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이상한 탈핵정책

지난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사업 프로젝트인 바라카 원전 건설현장에서 개최된 UAE 원전 1호기 건설 완료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청와대 


지난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아랍에미레이트(UAE) 바라카 원전 1호기 건설 완료 행사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UAE 최초이고 중동 최초의 원전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바라카 원전 건설 성공에 힘입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수주를 위해서도 노력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전국 탈핵운동 연대체인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핵발전소 수출 지원을 강하게 규탄했다. 

한편, 원자력계는 오랜만에 정부를 칭찬하며 핵발전소 수출확대 계기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원자력 학계·산업계·대학생 대표 등으로 구성된 ‘원전수출국민행동’은 문재인 대통령의 원전 수출 노력을 지지하며, 원전수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은 일자리와 산업을 파괴하는 원전수출반대 성명을 즉각 취소하라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들은 광화문에서 ‘원전수출국민대회’까지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UAE 핵발전소 수출, 의혹부터 풀어야 

문재인 정부는 탈핵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핵발전소 수출과 재처리 연구 등 문제에 있어서는 과거 핵발전 확대 정책과 단절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올해 초에도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잇따라 방문해 핵발전소 수출 의지를 적극 표명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핵발전소를 줄여나가는 정책을 펼치면서, 국외에서는 수출 지원하는 이율배반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탈핵에 대한 입장과 수출에 대한 입장을 달리했던 문제는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에도 탈핵은 지지하면서도, 수출은 반대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는 오랜 기간 수출 지상주의에 갇혀 성장해온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핵발전소 수출이 탈핵의 문제를 떠나서도 우리에게 진짜 득이 되는 것인지는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원자력계가 그토록 자랑하는 UAE 핵발전소 수출의 문제부터 살펴야 한다. UAE 핵발전소 수출 관련 저가계약, 건설비의 역마진 대출보증, 60년 가동 보증, 핵폐기물과 폐연료봉 한국 처리 등 의혹들이 제기되었음에도 제대로 해명된 것이 없다. 심지어 비밀군사협정까지 맺어 UAE 핵발전소 수출을 성사시켰다는 것까지 드러났다. 이에 대해 올 초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도 관련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UAE 핵발전소 수출은 그동안 제기되었던 각종 특혜와 불합리한 계약조건, 군사협정 등이 없었다면 성사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정부가 원전 수출을 지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결국 그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국가 전체로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관련 사실을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해서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 역시 이 UAE 핵발전소 수출 관련 각종 의혹과 비밀군사협정 체결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서 진실을 밝혀내고, 위법 사실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고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불확실한 위험만 증가시키는 핵재처리 연구 

정부가 핵발전소 수출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풀고 있지 못한 문제는 바로 고준위핵폐기물 건식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와 소듐냉각고속로 개발 사업이다. 그동안 원자력계는 고준위핵폐기물 문제 해결책으로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 연구개발을 추진해 왔다. 1997년부터 추진해온 이 사업에 약 6700억 원의 연구비가 투입되었다. 

원자력연구원은 그동안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고속로 기술로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20분의 1, 면적은 100분의 1, 독성은 1000분의 1로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이미 해외에서도 수십 년 동안 상용화에 실패한 이 사업은 ‘직접처분 방식보다 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으며, 경제성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핵비확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계속 있었다.  

더구나 원자력연구원이 위치한 대전지역 주민들은 지역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몰래 사용후핵연료를 들여와 연구를 하고, 핵 재처리 실험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크게 반대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에도 몇 차례 원자력연구원이 각종 방사성폐기물을 무단 폐기한 것이 드러나 연구자들에 대한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진 상태다. 

올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국회는 파이로프로세싱, 소듐고속로 관련 예산을 수시배정하고 전문가 재검토를 통해 집행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12월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 연구개발사업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했다. 중립 성향의 비원자력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출발부터 논란을 거듭했다. 연구 중단을 요구하는 측의 전문가 패널들은 재검토위원회의 편파적이고 비공개적인 운영이 개선되지 않는 것을 항의하며 중도하차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이런 파행에도 재검토 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2020년까지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 연구개발사업을 지속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재검토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을 보더라도 기술성, 안전성, 경제성 등 각종 논란들에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고”, “정밀검토가 필요하며”, “불확실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판단에도 연구 지속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할 일부터 제대로 하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지만, ‘언제 어떻게 가느냐?’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약속한 사항들의 이행은 더디기만 하다. 정부는 수많은 문제와 논란, 국민소송을 통해 수명연장 취소판결까지 난 월성1호기를 조기폐쇄하겠다고 계획했지만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 또한 삼척과 영덕, 울진의 신규 핵발전소 부지 지정고시 역시 취소되지 않았다. 더 이상 지역 주민들의 혼란과 논란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정부가 약속한 바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계획의 재공론화와 사회적합의가 필요하다. 지난 40년 동안 핵발전소를 가동해왔지만, 아직 우리는 고준위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처분장 및 관리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관리해야할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대책이 아직 없다. 세계적으로도 이 난제를 뾰족하게 해결한 나라가 없다. 그러는 사이 핵발전소 수조 안에 보관 중인 핵폐기물은 이제 포화상태에 다다른 상태다. 지난 정부에서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진행해 당장의 해결을 위해 건식 임시저장시설을 핵발전소 부지별로 건설하겠다고 했지만, 지역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 진행을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포함해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사회적인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재처리와 소듐고속로 연구개발 역시 원자력 연구자들의 뜻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를 통해 검증되고 합의되어야 할 문제다.    

한편, 경주에 이은 포항 지진은 핵발전소 안전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아직 지진으로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점은 다행이다. 그렇지만 가동 원전 24기 중 75퍼센트인 18기가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최대지진평가를 새롭게 실시해야 하며, 내진설계 역시 현재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월성 2~4호기처럼 근본적으로 내진설계 강화가 불가능한 안전성 미달 핵발전소는 조기 폐쇄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안전한 대한민국, 핵과 공존할 수 없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게 공감 가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핵발전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핵의 위험은 국내 국외가 다르지 않으며, 핵사고의 피해는 국경을 가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UAE 수출 때처럼 온갖 불합리한 계약과 각종 특혜까지 지원하면서 핵발전소 수출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우리에게 위험한 것은 다른 나라에도 위험하며, 핵발전소 수출은 전 세계의 핵사고 위험을 확산하는 비윤리적 정책이다.  

핵 재처리와 고속로 연구개발 역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관점에서 다시 돌아봐야 할 문제다. 문제를 연구자들의 일자리나 핵 기술 보유로 협소화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탈원전, 핵비확산, 생명과 안전 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연구 사업을 결정해야 한다. 그동안 아무런 견제와 감시 없이 막대한 국가 예산을 사용해 온 것만으로도 충분한 특혜를 누렸다. 지금 필요한 연구는 과거의 핵의 위험을 확대하는 기술 개발에서 벗어나 핵폐기물의 직접처분과 핵발전소 안전성 강화, 폐로 등과 관련된 연구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난 40년 동안 유지되어온 핵산업과 연구개발, 학계 등의 반발이 거센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과거를 적당히 유지 존속하는 방향에서 해결하려 한다면 갈등만 내재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탈핵에너지전환이라는 큰 흐름에 핵산업계가 전환될 수 있도록 세부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하며 지금 필요한 분야로 학계가 연구전환에 나설 수 있도록 일관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글 |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 에너지국 탈핵팀장


주간 인기글





03039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3
TEL.02-735-7088 | FAX.02-730-1240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