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ahqhrtmwkd93@kfem.or.kr

누에섬 해상풍력발전소
불현듯 일어난 전쟁이 거짓말처럼 끝나질 않는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도, 러시아에도 살지 않지만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훼손되는 시대를 참담한 마음으로 견디고 있다. 식량, 에너지를 비롯한 전반적 물가 상승과 이로 인한 경기 침체는 피부에 와닿는 공포다. 여기에 더해 기후위기로 인한 국내외 폭염·가뭄·홍수 등 기후재난이 야기하는 물리적·경제적 파장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슬픔과 불안, 공포라는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
에너지정의를 생각하는 세계시민의 이름으로
식량안보, 에너지안보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오늘날의 위기 속에서 시민들은 이 편리한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불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쟁이나 기후재난 같은 국제적 위기가 발생해 식량·에너지 공급 사슬의 고리가 하나만 끊어지면 소위 말하는 ‘대란’이 일어나고 많은 시민들은 자본주의·소비주의가 구축한 편리한 체제에서 금방 배제된다. 이는 오래된 경험이다. 오일쇼크 시대부터 최근까지 이어지는 국제 화석연료 가격의 변동성, 최근의 요소수 대란은 경제적 취약 계층에게 제일 먼저,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기후위기로 인해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 양상추 공급이 중단되는 사건을 비롯, 인도네이사이의 팜유 수출 중단, 인도의 밀 수출 중단과 같은 조치가 이어지는 시대의 풍경 역시 마찬가지 공포와 불안의 경험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8%, 곡물자급률은 20.2%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식량의 절반 이상이 국외 수입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에너지의 경우 사정이 더 나쁘다. 한국은 소비 에너지의 92.8%에 달하는 연료를 수입한다.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비롯해 농축 우라늄도 전량 수입하는데 이 중 33% 가량은 러시아산이다. 윤석열 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에너지안보를 외치며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정책의 모순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에너지안보라는 개념은 두 가지 맹점을 가진다. 첫째로는 지적했듯, ‘에너지 수입원의 다변화’라거나 화석연료와 원자력 사이에서 어디에 더 의존할지 양다리를 걸치는 전통적 해법만으로는 본질적으로 에너지 수급의 불안정을 재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그 개념 자체가 대단히 수세적이며 자국중심주의적이라는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 정부의 통제력과 무관하게, 어떤 형태의 국외 변수에라도 시민들의 기본적 생활 인프라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수출국에서 특정 자원을 전략화·무기화할 수 있다면 이는 명백한 ‘안보’의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력·군사력·외교력 등 전통적 지표의 모든 측면에서 선진국이다. 에너지산업 측면에서도 민간기업이 하는 것이든 공기업이 하는 것이든, 채굴·정제·유통·소비까지 주도적으로 개척하는 국가다. 기후위기로 화석연료의 퇴출이 논의되는 최근까지도 국내의 대기업은 호주에서 신규 가스전 건설을 시도한 바 있다. 한국의 높은 삶의 질을 위해 국외의, 특히 개발도상국의 주민·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자연은 대규모 추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광산, 유정, 가스전 인근 생태계의 파괴, 우라늄 채굴장 인근 주민들의 피폭, 탄광 노동자들의 질환 발생과 같은 문제들은 수입산 에너지 이력에 첨부되지 않는다. 자국의 안보만이 아니라 평화와 생명의 가치에 입각한 에너지정의의 관점으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시장원리 기반 수요효율화라고?
에너지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연료 수입이라는 리스크가 없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과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전자에 비추어 정부는 오히려 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추고 원전 비중을 높이는 정책적 역행을 예고했다. 다만, 후자의 측면에서 정부가 지난 6월 내놓은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은 과거보다 진전된 접근방식을 채택한 것이라고 우선 평가할 수 있겠다.
기존에도 각 부문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대책들이 부분적으로 수립·추진되어왔으나 이를 종합대책으로 수립한 것은 이번 정부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탄소중립을 선언하여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강화한 문재인 정부조차 관련 국가 목표를 수립하면서 에너지 수요관리 전망과 대책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터라 윤석열 정부의 종합대책이 이를 잘 보완하는 것은 중대한 숙제였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은, 마치 명절마다 들어오는 종합 선물세트처럼 기성품을 한데 모아 조악하게 과대포장한 모양새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는 5년 동안 2200만 TOE의 에너지 소비를 줄임으로써 5900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5년간 2020년도 에너지 소비량만큼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정부의 이번 종합대책으로 약 2%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고, 온실가스 배출 역시 같은 기준으로 1~2% 정도 감축하는 셈이 된다. 새 정부의 종합대책치고는 과감하지 못하다.
예컨대 에너지 수요관리의 핵심요소인 요금체계에 대해 정부 종합대책은 뾰족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계시별 요금제 등을 통해 요금체계를 유연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지난 정부부터 천명해왔던 바다. 정부는 낮은 전기요금이 수요관리의 방해요소임을 지적하면서도 적극적 요금체계 현실화에 대해서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지난 정권들도 똑같은 한계를 드러냈었다. 수송부문, 건물부문 등에서도 지난 정부에서 수립된 제도를 지속하거나, 일부 보완하기로 약속하는 데 그쳤다. 가령, 공공부문의 친환경차 구매목표를 ‘22년도 80%’에서 ‘23년 100%’로 상향하기로 한 점 등은 부분적인 진전이지만, 매우 지엽적 대책이고 오히려 소비량이 더 많은 민간 부문 대책은 미흡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10번째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인 동시에, 그 소비의 효율성은 OECD 평균에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쉽게 말해 에너지를 과도하게,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적 에너지 소비는 개인·가정 차원에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낙후된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내 에너지의 90% 가량을 소비하는 산업부문, 그중에서도 제조업 부문에서 특히 에너지효율 개선이 미흡하며, 핵심 제조업 부문에서는 도리어 악화되고 있기까지 하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은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뜻이다. 산업부문의 줄지 않는 온실가스 배출은 관련 기업들이 탄소중립·ESG 경영을 선언하고 공언해 왔다는 것을 상기하면 의아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만큼 에너지 다소비,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의 제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기효율제도의 정비’나 ‘자발적 협약 참여’ 등과 같은 감축 유도형 제도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다소비의 주요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게 강제력 있는 감축 신호를 발신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가 예산을 들여 인센티브, 기술 혁신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은 ‘시장원리 기반’이라기보다 ‘시장에 예속된’ 정책 현실을 보여준다.
전체 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공급 위주
한편 정부는 수요효율화 대책의 핵심이 공급 위주 정책을 보완하는 데 있다고 밝혔음에도 전반적인 에너지 정책 방향은 여전히 공급 위주의 틀에 갇힌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되어, 문재인 정부를 거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강원도를 관통하는 신규 송전선로 건설 문제까지 얽혀있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는 신한울 3·4호기를 비롯 신규 원전 건설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히며 대규모 발전소 건설을 통한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지속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니까 종합적으로 볼 때, 정부의 수요효율화 대책은 전체 에너지 수요 감축에 있어서 대단히 제한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며, 에너지정의를 고려한 에너지전환과 연계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마저도 목표 달성에 있어 시장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고, 기존 다소비·다배출 산업을 지원하는 형태의 불안정한 정책이다. 정부는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지원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구체적 예산을 밝히진 않았다. 그런데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정부 지출을 늘리려면 그만큼 다소비 기업들로부터 확보되는 세수가 있어야만 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보완 대책과 구체적 예산 추계가 필수적이다.
에너지정의의 관점에서 수요효율화는 다음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측정·설계되어야 한다. 어떻게 만들어진 에너지인가, 어떻게 유통된 에너지인가, 적정한 비용이 책정된 에너지인가. 화력·원자력과 같은 대규모 발전시설은 그 자체로 더럽고 위험한 에너지원이며 규모와 출력을 조절하기 어려운 대량공급시설이라 필연적인 대량소비를 요구한다. 또한 이 에너지원들은 대단위의 장거리 송전을 통해 에너지 생산지와 소비지를 극단적으로 유리시킴으로써 발전소 및 송전선로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이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이렇게 생산·유통된 에너지가 지금처럼 값싼 가격에 판매되면서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무분별하게 에너지를 소비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말았다. 또 하나의 단적인 예로 최근에는 값싼 전기요금을 요인으로 대량의 에너지 소비시설인 데이터센터들이 국내에 입지를 늘리고 있다.
에너지 정책 전반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더 정의로운 에너지 수요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를 근본적으로 억제할 만한 비용 조정, 규제제도 도입을 과감하게 채택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기존 대형 전원을 대체할 만한 재생에너지가 소비지 인근에 빠르게 확대될 수 있도록 설치 의무화, 설치 지원제도·예산을 강화해야 한다. 중첩된 위기들 속에서, 해답은 때로 매우 담백할 수 있다. 삶의 패턴을 바꾸고 소비를 줄이는 일이 당장 어려워 보일지라도 그것만큼 명백한 답이 없다면, 시스템을 전환해야만 할 것이다.
글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ahqhrtmwkd93@kfem.or.kr
누에섬 해상풍력발전소
불현듯 일어난 전쟁이 거짓말처럼 끝나질 않는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도, 러시아에도 살지 않지만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훼손되는 시대를 참담한 마음으로 견디고 있다. 식량, 에너지를 비롯한 전반적 물가 상승과 이로 인한 경기 침체는 피부에 와닿는 공포다. 여기에 더해 기후위기로 인한 국내외 폭염·가뭄·홍수 등 기후재난이 야기하는 물리적·경제적 파장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슬픔과 불안, 공포라는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
에너지정의를 생각하는 세계시민의 이름으로
식량안보, 에너지안보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오늘날의 위기 속에서 시민들은 이 편리한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불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쟁이나 기후재난 같은 국제적 위기가 발생해 식량·에너지 공급 사슬의 고리가 하나만 끊어지면 소위 말하는 ‘대란’이 일어나고 많은 시민들은 자본주의·소비주의가 구축한 편리한 체제에서 금방 배제된다. 이는 오래된 경험이다. 오일쇼크 시대부터 최근까지 이어지는 국제 화석연료 가격의 변동성, 최근의 요소수 대란은 경제적 취약 계층에게 제일 먼저,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기후위기로 인해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 양상추 공급이 중단되는 사건을 비롯, 인도네이사이의 팜유 수출 중단, 인도의 밀 수출 중단과 같은 조치가 이어지는 시대의 풍경 역시 마찬가지 공포와 불안의 경험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8%, 곡물자급률은 20.2%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식량의 절반 이상이 국외 수입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에너지의 경우 사정이 더 나쁘다. 한국은 소비 에너지의 92.8%에 달하는 연료를 수입한다.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비롯해 농축 우라늄도 전량 수입하는데 이 중 33% 가량은 러시아산이다. 윤석열 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에너지안보를 외치며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정책의 모순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에너지안보라는 개념은 두 가지 맹점을 가진다. 첫째로는 지적했듯, ‘에너지 수입원의 다변화’라거나 화석연료와 원자력 사이에서 어디에 더 의존할지 양다리를 걸치는 전통적 해법만으로는 본질적으로 에너지 수급의 불안정을 재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그 개념 자체가 대단히 수세적이며 자국중심주의적이라는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 정부의 통제력과 무관하게, 어떤 형태의 국외 변수에라도 시민들의 기본적 생활 인프라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수출국에서 특정 자원을 전략화·무기화할 수 있다면 이는 명백한 ‘안보’의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력·군사력·외교력 등 전통적 지표의 모든 측면에서 선진국이다. 에너지산업 측면에서도 민간기업이 하는 것이든 공기업이 하는 것이든, 채굴·정제·유통·소비까지 주도적으로 개척하는 국가다. 기후위기로 화석연료의 퇴출이 논의되는 최근까지도 국내의 대기업은 호주에서 신규 가스전 건설을 시도한 바 있다. 한국의 높은 삶의 질을 위해 국외의, 특히 개발도상국의 주민·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자연은 대규모 추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광산, 유정, 가스전 인근 생태계의 파괴, 우라늄 채굴장 인근 주민들의 피폭, 탄광 노동자들의 질환 발생과 같은 문제들은 수입산 에너지 이력에 첨부되지 않는다. 자국의 안보만이 아니라 평화와 생명의 가치에 입각한 에너지정의의 관점으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시장원리 기반 수요효율화라고?
에너지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연료 수입이라는 리스크가 없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과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전자에 비추어 정부는 오히려 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추고 원전 비중을 높이는 정책적 역행을 예고했다. 다만, 후자의 측면에서 정부가 지난 6월 내놓은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은 과거보다 진전된 접근방식을 채택한 것이라고 우선 평가할 수 있겠다.
기존에도 각 부문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대책들이 부분적으로 수립·추진되어왔으나 이를 종합대책으로 수립한 것은 이번 정부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탄소중립을 선언하여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강화한 문재인 정부조차 관련 국가 목표를 수립하면서 에너지 수요관리 전망과 대책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터라 윤석열 정부의 종합대책이 이를 잘 보완하는 것은 중대한 숙제였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은, 마치 명절마다 들어오는 종합 선물세트처럼 기성품을 한데 모아 조악하게 과대포장한 모양새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는 5년 동안 2200만 TOE의 에너지 소비를 줄임으로써 5900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5년간 2020년도 에너지 소비량만큼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정부의 이번 종합대책으로 약 2%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고, 온실가스 배출 역시 같은 기준으로 1~2% 정도 감축하는 셈이 된다. 새 정부의 종합대책치고는 과감하지 못하다.
예컨대 에너지 수요관리의 핵심요소인 요금체계에 대해 정부 종합대책은 뾰족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계시별 요금제 등을 통해 요금체계를 유연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지난 정부부터 천명해왔던 바다. 정부는 낮은 전기요금이 수요관리의 방해요소임을 지적하면서도 적극적 요금체계 현실화에 대해서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지난 정권들도 똑같은 한계를 드러냈었다. 수송부문, 건물부문 등에서도 지난 정부에서 수립된 제도를 지속하거나, 일부 보완하기로 약속하는 데 그쳤다. 가령, 공공부문의 친환경차 구매목표를 ‘22년도 80%’에서 ‘23년 100%’로 상향하기로 한 점 등은 부분적인 진전이지만, 매우 지엽적 대책이고 오히려 소비량이 더 많은 민간 부문 대책은 미흡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10번째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인 동시에, 그 소비의 효율성은 OECD 평균에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쉽게 말해 에너지를 과도하게,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적 에너지 소비는 개인·가정 차원에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낙후된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내 에너지의 90% 가량을 소비하는 산업부문, 그중에서도 제조업 부문에서 특히 에너지효율 개선이 미흡하며, 핵심 제조업 부문에서는 도리어 악화되고 있기까지 하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은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뜻이다. 산업부문의 줄지 않는 온실가스 배출은 관련 기업들이 탄소중립·ESG 경영을 선언하고 공언해 왔다는 것을 상기하면 의아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만큼 에너지 다소비,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의 제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기효율제도의 정비’나 ‘자발적 협약 참여’ 등과 같은 감축 유도형 제도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다소비의 주요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게 강제력 있는 감축 신호를 발신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가 예산을 들여 인센티브, 기술 혁신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은 ‘시장원리 기반’이라기보다 ‘시장에 예속된’ 정책 현실을 보여준다.
전체 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공급 위주
한편 정부는 수요효율화 대책의 핵심이 공급 위주 정책을 보완하는 데 있다고 밝혔음에도 전반적인 에너지 정책 방향은 여전히 공급 위주의 틀에 갇힌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되어, 문재인 정부를 거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강원도를 관통하는 신규 송전선로 건설 문제까지 얽혀있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는 신한울 3·4호기를 비롯 신규 원전 건설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히며 대규모 발전소 건설을 통한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지속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니까 종합적으로 볼 때, 정부의 수요효율화 대책은 전체 에너지 수요 감축에 있어서 대단히 제한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며, 에너지정의를 고려한 에너지전환과 연계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마저도 목표 달성에 있어 시장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고, 기존 다소비·다배출 산업을 지원하는 형태의 불안정한 정책이다. 정부는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지원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구체적 예산을 밝히진 않았다. 그런데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정부 지출을 늘리려면 그만큼 다소비 기업들로부터 확보되는 세수가 있어야만 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보완 대책과 구체적 예산 추계가 필수적이다.
에너지정의의 관점에서 수요효율화는 다음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측정·설계되어야 한다. 어떻게 만들어진 에너지인가, 어떻게 유통된 에너지인가, 적정한 비용이 책정된 에너지인가. 화력·원자력과 같은 대규모 발전시설은 그 자체로 더럽고 위험한 에너지원이며 규모와 출력을 조절하기 어려운 대량공급시설이라 필연적인 대량소비를 요구한다. 또한 이 에너지원들은 대단위의 장거리 송전을 통해 에너지 생산지와 소비지를 극단적으로 유리시킴으로써 발전소 및 송전선로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이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이렇게 생산·유통된 에너지가 지금처럼 값싼 가격에 판매되면서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무분별하게 에너지를 소비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말았다. 또 하나의 단적인 예로 최근에는 값싼 전기요금을 요인으로 대량의 에너지 소비시설인 데이터센터들이 국내에 입지를 늘리고 있다.
에너지 정책 전반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더 정의로운 에너지 수요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를 근본적으로 억제할 만한 비용 조정, 규제제도 도입을 과감하게 채택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기존 대형 전원을 대체할 만한 재생에너지가 소비지 인근에 빠르게 확대될 수 있도록 설치 의무화, 설치 지원제도·예산을 강화해야 한다. 중첩된 위기들 속에서, 해답은 때로 매우 담백할 수 있다. 삶의 패턴을 바꾸고 소비를 줄이는 일이 당장 어려워 보일지라도 그것만큼 명백한 답이 없다면, 시스템을 전환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