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확대만을 위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이 예상대로 원전 확대와 재생에너지 하향 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력 수요전망을 통해 전력설비 신설과 폐지 등을 담은 15년 동안의 법정계획으로 2년마다 수립한다. 11월 2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를 열어 지난 정부에서 세운 ‘탈원전’과 ‘신재생 중심의 에너지전환’의 전력수급방향을 ‘원전의 활용’과 ‘적정 수준의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임을 밝혔다. 불과 5년 만에 한국은 탈원전 국가에서 원전 확대 국가로 회귀했다. 


지난 11월 28일 11개 시민사회환경연대 단위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핵발전과 화석연료발전 비중이 늘어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전면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환경운동연합


‘원자력 최강국’을 표방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변화는 이미 예상되었다. 올해 4월 수명이 만료되는 고리2호기를 비롯한 모든 원전의 수명연장이 추진되고, 백지화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에 따라 2036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은 현재 24.7GW에서 31.7GW로 늘어나고, 발전량 비중도 23.4%(2018년)에서 2030년 32.4%로 확대된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지난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제시한 2030년 30.2%를 21.6%로 하향조정했다. 정부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조화’라고 표현했지만 재생에너지를 원전으로 대체한 셈이다.  

탈핵시민행동, 기후위기비상행동과 부산, 울산, 삼척 등 탈석탄, 탈핵 단체들은 전기본 공청회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 반발했다. 원전사고와 핵폐기물 위험을 강요하고, 석탄발전 퇴출은 미뤄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계획이라고 평가하며 전기본 전면 재수립을 촉구했다. 원전의 대폭확대에도 온실가스 배출 주범으로 지목되는 석탄발전소는 30년 연한까지 가동하고 강릉과 삼척에 건설 중인 신규발전소 가동을 제한 없이 보장했기 때문이다.


노후원전 수명연장 사고와 핵폐기물 대책 없어 

이번 전기본의 가장 큰 문제는 의견수렴과 대책도 없이 모든 원전의 수명연장과 신규건설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탈원전 정책으로 문을 닫은 원전은 월성1호기 1기에 불과했다. 더구나 월성1호기는 이미 1차례 수명연장을 한 상태였고, 수명연장 허가 과정에서 안전성 미비와 절차 부실로 행정소송 1심에서 허가 취소 판결도 받은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수명연장 시 안전성과 경제성 등을 제대로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제도가 개선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월성1호기 역시 논란이 됐던 안전성 문제는 보완되지 못한 채 폐쇄 절차로 들어가 문제가 봉합되었다. 이런 상황에 수명연장이 급하게 다시 추진되면서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고리2호기의 수명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한수원이 지난 12월 2일 방사선환경영향평가 공청회를 열자 부산 시민사회단체는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공청회는 무효라고 반발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가장 먼저 수명연장이 추진되고 있는 고리2호기 역시 중대사고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방사선환경영향평가, 고준위핵폐기물 대책 및 영향평가 미비, 최신안전기준 미반영 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법적 의무사항인 주민의견 수렴과 공청회마저 형식적으로 진행해 공청회 무산 등 파행을 겪고 있다.

더구나 처분장도 없이 포화에 달한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수명연장 등으로 더 심각해질 상황이다. 고리 원전의 경우 수명연장을 하지 않더라도 저장수조에 임시로 보관할 수 있는 고준위핵폐기물이 2031년이면 포화에 달한다. 고리2호기는 이미 저장할 수조가 꽉 차서 다른 호기로 고준위핵폐기물을 이동시켜 보관하는 임시방편을 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수명연장까지 한다면 2031년이 아니라 포화시점이 몇 년 더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현재 없다.

정부와 한수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전 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을 반기는 지방정부나 주민들은 없다.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이 언제 어디에 만들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현실에서 임시저장시설이 사실상 영구처분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에 대한 안전성 평가 등에서도 이에 대한 대책이나 안전성평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정부가 핵폐기물이나 안전 문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전력계획에 수명연장을 기정사실로 포함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정부 계획대로 수명연장 절차에 돌입한다고 해도 월성1호기 사례 등을 보면 모든 원전이 안전성 검증을 논란 없이 통과할 가능성은 없다. 또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결국 원전은 멈출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결국 전력수급의 불안정성을 키울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역행하는 신규석탄발전 허용

한국 정부는 지난해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수립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석탄발전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데 우리 사회 누구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 강릉과 삼척에 건설 중인 4기의 신규석탄발전소에 대해서는 다르다. 이번 전기본에도 이 발전소들은 예외 없이 건설과 가동이 제한 없이 허용되었다. 하나라도 석탄발전소를 줄여도 모자랄 마당에 지금 시점에 신규 석탄발전소를 건설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해 9월에 한 달 동안 국회 청원사이트를 통해 5만 명의 시민들은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중단을 촉구하는 탈석탄법 제정에 서명했고 국회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에도 여야는 이에 대해 아무런 답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는 사이 신규 석탄발전소들은 거의 다 공사를 마무리하고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

삼척화력과 강릉안인의 석탄발전소 4기가 가동되면 연간 2800만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경북 울진에서 수도권까지 220km에 달하는 초고압송전선로 건설도 추진되고 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인 포스코가 삼척화력을  건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물산 역시 강릉안인 석탄발전소 건설에 참여해 이율배반 행보를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원전은 늘리고 재생에너지 목표를 하향하면서 결국 석탄발전소 퇴출은 아무런 진전없이 느리게 가고 있다. 석탄발전소 사업에서도 기업들의 권리와 이익을 다 보장해주면서 어떻게 지금의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인가.  


수요도 못 따라가는 재생에너지 공급 후퇴

정부는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를 말하지만 이는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원전과 석탄처럼 고정화되어 있고 중앙집중적인 발전원과 재생에너지처럼 변동성이 크고, 분산에 기초한 발전은 전력수급에 필요한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풍력이나 태양광처럼 간헐성이 있는 재생에너지의 경우 출력조정이 쉽지 않은 원전이 이를 뒷받침할 수 없다. 

원전의 비중이 현재보다 더 커지고 재생에너지 비중도 커진다면 이러한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전력망에 있어서도 재생에너지는 기존 원전처럼 장거리 송전을 통해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던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줄이면서까지 원전 확대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장 글로벌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고 있는 기업들에게도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 기업의 소비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RE100 이니셔티브 참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네이버, KT 등 국내 27개 대기업들이 RE100 참여를 선언했다. 이는 더 이상 한국의 정책변화를 전 세계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기본에서 재생에너지 목표를 낮춘 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장의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도 충족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는 현행 대규모 발전회사들이 신재생에너지의무공급량과 RE100 수요만 고려하더라도 2030년 171TWh가 필요한데, 현재 계획은 이보다 38.8TWh가 부족한 양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100% 목표 시점을 2040~2050년으로 설정하고 있어, 현 시점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무책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피해손실과 기회 상실은 국민에게 돌아올 것

무작정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 역시 문제가 없었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 무조건 정당화될 수 없다. 후쿠시마의 교훈을 통해 원전을 줄여나가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석탄발전을 줄여나가는 것은 어떤 정부이든 그 방향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의 반작용처럼 비뚤어져 원전확대에만 힘쓴다면 결국 그로 인한 피해손실과 기회의 상실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글 |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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