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해안 침식 피해가 큰 옥타브르스키 정착촌, 파괴된 아파트 블록 옆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청소년들

옥타브로스키 정착촌 어부의 차고지까지 물에 잠겼다
지구온난화는 지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평양 지역의 사람과 동식물들은 특히 취약한 상태다. 남태평양에서는 강력한 슈퍼 태풍과 치명적으로 높은 파고를 몰고 오는 초대형 미세기(潮汐)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발생하고 있다. 북태평양 지역에서는 영구 동토층의 해빙으로 인한 해안침식으로 연안의 지역사회가 땅을 잃고 있다. 러시아 극동부의 캄차카 반도에서는 해안침식으로 인해, 오호츠크 해와 볼샤야 강 사이 모래톱 지역에 위치한 옥티아브리스키(Oktyabrsky) 같은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정착지를 지속적으로 잠식하는 바다를 피해 내륙으로 피난을 떠나고 있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불과 1500명만이 남아있는데 이는 불과 50년 전만 해도 이 지역사회 총인구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캄차카반도에서 유명한 간헐천과 화산은 이 지역사회와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이 지역에는 특별한 관광자원이 없다. 옥티아브리스키는 생존을 위해 기후변화가 촉발한 온난화의 영향과 싸우고 있지만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옥티아브리스키의 해변과 토지를 침식하는 바다의 공격은 1970년대에 시작되었지만 최근 주민 정착지에 대한 바다의 침습 속도는 더욱 빠르고 규모는 커졌다. 정착지의 세 개의 거리 전체가 이미 사라졌고 해안가에 세워졌다가 쓰러져 허물어진 옛 아파트는 파도와 바람에 휩쓸리면서 천천히 모래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가을과 겨울 폭풍우로부터 해안선을 보호해 주던 단단한 해빙은 꾸준히 상승하는 기온으로 인해 이제는 보이는 게 희귀할 정도로 사라져버렸다. 작은 어선의 선장이었던 79세의 은퇴한 선장 블라디미르 프라즈드리코프(Vladimir Prazdrikov) 씨는 1964년부터 옥티아브리스키에 살고 있다. 그가 1970년대 초에 세 개의 거리가 어떻게 바다에 휩쓸려갔는지 이야기해주었다. “거기엔 기계공학 대학이 하나 있었어요. 디젤기관 작업장도 있었고 체육관도 있었죠. 좋은 학교였죠. 하지만 폭탄을 맞은 것처럼 부서져버렸어요. 폭탄이 터진 것 같았어요. 작업장도 제철공방도 다 부서졌어요. 모든 게 허물어졌죠. 폭풍우가 연속해서 닥쳐왔어요.” 그가 몇몇 건물의 잔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역 주민들이 ‘베이스 49’라고 부르는 옥티아브리스키 근처의 또 다른 정착지는 해안침식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바다로 떠내려갔다. 1990년대에 지역 당국은 서둘러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시켰다. 주민들은 대피 버스에 오르기 전에 옷가지나 서류를 챙길 시간조차 없었다. 주민들은 이주수당을 받고 국영 어업협동조합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빈손으로 삶을 재건해야 했다. 이제 이전 정착지는 그저 곰과 밀렵꾼들의 피난처 노릇이나 할 뿐이다.

해안 침식 피해가 심한 옥티아브르스키 정착촌의 한 아파트에 사는 콘스탄틴 라브로프(42)가 딸들과 놀고 있다

지역 생선가공공장에서 일하는 이리나는 옥티아브르스키 해변으로 소풍을 나왔다. 태풍이 부는 날에는 공장은 문을 닫고 노동자들은 해변에 나와 보드카를 마신다
이런 운명을 피하려고 옥티아브리스키 사람들은 버려진 자동차와 녹슬어가는 폐선들을 해변으로 끌어다가 파도를 막아보려고 시도했지만 거의 900여 명에 달하는 주민 대부분이 지역 수산공장에서 근무하는 이 고립된 공동체 주민들에게 삶은 여전히 고되다. 지역 주민들은 현실 사회주의 개발연대기의 소비에트연방 치하에서는 단지 옥티아브리스키 지역에서만 거의 200여 개에 달하는 어업 관련 기업들이 가동됐었다는 애정 어린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연방의 종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파산과 직장 폐쇄를 뜻했다.
오늘날 옥티아브리스키에서는 15개의 개인 소유 수산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그 공장들 다수가 타지에서 온 계절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많은 계절노동자들이 개조버스, 캐러밴 또는 오두막 같은 생활조건이 열악한 곳에서 살고 있지만, 약 5개월의 근무 기간 동안 매월 5만 루블(EUR 약 740.00)을 받을 수 있는 급여 수준은 고용기회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는 꽤나 괜찮은 편이다.
정착촌의 영구 거주자들 대부분은 그들의 집을 버려둔 채 바다에 삼켜지게 만들고 싶지 않다. 정착촌의 지역 공동체 사람들은 10년 넘게 재정착 전망에 대해 논의해 왔으며 지금까지는 ‘지역을 회복하자’는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바닷물이 범람하면 유일한 도로가 끊겨 주기적으로 본토와 단절되고 정전과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지는 혹독한 날씨의 오지이지만 옥티아브로스키의 지역정신은 무너지지 않고 있다. 타지에서 일하러 온 다수의 계절노동자들은 옥티아브로스키의 경관 속에서 사랑에 빠져 이 외진 모래 언덕에 머물고 싶어 한다.

생선 가공 공장 노동자들이 침식된 옥티아브르스키 해변을 거닐고 있다. 지역 생선 가공 공장의 경영진은 토지가 더 이상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폐건물과 폐선박의 콘크리트 블록을 해변에 배치했다. 그럼에도 공장은 때때로 바닷물에 의해 침수된다.

제49기지의 침식된 해안선에 서 있는 안드레이 사빈(61)과 그의 개. 때때로 어부들과 밀렵꾼들은 제49기지의 폐허를 밤의 피난처로 사용한다.

알렉시는 옥타브르스키 해변에서 나탈리아를 업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옥티아브르스키로 건너와 현지 생선 가공 공장 '나로디 세베라'에서 일한다

세르게이는 옥타브르스키 정착지의 침수된 지역에서 그의 차를 견인하려고 한다. 홍수는 정기적으로 발생하며, 때때로 정착지로 가는 도로 접근이 차단된다
글·사진 | Vlad Sokhin 사진작가
역 | 박현철 편집주간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해안 침식 피해가 큰 옥타브르스키 정착촌, 파괴된 아파트 블록 옆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청소년들
옥타브로스키 정착촌 어부의 차고지까지 물에 잠겼다
지구온난화는 지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평양 지역의 사람과 동식물들은 특히 취약한 상태다. 남태평양에서는 강력한 슈퍼 태풍과 치명적으로 높은 파고를 몰고 오는 초대형 미세기(潮汐)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발생하고 있다. 북태평양 지역에서는 영구 동토층의 해빙으로 인한 해안침식으로 연안의 지역사회가 땅을 잃고 있다. 러시아 극동부의 캄차카 반도에서는 해안침식으로 인해, 오호츠크 해와 볼샤야 강 사이 모래톱 지역에 위치한 옥티아브리스키(Oktyabrsky) 같은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정착지를 지속적으로 잠식하는 바다를 피해 내륙으로 피난을 떠나고 있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불과 1500명만이 남아있는데 이는 불과 50년 전만 해도 이 지역사회 총인구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캄차카반도에서 유명한 간헐천과 화산은 이 지역사회와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이 지역에는 특별한 관광자원이 없다. 옥티아브리스키는 생존을 위해 기후변화가 촉발한 온난화의 영향과 싸우고 있지만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옥티아브리스키의 해변과 토지를 침식하는 바다의 공격은 1970년대에 시작되었지만 최근 주민 정착지에 대한 바다의 침습 속도는 더욱 빠르고 규모는 커졌다. 정착지의 세 개의 거리 전체가 이미 사라졌고 해안가에 세워졌다가 쓰러져 허물어진 옛 아파트는 파도와 바람에 휩쓸리면서 천천히 모래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가을과 겨울 폭풍우로부터 해안선을 보호해 주던 단단한 해빙은 꾸준히 상승하는 기온으로 인해 이제는 보이는 게 희귀할 정도로 사라져버렸다. 작은 어선의 선장이었던 79세의 은퇴한 선장 블라디미르 프라즈드리코프(Vladimir Prazdrikov) 씨는 1964년부터 옥티아브리스키에 살고 있다. 그가 1970년대 초에 세 개의 거리가 어떻게 바다에 휩쓸려갔는지 이야기해주었다. “거기엔 기계공학 대학이 하나 있었어요. 디젤기관 작업장도 있었고 체육관도 있었죠. 좋은 학교였죠. 하지만 폭탄을 맞은 것처럼 부서져버렸어요. 폭탄이 터진 것 같았어요. 작업장도 제철공방도 다 부서졌어요. 모든 게 허물어졌죠. 폭풍우가 연속해서 닥쳐왔어요.” 그가 몇몇 건물의 잔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역 주민들이 ‘베이스 49’라고 부르는 옥티아브리스키 근처의 또 다른 정착지는 해안침식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바다로 떠내려갔다. 1990년대에 지역 당국은 서둘러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시켰다. 주민들은 대피 버스에 오르기 전에 옷가지나 서류를 챙길 시간조차 없었다. 주민들은 이주수당을 받고 국영 어업협동조합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빈손으로 삶을 재건해야 했다. 이제 이전 정착지는 그저 곰과 밀렵꾼들의 피난처 노릇이나 할 뿐이다.
해안 침식 피해가 심한 옥티아브르스키 정착촌의 한 아파트에 사는 콘스탄틴 라브로프(42)가 딸들과 놀고 있다
지역 생선가공공장에서 일하는 이리나는 옥티아브르스키 해변으로 소풍을 나왔다. 태풍이 부는 날에는 공장은 문을 닫고 노동자들은 해변에 나와 보드카를 마신다
이런 운명을 피하려고 옥티아브리스키 사람들은 버려진 자동차와 녹슬어가는 폐선들을 해변으로 끌어다가 파도를 막아보려고 시도했지만 거의 900여 명에 달하는 주민 대부분이 지역 수산공장에서 근무하는 이 고립된 공동체 주민들에게 삶은 여전히 고되다. 지역 주민들은 현실 사회주의 개발연대기의 소비에트연방 치하에서는 단지 옥티아브리스키 지역에서만 거의 200여 개에 달하는 어업 관련 기업들이 가동됐었다는 애정 어린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연방의 종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파산과 직장 폐쇄를 뜻했다.
오늘날 옥티아브리스키에서는 15개의 개인 소유 수산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그 공장들 다수가 타지에서 온 계절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많은 계절노동자들이 개조버스, 캐러밴 또는 오두막 같은 생활조건이 열악한 곳에서 살고 있지만, 약 5개월의 근무 기간 동안 매월 5만 루블(EUR 약 740.00)을 받을 수 있는 급여 수준은 고용기회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는 꽤나 괜찮은 편이다.
정착촌의 영구 거주자들 대부분은 그들의 집을 버려둔 채 바다에 삼켜지게 만들고 싶지 않다. 정착촌의 지역 공동체 사람들은 10년 넘게 재정착 전망에 대해 논의해 왔으며 지금까지는 ‘지역을 회복하자’는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바닷물이 범람하면 유일한 도로가 끊겨 주기적으로 본토와 단절되고 정전과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지는 혹독한 날씨의 오지이지만 옥티아브로스키의 지역정신은 무너지지 않고 있다. 타지에서 일하러 온 다수의 계절노동자들은 옥티아브로스키의 경관 속에서 사랑에 빠져 이 외진 모래 언덕에 머물고 싶어 한다.
생선 가공 공장 노동자들이 침식된 옥티아브르스키 해변을 거닐고 있다. 지역 생선 가공 공장의 경영진은 토지가 더 이상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폐건물과 폐선박의 콘크리트 블록을 해변에 배치했다. 그럼에도 공장은 때때로 바닷물에 의해 침수된다.
제49기지의 침식된 해안선에 서 있는 안드레이 사빈(61)과 그의 개. 때때로 어부들과 밀렵꾼들은 제49기지의 폐허를 밤의 피난처로 사용한다.
알렉시는 옥타브르스키 해변에서 나탈리아를 업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옥티아브르스키로 건너와 현지 생선 가공 공장 '나로디 세베라'에서 일한다
세르게이는 옥타브르스키 정착지의 침수된 지역에서 그의 차를 견인하려고 한다. 홍수는 정기적으로 발생하며, 때때로 정착지로 가는 도로 접근이 차단된다
글·사진 | Vlad Sokhin 사진작가
역 | 박현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