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짐승과 채소를 뜯어먹으며 여태껏 몸통을 불려왔습니다. 바람과 햇빛을 널름널름 받아 마시며 지탱해온 목숨, 이제는 제 목을 내놓겠나이다. 밤낮없이 혹사한 머리는 곰삭은 젓갈 맛이 날 것이고, 산밭을 일구느라 단련된 팔다리는 식감이 제법 쫄깃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빛나는 부위는 저무는 호수에서 꽃대를 세우느라 사력으로 흘린 향기, 당신 바라 달려온 가슴살입니다. 머리와 다리가 하지 못한 일, 사람다운 사람으로 춤추는 일은 온전히 가슴의 몫이었습니다. 다른 목숨 잡아먹으며 잘도 살았으니 이제 제 몸을 바치겠나이다.
- 계간 시전문지 『시와 정신』, 2016년 봄호 중에서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접한 적이 있습니다. 김동리의 단편소설 『등신불』에서입니다. 부처님에게 자신의 몸을 불태워 바치는 처절한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사실 소신공양은 자연이 인간에게 늘 베풀어 왔던 희생의 제의였습니다. 그것도 자연의 이치와는 상관없이 주로 인간의 이익을 위하여 자행되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화전(火田)’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요즘도 봄철에 자주 발생하는 산불의 원인이 되곤 하는 논밭 태우기도 마찬가지 사례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의 은총을 되새기며 인간의 목숨을 바치는 행위를 시로 노래한 「황홀만찬」이라는 시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사실 인간이 자연에 몸을 바치는 행위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위입니다.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치가 인간의 생명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이치를 거스르는 삶을 인간들은 발전시켜 왔습니다. 자연과 멀어지면서 자연까지 훼손해버리는 오만하고 무책임한 삶. 「황홀만찬」은 그런 삶에 대한 반성이면서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삶의 다짐으로 읽힙니다. 아니면 인생의 연륜을 마감하는 종교적 소회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몸뚱이를 바치겠다는 결의가 절실해 보이는 까닭은 몸의 지체 중에서도 머리나 팔다리가 아니라 가슴을 가장 소중하게 바치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그럴듯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체 중에서 ‘당신 바라 달려온 가슴살’이라는 표현이 가장 절실해 보이는 까닭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이나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모색하고 실천해나가는 일에 가장 필요한 역할이 머리나 팔다리보다 가슴에 달려있다는 지적은 어느 때보다 인간과 자연과의 절실한 교감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인간의 머리로 따지면서 팔다리로 저지른 일이 주로 자연을 개발하고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반성이 떠오르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춤추는 일은 순전히 가슴의 몫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이야말로 우리가 자연의 품속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게 만들어줍니다.
하느님, 제 몸뚱이를 바칩니다.
온갖 짐승과 채소를 뜯어먹으며 여태껏 몸통을 불려왔습니다. 바람과 햇빛을 널름널름 받아 마시며 지탱해온 목숨, 이제는 제 목을 내놓겠나이다. 밤낮없이 혹사한 머리는 곰삭은 젓갈 맛이 날 것이고, 산밭을 일구느라 단련된 팔다리는 식감이 제법 쫄깃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빛나는 부위는 저무는 호수에서 꽃대를 세우느라 사력으로 흘린 향기, 당신 바라 달려온 가슴살입니다. 머리와 다리가 하지 못한 일, 사람다운 사람으로 춤추는 일은 온전히 가슴의 몫이었습니다. 다른 목숨 잡아먹으며 잘도 살았으니 이제 제 몸을 바치겠나이다.
- 계간 시전문지 『시와 정신』, 2016년 봄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