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도시가 있다. 높은 빌딩들이 즐비하고 자동차들은 불빛 신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밤거리는 그늘조차 없이 밝고 휘황하다.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로 밤을 낮처럼 밝힐 수 있고 두 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60층 높이를 금세 이동할 수 있으며 버튼 하나로 청소며 빨래, 설거지, 요리는 물론 실내온도까지 맘대로 조정한다.
도시는 전기에너지로 움직인다. 전기에너지 덕분에 사람들은 편리하고 화려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도시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도시가 도시에서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건 아니다. 직접 생산하는 대신 촉수 같은 긴 송전선을 도시 밖의 먼 마을로 뻗친다. 송전선이 뻗어간 멀고 먼 마을에서 전기에너지는 온다. 도시가 커질수록 도시의 전기 촉수도 늘어난다.
전기에너지로 생활이 편리해진 것은 분명하다. 편리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만 모든 대가가 정당하게 지불되는 것은 아니다. 전기에너지 소비의 달콤한 열매를 즐기는 자들과 생산과 이동의 고통을 집중적으로 받는 이들은 따로 있다. 발전을 위해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이 건강과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모른 척해야 전기의 편리함만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발전소나 송전탑 건설로 먼 마을의 이웃들이 받아야 할 고통에 대해서 외면할 줄 알아야 전기의 편리함만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들, 전기중독자들이 대거 군집하는 도시가 더 많은 전기에 혈안이 될 때 도시는 전기 먹는 괴물이 되었다.
모든 편리와 쾌락의 원천 에너지인 성스러운 전기로 움직이는 도시, 전기 중독자들의 도시 ‘일렉트릭시티’와 성스러운 전기에 기꺼이 중독되길 거부하는 자들, ‘에너지 혁명을 준비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렉트릭시티의 일상
“띠띠띠띠”
플러그에 연결된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수돗물을 틀어 샤워를 하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후 토스터기로 구운 빵과 커피머신으로 내린 커피로 아침을 해결한다. 엘리베이터,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한 남자는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한다. 그 시각 집에선 집안 청소가 한창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내친 김에 건조 기능까지 누른다. 저녁이 되자 전기밥솥에 씻은 쌀을 넣고 취사버튼을 누르고 냉장고에서 음식들을 꺼내 상을 차린다. 해는 졌지만 집안은 조명으로 환하다. 저녁을 먹은 아이는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시고는 컴퓨터 게임을 하러 들어가고 남자와 여자는 텔레비전을 켠다. 여자는 살짝 추위를 느꼈는지 전열기 스위치를 누르고 옆에 있던 공기청정기도 작동시킨다.

“2013년 국민 1인당 한해 소비한 전기에너지양은 9285킬로와트시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OECD 평균보다도 높은 양이며 우리보다 GDP가 높은 독일프랑스일본과 비교해도 높은 양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전기에너지 소비량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데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전력소비 증가율은 7퍼센트로 세계 2위입니다.”
남자는 심드렁해졌는지 스포츠 채널로 돌린다. 야구중계를 보던 남자는 좀 더 화면이 큰 텔레비전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 옆에서 여자는 김장 이후 내내 새로 출시된 김치냉장고만 생각했다.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둘은 집을 나섰다. 밤 9시, 거리는 가로등과 간판조명으로 휘황찬란하다. 펌프로 끌어올린 강물은 콘크리트 수로를 흐르고 그 옆으로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멈춰서 있다. 남자와 여자도 신호등 색깔에 맞춰 기다렸다 길을 걷는다. 그리고 도착한 마트. 이제부터 영업 시작이라는 듯 마트 안은 조명으로 환하고 진열대엔 물건들이 넘쳐났다. 둘의 쇼핑도 시작됐다.

전기가 오기까지
“내가 뭘 잘못해서 검찰과 법원에 불려가 조사받아야 하는대? 송전탑 반대했다고 공안검찰이 우리를 조사하는 나라인지는 정말 몰랐다. 내 재산과 건강에 피해가 오니까 당연히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왜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하나.” 청도 삼평리에 사는 김 씨 할머니는 요즘 검찰과 법원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있다. 마을에 세워지는 송전탑 공사를 반대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12년 여름, 한전은 굴착기를 밀고 들어와 마을에 철탑공사를 시작했다.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신고리핵발전소 3, 4호기에서 생산할 전기에너지를 도시로 보내기 위해 마을에 7개의 철탑을 세우는 공사였다. 평생을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마련한 밭에 철탑을 세우겠다는 한전의 통보를 할머니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보상금을 준다지만 그 돈으론 10분의 1도 살 수 없는 액수였고 송전탑이 세워진다는 소식에 은행에서도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마을 주민들과 송전탑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공사장 앞에서 시위를 했다. “꼭 세워야겠으면 주민들 피해 덜 가게 노선이라도 좀 변경해주이소.” “그것도 힘들면 저 구간만이라도 지중화해주이소.” 할머니와 주민들은 한 발 물러서 한전에 다가갔지만 한전은 경찰의 힘을 빌려 할머니들을 밀어내고 끌어내며 보란 듯이 공사를 강행했다. 결국 청도 삼평리에 철탑은 세워졌고 현재 전선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대로 끝낼 수 없다. 새벽 5시,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길을 나선 할머니는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공사장으로 향했다.
이튿날 한울핵발전소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마을을 지나는 초고압송전철탑 15기로 인해 불면증과 우울증, 암 발병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부 및 한수원과 조정에 나선 국민대통합추진위원회가 주민들이 원하는 수준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물리력을 동원해 핵발전소 건설을 저지할 것입니다.” 이 마을주민 80명 중 17명이 암에 걸렸고 그중 7명은 갑상선암이다. 월성핵발전소 인근 주민들도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시도와 일본 원전사고 여파 등으로 원전 인접지역 땅값이 떨어지고 떠나려 해도 집이 팔리지 않는다. 정부는 원전이 주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역학조사와 함께 근본적인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주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고리핵발전소가 있는 부산 기장군에서는 ‘고리원자력 갑상선암 발병 주민공동소송 설명회’가 열리고 주민들은 공동소송을 준비중이다.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외침이 처절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하나
“아빠저 북극곰이 왜 슬퍼해요?”
“얼음이 녹아서 그래.”
“얼음이 왜 녹아요?”
“지구가 더워지고 있기 때문이지.”
“왜요?”
“사람들이 나쁜 탄소를 너무 많이 내뿜고 있기 때문이야.”
“그게 뭐에요? 그럼 우리도 살 수 없어요?”
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33년간(1880~2012년) 지구 평균기온은 0.85℃ 상승했으며 지금도 전 지구 평균기온은 증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1971년부터 2009년까지 연간 2260억 톤의 빙하가 녹아 이로 인해 지구 평균 해수면도 1901~2010년간 약 0.19미터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약 1.7℃(6대 도시 평균)나 상승했다. 지구온난화에 직접적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9770만 톤으로 20년 전에 비해 2배 넘게 늘었다. 이 중 40퍼센트는 전기에너지 생산을 위한 발전 부문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에 속하지만 1990년 대비 증가율은 136퍼센트로 OECD 국가 중 1위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연평균 농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관측을 시작한 1999년 370.7ppm에서 2013년 400.2ppm으로 늘었다. 매년 2.1ppm씩 증가한 셈이다. 지난 80만 년간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300ppm을 넘은 적이 없으며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 이상일 경우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사회와 경제에도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에너지 및 자원 소비행동이 변화된다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2℃ 상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전기중독의 시작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이를 재우고 난 후 남자와 여자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했다. 기후변화도 걱정이지만 부쩍 잦아든 미세먼지와 아이 급식에 방사능이 오염된 먹을거리가 올라올까 늘 걱정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나의 이야기였다. 사실 일렉트릭시티 시민들이 처음부터 전기에 중독된 것은 아니었다. 핵 발전이 문제였다. 1980년대 전력수요 예측 오차로 전력설비 평균 예비율이 63퍼센트에 이르렀지만 전두환 정권은 핵발전소를 계속 지었다.
핵발전소는 다른 발전소와 달리 수요량에 맞춰 출력을 조절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생산된 전기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정부는 남아도는 전기를 원가 이하로라도 팔기 위해서 9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인하했고 원가의 4분의 1 수준인 심야전기를 팔기 시작했다. 편리한 에너지가 값까지 싸지니 가정에서도 난방을 심야전기로 대체하는 등 전기에너지 소비를 늘렸고 기업들은 심야에 생산량을 늘리면서 전기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났다. 그러자 정부는 늘어난 전기수요를 감당하겠다며 발전소를 더 지었고 이런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전기에너지 낭비와 중독을 부추긴 것이다.

심야전기가 아니어도 전기에너지 값은 너무 헐값이긴 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그렇다. 심지어 등유보다도 싸다. 어떻게 보면 등유로 만든 전기에너지지 않은가. 그럼에도 1toe당 전기에너지 비용은 1030.7달러이지만 등유는 1696달러다. 실제로 1990년에서 2010년까지 도시가스 요금은 2.9배, 등유는 6.1배 올랐지만 전기는 1.7배밖에 오르지 않았다. 산업요금은 더 헐값이니 가열건조공정이나 요 및 로 사용에 유류로 충당하던 것을 전력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 산업계가 소비한 전기에너지는 2012년 생산된 전기에너지 중 53퍼센트를 넘는다.

혁명을 시작하는 말
“도시의 발전과 편리한 삶을 위해선 지금보다 더 많은 전기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겨울철 난방에 사용하면서 전기가 많이 부족해졌어요.” 그래서 일렉트릭시티 책임자는 도시 밖에 추가로 핵발전소 11기와 화력발전(기력+복합화력) 50기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765kV 송전탑을 비롯해 송전선로도 설치할 것이라는 계획도 덧붙였다.
“청도와 밀양 같은 곳을 또 만드신다고요?”
“쌓여만 가는 핵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정말 핵발전소는 안전한가요? 어떻게 보장할 수 있죠?”
“기후변화 대응은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쏟아지는 시민들의 질문에 책임자는 전력 위기가 오면 그때는 되돌릴 수 없다, 안전하다, 믿어달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고 몇몇은 자리에 남았다. 남자와 여자는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들과 남았다.
“전기에너지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당장 전기에너지 없이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과 같이 화석연료와 핵에 의존한 에너지 공급 위주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급 위주 정책은 전기중독자만 더 양산할 뿐 지속가능한 도시와 미래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웃마을에 대규모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그리고 송전탑으로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시민들이 나서서 전기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공급위주 정책을 바꾸라고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화석연료나 핵 없이 어떻게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나요?”
“독일은 태양광과 바람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 비율이 22퍼센트나 됩니다. 우리도 가능합니다.”
“산업부문에서 전기에너지의 반을 사용한다고 하던데 우리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너무 싼 산업계 전력요금부터 현실화해야 합니다. 지금은 시민들 세금으로 기업들 전기요금을 보조해주는 꼴이에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당당히 요구해야죠.”
남자와 여자는 돌아왔다. 집안에 들어선 남자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전열기 플러그를 뽑기 시작했다. 여자는 눈을 깜박이며 남자의 움직임을 주시하더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 보았다. 짧은 겨울해가 지기 시작했다. 도시의 휘황한 밤이 시작됐다. 다시 거실의 불을 켜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여자는 낮은 목소리로 남자를 불렀다.
약간의 분노, 약간의 부끄러움, 약간의 죄의식, 약간의 자랑스러움, 그리고 여자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걱정하는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자가 말했다.
“노트북을 가져와요. 햇빛발전하는 협동조합이 있다던데, 같이 찾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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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도시가 있다. 높은 빌딩들이 즐비하고 자동차들은 불빛 신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밤거리는 그늘조차 없이 밝고 휘황하다.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로 밤을 낮처럼 밝힐 수 있고 두 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60층 높이를 금세 이동할 수 있으며 버튼 하나로 청소며 빨래, 설거지, 요리는 물론 실내온도까지 맘대로 조정한다.
도시는 전기에너지로 움직인다. 전기에너지 덕분에 사람들은 편리하고 화려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도시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도시가 도시에서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건 아니다. 직접 생산하는 대신 촉수 같은 긴 송전선을 도시 밖의 먼 마을로 뻗친다. 송전선이 뻗어간 멀고 먼 마을에서 전기에너지는 온다. 도시가 커질수록 도시의 전기 촉수도 늘어난다.
전기에너지로 생활이 편리해진 것은 분명하다. 편리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만 모든 대가가 정당하게 지불되는 것은 아니다. 전기에너지 소비의 달콤한 열매를 즐기는 자들과 생산과 이동의 고통을 집중적으로 받는 이들은 따로 있다. 발전을 위해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이 건강과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모른 척해야 전기의 편리함만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발전소나 송전탑 건설로 먼 마을의 이웃들이 받아야 할 고통에 대해서 외면할 줄 알아야 전기의 편리함만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들, 전기중독자들이 대거 군집하는 도시가 더 많은 전기에 혈안이 될 때 도시는 전기 먹는 괴물이 되었다.
모든 편리와 쾌락의 원천 에너지인 성스러운 전기로 움직이는 도시, 전기 중독자들의 도시 ‘일렉트릭시티’와 성스러운 전기에 기꺼이 중독되길 거부하는 자들, ‘에너지 혁명을 준비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렉트릭시티의 일상
“띠띠띠띠”
플러그에 연결된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수돗물을 틀어 샤워를 하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후 토스터기로 구운 빵과 커피머신으로 내린 커피로 아침을 해결한다. 엘리베이터,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한 남자는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한다. 그 시각 집에선 집안 청소가 한창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내친 김에 건조 기능까지 누른다. 저녁이 되자 전기밥솥에 씻은 쌀을 넣고 취사버튼을 누르고 냉장고에서 음식들을 꺼내 상을 차린다. 해는 졌지만 집안은 조명으로 환하다. 저녁을 먹은 아이는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시고는 컴퓨터 게임을 하러 들어가고 남자와 여자는 텔레비전을 켠다. 여자는 살짝 추위를 느꼈는지 전열기 스위치를 누르고 옆에 있던 공기청정기도 작동시킨다.
“2013년 국민 1인당 한해 소비한 전기에너지양은 9285킬로와트시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OECD 평균보다도 높은 양이며 우리보다 GDP가 높은 독일프랑스일본과 비교해도 높은 양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전기에너지 소비량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데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전력소비 증가율은 7퍼센트로 세계 2위입니다.”
남자는 심드렁해졌는지 스포츠 채널로 돌린다. 야구중계를 보던 남자는 좀 더 화면이 큰 텔레비전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 옆에서 여자는 김장 이후 내내 새로 출시된 김치냉장고만 생각했다.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둘은 집을 나섰다. 밤 9시, 거리는 가로등과 간판조명으로 휘황찬란하다. 펌프로 끌어올린 강물은 콘크리트 수로를 흐르고 그 옆으로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멈춰서 있다. 남자와 여자도 신호등 색깔에 맞춰 기다렸다 길을 걷는다. 그리고 도착한 마트. 이제부터 영업 시작이라는 듯 마트 안은 조명으로 환하고 진열대엔 물건들이 넘쳐났다. 둘의 쇼핑도 시작됐다.
전기가 오기까지
“내가 뭘 잘못해서 검찰과 법원에 불려가 조사받아야 하는대? 송전탑 반대했다고 공안검찰이 우리를 조사하는 나라인지는 정말 몰랐다. 내 재산과 건강에 피해가 오니까 당연히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왜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하나.” 청도 삼평리에 사는 김 씨 할머니는 요즘 검찰과 법원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있다. 마을에 세워지는 송전탑 공사를 반대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12년 여름, 한전은 굴착기를 밀고 들어와 마을에 철탑공사를 시작했다.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신고리핵발전소 3, 4호기에서 생산할 전기에너지를 도시로 보내기 위해 마을에 7개의 철탑을 세우는 공사였다. 평생을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마련한 밭에 철탑을 세우겠다는 한전의 통보를 할머니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보상금을 준다지만 그 돈으론 10분의 1도 살 수 없는 액수였고 송전탑이 세워진다는 소식에 은행에서도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마을 주민들과 송전탑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공사장 앞에서 시위를 했다. “꼭 세워야겠으면 주민들 피해 덜 가게 노선이라도 좀 변경해주이소.” “그것도 힘들면 저 구간만이라도 지중화해주이소.” 할머니와 주민들은 한 발 물러서 한전에 다가갔지만 한전은 경찰의 힘을 빌려 할머니들을 밀어내고 끌어내며 보란 듯이 공사를 강행했다. 결국 청도 삼평리에 철탑은 세워졌고 현재 전선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대로 끝낼 수 없다. 새벽 5시,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길을 나선 할머니는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공사장으로 향했다.
이튿날 한울핵발전소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마을을 지나는 초고압송전철탑 15기로 인해 불면증과 우울증, 암 발병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부 및 한수원과 조정에 나선 국민대통합추진위원회가 주민들이 원하는 수준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물리력을 동원해 핵발전소 건설을 저지할 것입니다.” 이 마을주민 80명 중 17명이 암에 걸렸고 그중 7명은 갑상선암이다. 월성핵발전소 인근 주민들도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시도와 일본 원전사고 여파 등으로 원전 인접지역 땅값이 떨어지고 떠나려 해도 집이 팔리지 않는다. 정부는 원전이 주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역학조사와 함께 근본적인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주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고리핵발전소가 있는 부산 기장군에서는 ‘고리원자력 갑상선암 발병 주민공동소송 설명회’가 열리고 주민들은 공동소송을 준비중이다.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외침이 처절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하나
“아빠저 북극곰이 왜 슬퍼해요?”
“얼음이 녹아서 그래.”
“얼음이 왜 녹아요?”
“지구가 더워지고 있기 때문이지.”
“왜요?”
“사람들이 나쁜 탄소를 너무 많이 내뿜고 있기 때문이야.”
“그게 뭐에요? 그럼 우리도 살 수 없어요?”
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33년간(1880~2012년) 지구 평균기온은 0.85℃ 상승했으며 지금도 전 지구 평균기온은 증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1971년부터 2009년까지 연간 2260억 톤의 빙하가 녹아 이로 인해 지구 평균 해수면도 1901~2010년간 약 0.19미터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약 1.7℃(6대 도시 평균)나 상승했다. 지구온난화에 직접적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9770만 톤으로 20년 전에 비해 2배 넘게 늘었다. 이 중 40퍼센트는 전기에너지 생산을 위한 발전 부문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에 속하지만 1990년 대비 증가율은 136퍼센트로 OECD 국가 중 1위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연평균 농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관측을 시작한 1999년 370.7ppm에서 2013년 400.2ppm으로 늘었다. 매년 2.1ppm씩 증가한 셈이다. 지난 80만 년간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300ppm을 넘은 적이 없으며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 이상일 경우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사회와 경제에도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에너지 및 자원 소비행동이 변화된다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2℃ 상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전기중독의 시작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이를 재우고 난 후 남자와 여자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했다. 기후변화도 걱정이지만 부쩍 잦아든 미세먼지와 아이 급식에 방사능이 오염된 먹을거리가 올라올까 늘 걱정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나의 이야기였다. 사실 일렉트릭시티 시민들이 처음부터 전기에 중독된 것은 아니었다. 핵 발전이 문제였다. 1980년대 전력수요 예측 오차로 전력설비 평균 예비율이 63퍼센트에 이르렀지만 전두환 정권은 핵발전소를 계속 지었다.
핵발전소는 다른 발전소와 달리 수요량에 맞춰 출력을 조절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생산된 전기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정부는 남아도는 전기를 원가 이하로라도 팔기 위해서 9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인하했고 원가의 4분의 1 수준인 심야전기를 팔기 시작했다. 편리한 에너지가 값까지 싸지니 가정에서도 난방을 심야전기로 대체하는 등 전기에너지 소비를 늘렸고 기업들은 심야에 생산량을 늘리면서 전기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났다. 그러자 정부는 늘어난 전기수요를 감당하겠다며 발전소를 더 지었고 이런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전기에너지 낭비와 중독을 부추긴 것이다.
심야전기가 아니어도 전기에너지 값은 너무 헐값이긴 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그렇다. 심지어 등유보다도 싸다. 어떻게 보면 등유로 만든 전기에너지지 않은가. 그럼에도 1toe당 전기에너지 비용은 1030.7달러이지만 등유는 1696달러다. 실제로 1990년에서 2010년까지 도시가스 요금은 2.9배, 등유는 6.1배 올랐지만 전기는 1.7배밖에 오르지 않았다. 산업요금은 더 헐값이니 가열건조공정이나 요 및 로 사용에 유류로 충당하던 것을 전력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 산업계가 소비한 전기에너지는 2012년 생산된 전기에너지 중 53퍼센트를 넘는다.
혁명을 시작하는 말
“도시의 발전과 편리한 삶을 위해선 지금보다 더 많은 전기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겨울철 난방에 사용하면서 전기가 많이 부족해졌어요.” 그래서 일렉트릭시티 책임자는 도시 밖에 추가로 핵발전소 11기와 화력발전(기력+복합화력) 50기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765kV 송전탑을 비롯해 송전선로도 설치할 것이라는 계획도 덧붙였다.
“청도와 밀양 같은 곳을 또 만드신다고요?”
“쌓여만 가는 핵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정말 핵발전소는 안전한가요? 어떻게 보장할 수 있죠?”
“기후변화 대응은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쏟아지는 시민들의 질문에 책임자는 전력 위기가 오면 그때는 되돌릴 수 없다, 안전하다, 믿어달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고 몇몇은 자리에 남았다. 남자와 여자는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들과 남았다.
“전기에너지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당장 전기에너지 없이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과 같이 화석연료와 핵에 의존한 에너지 공급 위주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급 위주 정책은 전기중독자만 더 양산할 뿐 지속가능한 도시와 미래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웃마을에 대규모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그리고 송전탑으로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시민들이 나서서 전기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공급위주 정책을 바꾸라고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화석연료나 핵 없이 어떻게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나요?”
“독일은 태양광과 바람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 비율이 22퍼센트나 됩니다. 우리도 가능합니다.”
“산업부문에서 전기에너지의 반을 사용한다고 하던데 우리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너무 싼 산업계 전력요금부터 현실화해야 합니다. 지금은 시민들 세금으로 기업들 전기요금을 보조해주는 꼴이에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당당히 요구해야죠.”
남자와 여자는 돌아왔다. 집안에 들어선 남자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전열기 플러그를 뽑기 시작했다. 여자는 눈을 깜박이며 남자의 움직임을 주시하더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 보았다. 짧은 겨울해가 지기 시작했다. 도시의 휘황한 밤이 시작됐다. 다시 거실의 불을 켜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여자는 낮은 목소리로 남자를 불렀다.
약간의 분노, 약간의 부끄러움, 약간의 죄의식, 약간의 자랑스러움, 그리고 여자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걱정하는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자가 말했다.
“노트북을 가져와요. 햇빛발전하는 협동조합이 있다던데, 같이 찾아봐요!”
글 | 박은수 기자
일러스트 |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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