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핵발전소의 위험한 수명 연장 시도

설계수명을 다할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둘러싸고 전국에서 우려가 크다. 윤석열 정부의 ‘핵 진흥 정책’에 힘을 입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고리 2·3·4호기에 이어 전라남도 영광에 위치한 한빛 1, 2호기도 본격적으로 수명연장 절차에 착수했다. 

한수원은 지난 6월 28일 이사회를 열어 한빛 1, 2호기 수명 연장을 결정했다. 바로 그 다음 날에는 수명 연장 절차에 필요한 ‘주기적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 제출했다. 한수원은 9월 말부터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서 초안을 원안위와 방사선 비상계획구역(반경 28~30km) 내의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 제출하고 빠르면 10월부터는 주민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윤 정부의 노후 원전 수명 연장

한빛 원전 ⓒ한국수력원자력


한빛 1, 2호기는 각각 1986년과 1987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노후 핵발전소다. 설계수명대로라면 2025년과 2026년 문을 닫아야 한다. ‘탈핵’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수명 연장 금지를 채택했으나, 법 제도 정비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핵 진흥’을 내세워 정권을 잡은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핵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했고, 수명 연장을 위한 법 규정을 개정했다. 윤 정부는 2022년 12월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기존 시행령은 설계수명 만료일로부터 2~5년 전에 수명연장 신청이 가능했었으나, 시행령 개정은 5~10년 전에도 수명 연장 신청을 가능하게 했다. 이로써 윤석열 정부 임기 안에 12기의 노후핵발전소 수명 연장이 가능하며, 최대 18번(중복 6기)까지 수명 연장이 가능해졌다. 

한수원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 때 닫혔던 핵발전 수명 연장의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한수원은 앞으로도 거침없이 수명 연장 절차를 진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핵발전소 수명 연장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안전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걸려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한수원은 영광을 비롯하여 호남권 지역 주민들에게 아무런 예고와 의견수렴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수명 연장을 결정·통보했고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8월 25일에는 영광군에서 ‘한빛 1, 2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 관련 설명회’를 열었다. 한빛핵발전소 비상계획구역(반경 28~30km)에 포함되는 광역 및 기초 지자체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향후 진행될 한빛 1, 2호기 수명 연장을 위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주민 공람 및 의견수렴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였다. 설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전남북 지역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급하게 기자회견을 준비해 설명회가 열릴 영광 문화예술의전당에 아침 일찍부터 모였다. 참가자들은 “호남 주민 동의 없이 한수원 마음대로 하지 마라”, “방사성 환경영향 평가 의견 수렴 이전에 우리들의 수명 연장 반대 목소리부터 먼저 들어라” 등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요식행위로 전락한 절차

지난 4월 8일 고리 2호기의 설계수명이 만료된 가운데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은 '고리 2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을 열고 고리 2호기의 수명연장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한빛 1, 2호기 수명 연장과 관련해서 진행될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 향후 일정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한수원은 올 9월 25일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서 초안을 원안위와 해당 지자체에 제출할 예정이다. 지자체는 그날부터 10월 5일까지 10일 동안 내용을 검토하고 한수원에 보완 요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9월 달력을 보면 추석 연휴가 끼어 있어서 실제로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서류를 검토할 날짜는 단 5일에 불과하다. 원래 정해진 10일도 모자랄 판에 불과 5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의 초안을 충분히 읽고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까. 핵발전 기술이나 방사능 방재와 관련된 전문 용어와 개념을 모두 이해하고 내용에 대한 보완 요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한수원이 내놓은 초안이 확정되면 바로 주민 공람과 공청회 등 두 달간의 의견수렴 과정이 시작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수명 연장 그 자체에 대한 의견 수렴 과정을 하나도 거치지 않은 채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서만을 가지고 주민 의견 수렴을 한다면 그 과정은 말 그대로 요식행위로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된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절차에 따른 문제점은 작년부터 진행된 고리 2호기와 고리 3·4호기 수명 연장 과정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로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서에서 중대사고 시나리오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민 피해, 건강 영향, 사망자 규모 등 중대 사고를 가정해서 예상되는 피해에 대해 제대로 예측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최신기술 기준을 적용했는지 주민이나 지자체가 검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주기적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분석해야 하는데, 한수원은 주기적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공개하면서도 영업비밀이라며 상당히 많은 부분을 가림 처리했다. 이 외에도 다수호기 위해성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 지적되었다. 이대로라면 한빛 1, 2호기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도 같은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후쿠시마의 경고 ‘노후 핵발소가 위험’

한빛 1, 2호기는 가동 시작부터 현재까지 숱한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2023년 8월 현재까지 1호기(45건), 2호기(57건) 합계 102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한빛 1~6호기 전체 사건·사고 180건 중 57%에 해당되며, 전국 25기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597건의 약 17%를 차지한다. 2019년 5월에는 1호기에서 제어봉 조작 실패로 인한 출력 급상승이라는 중차대한 사고가 일어났고, 같은 해 10월에는 제어봉 조작 실패로 인한 출력 급상승 사고까지 발생했다. 또한 한빛 1, 2호기는 201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격납건물 철판 부식이 확인되었다. 전수조사를 통해 전국 다른 핵발전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철판 부식(1호기에서 2330개, 2호기에서 1508개)이 발견되기도 했다. 즉 한빛 1, 2호기는 ‘국내에서 중대사고 위험이 아주 높은’ 핵발전소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기계와 설비들이 그렇듯 오래된 핵발전소일수록 사고와 고장 확률이 높아지고 위험성이 커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한수원은 왜 그토록 오래된 핵발전소를 수명 연장하고 싶어 할까. 답은 쉽다. 핵발전소를 새로 짓는 것보다 수명 연장해서 기존 것을 오래 더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신규 건설을 위한 부지 확보와 그에 따른 주민 수용성 확보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핵발전소를 폐로함에 따라 생기는 비용, 기술적 어려움, 격납건물 수조 내에 쌓여 있는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수명 연장은 수많은 문제점과 어려움에 대한 해결을 뒤에 미룰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노후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1~4호기는 모두 1970년대에 건설된 노후 핵발전소였고, 특히나 내부 손상이 심한 1호기는 1971년에 건설되었다. 


수명 다한 핵발전소는 문 닫는 게 답

지난 6월 29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한빛 1, 2호기 ‘계속운전을 위한 주기적 안전성 평가서(PSR) 제출 가∙부’를 안건으로 삼고, 노후된 한빛원전의 수명연장 절차를 본격 추진하자 전국의 탈핵활동가들은 한빛원전 앞에서 한빛 1, 2호기 수명연장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핵발전소는 많은 위험성과 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가동되고 있다.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은 자체가 지역 주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이다. 오래된 핵발전소는 수명이 다하면 바로 문을 닫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정부는 핵발전 대신 시민 안전과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으로의 전환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한수원도 그동안 핵발전소의 위험성에도 묵묵히 인내해온 주민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핵 없는 세상 광주전남행동>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영광 한빛 핵발전소 수명 연장 반대 광주·전남 1만인 서명운동’을 통해 1만4392명의 서명을 모았고 올해 1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원안위는 이 서명용지의 무게를 제대로 인식하길 바란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노후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막는 일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글 | 오하라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교육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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