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르고 같은



지역주민들과 모여 글공부를 시작했다. 전염병의 시대를 살면서 글을 읽고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도 잘 모르면서 앞장서 사람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나마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잠시 쉬었다가 간신히 다시 만났다. 코로나19 덕분에 우리가 성숙해지는 부분도 있다고 애써 서로를 격려한다.


우리가 처음 읽은 책은 『임계장 이야기』

이 책을 읽고 12년을 계약직 경비원으로 살아온 아버지를 회상한 글을 읽었다. 글은 담담한데 내 마음은 담담하기 어려웠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어떻게 하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을지 회의하던 날이 생각난다.

이 회의 내용을 한 공간에서 듣고 계시던 경비원 아저씨의 눈을 나는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결국, 다수의 흐름에 따라 침묵하고 있었던 나,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책을 읽고 자식으로서 나 또한 알지 못했음에 누구를 탓하지도 분개하지도 못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우선 임계장이기 전에 임계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아버지인 그분에 관해 쓰고 싶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건강하시다. 여전히 주변의 고장 난 물건들을 다 고쳐 주시며 우리 아이들만의 ‘다고쳐’ 할아버지로 지내고 계신다. 12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하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나의 가정 경제 상태만 돌보고 있지만, 아직도 세입자이며 노후는 계획하기도 빠듯하다. 누구에게나 늙음은 온다. 과연 미래의 임계장에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임계장이 우리 주변에 어디에나 있듯, 고용주 또한 어디에나 있으며 임계장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한 낮은 시선을 가진 우리도 어디에나 있다. 세상을 향해 부당함과 억울함을 죽음으로 알리는 일이 지속되어도 알지 않으려는 사람은 알고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 돈의 가치로만 보는 임계장은 한낱 버려진 고장 난 물건의 낡은 부품과 무엇이 다를까. 

- 김재경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부분 발췌

63세 임시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가 우리에게 남겨 준 메시지는 크고 묵직하다. 임계장의 다른 이름은 ‘고, 다, 자’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입주민의 갑질로 인한 경비원의 죽음을 떠올리며 우리는 전염병보다 무서운 병에 걸렸음을 알았다.


나는 우리가 다시 모여 책을 읽고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길 바란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게 곧 나를 이해하는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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