민진당과 함께해온 환경단체들과 시민사회의 실망감과 배신감이 극에 달했음은 물론이다. 1980년대 가장 유명했던 구호는 ‘반핵은 곧 반독재’였으며 국민당 독재 반대 민주화 운동이 곧 반핵운동이었다. 시민들은 정권을 교체했지만 교체된 정권은 핵발전소 폐쇄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이후 2008년 선거에서 민진당은 국민당에 패배했고 천수이볜은 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제4원전 건설 중단 요구는 더 높아졌고 초미의 정치쟁점이 됐다. 그러자 민진당은 제4원전에 대해서 번복했던 입장을 바꿨다. 시민들과 힘을 합쳐 결국 마잉주 총통으로 하여금 건설 중단이라는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이다.
앞으로 문제는 국민투표의 실효성이다. 대만의 현행 국민투표법 규정에 따르면 총 유권자의 50퍼센트 이상 투표에 참가하고, 그 과반이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된다. 국민당이 이번 폐쇄 결정에 국민투표 단서를 달아 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만에서는 2006년 현행 국민투표법이 시행된 이래 6번에 걸쳐 국민투표가 시행됐으나 모두 50퍼센트 참여율에 미치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민진당과 반핵단체들은 유권자의 25퍼센트 찬성으로 통과 여부를 가리자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곧 반핵운동
아예 100퍼센트 완공률을 보이고 핵연료 장전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핵발전소 폐쇄 결정이 난 곳도 있다. 바로 필리핀의 바탄(Battan) 발전소다. 바탄 원전은 수도 마닐라에서 서쪽으로 7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필리핀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들어가는데 바탄 원전이 위치한 곳은 특히나 화산 인근의 단층대로 매우 취약한 곳이다. 바탄 원전 반대운동은 과거 필리핀 독재정부였던 마르코스 일가의 부패 사건의 상징적인 저항 운동이기도 했다. 바탄원전 초기 공사비용이 6억 달러였지만 나중에는 23억 달러까지 치솟았는데 대부분이 마르코스 일가가 착복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필리핀의 국가 부채 20퍼센트가 원전 대금으로 채워졌다. 필리핀 역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반핵운동이었고 바탄원전 반대 운동이 부패한 마르코스 정권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1986년 필리핀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당선되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충격 영향으로 바탄원전 폐쇄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2008년 아로요 정부 당시 필리핀 상원과 하원에서 바탄 원전의 재가동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필리핀 전력공사가 한국전력공사에 바탄 원전 재가동과 관련한 타당성 조사를 의뢰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되었고 2009년 12월에는 한전이 바탄 원전의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조사결과를 보냈다. 폐쇄 결정이 난 지 20여 년 만에 다시 원전 가동의 움직임이 본격화 된 것이다. 필리핀 국민들은 다시 거리 시위를 시작했고 국회에서는 회기 내 법안 처리에 실패했다.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된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는 초기에 원전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곧 전력부족을 이유로 새로운 원전 부지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당장의 바탄원전 재가동 계획과 새로운 원전 건설 계획을 주춤하게 했다.
현재 바탄 원전은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방사능 오염 걱정 없이 격납건물 안에 들어가 원자로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원전 옆 해변에서는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예약자가 수개월 밀려있다고 한다.

일본 재판부로부터 재가동 금지 판결을 받은 오이 원전 ⓒAyumu Kawazoe
캐나다 신규원전 불허 판결 일본도 원전 재가동 금지 판결
지난 5월 15일에는 캐나다 연방법원이 달링턴(Darlington) 신규원전 건설 허가 불허 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달링턴 신규원전에 대한 일체의 행정 조치가 금지되어 건설이 중단되었다. 그린피스 캐나다 등 환경단체와 환경법학회 등이 제기한 이번 소송의 핵심 내용은 캐나다 환경부와 캐나다 핵안전위원회가 수행한 연방환경평가가 환경영향평가법에 적합한지를 따지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환경단체들이 제기한 문제들 중에서 세 가지를 인정했는데 원전 부지에서 발생하는 유해화학물질(방사성물질을 포함한) 방출 시나리오의 문제,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고려, 중대사고 분석을 유예한 문제가 그것이다. 연방법원은 이 문제들이 고려된 환경평가가 다시 이루어지기 전에는 연방정부나 주정부, 의회가 어떠한 행정조치도 취할 수 없게 금지했다.
한편 일본 재판부는 지난 5월 21일 일본 내에서 50기의 원전 중 유일하게 가동하던 후쿠이현의 오이원전 3, 4호기 재가동을 금지시켰다. 오이 원전이 극한 지진 재해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지만 설정한 기준치가 낮아서 지진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안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오이원전의 운영자인 간사이 전력은 오이원전의 내진설계는 700갈(Gal: 지진가속도의 기준)을 기준으로 하고 있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서 1260갈까지는 견딜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1260갈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며 그러한 대지진이 발생했을 경우에 원전의 냉각기능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현재 국내 월성원전 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검증 내용 중에서도 최대 지진 평가와 내진설계 여유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는데 월성원전 1호기 부지의 최대지진은 280갈 정도이고 내진설계는 200갈이지만 300갈까지 여유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소방방재청이 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해서 2012년에 작성한 지진위험지도에 따르면 300갈이 넘는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월성원전 주변은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서 대지진 발생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며 활성단층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대지진 역사기록도 다수이다. 하지만 내진설계는 가장 취약한 상황이다. 오이원전의 판결 결과를 월성원전에 적용하면 월성원전 역시 가동이 중단되어야 한다.
탈핵 시장 선출한 삼척시민들
캐나다 달링턴 원전 소송 판결은 신고리 원전 5, 6호기 소송에 견줄 만하다. 국내 원전들은 중대 사고를 가정하지 않은 방사성환경영향평가서를 가지고 실시계획 승인, 건설허가 승인을 받아서 가동중이다. 인구 밀집 지역에 다수 호기 원전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일상적인 방사성물질 유출과 중대사고 영향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신규원전 건설이 계속되고 있다.
2013년 말을 기준으로 신고리 3, 4호기는 97.27퍼센트의 공정률, 신월성 2호기는 99.58퍼센트의 공정률, 신한울 1, 2호기는 50.99퍼센트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건설중인 원전을 취소한 대만과 필리핀의 사례에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결합한 반핵운동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법정 소송을 통해 원전 재가동과 신규원전 건설을 막은 일본과 캐나다의 사례에서는 제도를 이용한 반핵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눈부신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있지만 반핵운동과 결합하지 못했다. 사법부는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아직 신뢰받지 못하고 있으며 소송을 통한 반핵운동은 초기 단계이다.
하지만 자치운동이 신규원전 부지를 저지하는 힘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지방자치 선거에서 삼척시장 선거 결과는 놀랍다. 강원도 지자체 선거 결과 도지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자체장과 의회가 새누리당이 장악한 반면에 삼척에서는 ‘탈핵’을 전면에 내세우고 신규원전부지 취소를 제1공약으로 내건 무소속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4만2000여 명이 투표한 결과 무소속의 김양호 후보가 2만5948표를 얻어 62.44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신규원전부지를 유치 신청한 전 삼척시장 김대수 후보는 현 시장이라는 이점에도 1만 표 이상의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국내 지방선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김양호 당선자는 연말까지 부지선정을 취소시킨다는 목표로 김대수 전 시장이 신규원전 부지 유치 근거로 삼은 97퍼센트 시민 동의가 근거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계획이다. 김대수 전 시장의 방해로 무의로 돌아간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전을 중단시킨 힘은?
마침, 올해는 연말까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마련되는 해이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상 부풀려졌다고 평가받는 전력수요를 검증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인데 유보된 삼척과 영덕 원전 계획이 반영될 것인지도 설비 소위원회에서 평가할 것이다. 그런데 발전설비 평가의 기준에서 지방의회 동의와 주민 유치 의사가 100점 만점에서 가장 큰 비중인 25점을 차지하고 있다. 송변전 건설 용이성도 15점으로 높은 점수이다. 삼척에 원전이 건설되면 강원도를 가로질러 수도권까지 추가로 765kV 초고압 송전탑 선로가 두 개 더 건설되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 밀양 송전탑 갈등을 비춰보았을 때 쉽지 않은 계획이다. 삼척 신규원전 부지는 어느 모로 보나 추진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현 정권에서 지정 고시된 신규원전 부지가 취소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원전 계획을 중단시키는 데 가동중인 원전인지, 건설중인 원전인지, 완공을 앞둔 원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회가 얼마나 탈핵의 의지가 강한지, 정치권과의 결합력과 사회의 성숙 정도가 중요한 관건이다.
글 |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
지난 4월 27일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야당인 민진당 지도자의 단식과 수만 명 시민들의 거리 시위, 국회의 압박 한 가운데에 있었다. 결국 집권 국민당 시장들과 수 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대만 제4원전에 대해 “건설을 일시 중단하며, 재가동 여부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제4원전은 이미 3300억 대만달러(약 11조3000억 원)라는 막대한 건설비가 투입되었고 공정률 98퍼센트를 보이고 있었다. 마잉주 총통은 제4원전의 제1원자로는 이미 완공되었지만 안전검사가 끝나는 대로 폐쇄하고 제2원자로에 대해서는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는 그만큼 제4원전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에 있을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당 집권 정부는 국민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제4원전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 대만 시민들 ⓒLennon Ying-Dah Wong
제4원전 완공 직전 건설 중단 결정
사실 대만 제4원전의 건설 중단과 재개, 다시 중단의 과정은 지난했다.대만의 국영 대만전력공사(Taipower)는 국민당 정부 시절인 1996년, GE와 18억 달러의 경수로 및 초기 핵연료 공급계약을 체결해 1999년부터 제4원전 건설에 착수했다. 대만은 3곳의 부지에 6기의 원전이 가동중이며 원전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 1970년부터 시작된 대만의 반핵운동은 지진다발 지역인 대만에서 핵발전소가 완전히 폐쇄되어야 하고 그 첫 시작으로 신규원전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제4원전 건설 중단을 거세게 요구했다. 이는 주요 정치적 이슈가 되었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진당은 대만 반핵운동 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2000년 3월 총통 선거에 나선 민진당은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제4원전 건설 중단을 내세웠고 민진당의 천수이볜 후보는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룬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천수이볜 총통은 공약대로 2000년 10월에 30퍼센트 건설 공정률을 보이던 제4원전 건설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곧 큰 반발에 부딪치게 됐다. 국민당이 천수이볜 총통의 탄핵안을 들고 나왔고 주가도 44퍼센트나 폭락하는 등 대만 경제가 원전중도폐지 문제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다. 거기에 더해 2001년 1월 15일, 대만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대법관회의는 의회인 입법원의 승인 없이 정부가 원전 건설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법적인 하자가 있다면서 원전 건설 중단을 위해선 입법원의 표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입법원은 1월 31일 표결을 실시했고 제4원전 건설 재개 찬성 134, 반대 70, 기권 6으로 원전 건설을 재개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국 천수이볜 총통은 2월 13일 원전 건설을 재개한다는데 합의했다. 총통은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향후 탈원전의 실현을 도모한다’는 것을 첫 번째 합의 조건으로 달아 체면을 유지하려 했지만 오랫동안 민진당과 함께해온 환경단체들과 시민사회의 실망감과 배신감이 극에 달했음은 물론이다. 1980년대 가장 유명했던 구호는 ‘반핵은 곧 반독재’였으며 국민당 독재 반대 민주화 운동이 곧 반핵운동이었다. 시민들은 정권을 교체했지만 교체된 정권은 핵발전소 폐쇄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이후 2008년 선거에서 민진당은 국민당에 패배했고 천수이볜은 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제4원전 건설 중단 요구는 더 높아졌고 초미의 정치쟁점이 됐다. 그러자 민진당은 제4원전에 대해서 번복했던 입장을 바꿨다. 시민들과 힘을 합쳐 결국 마잉주 총통으로 하여금 건설 중단이라는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이다.
앞으로 문제는 국민투표의 실효성이다. 대만의 현행 국민투표법 규정에 따르면 총 유권자의 50퍼센트 이상 투표에 참가하고, 그 과반이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된다. 국민당이 이번 폐쇄 결정에 국민투표 단서를 달아 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만에서는 2006년 현행 국민투표법이 시행된 이래 6번에 걸쳐 국민투표가 시행됐으나 모두 50퍼센트 참여율에 미치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민진당과 반핵단체들은 유권자의 25퍼센트 찬성으로 통과 여부를 가리자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곧 반핵운동
아예 100퍼센트 완공률을 보이고 핵연료 장전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핵발전소 폐쇄 결정이 난 곳도 있다. 바로 필리핀의 바탄(Battan) 발전소다. 바탄 원전은 수도 마닐라에서 서쪽으로 7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필리핀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들어가는데 바탄 원전이 위치한 곳은 특히나 화산 인근의 단층대로 매우 취약한 곳이다. 바탄 원전 반대운동은 과거 필리핀 독재정부였던 마르코스 일가의 부패 사건의 상징적인 저항 운동이기도 했다. 바탄원전 초기 공사비용이 6억 달러였지만 나중에는 23억 달러까지 치솟았는데 대부분이 마르코스 일가가 착복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필리핀의 국가 부채 20퍼센트가 원전 대금으로 채워졌다. 필리핀 역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반핵운동이었고 바탄원전 반대 운동이 부패한 마르코스 정권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1986년 필리핀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당선되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충격 영향으로 바탄원전 폐쇄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2008년 아로요 정부 당시 필리핀 상원과 하원에서 바탄 원전의 재가동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필리핀 전력공사가 한국전력공사에 바탄 원전 재가동과 관련한 타당성 조사를 의뢰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되었고 2009년 12월에는 한전이 바탄 원전의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조사결과를 보냈다. 폐쇄 결정이 난 지 20여 년 만에 다시 원전 가동의 움직임이 본격화 된 것이다. 필리핀 국민들은 다시 거리 시위를 시작했고 국회에서는 회기 내 법안 처리에 실패했다.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된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는 초기에 원전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곧 전력부족을 이유로 새로운 원전 부지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당장의 바탄원전 재가동 계획과 새로운 원전 건설 계획을 주춤하게 했다.
현재 바탄 원전은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방사능 오염 걱정 없이 격납건물 안에 들어가 원자로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원전 옆 해변에서는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예약자가 수개월 밀려있다고 한다.
일본 재판부로부터 재가동 금지 판결을 받은 오이 원전 ⓒAyumu Kawazoe
캐나다 신규원전 불허 판결 일본도 원전 재가동 금지 판결
지난 5월 15일에는 캐나다 연방법원이 달링턴(Darlington) 신규원전 건설 허가 불허 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달링턴 신규원전에 대한 일체의 행정 조치가 금지되어 건설이 중단되었다. 그린피스 캐나다 등 환경단체와 환경법학회 등이 제기한 이번 소송의 핵심 내용은 캐나다 환경부와 캐나다 핵안전위원회가 수행한 연방환경평가가 환경영향평가법에 적합한지를 따지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환경단체들이 제기한 문제들 중에서 세 가지를 인정했는데 원전 부지에서 발생하는 유해화학물질(방사성물질을 포함한) 방출 시나리오의 문제,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고려, 중대사고 분석을 유예한 문제가 그것이다. 연방법원은 이 문제들이 고려된 환경평가가 다시 이루어지기 전에는 연방정부나 주정부, 의회가 어떠한 행정조치도 취할 수 없게 금지했다.
한편 일본 재판부는 지난 5월 21일 일본 내에서 50기의 원전 중 유일하게 가동하던 후쿠이현의 오이원전 3, 4호기 재가동을 금지시켰다. 오이 원전이 극한 지진 재해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지만 설정한 기준치가 낮아서 지진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안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오이원전의 운영자인 간사이 전력은 오이원전의 내진설계는 700갈(Gal: 지진가속도의 기준)을 기준으로 하고 있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서 1260갈까지는 견딜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1260갈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며 그러한 대지진이 발생했을 경우에 원전의 냉각기능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현재 국내 월성원전 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검증 내용 중에서도 최대 지진 평가와 내진설계 여유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는데 월성원전 1호기 부지의 최대지진은 280갈 정도이고 내진설계는 200갈이지만 300갈까지 여유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소방방재청이 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해서 2012년에 작성한 지진위험지도에 따르면 300갈이 넘는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월성원전 주변은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서 대지진 발생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며 활성단층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대지진 역사기록도 다수이다. 하지만 내진설계는 가장 취약한 상황이다. 오이원전의 판결 결과를 월성원전에 적용하면 월성원전 역시 가동이 중단되어야 한다.
탈핵 시장 선출한 삼척시민들
캐나다 달링턴 원전 소송 판결은 신고리 원전 5, 6호기 소송에 견줄 만하다. 국내 원전들은 중대 사고를 가정하지 않은 방사성환경영향평가서를 가지고 실시계획 승인, 건설허가 승인을 받아서 가동중이다. 인구 밀집 지역에 다수 호기 원전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일상적인 방사성물질 유출과 중대사고 영향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신규원전 건설이 계속되고 있다.
2013년 말을 기준으로 신고리 3, 4호기는 97.27퍼센트의 공정률, 신월성 2호기는 99.58퍼센트의 공정률, 신한울 1, 2호기는 50.99퍼센트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건설중인 원전을 취소한 대만과 필리핀의 사례에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결합한 반핵운동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법정 소송을 통해 원전 재가동과 신규원전 건설을 막은 일본과 캐나다의 사례에서는 제도를 이용한 반핵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눈부신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있지만 반핵운동과 결합하지 못했다. 사법부는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아직 신뢰받지 못하고 있으며 소송을 통한 반핵운동은 초기 단계이다.
하지만 자치운동이 신규원전 부지를 저지하는 힘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지방자치 선거에서 삼척시장 선거 결과는 놀랍다. 강원도 지자체 선거 결과 도지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자체장과 의회가 새누리당이 장악한 반면에 삼척에서는 ‘탈핵’을 전면에 내세우고 신규원전부지 취소를 제1공약으로 내건 무소속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4만2000여 명이 투표한 결과 무소속의 김양호 후보가 2만5948표를 얻어 62.44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신규원전부지를 유치 신청한 전 삼척시장 김대수 후보는 현 시장이라는 이점에도 1만 표 이상의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국내 지방선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김양호 당선자는 연말까지 부지선정을 취소시킨다는 목표로 김대수 전 시장이 신규원전 부지 유치 근거로 삼은 97퍼센트 시민 동의가 근거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계획이다. 김대수 전 시장의 방해로 무의로 돌아간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전을 중단시킨 힘은?
마침, 올해는 연말까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마련되는 해이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상 부풀려졌다고 평가받는 전력수요를 검증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인데 유보된 삼척과 영덕 원전 계획이 반영될 것인지도 설비 소위원회에서 평가할 것이다. 그런데 발전설비 평가의 기준에서 지방의회 동의와 주민 유치 의사가 100점 만점에서 가장 큰 비중인 25점을 차지하고 있다. 송변전 건설 용이성도 15점으로 높은 점수이다. 삼척에 원전이 건설되면 강원도를 가로질러 수도권까지 추가로 765kV 초고압 송전탑 선로가 두 개 더 건설되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 밀양 송전탑 갈등을 비춰보았을 때 쉽지 않은 계획이다. 삼척 신규원전 부지는 어느 모로 보나 추진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현 정권에서 지정 고시된 신규원전 부지가 취소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원전 계획을 중단시키는 데 가동중인 원전인지, 건설중인 원전인지, 완공을 앞둔 원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회가 얼마나 탈핵의 의지가 강한지, 정치권과의 결합력과 사회의 성숙 정도가 중요한 관건이다.
글 |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