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가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한 이유



지난 1월 20일 기초지방정부로 당진시가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포식을 개최했다 ⓒ당진환경운동연합


기후가 정말 이상하다.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로 강추위도, 눈도 찾아보기 어려워 겨울이 실종됐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겨울특수를 노리던 상당수 산업이 찬 서리를 맞고 있다. 평균 기온을 10도 이상 웃도는 이상기후로 눈과 얼음이 사라져 각종 축제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고 스키장과 썰매장 등을 비롯한 레포츠 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평균 기온은 2.8도로 평년(198102010년)보다 3.8도 높았다. 이는 기상청이 전국 관측망을 갖춘 1973년 이래 최고치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시작된 호주 산불은 6개월간 이어져 최소 33명이 목숨을 잃고 1100만 헥타르 이상의 산림이 소실됐으며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죽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도 이번 겨울이 이상하다는 데는 이견을 제기하기 어렵게 됐다. 

 

전 세계적인 기후 비상사태 선언에도 한국 정부 ‘모르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기후가 이처럼 이상징후를 보이고 있는 데는 산업화 이후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급증이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수십 년 전부터 다양한 경고가 이어져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임계점을 앞두고 있다며 비상한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를 지구 가열로, 기후변화라는 용어를 기후위기로 바꿔야 할 만큼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세계의 많은 시민들은 곳곳에서 조속하고도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등교를 거부하고 1인 시위에 나선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 등 미래세대, 시위에 나섰다가 체포되기도 했던 제인 폰다와 호아킨 피닉스 등 할리우드 스타, 공공장소를 점거하며 항의시위에 나선 영국의 멸종저항 활동가들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지금의 심각한 위기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조치를 약속하는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이 세계 각국에서 잇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영국, 프랑스, 캐나다를 비롯한 18개국과 900여 개 지방정부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난해 11월 28일에는 유럽의회가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각국의 이상기후에 대한 위기의식에 비해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록하고 있는  ‘기후악당 국가’ 한국은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변화를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은 작지만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충청남도에 이어 당진시도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

지난해 10월 22일 열린 탈석탄 기후변화 대응 국제 컨퍼런스에서 충청남도는 국내 지방정부 최초로 ‘기후위기 비상상황’ 선포식을 가졌다. 이날 선포식에서 양승조 도지사는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다”며 “동아시아 지방정부 최초로 ‘기후 비상상황’을 선포하며 충청남도는 책임의식을 갖고 도의회, 도민과 함께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충청남도가 우리나라 최초로 ‘기후위기 비상상황’을 선포한 이유는 국내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청남도에는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60개 중 절반인 30개가 몰려 있으며 주력산업도 철강, 석유화학 등 온실가스 다량 배출업체이다. 실제로 2017년 기준 온실가스 다량 배출 기업 순위를 보면 10위권 안에 당진화력, 태안화력, 보령화력, 현대제철, 현대그린파워 등 5개 기업이 들어 있다. 지금의 기후위기로 인한 심각성을 감안하면 향후 지속가능성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유예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충청남도의 의지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 

충청남도에 이어 당진시는 지난 1월 20일 기초지방정부 최초로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날 선포식에서 김홍장 시장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당진시는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시민과 함께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다짐하고 국내 기초지방정부 최초로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당진시는 광역 지방정부 중 가장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충청남도에서도 전국적으로 가장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기초지방정부이다. 2017년 기준 온실가스 다량 배출 기업 순위에서 10위권 안에 3위인 당진화력, 7위인 현대제철, 10위인 현대그린파워 등 3개 기업이 당진에서 가동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도시로서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당진시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때 사용한 행사의 공식 명칭도 한번 살펴봐야 한다. 

당진시는 충남도와 달리 기후위기 비상‘상황’이 아닌 기후위기 비상 ‘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처음 우리나라에서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이 논의되던 당시 ‘비상사태’라는 용어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현대사에서 전쟁과 쿠데타 등의 트라우마를 겪은 한국인에게 ‘비상사태’는 계엄령을 연상시킴으로써 과도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로 인해 충청남도는 비상사태라는 용어 대신에 비상상황이라는 에두른 용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당진환경운동연합은 당진시와 선포식을 준비하면서 시민들이 전시에 준하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비상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져 ‘기후위기 비상사태’라는 행사 공식명칭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 후속조치 이행돼야

당진시의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기후위기 비상사태만 선언하고 그치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충청남도는 지난해 10월 국내 광역 지방정부 최초로 기후위기 비상상황을 선언했지만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충청남도는 기후위기 비상상황 선언 이후 대응목표와 관리체계, 세부 정책별 추진방향 등을 수립했지만 기존 기후변화 대책과 큰 차이가 없는데다 시책 수립과정에서 시민환경단체의 의견수렴이나 소통도 부족했다. 전반적인 후속조치에서 위기의식을 느끼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상황에 맞는 비상한 조치를 위해선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충청남도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수다. 중앙정부가 하지 않으면 광역 지방정부가 선도해서 중앙정부를 견인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당진시도 기초지방정부 최초의 ‘기후위기 비상사태’라는 타이틀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의 폭넓은 소통과 교류를 통해 구속력 있는 후속조치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당진시의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은 지방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의지를 강조하느라 매우 포괄적인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전년도인 2018년 당진시 에너지전환 비전 수립을 통해 충남도와 마찬가지로 2050년 석탄화력 제로 등을 선언했지만 석탄화력의 설계수명 등을 감안하면 절박함이나 시급함을 느끼기 어렵다. 충남도도 기후위기 비상상황 선언 등을 고려해 2019년 수립된 충남도에너지기본계획에서 탈석탄 시기를 더욱 더 앞당긴 만큼 당진시도 변화되는 상황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 최우선으로 해야

기후위기 비상사태라는 상황에 맞게 당진시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더욱 적극적인 조치와 계획이 요구되고 있다. 지금의 사태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모든 정책의 계획과 집행에 있어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또한 파리 기후협약이 제시하고 있는 대로 2050년 온실가스 제로를 실현하기 위한 감축 목표량 제시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세부계획 역시 필요하다. 석탄화력 조기폐쇄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준비해야 하며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일개 지방정부 차원에서만 그쳐서는 기후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만큼 다른 지방정부의 동참을 이끌어내야 하며 더 나아가 중앙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조만간 다른 지방정부에서도, 중앙정부에서도, 사회 곳곳에서도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더 늦출 수 없는 에너지전환을 위해 전시에 준하는 각오와 노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거대한 움직임을 기대해 본다. 

 

 

글 /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주간 인기글





03039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3
TEL.02-735-7088 | FAX.02-730-1240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