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2호기 수명연장 멈춰야 한다

한국에서 2번째로 오래된 핵발전소 고리2호기 수명연장이 추진되고 있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2호기는 1983년 가동을 시작했고, 40년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2023년 4월 8일 영구정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원자력 최강국’을 표방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2017년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해 “안전한 대한민국은 세월호 아이들과 맺은 굳은 약속”이라며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 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핵발전소의 수명연장 금지를 표명한 지 5년 만이다.

영원불변한 일은 없겠지만 핵발전소 안전성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니고, 인류 최대의 난제 핵폐기물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안전’은 사라지고 더 거세게 핵발전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정부는 고리2호기를 비롯해 2036년까지 12기를 수명연장하고, 신한울 3·4호기를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정부 내내 안전은 빼놓은 채 경제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절차와 의견수렴을 문제 삼아왔던 보수 정치인들과 찬핵진영은 이제는 신속한 추진만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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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부산역광장에서 전국탈핵행동 주관으로 고리2호기 폐쇄!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반대 집회가 열렸다 ⓒ환경운동연합


고리2호기 수명연장 신청부터 법 위반

뭐가 그리 급했는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시작 전 인수위 기간인 4월 4일 고리2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주기적안전성평가(PSR) 관련 서류(주기적안전평가보고서, 주요기기수명평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다. 정부 정책이 공식 확정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수명연장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한수원이 서둘러 냈지만, 수명연장을 하려면 설계수명 만료 2년 전까지 안전성평가서를 제출해야 하는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위반에 해당한다. 이미 제출시한이 1년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지난 정부 시절 수명연장 금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이 지적한 경제성평가 이행을 핑계 대며 고리2호기 폐쇄 절차 돌입을 계속 미뤄왔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법률을 위반하며 서류를 제출했다. 1달 만에 안전성평가를 어떻게 마친 것인가. 그자체로 제대로 된 안전성평가가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부실한 안전성평가

얼마 전 주민공람을 진행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만 봐도 안전성평가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의무화된 중대사고에 대비한 평가는 부실 그 자체였다. 중대사고를 반영한 평가를 하는 목적이 방사선 영향 관점에서 심각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함임에도 이에 해당하는 사고 유형들을 영향평가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사고로 인한 초기사망 리스크, 암사망 리스크는 물론 노심손상빈도, 대량조기방출빈도 값도 밝히지 않고 있다.  

한수원은 평가서 결론에 “중대사고 시에는 원자로건물이 격리되며, 분석대상 모든 시나리오에 대하여 원자로건물을 우회하는 방출경로는 없고”, “사고 유형별로 계산된 주민총피폭선량은 자연방사능에 의한 주민총피폭선량보다 작은 값”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중요한 결과 값들은 제시도 안한 채 중대사고가 발생해도 자연방사선보다 작은 피해를 받는다는 설명을 과연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중대사고 위험을 평가해 이를 대비해 위험을 낮추는 개선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일은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다수호기 사고를 고려한 평가가 없는 것도 문제다. 세계 1위 핵발전소 밀집도인 우리나라는 핵발전소 단지에 6~10기의 원자로를 동시에 운영 중이다. 고리, 신고리 발전소에도 현재 7기의 원자로가 동시에 가동 중이며 9기로 늘어날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드러났듯이 하나의 원인으로 여러 기의 핵발전소가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동시다발 또는 연쇄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하지만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는 다수호기 사고위험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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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핵발전소 ⓒ함께사는길 이성수


포화상태 고준위핵폐기물 대책 부재

고리2호기 수명연장 추진으로 대책 없는 고준위핵폐기물 포화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정부가 통과시킨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고리 핵발전소는 2031년에 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포화된다. 현재 발전소 내 저장수조의 용량이 가득차 보관할 곳이 없다는 의미다. 수명연장을 하게 되면 발생하는 고준위핵폐기물 양이 늘어나기 때문에 포화시점이 더 당겨질 수 밖에 없다. 보관할 장소를 마련하지 못하면 발전소 가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부는 중간, 최종처분장을 당장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핵발전소 지역들은 이를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은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을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설정되지 아니한 서울, 경기도와 같은 지역에 인구수에 비례하여 설치하는 법을 최근 대표발의했다. 한마디로 핵발전소가 없는 곳에 임시저장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법이다.      

고리2호기를 비롯해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한다면 이 문제를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정작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나 논의도 없이 수명연장이 추진되고 있다. 수명연장으로 인한 안전성, 경제성 평가 부분에서도 이 문제는 제대로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 이대로 수명연장이 결정된다면 결국 모든 짐은 핵발전소 지역에 떠넘겨질 수 밖에 없다.  


묻지마 수명연장, 형식적인 의견수렴 절차

국민의 의견을 묻지 않은 핵발전소 건설과 수명연장이 이번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법으로 정해진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의견수렴마저도  부실한 평가서와 공개되지 않은 정보, 불친절한 설명으로 국민은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은 사실상 주민의견수렴이 법적 의무사항이 된 이후 처음으로 실시됨에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평가서 자체가 시민들이 보기 불가능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음에도 공람과정에 그 흔한 설명회 한번 개최한 바 없다.  

주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지방정부들의 역할도 부재하다. 핵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하면 지방정부가 방재대책을 시행해야 함에도 그 어떤 의견도 제시하는 지방정부를 찾기 어렵다. 지난 신고리 5,6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공람에도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내의 지자체인 울산시, 울주군, 기장군 등은 아무런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번 고리2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의견수렴에 지방정부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과연 이런 정부를 믿고 우리는 안심하고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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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탈핵시민 행동은 고리2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 폐기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운동연합


고리2호기 수명연장 중단해야 

정부가 올해 말 수립 예정인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실무안을 공개했다. 핵발전소 수명연장과 신규건설을 포함한 핵발전소 확대계획을 담았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핵발전소 확대를 말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목표를 그만큼 줄이는 계획이다. 작년 온실가스감축 목표를 수립하며 세웠던 2030년 재생에너지 30.2% 목표를 21.5%로 줄였다. 전 세계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핵발전 확대로 맞바꾼 셈이다. 

윤석열 정부와 핵산업계는 핵발전이 기후위기를 구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작 확대해야할 재생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핵발전을 확대한다면 탄소배출감축에 더 기여할 바가 없다. 오히려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만 늘리는 위험한 대책이다. 기후위기가 폭염, 폭우 등 이상 기후현상으로 나타나면서 핵발전 역시 안정적인 가동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태풍 힌남노에도 신고리 1호기가 발전이 정지되는 사고가 있었다. 

고리2호기는 부산과 울산 등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 만약 사고가 발생한다면 후쿠시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가 예상된다. 보관할 곳이 없어 쌓여있는 핵폐기물은 대책도 없다. 사고 후 1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녹아내린 핵연료를 꺼내지 못하고 막대한 양의 오염수를 바다로 버리겠다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아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을 중단하라.


|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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