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으로 화석연료 없는 세상 만들기

“현재와 미래세대가 더 뜨겁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정도는 현재와 근미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올해 3월 공개된 IPCC 제6차 종합보고서는 현재 시행되는 정책의 변화가 없다면, 즉 현재 추세대로 진행된다면 지구 평균기온은 2100년에 3.2℃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1.5℃ 제한을 위하여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탄소예산은 약 5000억 톤밖에 남지 않았다며 신속하고 즉각적인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기후행동’을 강조한다. 

IPCC의 이러한 경고와 촉구는 “오늘 우리가 하는 투자는 내일 우리가 살 세계의 모습을 결정한다.”고 역설한 에이미 도미니(Amy Domini)의 말을 연상시킨다. 사회책임투자의 구루(guru)로 불리는 도미니는 투자의 힘, 금융의 힘, 그리고 그 책임성에 주목한 사람이다. 그녀는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맹목적 투자, 그 결과는 우리 삶의 질을 희생시켜 돈주머니를 불리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기울어지는 세상이 될 거라고 예견한다. 이토록 궁색하고 초라하고 극도로 위험해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책임, 그 중심에 ‘금융’이 있다는 말이다.


세계 60대 은행, 그 추악한 화석연료금융 실태

지난 5월 24일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11개 기후단체는 국민연금 본사 앞에서 ‘탈석탄’ 선언 후 2년 동안 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제안 기준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운동연합


올해 4월 발표된 「은행업에 의한 기후혼란 : 화석연료금융 보고서 2023」은 ‘책임 있는 금융기관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회의와 더불어 인류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한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75개국 623개 기관의 지지, 그리고 <열대우림 행동 네트워크(RAN)>, <뱅크트랙(BankTrack)>, <원주민 환경 네트워크(IEN)>,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OCI)>, <리클레임 파이낸스(Reclaim Finance)>, <시에라 클럽(Sierra Club)>, <우르게발트(Urgewald)>의 공동 노력의 결과물로, 화석연료를 통해 기후를 파괴하는 기업에 대한 세계 60대 은행(S&P Global Market Intelligence ranking에 따른 은행)의 금융지원 현황을 추적하고 있다.

그 결과, 60대 은행은 파리협정이 발효된 2016년부터 화석연료를 확장하는 100대 기업, 각종 석유 및 가스 기업, LNG 기업, 석탄채광, 석탄발전 등에 속한 기업들에게 총 5조50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했다. 상위 13개 중 미국 은행이 6개(JPMorgan Chase, Citi, Wells Fargo, BoA, Morgan Stanley, Goldman Sachs), 캐나다 은행 3개(RBC, Scotiabank, TD), 일본 2개(MUFG, Mizuho), 영국 1개(Barclays), 프랑스 1개(BNP Paribas)다. 미국과 캐나다 은행은 화석연료 금융지원의 주범으로, 그 중에서도 제이피모건체이스는 4341억 달러로 최악의 1위를 기록했다. 2022년에는 총 6690억 달러가 지원되었는데, 미국 은행은 28%를 차지했다. 2016년부터 누적치로도 상위 4개 기관이 미국 은행이다. 그러나 2022년에는 캐나다 은행인 RBC가 410억 달러를 제공하여 2019년 이후 제이피모건체이스를 제치고 최악의 1위로 선정되었다. 보고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화석연료 기업이 2022년에만 약 4조 달러의 수익을 올렸음에도 은행이 669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는 점, 더구나 이 수치는 엑슨모빌과 쉘과 같은 석유 메이저 기업이 2022년 0달러의 파이낸싱을 요청한 자금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석탄 배제 정책과 관련하여 47개 은행이 이를 시행하고 13개 은행은 정책이 부재했다. 일부 은행은 프로젝트 수준의 배제정책을 개선했지만 석탄 부문 대다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보다는 기업 수준의 자금조달을 더 자주 받기 때문에 석탄금융에 방해를 받지 않으며, 일부 은행은 기업 수준에서 배제정책을 채택했지만 정책은 석탄금융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보고서는 60대 은행 중 49개가 넷제로은행연합(NZBA, Net-Zero Banking Alliance) 또는 자체 이니셔티브를 통해 탈탄소를 약속하고 목표를 설정했음에도 이 서약은 큰 의미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목표는 너무 낮고, 탄소상쇄 및 포집저장(CCU)과 같은 아직 신뢰할 수 없는 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그린워싱 위험을 경고했다. 은행의 정책이 엄격하지 않아 화석연료 고객에게 자금을 계속 제공할 수 있다는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했다. 실제로 북극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제한을 둔 은행이 가장 큰 석유 프로젝트인 북극의 윌로우(Willow)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는 코노코필립스(ConocoPhillips)에 자금을 지원했다.

보고서는 △화석연료 확장을 위한 모든 금융지원 즉각 금지 △금융배출량 절대 감축목표 채택 △모든 화석연료 고객에 강력한 전환 계획 요구 △원주민과 인권 보호 △정의롭고 공정한 전환에 자금조달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금융기관의 진전 없는 화석연료금융 실태

이제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자.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국내 최초로 발간한 『2022 화석연료금융 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화석연료금융(공적금융+민간금융) 총 자산은 118.5조 원(2022.6.30. 기준)이다. 대출, 채권, 주식투자 방식으로 석탄에 56.5조 원, 석유와 천연가스에 62조 원이 지원되고 있다. 현 백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부보금액(보험)까지 합치면 213.4조 원에 달한다. 이는 올해 정부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수준이다. 석탄 중독만이 아니라 석유가스 중독도 심각했다. 화석연료 중 기후변화의 최대의 적은 바로 ‘석탄’이다. 56.5조 원 중 10개 금융기관의 석탄자산은 45.4조 원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이 상위 10개 금융기관의 자산 대비 석탄자산 비중은, 한전 지분 20.6조 원을 보유한 산업은행 7.69%, 국민연금 0.98%, 수출입은행 2.44%, DB손해보험 4.93%, 흥국생명 4.63%, 우정사업본부 1.44%, 삼성생명 0.72%, NH농협은행 0.42%, 교보생명 1.35%, 삼성화재 1.33% 등이다.

신규 석탄금융 자산만 보면, 2022년 상반기에만 5.4조 원이 지원되었는데, 이는 2021년의 규모인 5.5조 원에 이미 육박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과 한전의 영업 적자 지속, 그리고 한전이 타개책으로 발행한 회사채에 2.5조 원을 투자한 데다, 기존에 약정된 석탄발전소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액 때문이다. 한전의 적자구조가 큰 폭으로 개선되지 않은 한 한전채 발행은 지속되고, 국채와 동일한 신용등급인 AAA가 부여된, 표면적으로는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에 대한 국내 금융기관의 투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 한전채 이슈는 발전자회사 투자 문제와 더불어 국민연금이 지난 2021년 5월 ‘탈석탄 선언’을 한 후 2년이 넘도록 ‘석탄투자 제한전략 기준’을 발표하지 못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4월 말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올린 최종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용역사는 국민연금이 석탄투자 제한전략 수립을 위한 방안으로 △옵션 1: 석탄 매출 비중 30%, 에너지 전환 기준만 미도입 △옵션 2: 석탄 매출 비중 30%, 모든 정성기준 도입 △옵션 3: 석탄 매출 비중 50%, 모든 정성기준 도입 등의 기준을 도출했다. 

시민사회는 석탄산업의 범위를 석탄 가치사슬 전반으로 설정하고 최소 30% 설정과 단계적 강화, 정성기준 기준에 대한 조건부 허용(녹색채권투자 허용 시 녹색분류체계 상의 녹색부문에 한정, 에너지전환기업 투자 허용 시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 엄격한 기준 수립), 석탄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수탁자 책임 활동 기준 수립과 투명성 강화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2년 이상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석탄발전 분야 투자액은 늘어났다. 국민연금이 ‘탈석탄’을 선언했던 2021년 5월과 2022년 10월의 국내채권, 해외채권, 국내주식, 해외주식 투자액을 경향신문(「국민연금 ‘석탄기업’투자 안 줄이면서 ‘넷제로’ 연구 착수…‘꿍꿍이’는?」, 2023.5.23.)이 비교한 바에 따르면, 국내 주가 하락으로 자연 감소된 국내주식을 제외하고 모두 투자액이 증가했다. 2021년 2조7730억 원이었던 국내채권 투자액은 2022년 10월에 1% 증가해 2조7930억 원이 됐다. 해외채권 투자액은 같은 기간 3487억 원에서 5046억 원으로 45% 증가했다. 해외주식은 858억 원에서 1151억 원으로 34% 증가했다. 직접운용에서는 감소했지만 위탁운용에서의 증가가 그 원인이다. 

2018년 국내 최초로 탈석탄 선언을 한 금융기관이 나온 이후 현재 탈석탄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금융기관은 104개에 이른다. 2020년 하반기와 2021년 상반기까지 탈석탄 붐이 일면서 급증했다. 당시의 탈석탄 선언 기준은 대부분 국내외 석탄발전을 중심으로 한 3가지 필수사항(향후 국내외 석탄발전 건설 프로젝트 불참, 석탄발전 건설용의 특수채 인수 거부, 석탄발전 건설용 일반채 인수 거부), 1가지 권고사항(기존 석탄 투자금의 단계적 철회 계획 수립과 이행)이라는 요건에 기반하고 있다. 사실 이 요건들은 탈석탄 금융의 볼모지에서 ‘최초 선언 금융기관’을 이끌어내고 ‘주류적 지형’을 구축하기 위한 ‘최소한’에 불과하다. 여건이 완전히 달라진 현 상황에서는 요건들을 더 추가하고 더욱 확장하며 강화해야만 한다. 그린워싱 논란이 나올 만큼 그 한계선을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우선 석탄발전소 건설만으로 한정된 요건을 석탄 관련 가치사슬 전반으로 확장하고, 기존 투자금의 단계적 철회 계획 수립과 이행을 필수로 할 필요가 있다. 석탄금융 규모가 체감할 정도로 줄지 않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경우가 생기는 핵심 이유에는 ‘기존 석탄 투자금’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2023 화석연료금융 백서』에 따르면, 4개의 금융기관(AIA생명, DB손해보험, 미래에셋증권, 하이투자증권)이 기존 석탄 투자금 회수를 추진 중이고, 2개 기관(IBK기업은행, 서울보증보험)이 회수계획을 수립 중이며, 아직 회수계획은 없으나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힌 기관은 5개 기관(교보생명, 현대생명, 삼성화재, 신한은행, 광주은행)에 불과했다. 시민사회가 국민연금에 요구한 석탄투자 제한전략 조건 중 적용 가능한 사항을 탈석탄 선언 요건에 포함시키는 한편 금융 섹터별, 투자방식별 특성을 심층적으로 고려한 요건도 만들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석탄만이 아니라 이를 화석연료 전 자산에 적용할 수 있는지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석탄 다음 단계는 결국 석유와 가스이기 때문이다.


도덕, 환경, 수익 세 마리 토끼 잡기

석탄을 필두로 한 화석연료는 기후위기, 기후재난으로 인하여 더욱 더 땅속에 묻혀 있어야 할 연료다. 그럼에도 이 연료가 지속적으로 지상으로 나올 수 있는 조건은 바로 ‘금융기관’이 ‘자금’이라는 피를 공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은 모든 존재가 의지하는 지구를 위기에 빠뜨리게 할 뿐만 아니라 근미래에 좌초될 가능성이 높은 비즈니스다. 이러한 비즈니스에 투자한 금융자산 역시 좌초자산이 될 우려가 높다. 때문에 화석연료로부터의 탈출, 혹은 적극적인 관여활동을 통해 화석연료 기업을 재생에너지 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금융활동은 도덕적으로, 환경적으로, 그리고 재무적으로도 옳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과 기업 등 시장지배력을 가진 국민연금이 강한 석탄투자 제한전략으로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이끌어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글 |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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