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폐지하겠다고?

글 최화영 서울환경연합 기후에너지팀 활동가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풍경. 서울 최초의 전용지구로 상가, 보행자, 대중교통 운영사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만족도와 사업 성과가 높다 Ⓒ서울환경연합

서울시 유일한 대중교통전용지구인 신촌 연세로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취임 첫 업무로 ‘차 없는 거리’로 지정돼 운영 중인 연세로를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복원시킬 계획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해야 상권이 활성화된다는 주장이다. 과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라도 있는 걸까?


대중교통만 다닐 수 있는 대중교통 전용지구

우리나라는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자동차 중심 교통체계를 구축해왔다. 이동과 수송의 편의성이 늘었지만 교통체증, 대기오염, 교통사고 증가 등 문제 또한 커졌고 보행권이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게 됐다. 이에 대응하여 2006년 국토교통부는 대중교통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도 교통정책의 변화를 수용했다. 2012년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이 발표됐다. 서울시는 비전 발표 이후 ‘서울시 대중교통전용지구 종합계획’ 수립을 통해 10곳의 후보지를 선정한 했고 ‘연세로’를 첫 시범사업지로 선정했다.

대중교통 전용지구는 승용차를 포함한 일반 차량의 진입이 금지되고,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과 보행자만 통행할 수 있는 지구다. 교통수요관리, 도심활성화, 대중교통 이용편의 증진, 보행환경 개선의 목적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12월 대구시 중앙로가 국내 최초로 대중교통 전용지구로 지정되었으며, 이어 연세로가 2014년부터 운영되었다. 2015년 12월 부산 서면 동천로까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되어 전국에 총 세 곳이 있다.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는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해, 신촌역부터 연세대학교까지 약 500m 길이다. 사전에 허가받은 조업차량 외에 일반 차량은 진입이 통제되며, 매주 금요일 14시부터 일요일 22시까지는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되어 대중교통 또한 우회노선으로 운행한다.

교통 우회로 인한 교통혼잡을 막기 위해 연세로 북측 진입부에 교차로를 신설하여 우회경로를 마련하였고, 일방통행 실시를 통해 원활한 차량 통행을 유도하였다. 또한 횡단보도도 도입해 보행동선 마련에도 신경 썼다.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차량통행이 제한되기 때문에 통행불편, 매출감소로 인한 상권침체 등 많은 우려가 속출했다. 서울시는 사업에 이해관계자들이 직접 의견을 조율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 자치구, 상인회, 대학 등 6개 기관이 참여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보장했고, 주민 대상 공청회와 설명회도 수시로 개최했다. 덕분에 단기간에 사업을 완료할 수 있었고, 2013년 서울시 갈등관리 수범사례 및 정부합동평가 대상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후, 연세로는 문화생활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쉬운 절차로 누구나 연세로에서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매주 다양한 축제와 공연이 펼쳐져 2015년 10월까지 246개의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연세로 조성 후 시민 만족도는 변경 전 대비 60% 높아졌으며, 상가 매출액 또한 5% 증가했다. 보행량도 시간당 800명 이상, 버스 이용객은 일평균 11.4% 증가했다. 반면 교통사고는 전년 대비 46% 줄어들며 안전한 도로로 작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상가와 연세로를 지나는 시민이 만족하고, 대중교통의 이동효율도 높아진 모두에게 이로운 사업이었던 것이다.


차량이 통행해야 상권 활성화된다는 서대문구청장

연세대학교 쪽에서 연세로 진입 방향의 대중교통전용지구 안내판.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는 지정 이후 지금까지 잘 관리되어온 교통정책 성공사례였다 Ⓒ서울환경연합

서울환경연합은 ‘차 없는 거리 모니터링’을 장기 진행하고 있다. 모니터링 대상지 가운데에서도 연세로는 ‘차 없는 거리’가 굉장히 잘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출입구에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크게 있어 누구나 알 수 있으며, 골목 진입로에도 볼라드 등을 통해 차량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차량이 가로질러 지나갈 수 있는 구간에도 색깔 유도선과 안내판을 통해 직진만 할 수 있음을 명시해 놓아서, 일반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연세로를 지나가는 경우는 없었다. 또한 곳곳에 단속용 CCTV가 달려있어 단속하기 힘든 오토바이도 빠짐없이 찾아낼 수 있으며, 실제로 주차된 오토바이에 통행금지 안내가 붙어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유지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이다.

7~8월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인근 대학들이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보행량이 많았다. 평일 오후 시간에 측정한 결과, 10분 동안 506명이나 집계되었다. 차량이 들어오지 않으니 자전거도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 따릉이를 이용하는 대학생들도 많았다. 이렇게 성공한 정책이자 사업임을 알 수 있는 연세로에 왜 갑자기 차량 통행을 허하자는 얘기가 나온 걸까?


지난 6월 <서대문구청장직 인수위원회>는 결과보고회를 통해 ‘신촌 연세로 차량 통행 전면 허용 및 교통 혁신 방안 조기 추진’을 건의했다. 건의안은 올해 연말 연세로 전면 개방을 제안하고 있다. 성공한 사업을 되돌리려면 그 사업이 성공이 아니라 실패라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차량이 다시 통행하면 상권이 활성화된다.’는 근거는 단 하나도 건의안에 담겨 있지 않았다. 사실 그런 근거를 붙일 수가 없는 노릇이다. 서울환경연합의 모니터링 등 기간의 조사 결과를 보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시행 후 연세로를 찾는 보행자들이 많아지면서 상권이 활성화되었다. 또한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 전에도 연세로를 통과하는 차량의 80%는 단순 통과차량으로 조사되어, 차량이 다시 통행한다고 해도 상권 활성화보다는 보행자의 안전 위협과 극심한 교통체증만이 돌아올 확률이 높다. 

조사된 결과만 대중교통전용지구의 유지를 지지하는 게 아니다. 주요 이용자들이라 할 수 있는 연세로 인근 대학교 학생들도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학생들은 ‘차 없는 거리’로 보행자 불편이 해소되었고, 버스킹 등 문화 행사가 늘었다고 느꼈다. 연세대 재학·졸업생 1300여 명의 의견을 모은 결과, 반대 의견의 비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난 7월 31일,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및 차 없는 거리 폐지 대응을 위한 신촌지역 대학생 공동행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의 배신과 녹색교통 확대의 정체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통행할 수 있는 차량은 버스와 특수목적차량들뿐이다. 일반 차량의 진입 금지는 더 많은 보행자의 이용, 상가 이용객 증가, 거리 공연문화의 증대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서울환경연합

서울시는 2014년 당시 연세로 이후 추가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서대문구와 손잡고, 기존의 대중교통전용지구마저 없애려고 하는 실정이다. 녹색교통을 확대하겠다는 오랜 시정 기조의 배신이고 이를 기대한 시민들에 대한 배신이다.

‘차 없는 거리’ 확대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올해 ‘차 없는 거리’ 추가 운영은 청와대 개방과 함께 인왕산로 2회, 청와대로 8회의 임시 ‘차 없는 거리’가 전부였다. 서울시 보행정책과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올해 ‘차 없는 거리’ 추가 지정이나 후보지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한 ‘차 없는 거리’로 운영이 된다 하더라도, 차량이 진입할 경우 단속할 근거 규정이 없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차 없는 거리’는 법률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나 지자체의 조례나 공문으로 운영되고 있다. 즉 일종의 약속을 통해 차량진입을 막고 있고, 법적으로는 여전히 도로이기 때문에 공무원이 차량 통행을 단속할 근거가 없다. 경찰은 차량 진입을 막고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들어온 차량에 대해서는 단속할 수가 없고, 골목으로 들어오는 차량은 일일이 단속하기 힘든 상황이다.


서울시는 수송부문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야

대중교통전용지구 폐지는 단순히 차량이 다시 다니게 된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차량을 더 이용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시 차원에서 전달하는 것이며, 서울시의 수송부문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의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그게 기후위기시대에 서울시가, 기초 자치체가 시민들에게 전할 메시지로 합당한가? 2019년 기준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량 중 수송부문이 20%를 차지하고 있고. 수송부문 온실가스의 90% 이상은 도로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를 감축하기 위해선 차량 이용을 줄여야 한다. 서울시와 서대문구는 대중교통전용지구 축소가 아닌, 확대를 정책 기조로 삼아야 마땅하다. 정책 역진은 시민과 기후에 대한 배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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