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연의 변화를 야기한 것도 인간이며, 이 변화로 위기에 처한 것도 인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 앞에 겸손한 태도를 가지면서도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과정이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과정과, 그 과정의 끝에서 새로이 형성될 세계가 공히 민주적이며 평등하고 평화로울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 대전환을 주도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다소 늦게 이 전환을 준비하는 팀을 꾸렸다. 지난 5월 29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그것이다. P4G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같은 장소에서 엄숙한 출범식을 통해 의지를 내보인 탄소중립위원회지만, 그동안 정부의 기만적인 기후환경 정책들을 ‘그린워싱’으로 규정하며 위원회 참여를 보이콧한 시민단체, 노조 등도 한편에 분명히 존재하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이러한 우려와 반대를 딛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현재의 탄소중립위원회는 시민의 주체성을 보장하기 어렵게 구성·운영되는 모양새다.
지난 5월 30일 동대문 DDP의 P4G 회의장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만적인 국제회의를 진행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액션과 기자회견을 펼쳤다 ⓒ환경운동연합
산업계 대변 치우친 탄소중립위원회 구성
① 소수 전문가 중심의 구조, 위원회 폐쇄성 등 운영이 불투명하다.
탄소중립위원회의 첫 번째 과제라 할 수 있는 ‘탄소중립 로드맵’은 정부가 구성한 기술 작업반이 초안을 작성하여 분과별 위원회가 검토하게 되어있다. 초안을 작성하는 작업반부터 이를 심의하는 위원회까지 소수의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탄소중립위원회는 초안 작성과 심의의 전 과정에서 시민들의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기술 작업반이 어떠한 근거로 안을 도출하였고, 위원회는 또 어떤 논의를 거쳐 이를 심의하였는지는 공개되지 않은 채, 최종안만 시민들에게 공표되는 식인 것이다. 과정도, 결과도 소수 집단의 의사결정에만 중점을 두어 시민들을 기후위기 대응의 객체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② 분과 운영의 파편화로 위원들의 종합적 심의를 차단한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여러 정책의 심의를 8개의 위원회가 분야를 나누어 진행하는 방식은 전문성과 효율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틀에서의 정부의 탄소중립 이행계획을 각 위원들이 통합적으로 심의하지 못하도록 고립시킨다. 이러한 구조는 이행과정을 점검할 때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전체적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는 부문의 파편화로 인해 위원회의 유기적 심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③ 농민·노동·소상공인 등 전환 당사자 참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전환이 누군가에겐 삶의 위기가 되어선 안 된다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탄소중립위원회에도 역시 ‘공정전환’ 분과가 존재하지만 여기에 전환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빠져있다. 농민·소상공인·하도급업체·비정규직노동자 등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으며, 가장 많은 조합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노총인 민주노총은 애초에 탄소중립위원회 참여를 보이콧 했다.
물론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는 P4G 정상회의를 비롯해 여러 차례의 발표를 통해 산업계에는 전환이 기회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노동자나 지역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임을 밝혀왔다. 기후위기 극복의 과정이 누구에게 기회가 되고, 누구에게 피해가 될지, 정부는 이미 정해 두었던 것이다.
④ 산업계의 이해가 과도하게 대변될 우려가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를 기업으로 상정한 채 위원회를 구성하다보니 탄소중립위원회도 현장에서 전환의 당사자가 될 사람들보다 산업계를 대변하는 위원들로 구성될 우려가 크다. 기업의 입장에 가까운 학계 전문가들 뿐 아니라 산업 협회를 대표해 참여한 위원들도 다수다. 기업도 물론 전환의 당사자겠지만, 다른 한편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이 명백하다. 그렇기에 탄소의존적인 기업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전환에 몰두하다 보면 자칫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달성 자체에 실패할 우려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시민 주도 시스템으로 위원회 개선해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 또한 이번 정부의 임기 내에 그 기틀을 다져야 함도 분명하다. 그러나 위원회가 편파적이고 폐쇄적 구조로 고립된, 거수기 같은 기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시민들을 주체로 세울 수 있는 혁신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기후시민의회’나 뉴욕주의 ‘기후행동위원회’와 같은 시스템을 참고하는 것은 어떨까.
이제 막 출범한 위원회의 재구성이 어렵다면, 탄소중립위원회의 논의 과정, 검토자료, 회의록까지 운영 전반을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기후위기 대응의 원칙과 방향은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별개의 시민의회를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이렇게 시민을 주체로 세우지 않으면 그 어떤 전환도 성공할 수 없다.
|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기후위기’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연의 변화를 야기한 것도 인간이며, 이 변화로 위기에 처한 것도 인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 앞에 겸손한 태도를 가지면서도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과정이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과정과, 그 과정의 끝에서 새로이 형성될 세계가 공히 민주적이며 평등하고 평화로울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 대전환을 주도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다소 늦게 이 전환을 준비하는 팀을 꾸렸다. 지난 5월 29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그것이다. P4G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같은 장소에서 엄숙한 출범식을 통해 의지를 내보인 탄소중립위원회지만, 그동안 정부의 기만적인 기후환경 정책들을 ‘그린워싱’으로 규정하며 위원회 참여를 보이콧한 시민단체, 노조 등도 한편에 분명히 존재하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이러한 우려와 반대를 딛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현재의 탄소중립위원회는 시민의 주체성을 보장하기 어렵게 구성·운영되는 모양새다.
지난 5월 30일 동대문 DDP의 P4G 회의장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만적인 국제회의를 진행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액션과 기자회견을 펼쳤다 ⓒ환경운동연합
산업계 대변 치우친 탄소중립위원회 구성
① 소수 전문가 중심의 구조, 위원회 폐쇄성 등 운영이 불투명하다.
탄소중립위원회의 첫 번째 과제라 할 수 있는 ‘탄소중립 로드맵’은 정부가 구성한 기술 작업반이 초안을 작성하여 분과별 위원회가 검토하게 되어있다. 초안을 작성하는 작업반부터 이를 심의하는 위원회까지 소수의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탄소중립위원회는 초안 작성과 심의의 전 과정에서 시민들의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기술 작업반이 어떠한 근거로 안을 도출하였고, 위원회는 또 어떤 논의를 거쳐 이를 심의하였는지는 공개되지 않은 채, 최종안만 시민들에게 공표되는 식인 것이다. 과정도, 결과도 소수 집단의 의사결정에만 중점을 두어 시민들을 기후위기 대응의 객체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② 분과 운영의 파편화로 위원들의 종합적 심의를 차단한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여러 정책의 심의를 8개의 위원회가 분야를 나누어 진행하는 방식은 전문성과 효율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틀에서의 정부의 탄소중립 이행계획을 각 위원들이 통합적으로 심의하지 못하도록 고립시킨다. 이러한 구조는 이행과정을 점검할 때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전체적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는 부문의 파편화로 인해 위원회의 유기적 심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③ 농민·노동·소상공인 등 전환 당사자 참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전환이 누군가에겐 삶의 위기가 되어선 안 된다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탄소중립위원회에도 역시 ‘공정전환’ 분과가 존재하지만 여기에 전환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빠져있다. 농민·소상공인·하도급업체·비정규직노동자 등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으며, 가장 많은 조합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노총인 민주노총은 애초에 탄소중립위원회 참여를 보이콧 했다.
물론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는 P4G 정상회의를 비롯해 여러 차례의 발표를 통해 산업계에는 전환이 기회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노동자나 지역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임을 밝혀왔다. 기후위기 극복의 과정이 누구에게 기회가 되고, 누구에게 피해가 될지, 정부는 이미 정해 두었던 것이다.
④ 산업계의 이해가 과도하게 대변될 우려가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를 기업으로 상정한 채 위원회를 구성하다보니 탄소중립위원회도 현장에서 전환의 당사자가 될 사람들보다 산업계를 대변하는 위원들로 구성될 우려가 크다. 기업의 입장에 가까운 학계 전문가들 뿐 아니라 산업 협회를 대표해 참여한 위원들도 다수다. 기업도 물론 전환의 당사자겠지만, 다른 한편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이 명백하다. 그렇기에 탄소의존적인 기업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전환에 몰두하다 보면 자칫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달성 자체에 실패할 우려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시민 주도 시스템으로 위원회 개선해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 또한 이번 정부의 임기 내에 그 기틀을 다져야 함도 분명하다. 그러나 위원회가 편파적이고 폐쇄적 구조로 고립된, 거수기 같은 기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시민들을 주체로 세울 수 있는 혁신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기후시민의회’나 뉴욕주의 ‘기후행동위원회’와 같은 시스템을 참고하는 것은 어떨까.
이제 막 출범한 위원회의 재구성이 어렵다면, 탄소중립위원회의 논의 과정, 검토자료, 회의록까지 운영 전반을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기후위기 대응의 원칙과 방향은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별개의 시민의회를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이렇게 시민을 주체로 세우지 않으면 그 어떤 전환도 성공할 수 없다.
|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