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돈 봉투 사건의 전말

돈 봉투 유혹을 뿌리치고 송전탑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공사장 정문 앞에서 시위중인 청도 삼평리 주민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추석연휴인 9월 9일, 경찰이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돈봉투를 돌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봉투에는 5만 원권으로 100~500만 원이 들어있었고, 봉투 앞면에는 ‘청도경찰서장 이현희’라는 한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 돈봉투를 배달한 사람은 청도경찰서 정보과 직원이었다. 그 직원은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 집을 일일이 방문해 “병원비에 보태 써라”는 말과 함께 봉투를 건넸다. 할머니들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툇마루에 던져놓거나 고향을 방문한 자식들에게 건네고 도망갔다.  

봉투를 받은 주민들은 총 7명으로 100만 원 3명, 300만 원 3명, 500만 원 1명이며 총 금액은 1700만 원이다. 7명은 모두 고령의 할머니들로, 반대 주민들 중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주민들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이다. 경찰서장 월급이 얼마기에 이렇게 큰돈을 병원비하라며 준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공대위가 못한 일을 해낸 경찰?  

할머니들은 다음날인 10일, 대책위에 돈 봉투를 건네며 빠른 시일 내에 경찰에 돌려주라고 말하셨다. 필자는 대책위 상황실장으로 할머니들의 돈 봉투를 모두 받아 보관했다. 그리고 돈 봉투를 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돈 봉투를 준건가? 그리고 이 돈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밤새 고민하다 날이 밝았고 11일 오전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완공된 송전탑에 전선을 걸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고, 자재반입이 이어졌다. 할머니들은 자재반입을 저지하기 위해 공사장 정문 앞에 버티고 앉아계셨다. 그러자 돈 봉투를 건넨 정보과 직원이 등장했다. 순간, 필자는 너무 화가 나 그 직원에게 조용히 말했다. “OO 씨, 인간적으로 정말 너무 한 거 아닌가요?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죠?” 그러자 직원은 큰 목소리로 으스대며 “으~공대위가 못한 일을 우리가 했지~ 공대위가 할머니들한테 해준 게 뭐요?”라고 답했다. 설상가상, 이현희 전 청도경찰서장은 정문 앞의 할머니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할매~내다~나가자(정문 입구를 막지 말고 옆으로 나가라는 뜻)”, “아지매~내다~가자” 등 여태까지 보여주었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에서 친근한 동네 삼촌 코스프레를 하며 할머니들을 끌어냈다. 아주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돈 봉투를 건네는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도 어찌 저렇게 당당하고 뻔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아마 할머니들이 돈 봉투를 받은 후, 대책위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자기들(경찰)을 어여삐 여길 거라 생각했나보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을 이럴 때 쓴다. 11일, 공사장 정문에서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이현희 전 서장은 직위해제 되었고 돈 봉투를 배달한 정보과 직원도 다른 곳으로 발령 났다.  

 

병주고 약주는 한전 

이현희 전 서장의 직위해제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었다. 1700만 원 돈의 출처가 밝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현희 전 서장은 조사에서 돈의 출처에 대한 진술을 계속 바꾸었으나 어쨌든 최종적으로 한전으로부터 건네받은 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한전은 1700만 원을 어떻게 마련한 것인가? 그들은 ‘개인 사비’라 주장했다. 개인 사비라 주장한 한전 직원들은 공사 현장에서 주민들을 자극하고 수많은 충돌을 일으켰던 당사자들이다. 욕설은 기본, 철심이 박힌 안전화로 연대자들을 발로 차고, 자기들의 공사는 정당하며 할머니들에게 불법을 그만 저지르라고 협박했던 그들이, 할머니들 건강이 걱정되어 사비를 털어 아주 큰 금액의 돈을 병원비로 마련했다는 것은 당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할머니들 건강이 걱정되었다면 6년간 꾸준히 이야기해왔던 ‘지중화를 위한 공론의 장’, ‘주민의견서 조작사건, 주민설명회 미개최에 대한 답변과 사죄’, ‘급작스런 노선변경에 따른 삼평리 송전탑 건설 의혹’에 대한 대답이 먼저 이루어져야 했다. 병원으로 응급 후송되며, 농사 못 지으며, 잠을 설쳐가며 할머니들이 끊임없이 외치고 요구했던 것을 묵살하는 한전, 이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던 것인가?  

한전이 경찰에게 건넨 돈의 출처가 청도 삼평리 송전탑 공사를 진행하는 ㄷ건설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ㄷ건설사는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한데, 올해 공사뿐 아니라 2012년 공사 당시 경비용역업체를 동원하여 지금보다 더 무자비하게 폭력적으로 공사를 강행한 곳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은 당시만 떠올리면 아직도 잠을 설치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할 정도이다.  

돈 봉투 사건은 단순히 건설사, 한전, 경찰의 비리문제가 아니다. 이는 경찰과 한전, 시공사와 한전의 유착관계를 명백히 드러내는 것으로 공권력의 비호 없이는, ‘을’의 입장인 시공사를 착취하지 않고서는, 단 한 발짝도 진행할 수 없는 송전탑 공사의 현 상황을 입증하는 사건이자 국가 에너지 정책의 모순과 부조리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자 에너지 공기업이라 자부하는 한전이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하였는지 속속들이 알게 되는 사건이다. 

 

 

끝내 거대한 철탑을 막지는 못했지만 삼평리 주민들은 여전히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아직 삼평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보나


다시 일어서는 삼평리 

많은 이들이 돈 봉투 사건을 바라보며 이현희 전 서장의 어리석은 짓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필자는 다르다. 나라면? 그리고 당신이라면? 5만 원권이 가득 든 돈 봉투를 받고 뿌리칠 수 있었겠나?  

할머니들은 뿌리 깊게 박혀있는 나무와 같다. 돈 봉투 같은 한낱 스쳐가는 바람에 흔들릴 분들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삼평리에 사는 조봉연 할머니의 말처럼 나무를 뽑으려고 화약을 손에 쥔 한전과 경찰이 제 발로 불구덩이에 뛰어든 꼴이다.  

뜨거운 여름 뙤약볕 아래 생지옥 같던 나날들이 지나고 철탑은 완공되었다. 철탑이 완공되었다고 송전탑 싸움이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삼평리 평화투쟁 90일째를 맞는 오늘(10월 18일), 할머니들은 주황빛으로 곱게 물든 감을 딴 후 농성장으로 나오신다. 감을 따며 뒤집어쓴 먼지를 채 씻지도 못하고, 손에 잘 익은 홍시 몇 개를 들고 와 사람들에게 건넨다. 그리고 공사장 정문 앞에 앉아 감 값이 얼마더라, 올해 감은 작더라 등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름 내 비우지 않았던 그 자리를 지키신다.  

농성장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방문한 건설노조 아저씨들의 망치질 소리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하고, 저 멀리 이억조 할머니 밭에선 농사 일손을 돕기 위해 온 고등학생들의 감나무 꺾는 소리가 들린다. 농성장 한쪽 귀퉁이엔 일반노조에서 보내준 밥·국·반찬들이 소복이 쌓여있다.  

삼평리의 가을은 이렇게 익어가고 있다. 다음 주면 가선작업을 위한 추가 자재반입이 있을 것이고, 할머니들은 언제나 그렇듯 제일 먼저 앞장서 저지할 것이다. 때론, 현장에 사람이 너무 없어 사진조차 못 찍고, 기록조차 못하는 순간들도 여러 번 있었다. 미약하지만, 현장에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국가의 부조리한 에너지정책에 맞서고 있다. 그러니 할머니들의 그리고 삼평리의 삶과 투쟁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걸 잊지말아주시라.  

철탑이 완공되었다고,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 함께 버텨준 당신들 덕에, 지금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당신들 덕에 삼평리는 ‘시즌2’를 준비하며 더 힘찬 삶과 투쟁을 위해 다시 일어서려 하고 있다. 삶이, 투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당신들의 연대도 끝나지 않길 바란다. 감이 너무 많이 익어 가지에서 절로 떨어지기 전에 삼평리에 한 번 와주시길 부탁드린다.


글 | 이보나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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